The Righteous Demon of Kunlun RAW novel - Chapter 63
63화
그냥 전생처럼
문 앞에 서 있던 네 명의 청년 무인은 무척 혼란스러웠다.
‘진옥룡이 밥을 산다고?’
‘우리 같은 일반 무인들한테?’
청운의 꿈을 안고 무림맹에 입맹했던 과거의 그들이 아니었다.
출신과 자질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낀 지 오래, 진옥룡은 그들과 다른 세상에 사는 존재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안 가실 거예요? 다른 분한테 청해야 하나?”
한 더벅머리 청년이 급히 외쳤다.
“가, 갑니다! 가고 싶습니다!”
뒤늦게 다른 이들도 함께 가겠다고 외쳤다.
정광은 백승무와 일반 무인들을 이끌고 발걸음을 옮겼다.
무림맹은 무척 넓었기에 정문까지 가는 동안 많은 이들과 마주쳤다.
연회에 초청받지 못한 일반 무인들이었는데, 그 유명한 진옥룡이 자신들 같은 일반 무인들과 함께 걷는 걸 보자 의문에 휩싸였다.
“이보게. 지금 어딜 가는 건가?”
“밥을 사주신다고 하셔서…….”
“뭐라고?”
구룡사봉보다 천재일 것이라 평가받는 정광이었다.
십존 중 셋의 공동전인이 되기까지 했으니, 훗날 얼마나 대단한 고수가 되겠는가?
그런 이와 함께 밥을 먹는 건 정말 흔치 않은 기회였다.
일반 무인들은 정광에게 선택받은 동료들을 부러워하며 수군거렸다.
“미치겠네. 나도 끼고 싶은데.”
“아서라. 그게 되겠냐?”
속삭이는 소리였지만 정광의 귀에는 낱낱이 들렸다.
‘이거야 원.’
무림맹도 참 어지간했다.
애들한테 밥을 얼마나 엉망으로 먹이길래 저럴까.
주방에 숨어들어 갔을 때도 느꼈지만 정말 해도 해도 너무했다.
그렇다고 저들까지 다 데려가서 밥을 살 의향은 전혀 없…….
‘……잠깐.’
원래 일미반점으로 가려던 인원은 정광과 백승무, 청년 무인 넷을 포함해 총 여섯 명이다.
‘사람이 아무리 많이 먹어봐야 한계가 있는 법이지.’
저번엔 개방 거지가 둘이나 있었기에 많이 시키고도 남김없이 먹을 수 있었지만…….
이 네 청년이 그들만큼의 신위를 보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막 시킬 수도 없고.’
정광은 청해성주에게 받은 화려한 도복을 입고 있었다.
이 도복은 중원사람들에게 곤륜파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내가 음식 귀한 줄 모르고 다 남겼다는 소문이 돌면…….’
음식 귀한 줄 아는 곤륜 도사들이 엄청난 잔소리를 쏟아내리라.
‘그런데 저들을 다 데려가면?’
소문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모든 걸 맛볼 수 있다.
돈 좀 들겠지만 뭐 상관있나.
정광은 부자였다.
“저기요.”
“……?”
그의 말에 이목이 집중됐다.
“다 같이 가시죠.”
“……!”
정광은 환호하는 일반 무인들을 이끌고 무림맹 정문을 나섰다.
그 모습은 마치 사기충천한 병졸들을 이끌고 출정하는 장군과 같았다.
* * *
“후우우.”
적을 치러 왔다가 빈 진지를 본 장군의 마음이 이럴까.
“자리가 없다고요?”
일전에 봤던 점소이가 안타까운 얼굴로 허리를 숙였다.
“소신선께서 또 와주셨는데 죄송합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점심시간을 좀 넘었는데도 일미반점엔 손님들이 바글바글했다.
‘어쩐다. 갈 만한 데가…….’
개방 방주가 추천했던 만향루는 기루이기에 이 시간엔 문을 안 연다.
