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ighteous Demon of Kunlun RAW novel - Chapter 7
7화
곤륜의 무공은 넓고도 깊노니
운 자 배와 허 자 배가 모인 대회의가 열렸다.
주제는 어떡하면 더 강해질 수 있는가?
발표자 정광은 사문의 어른들 앞에서 자신의 이론을 설파했다.
“열심히 하면 돼요.”
“잘해야 하고요.”
“운도 좋아야죠.”
이렇게 간단할 수가 있나.
물론 듣는 이들은 황당했다.
대표로 운후가 나섰다.
정광을 믿어 의심치 않는 그였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그게 전부인 것이냐?”
“네.”
“……그렇구나.”
역시 운후였다.
눈에는 불신의 빛이 어려 있지만 소중한 사손을 믿으려 했다.
하지만 아닌 이들이 더 많았다.
“믿을 수 없다.”
전에 ‘멋진’ 추운권 문제로 길길이 날뛰었던 허직이었다.
아직도 꽁해 있나 하는 생각이 정광의 머릿속을 스쳤지만 허직은 그렇게까지 속이 좁은 사람은 아니었다.
“너무 통상적인 말 아니더냐.”
“원래 진리는 단순하잖아요.”
“……그거야 그렇다만 그리 간단히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열심히 하고 잘하고 운이 좋아야 하다니, 그런 말을 누가 못 하는가.
허청이 그래도 사부랍시고 정광을 거들었다.
“이보게 사제. 틀린 말 하나 없거늘 왜 그러나?”
“허어. 틀린 말이 없다니요.”
“아까 못 들었나? 진리는 단순하다네.”
“아니, 그게 무슨…….”
허청은 계속 떼를 썼다.
내 제자는 천재 중의 천재인데 감히 네가 의심을 해? 뭐 이런 내용이었다.
울화가 쌓인 허직은 고개를 돌려 운 자 배를 바라봤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허청을 꾸짖어 달라고, 좀 도와 달라고.
하지만 운 자 배는 정광에게 받은 게 있는 처지, 어찌 싫은 소리를 하겠는가. 게다가 운후와 장문인이 무언의 협박도 했는데.
허직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데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운 자 배 누구도 그러라 하지 않았지만 허직은 말을 이었다.
“갑자기 무척 정정해지셨습니다. 단체로 깨달음을 얻으신 겁니까? 아니면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장로들은 모두 먼 산을 바라보거나 허허거릴 뿐이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는 일.
딱 봐도 정광이 관계된 거다.
진이 빠진 허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허청에게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소, 사형. 그렇다 칩시다.”
“어허. 치다니? 맞다니까?”
“……!”
가까스로 참던 허직이 폭발했다.
“열심히 하는 건 자신 있소! 그런데 잘하는 것과 운이 좋은 건 정확히 어떤 의미요?”
“당연히 좋은 의미지!”
그야말로 끝이 없는 대화다.
지루하게 지켜보던 정광이 허직에게 말했다.
“사숙. 열심히 하는 게 제일 어려운 건데요.”
“……무어라?”
허직은 뭔가 잘못 알고 있었다.
어쩌겠는가.
어리고 배분 낮은 정광이 이해해줘야지.
그의 오해를 바로잡아 주었다.
“잘하는 건 제가 알려 드리는 대로 하시면 해결돼요.”
주위가 조용해졌다.
“……운이 좋은 건?”
“곤륜은 이미 운이 좋잖아요.”
모두가 ‘설마’ 하고 생각했다.
“……왜?”
정광은 당연하다는 듯 손가락을 들어 자신을 가리켰다.
“제가 있으니까요.”
종합해 보자면 곤륜에는 운 좋게도 정광이 있고, 그가 가르치는 대로 하면 잘하게 될 것이니, 너희들만 죽어라 열심히 하면 된다였다.
모두 입을 떡 벌렸지만 정광은 진지했다.
“좀 힘들더라도 열심히 하실 거라 믿을게요.”
* * *
운 자 배, 허 자 배, 정 자 배 모두가 대연무장에 모였다. 심지어 장문인까지.
다들 황당했지만 기대도 하고 있었다.
이제껏 정광이 해왔던 일들을 돌아보면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몇몇 이들은 정광을 개파조사의 재래쯤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말은 그랬지만 실제는 다르겠지.’
‘얼마나 대단한 방식일까?’
‘멋지고 강한 곤륜 무공이다!’
‘바로 지금부터 시작이야!’
모두가 집중한 걸 본 정광이 엄숙히 선언했다.
“자질과 적성에 맞는 걸 파셔야 해요.”
맥이 탁 풀렸다.
도사들이 불안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웅성거렸다.
“너무 평범하잖소?”
“다 아는 선택과 집중이라니.”
“허어. 이건 좀…….”
정광은 신경 쓰지 않고 인원을 나눴다. 지난 세월 동안 그들을 봐왔기에 망설임이 없었다.
하지만 도사들은 달랐다. 검법을 제외한 분류에 포함된 이들이 거세게 항의했다.
