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ighteous Demon of Kunlun RAW novel - Chapter 67
67화
수련회
남궁화인은 대연무장으로 향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모두 정중하게 예를 취했고, 그 역시 겸손하게 답례를 했다.
빙그레 미소까지 띠며.
남궁화인은 열불이 치솟아도 웃을 수 있는 노련한 사람이었다.
‘거치적거리는군.’
마음은 급한데 오늘따라 마주치는 사람이 많았다.
이래서야 언제 가겠는가?
양해를 구하며 발걸음을 서두르다 보니 저 앞에 대연무장이 보였다.
“……!”
열린 문 안으로 많은 사람이 보였다. 밖에 있는 이들도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귀를 집중하자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 긴가민가했는데 이렇게 유용한 수련일 줄은 몰랐군.”
“그러게 말일세. 오길 잘했지. 정말 후회할 뻔했다니까.”
“에구구. 근데 너무 힘들어. 제대로 걷지도 못할 판 아닌가.”
“어쩔 수 있나. 다음 수련은 몸을 안 쓰는 것도 있다 했으니 조금만 더 참게나.”
그때, 입구에 서 있던 팽가 무인이 크게 외쳤다.
“휴식 시간 끝났습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밖에서 얘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갔다.
절룩거리면서도 최대한 빨리 걸으려는 모습이 무척 우스꽝스러웠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던 남궁화인에게는 전혀 웃기게 느껴지지 않았다.
일반 무인의 복색을 한 이들뿐만 아니라 알 만한 문파의 무인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무슨 수련을 하길래!’
육중한 문이 닫히자 연무장은 바깥세상과 단절되어 버렸다.
남궁화인은 조금 더 빨리 걸어 입구에 서 있는 팽가 무인에게 물었다.
“왜 문을 닫는 건가?”
팽가 무인은 예의 바르게 손을 모은 뒤 입을 열었다.
“원하는 이만 참여할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허어. 그러면 더 문을 닫으면 안 되지. 늦게 오는 이는 어떡하라고?”
“하루에 한 시진 씩 두 번의 수련이 있습니다. 지금이 두 번째의 수련이지요. 원하는 이는 내일 오면 됩니다.”
남궁화인은 고개를 갸웃하며 풍성한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흐음. 대체 어떤 수련인지 궁금하군. 견식해 보고 싶으니 문을 열어주시게.”
“죄송하지만 안 됩니다.”
“……!”
남궁화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안 된다고?’
평생 몇 번 듣지 못했던 말이었다.
남궁세가의 가주 자리에 앉은 뒤엔 더더욱 못 들어본 말이었다.
헌데 그걸 팽가의 가주도 아닌 일개 청년이 했다?
‘감히 이놈이!’
순간적으로 검을 뽑을 뻔했던 남궁화인은 억지로 분노를 삼켰다.
아무리 그라 해도 팽가의 무인에게 손찌검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하다못해 혀라도 날카롭게 놀리면 기분이 조금 풀리련만, 그것조차 참아야 할 상황이었다.
‘보는 눈이 너무 많구나.’
상황을 지켜보며 수군대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반 무인이 아닌, 힘깨나 있는 문파의 사람들이었다.
무림 맹주 선출권을 가진 문파 소속인 자들.
그들에게 평정을 잃은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남궁화인은 최대한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이 짧았군. 자네 말이 맞아. 규칙은 모두에게 일괄적으로 적용되어야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궁화인은 빙그레 웃어 보인 후 발걸음을 돌렸다.
아우인 남궁신건에게 날카로운 전음을 보내며.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아내게.
-아, 알겠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 * *
첫 번째 수련 시간은 몸을 다스리는 기초수련으로 진행됐다.
참여한 무인 중 절대다수가 일반 무인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터.
정광은 그들에게 기초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기초가 약한 무공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이런 얌전한 표현이 아니었다.
노골적이다 못해 살벌한 말이었다.
“기초가 약하면 빨리 죽죠.”
“……!”
“기초는 뼈대예요, 뼈대. 뼈가 흐물흐물하면 거기 달라붙은 살이 제대로 움직이겠어요?”
말이 되면서도 안 되는 듯한 말에 무인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정광은 그들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자. 먼저 馬步)부터 하죠. 첫날이니까 딱 일각만 하는 겁니다.”
무인들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무슨 절세무공을 가르쳐 주기를 바라진 않았지만 마보라니?
