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 I picked betrayed me RAW novel - Chapter 91
91
* * *
인간 이외의 지성을 가진 생명체.
이 조건에는 엘프도 분명 포함이 된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좀 이르지.’
‘계약’은 상대의 격에도 영향을 받지만, 서로의 관계와 감정의 상태에도 영향을 받는다.
게다가 내가 ‘계약’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대상에게 확실하게 전달되는 게 문제였다.
지금 상태로는 성공 확률이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굳이 ‘계약’을 쓰지 않아도 마음먹은 쪽으로 일이 굴러갈 것 같아 스킬 사용을 단념했다.
‘일이 끝난 후에 시도해 봐야겠군.’
결정을 내리고 엘프의 대답을 기다렸다.
엘프는 고민이 심각한지 눈동자가 쉴 새 없이 흔들렸다.
보통 이 세계의 엘프들은 인간을 상대로 감정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다.
‘그만큼 다급하다는 소리겠지.’
엘프가 급한 티를 내는 만큼, 나는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것을…… 내게 먼저 줄 수는 없는가?”
엘프가 엘릭서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모습에 나는 엘릭서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어 버렸다.
“그렇게는 안 돼. 먼저 길잡이를 붙여 주면 엘릭서를 넘기지. 그리고 너희 마을의 어머니 나무를 내가 한 번 봐 주겠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재앙의 기운을 치료해 본 적이 있다.”
어차피 목적지까지 가려면 어디든 엘프 마을을 거칠 수밖에 없다.
어머니 나무를 한 번 보는 것은, 딱히 시간을 잡아먹는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세계의 정수에 관한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니 나로서도 해 볼 만한 일이었다.
내 제안에 엘프가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으음, 그렇지만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흘, 아니, 이틀 뒤에 이곳에서 다시 만나자.”
마을에 돌아가 답을 가지고 올 모양.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엘프는 부리나케 숲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며 진형기가 내게 다가왔다.
“이야, 저 여자가 저렇게 안달 난 건 또 처음 보는구만. 어째 당신과 만나면 신기한 걸 참 많이 보게 된단 말이오.”
“엘프한테 어머니 나무가 그만큼 소중하다는 뜻이겠지. 그건 그렇고, 넌 여기서 뭐 하고 다니는 거냐? 아까 그놈들, 군인 같던데…….”
“으음. 나도 이곳까지 와서 가만히 있을 수야 없지 않겠소? 어떻게든 힘을 키울 방법을 찾다가 엘프의 열매에 대해 알게 되었소. 그리고 결과는 당신이 본 대로지, 뭐.”
진형기는 배신한 동료에게 생각이 미쳤는지, 입맛이 쓴 표정이었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거지? 그 군인들, 이곳 시장의 병력 아닌가?”
“일단 마스터까지 한 놈 보냈잖소? 그런데도 깔끔하게 실패했으니, 시장 놈, 아마 아 뜨거라 하고 웅크리고 있을 거요. 그놈, 새가슴이거든. 그러니 그동안 짐 싸서 다른 도시로 튀어야지.”
“그래? 그럼 짐 쌀 동안 신세 좀 지지. 가자고.”
진형기는 뭔가 찜찜한 표정이었지만, 방금 전에 생명의 은혜를 입은 탓인지 거절하지는 않았다.
나와 일행은 진형기의 아지트로 따라갔다.
그곳에는 플레이어 몇 명이 더 있었는데, 특별히 강해 보이는 자는 없었다.
대충 인사를 주고받고 식사를 한 후, 진형기와 마주 앉았다.
그러자 진형기가 대뜸 질문을 던져 왔다.
“궁금한 게 있는데, 아까 수도에 있었으면 죽었다고 하지 않았소? 그게 뭔 소리요?”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나?
캐서린에 관해서 이야기할 수는 없고.
잠시 고민을 하다가, 생략할 것은 하고 이제껏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나마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드라코리치와의 싸움을 이야기했을 때.
“허, 혼자 세상을 구하고 다닌 거요? 대단하시구만.”
진형기는 짐짓 감탄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이야.”