‘그럼 남는 건 연화객잔인데.’
꽤 오래 묵었던 곳이라 별로.
그래도 그곳이라도 갈까 하는데.
“저…….”
더벅머리 청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이곳 토박이라 괜찮은 곳을 압니다.”
“정말 괜찮은 데예요?”
청년이 가슴을 폈다.
“이곳처럼 고급 요리를 파는 곳은 아닙니다만, 가격도 싸고 맛도 좋고 양도 많으며 인심까지 후하고…….”
“거기서 돈 받으시는 건 아니죠?”
“그럴 리가요! 절대 아닙니다!”
무인들을 둘러보니 그곳을 아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이가 꽤 있었다.
‘어차피 달리 아는 곳도 없지.’
비싼 것만 맛있는 게 아니다.
싼 것은 그 나름의 맛이 있다.
잘 만든 것이라면 더 그렇고.
“가보죠.”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더벅머리 청년이 앞장섰다.
그들은 꽤 긴 시간을 걸어야 했다.
가면 갈수록 주위의 가택과 상점들이 허름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곳은.
‘공터?’
작은 숲 앞에 있는 공터였다.
작은 반점이 덩그러니 있었는데 어찌나 작은지 손님이 들어갈 자리조차 없어 보였다.
‘요리만 하는 곳인가.’
반점 주위에는 판자를 대충 엮어 만든 탁자들이 있었다.
심지어 의자는 나무를 잘라내고 남은 그루터기였다.
‘이런 데가 맛있다고?’
정광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더벅머리 청년을 바라봤다.
“진짜 여기서 돈 받는 거 아니에요?”
“절대 아닙니다! 믿어주십시오!”
청년의 목소리가 너무 컸는지 반점에서 중년 여인이 나왔다.
수십 명의 건장한 무인들 때문에 당황하던 그녀는 청년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들. 손님들을 모셔온 거니?”
정광은 청년을 후려칠 뻔했다.
아들?
아아아들?
“저기요.”
“네? 네?”
정광의 스산한 목소리에 청년이 부들부들 떨었다.
“지금 나한테 약 판 거예요?”
“저, 절대 아닙니다!”
“계속 아니라고만 하시네. 하긴. 돈을 안 받긴 하시겠네요.”
“그렇습니다!”
“아들이니까. 근데 아들이 어머니 밥을 맛있어하는 건 당연하잖아요.”
몇몇 무인들이 작게 탄식했다.
어머니에게 끝없는 사랑을 받았지만, 맛있는 요리만큼은 받지 못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더벅머리 청년은 아니었다.
가슴을 펴고 당당히 말했다.
“제가 아들이어서가 아닙니다. 어머님의 요리는 최고입니다.”
“그렇다기엔 장사가 잘 안 되는 것 같은데.”
“이 근방의 사람들은 풍족하지 못합니다. 지금은 열심히 일하고 있을 시간이지요. 식사 시간에는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이렇게까지 자신 있게 말하니 마음이 움직였다.
“그럼 먹어보죠.”
“후회 안 하실 겁니다!”
정광은 중년 부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불안한 얼굴로 정광과 아들을 번갈아 보던 그녀가 화들짝 놀랐다.
“안녕하세요. 만드실 수 있는 거 다 만들어주실래요. 술도 주시고요.”
“네,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근데 혼자서 다 하실 수 있어요?”
“아, 아들과 같이 만들면 되니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이미 더벅머리 청년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반점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웃기는 녀석이네.’
피식 웃은 정광은 백승무와 함께 구석진 곳에 있는 탁자에 앉았다.
“다들 편한 데 앉으세요.”
사람들은 잠시 주저하다가 그 말에 따랐다.
정광은 그루터기에 앉아 하늘을 바라봤다.
푸른 하늘에 떠 있는 하얀 구름들을 보니 마음이 느긋해졌다.