“이제껏 검법에 매진해 왔는데 장법이 웬 말이냐?”
“사숙은 그쪽이 맞는데요.”
“네 안목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만 본문의 제자라면 당연히 검법이다.”
“장법 무시하시나요? 그걸로 더 멋있고 강해지실 건데요.”
정광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솔직히 그들이 안쓰럽기도 했다.
천하제일도 못 해봤으면서 무슨 말들이 그리도 많은지.
뭐 어쩌겠나. 지금이라도 바른길로 이끌어야 한다.
그래도 여전히 불복하는 이에겐 친절히 말해줬다.
“그럼 사숙은 하시던 대로 하세요. 나중에 원망하지 마시고요.”
“…….”
이 찝찝함은 뭘까.
천재 중의 천재가 나중에 원망하지 말란다.
도사들은 슬그머니 그의 말을 따랐다.
“자! 집중하세요! 이론은 나중에! 실전부터 하는 거예요!”
정광은 바쁘게 움직였다.
저쪽으로 가서 검법, 이쪽으로 와서 권법, 한 시도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시범을 보였다.
“원래는 이렇게 하셨지만 여기선 이렇게!”
슈루루루룩-
절도 있게 찔러가던 검이 폭풍을 헤쳐 가는 용처럼 꿈틀거리며 날았다.
“오오오!”
멋진 곤륜이다.
“이건 아니에요! 요렇게 하시는 겁니다!”
우우우웅- 펑!
평범했던 정권 찌르기가 기의 구름에 휩싸여 허공을 타격하는 장관이라니!
“와아아!”
강한 곤륜이다.
“모두 아셨죠?”
“알았다!”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마다 도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멋지고 강한 곤륜 무공.
누가 부정할 수 있으랴?
마음 한편에 쌓여 있던 의심이 희미해져 갔다.
몇몇은 기존 무공과 지금 배운 무공으로 대련하며 경악하고 있었다.
“이럴 수가! 허리를 조금 튼 것만으로도 이런 위력이! 이런 멋이!”
“어억! 확실히 다르군요! 상대해 보니 천양지차입니다!”
정광을 돌아보는 그들의 눈빛에는 경이로움이 담겨 있었다.
이렇게 운 자 배와 허 자 배는 이미 열광의 도가니!
정 자 배도 적극적으로 임했다.
“사제. 출현입빈약망약존면면부절고체심근(出玄入牝若亡若存綿綿不絶固蔕深根) 구절은 어찌 풀이해야 하나?”
정광과 같은 항렬인 정 자 배가 가장 골머리를 싸매는 것은 내공심법이다.
이것만 해도 그렇다.
단전을 출입하는 기운은 있는 듯 없는 듯 미미하게 끊어지지 않게 하며 가늘게 쉬면 꼭지는 단단해지고 뿌리가 깊어진다?
정광은 죽어서 개파조사를 실제로 만나면 할 말이 참 많았다.
어이, 영감.
있어 보이려는 것도 정도가 있지.
무슨 놈의 뜬구름을 그리 잡소?
애들이 뭔 죄가 있다고.
그의 생각대로 사형인 정소는 울분을 토하고 있었다.
“사부께서 몇 번이나 풀이해 주셨지만 이해가 안 간다니까. 그 구절에 막혀서 헤매는 게 벌써 며칠째인지.”
정광이 대답했다.
“운기할 때 약하게 계속하면 익숙해진다는 뜻인데요.”
“……진짜?”
“네.”
“……그게 다라고?”
“사숙께서는 뭐라고 하셨죠?”
“……정(精)이 신(神)에 합하고 신이 기(氣)에 합하여 기가 체(體)에 합하면…….”
“그만요. 더 말하지 않으셔도 알겠네요. 하여튼 짧게 풀면 그런 뜻이니 너무 고심하지 마세요.”
“사제! 고맙다!”
“뭘요.”
또 한 건 해결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정광을 찾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는 계속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해가 저물 때까지 계속 그러는 모습에 장문인이 안타까워했다.
“허어. 너도 하나에 집중해야 하거늘, 우리 때문에 괜히 많은 무공으로 시간을 뺏겨 미안하구나.”
정광은 어리둥절했다.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저는 상관없는데요.”
“……왜?”
“자질이 되니까요. 다 익혀야죠.”
“……한 가지만 파는 게 좋은 것 아니더냐?”
“에이. 그건 아니죠. 많이 할 줄 알면 알수록 좋은데 그럴 능력이 안 되니까 자위하는 말이잖아요.”
“…….”
어이없어하는 장문인의 표정을 오해한 정광이 친절히 설명했다.
“예를 들어 검객이 한참 싸우다 검이 부러졌어요. 근데 권장술은 형편없어. 그럼 죽은 목숨이겠죠?”
농담이 아닌 게 구파일방, 특히 도문의 제자들이 이에 상당수 해당됐다.
오직 검만 휘두르다 보니 부러지거나 빼앗기는 등의 돌발 상황에 무척이나 취약했던 것이다.