“그래도 그렇지……. 그래서 수도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요?”
한참 감탄하던 진형기는 뒷 내용이 궁금한지 이야기를 재촉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그가 원하는 대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 뒤에는 황궁에 잠입해서 황제를 잡으려고 했지. 놈의 입에서 진실을 듣고 싶었거든.”
“간도 크오! 거길 달랑 셋이서 쳐들어가다니. 흐흐, 진짜 대단하구만.”
그는 옛날이야기라도 듣는 어린애처럼 잔뜩 신난 표정이었다.
하지만 내 말이 이어질수록, 진형기의 표정도 굳어졌다.
“황제가 갑자기 천신강림이니 뭐니 하더니, 하늘에서 붉은빛이 쏘아졌어. 그리고…….”
온 수도의 생명체가 모조리 황제에게 흡수되었다는 이야기에 진형기의 입은 굳은 채 열릴 줄을 몰랐다.
“그게…… 진짜 정말이오?”
한참 만에 입을 연 진형기는 내 이야기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지 되물어 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황제를 막기 위해서 필요한 물건이 있어. 마왕을 잡고 나온 것과 같은 물건이야. 여기 온 것도 그 물건을 구하기 위해서고.”
“으음, 길잡이를 찾은 것도 그 때문이었군. 후우, 세상이 어찌 되려고…….”
진형기는 걱정이 큰 듯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 주는 것으로 진형기와의 대화를 끝냈다.
그리고 그날은 진형기의 아지트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 * *
하루를 무탈하게 보내고 나니 별다른 일이 없을 거란 진형기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시장이란 놈이 간이 작은 모양이군. 덕분에 일이 잘되었어.’
괜히 병사라도 이끌고 들이닥치면, 쓸데없이 손에 피를 더 묻혀야 한다.
모처럼의 휴식을 즐기는데 루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쪽도 좋아. 서쪽보다 더 좋은 거 같아.”
루스는 싱글벙글 웃는 중.
녀석의 양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커다란 과일이 들려 있었다.
의아한 마음에 쳐다보자 녀석이 과일을 내밀며 이야기했다.
“주인, 먹을래? 이거 엄청 달아. 저쪽에 엄청 많아. 도시 밖에 그냥 막 열려 있대.”
루스가 가리킨 곳에는 진형기의 동료들이 따다 놓은 과일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밀림이 우거진 이곳에는 과일이 길가에 굴러다닌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로 풍부했다.
하지만 루스의 기대 어린 표정을 뒤로하고 나는 손을 내저었다.
“나는 되었으니, 많이 먹어 둬.”
사실 숲에 들어가면, 한동안 과일을 물리게 먹을 것이다.
굳이 미리 먹어서 먼저 질릴 필요는 없지.
그렇게 생각 중인데, 갑자기 휴고가 뛰어 들어왔다.
녀석은 굳은 얼굴로 소리치고 있었다.
“적이다! 적이다! 독을 쓴다.”
휴고의 고함에 아지트의 플레이어들이 모조리 뛰어나왔다.
그리고 다들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휴고의 뒤를 따라, 아지트 입구에서부터 초록색 독 안개가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연기는 무언가 마법적인 영향을 받았는지, 바깥으로 퍼지지 않고 아지트 안을 향해서만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쩐지 내게는 익숙했다.
‘저건 설마?’
그때, 진형기가 다급하게 내 곁으로 다가왔다.
“뒤쪽에 비밀 통로가 있었는데, 방금 확인하니 막혔소. 젠장! 미안하게 되었소. 시장이 이렇게 빨리 움직일 놈이 아닌데…….”
“시장이 아니야.”
나는 진형기에게 대답하며 인벤토리를 뒤졌다.
그리고 하나의 병을 찾아내었다.
하얀 액체가 그 안에 거의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것을 한 모금 마신 후, 일행과 플레이어들을 불러 모았다.
“다들 한 모금씩 마셔. 해독제다. 이거 말고 다른 종류는 안 통할 테니, 괜한 생각 말고 다들 먹어.”