정광은 멀뚱멀뚱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안 하실 분은 나가시면 됩니다.”
“……!”
일반 무인인 장이가 석가장의 막내 공자를 이기 게 만든 정광이었다.
마보 다음에는 제대로 된 게 나올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무인들은 정광의 말에 따랐다.
내심 투덜거리면서.
‘이게 대체 얼마 만인지 원.’
두 팔을 들어 앞으로 뻗고,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린 뒤 무릎을 굽힌다.
허벅지가 땅과 수평이 된 완벽한 마보 자세였다.
하지만 그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있었으니.
정광의 마보는 그런 게 아니었다.
“아아. 누가 편히 쉬시라 했어요.”
“……?”
“저기 오른쪽 세 번째 줄, 앞에서 열두 번째 있는 분 보이시죠?”
사람들의 고개가 일제히 한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마보 자세를 한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장이가 있었다.
“저게 마보죠. 모두 똑같이 따라 하세요.”
“……!”
사람들은 경악했다.
‘저게 마보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장이는 발바닥이 아니라 발끝으로 선 채 마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특이하군. 한번 해볼까.’
한 무인이 시험 삼아 장이의 자세를 흉내 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이게 뭐야!’
원래의 마보보다 열 배 이상은 힘들고 스무 배는 더 심한 아픔이 느껴지는 것 아닌가!
“크윽!”
그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호기심을 느낀 사람들은 그의 자세를 따라 했다.
그들 역시 얼마 안 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끙끙대기 시작했다.
‘이, 이렇게 힘들다니!’
‘기본 수련을 너무 등한시했던 건가!’
마보는 무공에 입문하자마자 배우는 기본 중의 기본인 수련법이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었지만, 의외로 꾸준히 수련하는 이는 드물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수련이었으니까.
정광은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떠는 사람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지루하지 않죠?”
다들 지루하긴커녕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고통은 훨씬 크니 짧은 시간에도 탁월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거예요.”
효과는 아직 모르겠으나 확실히 지나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정광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정광은 그 눈빛들을 태연하게 받으며 담담히 말했다.
“누구나 기초의 중요성을 알지만 실제로 지키는 이는 드물죠.”
“…….”
“왜 그럴까요? 지루해서? 고통스러워서? 사실 이건 다 핑계예요.”
“……?”
“남은 안 하니까. 다들 멋들어진 초식을 수련하는데 나만 이러고 있으면 뒤처질 것 같으니까. 이런 이유 때문이죠.”
“…….”
정광이 싱긋 웃었다.
“그러니까 다 같이해 봐요. 그럼 불안한 마음도 없을 겁니다.”
물론 정광은 안 했지만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다.
무인들에게서 의욕의 불씨가 피어오른 것이다.
정광은 거기에 장작더미를 밀어 넣었다.
“아. 그리고 마보를 열심히 하면 부인께 사랑받습니다. 무공 고수는 못 될지언정 강한 남자는 무조건 되는 거죠.”
“……!”
모두 알면서도 애써 모르는 척하던 진리였다.
‘그래! 내공 따위 백날 수련해 봐야 뭐 해!’
‘남자는 외공! 그중에서도 마보다!’
혼인을 했든 안 했든 상관없었다.
남자라는 이름 아래 모두 하나가 되어 뜨겁게 불타올랐다.
“아. 깜빡했네.”
정광은 소외돼 있던 이들에게도 당근을 던졌다.
“마보 제대로 하면 하체가 탄탄하면서도 날씬해지는 거 아시죠?”
알다마다.
그저 귀찮아서 안 했을 뿐.
여인들도 뜨겁게 불타올랐다.
정광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욕은 생겼네.’
버티고 버티다가 쓰러지는 이들이 속출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를 악물고 일어나 다시 마보를 행했다.
정광이 말한 이유 때문만이 아니었다.
서로를 향한 경쟁심, 이 기회에 기초를 다시 튼튼히 쌓겠다는 의지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렇게 지옥 같은 일각이 지났다.
“그만요. 잠시 쉬죠.”
여기저기서 털썩 주저앉는 소리가 울렸다.
모두 고통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눈빛만큼은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휴식 끝. 모두 일어나세요.”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장이 소협. 이리 나오세요.”
“네?”
“어서요.”
“아, 알겠습니다!”
정광은 절뚝거리며 다가온 장이에게 전음을 보냈다.
-알려 드린 체조법 있죠? 저분들한테 시범을 보여주세요. 후팔식(後八式)은 빼고 전팔식(前八式)만요.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전팔식만…….”
