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 I picked betrayed me RAW novel - Chapter 23
23
바간이야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
드래곤 비늘까지 흡수한 루스는 웬만해선 다칠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휴고는 아직 애매하다.
처음에 비해 확연히 강해진 것은 맞지만, 아직까지는 어쩔 수 없는 반쪽짜리다.
멸세폭을 좀 더 자유롭게 다룰 수 있을 때까지 회귀 전의 휴고는 없다.
‘그나마 저거라도 얻었으니 다행이군.’
휴고가 들고 있는 망치를 보았다.
멸세폭을 쓰면 망가져 버리는 탓에 휴고는 이제껏 백작가에서 얻어 온 양산품 망치만 쓰고 있었다.
나무 정령의 망치는 내구도도 단단하고 자체 수복 기능도 있으니 계속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요정의 축복도 제법 훌륭하지.’
망치에 담긴 요정의 축복은 일종의 패시브 스킬이다.
등급에 상관없이 체력을 10 올려 주고, 독과 저주에 면역이 되게 해 준다.
그나마 사령술사를 잡고 얻은 반지와 정령의 망치가 있으니, 이번 던전에서도 버틸 만은 할 것이다.
눈을 감고 상황을 가늠해 본다. 첫 번째 재앙이 도래하기까지 얼마나 여유가 있을까.
지금 전력으로는 도저히 그 싸움에 발을 들일 수가 없다.
재앙의 날 제국과 암흑 교단의 싸움을 이용해 뭐라도 해 보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져야 된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마차로 1주일을 이동하여 목적지에 도착했다. 방향을 선회한 덕인지 암흑 교단의 습격은 없었다.
이번 던전의 입구는 동굴 속. 모르는 사람은 눈앞에 두고도 찾을 수 없다.
‘제국은 도대체 이런 던전을 어떻게 찾아낸 걸까?’
당시부터 갖고 있던 궁금증이 떠올랐다. 한번 의문을 갖기 시작하니 제국의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당장 알아낼 방법이 없으니 마음을 접고 안쪽으로 향했다.
동굴을 따라 들어가자 10명쯤 둘러설 수 있는 공터가 나왔다.
“무조건 이길 수 있어. 침착하게 대응하면 돼. 특히 휴고, 넌 피해! 피하면 이긴다.”
오는 길에 이미 말했던 주의 사항을 휴고에게 다시 한번 강조했다.
“걱정 마십시오, 대장. 꼭 이기고 돌아오겠습니다.”
휴고의 자신감이 깃든 대답을 들은 나는 공터 바닥에 파인 작은 홈에 손가락을 넣고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발밑에 마법진이 생겨났다.
잠시 후, 내 몸이 어딘가로 이동되어 있었다.
도착한 곳은 동굴. 하지만 원래 있던 곳과는 달리 인공적인 느낌이 들었다.
일행은 주위에 없다. 이곳은 여러 단계로 이루어진 던전으로 각 단계마다 내용이 달라진다.
처음 진입했을 때는 뿔뿔이 흩어진 상태. 따라서 각자의 미션을 해결해야 만날 수 있다.
복도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5분쯤 가자 막다른 곳이 나왔고, 그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바로 첫 번째 단계의 적이었다.
놈이 검을 뽑아 들었다.
언브레이커블과 똑같이 생긴 모습. 검뿐이 아니라 놈의 체형도 얼굴도 나와 같다.
‘도플갱어.’
상대의 능력과 외형을 그대로 복사하는 몬스터다.
놈이 먼저 달려들며 검을 휘둘러 왔다. 날카로운 파공성이 울리며 놈의 오러 소드가 내 목을 노렸다.
나는 마력을 끌어 올려 검을 맞받아쳤다.
쾅-
폭음이 울리고, 오러 소드가 허공에서 정지했다.
팽팽하게 맞닿은 두 자루의 칼날.
‘역시 비등하군.’