많이 보았던 풍경.
곤륜의 것이었다.
‘다들 잘 있으려나.’
그럴 리가.
깨진 단전을 복구한 뒤, 정광에게 가혹한 수련을 받은 운후였다.
받은 것 이상으로 다른 이들에게 돌려주고 있으리라.
‘하지만 그것만으론 완전치 않지. 계속 가만히 있을 놈들이 아니야.’
전생의 수하들이 떠올랐다.
정광이 무공을 대성한 뒤론 바짝 엎드렸지만, 그 전까진 얼마나 끈질기게 덤벼들었는가.
곤륜이 많이 나아졌다곤 하나, 상대는 단일 세력으론 천하제일인 천마신교였다.
‘역시 팽 씨가 맹주가 돼야겠지.’
그래야 무림맹 고수들을 청해성으로 보낼 수 있고, 정광은 마음 편하게 천하를 주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탁자 위에 요리가 놓였다.
“맛있게 드십시오! 저희 가게의 자랑, 소채 무침입니다!”
정광의 눈썹이 꿈틀했다.
천하에 요리가 얼마나 많은데, 기껏 소채 무침이 가게의 자랑이란다.
‘뭐 이런.’
더벅머리 청년은 정말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다른 자랑은 없어요?”
“역시 진옥룡이시군요. 물론입니다. 아직도 많이 남았습니다.”
요리 얘기만 나오면 일류고수 같은 자신감을 뿜어내는 청년이었다.
정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뒤, 젓가락을 들어 소채를 집어 먹었다.
“어라?”
“하하하. 최고 아닙니까?”
“그 정돈 아닌데 괜찮네요.”
“…….”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감 넘치던 청년이 주눅 든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를 옆에서 지켜보던 백승무가 위로했다.
“사형의 ‘괜찮다’는 무척 맛있다는 뜻이오. 나도 잘 먹겠소이다.”
백승무는 정말 맛있게 먹었다.
더벅머리 청년의 얼굴이 다시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이제부터 계속 가져오겠습니다!”
힘찬 발걸음으로 떠나려는 그를 정광이 붙잡았다.
“저기요.”
“네. 필요하신 게 있으면 뭐든지 말씀…….”
“고기와 술도 주셔야죠.”
“……진옥룡께선 도사…….”
“제 사제는 아니잖아요.”
“아. 평복을 입고 계셨지요. 속가제자셨군요. 알겠습니다.”
“사제는 아주 많이 먹거든요. 돼지만큼.”
“하하. 탁자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대령하겠습니다!”
청년이 가자 백승무가 긴 한숨을 쉬었다.
“사형. 저는 속가제자도, 돼지도 아닙니다.”
“사제는 아직 도호도 못 받았잖아. 그리고 돼지가 어때서. 모든 건 마음에 달린 거 몰라?”
“그럼 사형도 소채를 고기라 생각하고 드시면 되지 않습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풀 쪼가리가 어떻게 고기가 돼?”
“……그냥 조용히 있겠습니다.”
더벅머리 청년과 그의 모친은 맛은 물론이요, 손도 무척 빨랐다.
수십 명이나 되는 무인들이 쉴 틈 없이 먹을 정도로 요리가 끝없이 나왔다.
술도 계속 나왔는데 싸구려 백주(白酒)치곤 훌륭한 맛이었다.
“크으. 오랜만에 마시니 좋군.”
“자. 자. 자네도 한 잔 들게나.”
정광과 함께 왔기에 몸가짐을 조심하던 무인들은 술이 들어가자 긴장이 풀렸다.
긴장이 풀리니 시야가 넓어졌고, 지금껏 눈치채지 못했던 광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정광을 바라보며 경악했다.
‘미친! 저게 말이 돼?’
번쩍.
오물오물.
번쩍.
꿀꺽꿀꺽.
젓가락과 찻잔이 눈부신 섬광을 발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놀라운 무공이구나!’