“그러니 무공은 많이 알면 알수록 좋죠. 최소한 권장술, 금나술 하나씩은 익히셔야 해요.”
“그러기엔 자질이…….”
“없어도 하셔야죠. 어중간한 경지까지밖에 못 익히시더라도 아예 모르시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입을 놀리던 정광은 아차 했다.
의외로 빼먹은 게 많았다.
“내공과 보법은 당연히 기본이에요. 경공술은 특히 열심히 하셔야 하고요.”
“……경공술은 또 왜?”
“간 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도망가야죠.”
“……!”
간을 봐? 도망?
곤륜파의 제자보고 질 것 같으면 도망가라고?
그게 대체 말이나 되는 소린가!
얼굴이 붉게 변하는 장문인을 본 정광은 말을 좀 바꿔줬다.
“경공술로 상대의 사각을 공략한다고 생각하시면 편해지실 거예요.”
한결 듣기 좋은 표현이었다.
그 사각이라는 게 너무 멀리 튀어서 사각이 된다는 게 문제였지만.
장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입을 열었다.
“어둑어둑해졌으니 그만 들어가자꾸나.”
“벌써요?”
“……?”
“열심히 하시기로 하셨잖아요.”
“아니, 그래도 뭐가 보여야 할 것 아니냐?”
한 문파의 장이 이리도 한심한 소리를 하다니.
준엄하게 호통 치려던 정광은 현생의 나이를 되새겼다.
“무인이 낮에만 싸우나요. 틈틈이 연습해 둬야죠.”
“그래도 효율이 안 좋지 않으냐. 부상의 위험도 있고.”
“천마신교…… 아니, 마교 녀석들 말이에요. 우리 곤륜은 항상 놈들과 일선에서 맞서 싸웠다 들었어요.”
“그렇지.”
“그놈들이 낮에만 쳐들어왔었나요?”
“……아니었지.”
장문인은 반박할 도리가 없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도사들은 미친 듯이 팔다리를 놀려야 했다.
그들은 완전한 암흑이 찾아오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후우우. 드디어 끝났구먼.”
“허허. 이리도 치열하게 수련을 해본 게 얼마 만인지.”
“힘들지만 보람 있는 날이었소. 하하하.”
모두 지쳤지만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법.
곤륜이 변하고 있었다.
그 일원임이 자랑스러웠다.
정광의 말이 들릴 때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뭐 하세요? 화톳불 키고 계속하셔야죠.”
“…….”
도사들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단전이 파괴되어 함께하지 못하는 운후만이 편히 앉아 지켜보며 감동하고 있었다.
‘무량수불. 원시천존께서 곤륜을 어루만지시고 있구나.’
정광은 도사들을 다그쳤다. 허투루 놀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도 가르치며 늘고 있었다.
개파조사는 제법 능력 있는 영감이었기에 곤륜의 무공은 수도 많고 복잡했다.
아직 모르는 무공은 비급을 읽은 뒤 장로들의 시범을 보았다.
‘호오. 이건 크게 건드리지 않는 게 낫겠는데.’
무공이 약한 정 자 배의 사형에게서 영감을 받는 일도 있었다.
‘뭐야 이거. 의외의 재능도 있네?’
개인은 부족할지언정 집단의 힘은 강하단 건가.
그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이래서 구파일방인가 보군.’
꽤 재밌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이 짓을 계속할 생각은 절대 없었다.
바짝 수련해서 빨리 끝낼 것이다.
급증한 내공으로 인해 어그러진 균형을 맞추려면 대충…….
‘아니지.’
정광은 고개를 저었다.
이왕 하는 거, 곤륜의 무공을 모조리 뜯어고치고 다들 어느 정도 익힐 때까진 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고개를 돌려 개파조사의 초상화를 바라보았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흘흘. 곤륜의 무공은 넓고도 깊노니, 네 평생을 다 바쳐도 불가능…….
“오 년이면 대충 되려나.”
-…….
“차고도 넘치지. 으쌰!”
정광은 자리에서 일어나 길게 기지개를 켰다.
방문을 열어보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건너편 방에서 눈치를 보던 대사형 정우가 재빨리 뛰어왔다.
“저기, 사제.”
“네?”
“비 오네.”
“그렇네요.”
태연한 정광의 말에 정우는 한 자씩 끊어서 힘주어 말했다.
“아주아주 많이 오는데?”
아닌 게 아니라 건너편에서 뛰어오는 짧은 시간에도 흠뻑 젖어버린 정우였다.
정광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시원해서 다들 좋아하시겠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자! 가시죠!”
“사, 사제…….”
가뿐한 발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도사들을 다시 굴릴 시간이었다.
* * *
한차례 폭우가 쏟아진 후 곤륜산에 짙은 운무가 끼었다.
산 아래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인상을 쓰는 청년이 있었다.
‘마음에 안 들어.’
앞서가던 중년인이 돌아보며 눈으로 재촉했다.
청년은 작은 한숨을 내쉰 뒤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