도플갱어의 능력치는 정확히 상대방과 일치한다. 뿐만 아니라 스킬도 똑같이 사용할 수 있다.
‘멸세폭을 맞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지.’
가장 위험한 것은 멸세폭. 그렇기에 입장 전에 휴고에게 거듭 주의를 준 것이다.
하지만 놈들이 카피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장비류는 복사할 수 없다.’
놈들이 가진 장비는 겉보기만 똑같지, 전혀 다른 물건이다. 아주 기본적인 성능만 갖춘 일반 장비들이었다.
그 증거로 언브레이커블과 부딪친 놈의 칼날이 상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침착하게 대응하면 이길 수 있다. 같은 모습과 스킬에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전투에 임하면 된다.
‘확실히 한번 붙어 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마음이 편하군.’
그사이 놈이 계속 검을 휘둘러 왔다.
적당히 상대해 가며 기회를 보는 중이었다.
놈은 분명 멸세폭을 사용한다. 서두르다가 자칫 공격을 허용하면 단번에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쾅-
꾸준히 검날을 부딪치며 놈의 칼을 상하게 했다.
조금씩 상한 칼날이 서서히 톱니처럼 변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칼날 외에는 딱히 부상당한 부분은 없었다.
똑같은 능력치에 스킬이니 어느 한쪽이 무리하지 않는 이상 빨리 승부가 날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은 나의 편이다.’
계속 칼날을 마주쳐 갔다.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도플갱어의 움직임이 변하기 시작했다.
쾅-
검이 다시 맞부딪쳤다.
놈이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짠 건지, 생각 이상의 힘이 담겨 있었다. 그 탓에 몸이 뒤로 쭉 밀려났다.
‘한번 낚아 볼까.’
밀리며 발을 헛디딘 척 비틀거렸다. 당황한 척 검도 어설프게 움직여 놈을 유혹한다.
순간 놈의 검에 심상치 않은 기세가 어리기 시작했다.
‘낚였군.’
아니나 다를까, 놈이 멸세폭을 시전했다.
세상을 파괴하는 힘이 날아오는 순간.
‘절대불변.’
나는 검에 절대불변을 걸었다.
콰쾅-
동시에 동굴이 흔들릴 정도의 폭발이 일어났다.
절대불변의 검날이 멸세폭을 막아섰다. 칼 뒤에 숨은 몸 옆으로 강력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기운에 노출된 곳이 쓰라렸지만, 치명적인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도플갱어는 상황이 달랐다.
먼지가 가라앉고 상황이 드러났을 때.
“끄아아아-!”
놈은 쓰러져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멸세폭에 따라오는 후폭풍만으로도 신체는 망가진다.
그런데 절대불변을 상대로 그 파괴력을 내리쳤으니 반동까지 고스란히 몸에 전달된 상황.
놈에게서 뿌연 김이 솟아오르며 몸을 회복시키려 하지만 그러기에는 상태가 너무 심각했다.
상반신 오른쪽이 완전히 짓이겨져 있었다. 허리도 부러진 것인지 기괴한 각도로 꺾인 상태.
게다가 놈의 칼이 산산조각 나 온몸에 틀어박혀 있었다.
‘시간 줄 필요 없다.’
혹시라도 초재생의 힘으로 회복할 수도 있었기에 나는 얼른 놈에게 다가가 목을 베었다.
도플갱어가 죽자 동굴 끝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오더니 작은 상자가 나타났다.
다가가 상자를 열었다. 그 속에는 주먹만 한 구슬이 빛을 내뿜고 있었다.
구슬에 손을 가져가자 스르륵 녹더니 손끝으로 기운이 흘러들어 왔다.
“쯧, 근력 10인가.”
이것이 첫 번째 단계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으로, 4가지 스탯 중 하나를 10에서 20까지 랜덤으로 올려 준다.
이번에는 근력이 10 올랐다.