‘검광(劍光)도 아니고 젓가락광과 잔광이라니!’
정광은 고기와 술을 몰래 먹기 위해 빠르게 손을 놀릴 뿐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짐작조차 못 하는 사람들은 그저 놀랄 수밖에.
‘자질뿐만이 아니었어!’
‘먹고 마시는 것조차 수련의 일환으로 삼다니!’
정광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 감탄의 빛이 담기기 시작했다.
운 좋게 대단한 무재(武才)를 갖고 태어나 고수가 된 줄 알았건만.
직접 겪어본 정광은 쉴 틈 없이 용맹정진하는 진정한 무인이었다.
‘그러고 보니 성품도 소문과는 다른 것 같군.’
‘이렇게 많이 사주면서도 잘난 척 한 번 안 하는구나.’
‘오히려 우리가 불편해할까 봐 구석에서 조용히 먹고 있잖아.’
정광의 성품까지 세탁되었다.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더니.’
‘진짜 용이라 불릴 만하다.’
‘하긴. 곤륜파의 선인들 밑에서 망종이 나올 리가 있나.’
일반 무사들은 곤륜파에 깊은 호감을 품고 있었다.
항상 겸손하고 친절히 행동하는데 누가 싫어하겠는가.
‘그에 비하면 다른 명문의 고수들은…….’
‘하아. 생각하니까 또 열 받네.’
명문 제자라고 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오만한 이들이 태반이었다.
그들에게 당한 무시와 굴욕이 떠오르자 험담이 나오기 시작했다.
“자네 혹시 그거 아는가? 요즘 화산파와 종남파가 아주 골머리를 앓고 있더군. 섬서성에서…….”
“흐흐. 꼴좋게 됐군. 남궁세가 숙소에서는 가주가 노호성을 질렀는데, 그 이유가…….”
자고로 험담만큼 좋은 술안주는 없는 법. 일반 무인들은 직접 보고 들은 일들을 중구난방 떠들어댔다.
물론 정광과 백승무를 의식해서 낮게 속삭였지만, 정광은커녕 백승무까지 전부 들을 수 있었다.
백승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거참. 심각한 일부터 시시콜콜한 일까지 별의별 말들이 다 나오는군요. 저런 일들을 어떻게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연하잖아.”
“어째서 그렇습니까?”
“강호에서 정보로 유명한 곳이 어디지?”
“개방이지요.”
“왜 그럴까?”
“거지는 세상 그 어느 곳에도 있으니까…… 아! 이제 알겠습니다.”
일반 무인들은 맹 내 어느 곳에도 있다.
많이 보고 많이 들으니 많이 알 수밖에 없다.
백승무는 간단한 사실을 짐작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다.
“거참. 저도 멀었군요. 이렇게 시야가 좁아서야…….”
“꼭 그렇지만도 않아.”
“네?”
“힘이 있으면 없는 이들을 무시하기 마련이니까.”
소위 명문이라 불리는 곳의 사람들은 일반 무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쓰면 유용한지 생각조차 안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광은 달랐다.
‘그냥 전생처럼 해버려?’
독심악혼(毒心惡魂)이라고 불렸던 어린 시절부터 힘 있는 자들과 싸워야 했다.
그의 편이 되어줄 수 있는 건 힘없는 하급 교도들뿐이었다.
정광은 그들에게서 많은 걸 얻을 수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정보였다.
‘조금만 건지자.’
아까 하늘을 보며 곤륜을 떠올릴 때부터 해왔던 생각이 정리되었다.
정광은 자리에서 일어나 일반 무인들에게 다가갔다.
“사, 사형! 또 무슨 일을 저지르시려고…….”
백승무가 기겁하며 따라붙었다.
일반 무인들도 놀란 얼굴로 숨을 죽였다.
하지만.
정광은 예의 있게 행동했다.
“다들 한 잔씩 받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