-아. 전음 못 하시지.
“…….”
장이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뭘 부끄러워해요. 수련하다 보면 강해질 거고, 그때 배우면 되지.
“……!”
정광을 따르면 언젠가는 강해질 수 있다는 의미!
장이의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쨌든, 후팔식은 저와 연이 닿은 분들만 알려드릴 거예요. 장이 소협과 동료분들이요.
장이의 얼굴이 감격으로 물들었다.
이제 그는 물론이요, 그와 함께 후팔식을 배웠던 동료들은 정광에게 충성할 수밖에 없으리라.
-자. 어서 하세요.
정중히 예를 취한 장이는 정광에게 배운 체조법을 펼쳤다.
제자리에서 사지를 놀리는 게 아닌, 걸음을 옮기며 행하는 독특한 체조법이었다.
장이를 따라 움직이던 사람들은 얼마 안 가 몸이 편해지는 걸 느꼈다.
심지어 마음까지도.
이는 일반 무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호기심 때문에 온 육방칠단삼장(六幇七團三莊)의 몇 안 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단순한 체조법이 아니구나!’
‘선기(仙氣)가 담겨 있는 것 같군. 설마 곤륜의 비전체조법인가?’
그럴 리가 있나.
곤륜산은 높고 험하다.
무공을 모르는 도우(道友)라면 오르고 난 뒤 몸져누울 정도로.
그들을 위해 정광이 만든 체조법일 뿐,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정광의 기준에서.
‘덕분에 사람들이 많이 올 수 있게 되어서 살림 좀 폈지.’
잠시 과거를 회상한 정광은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이번엔 대련입니다! 자신의 장단점을 확인해 보는 거예요!”
정광은 입으로만 떠들 뿐, 대련 상대는 팽가가 했다.
팽가는 수련회의 주최자인 만큼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가주의 아우인 팽수원을 포함한 팽가 무인들이 수련회에 참여한 무인들을 상대했다.
일반 무인들이 그런 고수들을 상대로 오래 버티는 건 불가능한 일.
그래도 엄청난 기회였다.
그들이 언제 이런 고수들과 손을 섞을 수 있겠는가.
팽가 무인들은 패는 것도 열심히, 조언도 열심히 했다.
일반 무인들은 미처 모르고 있던 잘못된 버릇이나 개선해야 할 방향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들로서는 가뭄에 단비가 내리는 기분이었다.
“첫 번째 수련 시간은 여기까지요! 이각 쉬고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나가서 쉬셔도 돼요!”
정광의 말이 떨어지자 대연무장의 문이 활짝 열렸다.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배운 것을 다시 펼쳐보는 사람.
골몰히 생각에 잠긴 사람.
드러누운 채 가쁜 숨을 쉬는 사람까지.
저마다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떠들긴 좀 그렇군.”
“그러게. 나가서 얘기하세나.”
입이 근질근질한 이들은 대연무장 밖으로 나가서 신나게 떠들었다.
밖에 있던 사람들에게 다 들릴 정도로.
시큰둥한 얼굴로 듣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입을 크게 벌렸다.
믿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얘기였기에.
그때, 입구를 통제하던 팽가의 무인이 외쳤다.
“참여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번 수련 시간부터 시작하셔도 됩니다!”
잠시 망설이던 사람들은 연무장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정광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더 잘되네.’
첫째 날에 벌써 이 정도다.
내일이 되면?
몇 배 더 불어날 게 뻔한 일.
‘남궁 씨, 열 좀 받겠는걸.’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 남궁화인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평온한 얼굴이었지만 속은 뒤집힌 지 오래이리라.
‘조금 더 뒤집어 줘야지.’
정광은 입구를 관리하는 팽가 무인에게 전음을 보냈다.
-휴식 시간 끝이요. 문 닫아주세요. 남궁 가주라도 예외 없는 거 아시죠?
-물론입니다.
팽가 무인이 바로 외쳤다.
“휴식 시간 끝났습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밖에 있던 사람들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대연무장의 문이 천천히 닫혔고,
그 사이로 보이던 남궁화인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사라졌다.
쿵.
정광은 완전히 닫힌 문에서 시선을 거두며 상쾌하게 웃었다.
“수련 다시 시작할게요! 이번엔 구룡사봉께서 도와주실 겁니다!”
정광은 여전히 입으로만 떠들고 있었다.
수많은 무인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우와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