오를 수 있는 최저 수치, 운이 썩 좋지 않았다.
그래도 모든 단계를 통과하고 가능한 보상을 쓸어 담으면 크게 성장할 수 있다.
‘꼭 필요한 아이템도 이 던전에서 구할 수 있으니, 굳이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
10밖에 오르지 않아 씁쓸한 마음을 달래고 있을 때, 바닥이 빛났다.
그리고 잠시 후 몸이 어디론가 이동되었다.
아무도 없는 커다란 방.
이곳은 다음 단계까지 휴식을 취할 대기실이다.
막 앉으려는데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누군가 나타났다.
‘역시 바간인가.’
“빨리 끝내셨군요. 고생하셨습니다, 마스터.”
“그래, 너도 수고했다.”
들어가기 전부터 바간이 빨리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단둘이 한 공간에 있으려니 감정을 제어하기 쉽지 않았다.
말없이 눈을 감고 벽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한동안 기다리자 새로운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 왔어! 주인.”
다음은 루스였다. 옷이 조금 찢어지긴 했지만 별문제는 없어 보였다.
배고파하는 녀석에게 먹을 것을 내어 주고 휴고를 기다렸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휴고는 돌아오지 않았다.
좋지 않은 생각이 들 즈음해서야 휴고의 모습이 나타났다.
“헉, 허억…….”
녀석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괜찮나, 휴고?”
“예……. 다친 데는, 많이 없습니다. 허억, 헉…….”
그러고 보니 큰 상처는 보이지는 않았다.
괜찮아 보이는 듯하자 루스가 휴고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이 돼지야, 빨리 다녀야지! 걱정했잖아.”
“하하, 알았다, 알았어. 헉, 헉…….”
루스가 요즘 들어 부쩍 휴고를 괴롭히는데,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알 수 없다.
휴고는 그래도 좋은지 숨 가쁜 중에도 웃기만 했다.
소란이 조금 가라앉고 휴고에게 물었다.
“왜 이리 늦었냐? 지치긴 또 왜 그렇게 지쳤고?”
“그게…… 아무래도 서로 한 방만 맞으면 죽는 상황이다 보니…….”
상대가 먼저 멸세폭을 쓰게 만든 후 반동으로 다친 상대를 처리하는 것이 계획이었다.
그런데 도플갱어가 끝끝내 멸세폭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격하자니 무섭고, 도망치자니 끝이 없어서 계속 치고 빠지다 보니 체력이 바닥난 것.
“이러다 지쳐 죽겠다 싶어서, 될 대로 되라 하고 공격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때 맞춰서 기술을 쓰지 뭡니까?”
“용케 살아왔군.”
“놈도 워낙에 지쳐서 겨냥이 부정확했습니다. 휴, 아직도 아찔합니다. 그때 못 피했으면 진짜…….”
어쨌든 안 죽고 돌아왔으니 되었다. 보상도 받았을 것이고.
다들 전투로 인해 피로가 쌓인 상태.
어쩔 수 없이 다음 단계는 하루 쉬고 진행하기로 했다.
* * *
다음 날.
충분한 수면과 식사 후 준비를 마쳤다.
이다음은 정확히 무엇이 나올지 나도 모른다. 비슷한 난이도의 미션이 각자 랜덤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회귀 전 나와 영웅들이 겪었던 것을 일행에게 미리 귀띔해 주었다.
하지만 다른 미션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이번에도 휴고가 걱정이었지만, 굳이 뭐라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세상에 끌려온 이상, 안전한 삶은 없다. 스스로 이겨 내야 된다.
“루스, 정신 바짝 차리고 조심해라. 아무거나 주워 먹지 말고.”
“응, 걱정 마!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올께!”
휴고에게 계속 말하는 것은 오히려 사기만 꺾을 것 같아 대신 루스에게 주의를 주었다.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루스는 잘하겠지.’
루스는 본능적으로 감각이 아주 뛰어나다. 게다가 드래곤 비늘을 먹고 많이 성장했으니 큰 걱정은 없다.
이번에도 휴게실 바닥에 있는 구멍에 손가락을 꽂고 마력을 흘려 넣었다.
이동된 곳은 좌우가 막힌 큰 회랑.
맞은편에는 각종 스켈레톤들이 노란 안광을 빛내며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워리어에 아처에 메이지까지, 종합 선물 세트로 나왔군.’
수도 굉장히 많았다. 가장 많은 워리어는 50마리는 되어 보였고, 가장 적은 메이지도 10마리쯤 되었다.
그나마 하나하나가 강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스켈레톤들은 방진을 짜고 차츰차츰 압박해 왔다.
‘귀찮게 되었군.’
한 번에 다수를 날려 버리려면 멸세폭만 한 것이 없다. 하지만 사용하고 나면 후유증이 남는다.
멸세폭을 쓰더라도 단번에 처리할 수 있을 만한 숫자가 아니니, 당장 쓸 수는 없었다.
‘일단 수를 좀 줄여야 되겠다.’
놈들이 다가오는 틈에 생각을 정리하고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스켈레톤 아처들이 쏜 화살을 피해 내며 앞에 있는 워리어에게 달려들었다.
쾅-
오러를 길게 늘어트린 검이 워리어 2마리를 한꺼번에 베었다.
뒤이어 검을 횡으로 휘둘러 포위하려는 놈들을 사방으로 날려 버렸다.
순간적으로 생긴 공간.
그곳으로 스켈레톤 메이지들이 마법을 발사했다.
10개의 불덩어리가 순차적으로 날아들었다.
피할 공간이 마땅치 않다.
검을 휘둘러 하나하나 터트려 갔다.
쾅- 쾅-!
불티가 날려 몸에 달라붙었다가 꺼진다.
초재생이 발동하며 옅은 화상은 바로바로 회복되었다.
불덩어리를 다 막아 내자마자 이번엔 화살 세례가 쏟아졌다.
그나마 불덩이와 달리 공격 범위가 좁았다. 앞쪽에 대기하는 워리어 사이로 몸을 날렸다.
워리어들이 칼을 휘둘러 왔다. 몇 개는 쳐 내고 몇 개는 그냥 맞아 주며 놈들 틈으로 파고들었다.
워리어 사이로 끼어 든 덕에 화살은 피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사방이 워리어 천지.
마력을 크게 끌어 올려 검을 반원형으로 휘둘렀다.
촤악-
앞쪽에 있던 워리어들의 허리가 단번에 두 동강 나 쓰러졌다.
그 틈에 부서지는 놈들 틈으로 전진하며 몸을 돌렸다.
이번에는 반대 방향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뒤쪽에서 포위해 오던 워리어들이 부서져 내렸다.
그렇게 많은 수를 처치했음에도 적은 아직 많았다. 특히 메이지와 아처는 한 기도 잡아내지 못한 상태.
틈만 나면 원거리에서 쏟아지는 공격은 굉장히 까다로웠다.
‘이대로는 끝이 없겠다.’
안 되겠다 싶어 나는 후방에 있는 아처와 메이지 무리 쪽으로 달려들었다.
가로막는 워리어의 공격을 오러 소드로 튕겨 내고, 몸으로 견뎌 가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주저 없이 멸세폭을 사용했다.
콰콰콰쾅-!
큰 폭발음이 일어나며 사방으로 뼈다귀가 날아다녔다.
스탯이 오를수록 위력도 더해지지만 반동도 심해지는 멸세폭 탓에, 전투를 되도록이면 빨리 끝내고 싶었다.
이제 남은 워리어만 처리하면 되는 상황.
부서져 버둥거리는 메이지 몇의 해골을 깨 버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결코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을 보고 말았다.
“젠장!”
부서졌던 뼈다귀들이 모여 들더니, 원래대로 복구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