다행히 플레이어의 수는 10명이 채 안 되었고, 해독제가 모자라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해독제는 제대로 성능을 발휘했다.
독 안개를 들이켜도 전혀 피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걸 확인한 나는 진형기에게 경고했다.
“진형기, 동료들 데리고 어디 구석에서 죽은 척하고 있어라. 괜히 끼어들다가 진짜 죽는다.”
“알겠소. 조심하시오.”
그는 이미 스킬을 통해 사태의 흉험함을 알았는지,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부하들을 이끌고 아지트 구석의 방으로 숨어들었다.
이제 주위에 남은 이는 휴고와 루스뿐.
“대장, 그 해독제는 뭡니까? 엄청 잘 듣는데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다가오는 휴고에게 나는 진실을 이야기해 줬다.
“이건 이 독에 특화된 해독제야. 소환 영웅 중에 포이즈너라는 놈이 사용하는 물건이지. 전에 구해 놓은 게 남아 있어서 다행이군.”
튜토리얼이 시작할 무렵 포이즈너에게 받아 두었던 해독제를 혹시나 하고 인벤토리에 넣어 두었었다.
그것이 지금에 와서 요긴하게 쓰이고 있었다.
내 말에 휴고는 놀란 표정이 되었다.
“헉! 그럼 관리자가 또 추격대를 보낸 모양이군요.”
“그래. 몇 놈이나 왔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해독제 덕에 싸움을 유리하게 시작할 수 있겠어.”
내 말의 속뜻을 알아들었는지 휴고가 씩 웃었다.
“저도 죽은 척하고 있을까요?”
“루스랑 둘이 저기 누워 있어라. 내가 숨어 있다가 기습할 테니, 그때 일어나.”
고개를 끄덕인 휴고와 루스가 적당한 위치에 자리 잡고 누워 죽은 척을 시작했다.
나는 입구 옆쪽 벽에 몸을 붙이고 숨었다.
‘인식 교란.’
모처럼 인식 교란까지 사용하여 기척을 감추었을 때, 아지트 안에 자욱하던 독 안개가 한꺼번에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포이즈너가 확실하군.’
그 모습을 보며 한 번 더 적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내 생각이 옳았음이 증명되었다.
저벅저벅-
기계적인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아지트의 입구로 황가수호대가 들이닥쳤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포이즈너의 얼굴이 보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아나투스, 마위니에……. 엘파바는 며칠 전에 죽였는데 또?’
마도진법사인 아나투스에 저격수인 마위니.
심지어 얼마 전에 내 손에 죽었던 엘파바까지 다시 나타나 있었다.
‘쯧, 관리자 놈이 손댄 스킬이라더니, 원하는 대로 영웅을 뽑아내는 건가? 가만……. 그렇다기엔 조합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데?’
놈들에게는 전방을 맡아 줄 전사형 영웅이 전무했다.
황가수호대가 함께한다고 해도, 결코 좋은 구성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던 중, 놈들이 아지트 내부로 완전히 들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행동을 개시했다.
이번에도 우선 처리할 목표는 엘파바였다.
‘점멸.’
스팟-
엘파바의 뒤로 순간 이동한 나는 검 끝을 놈의 심장을 향해 찔러 넣었다.
순간 돌아서며 놈이 반응하려 했지만.
“심장을 움켜…… 크헉!”
내 칼이 더 빨랐다.
놈의 가슴에 박힌 검을 뽑자, 엘파바의 심장에서 피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나는 심장을 찌른 데에 만족하지 않고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서걱-
엘파바의 목이 깨끗이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그렇게 확인 사살까지 끝낸 순간, 내게 무언가 날아왔다.
쎄에에엑-
새파란 오러를 머금은 화살.
그것은 마위니의 활에서 발사된 것이었다.
맹렬하게 회전하는 활촉에는 나를 꿰뚫어 버리겠다는 살기가 잔뜩 담겨 있었다.
이미 막아 내기에는 시간상 무리.
‘점멸.’
내가 다시 한번 순간 이동으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내 움직임을 따라 활을 겨누는 마위니에게로 휴고가 벌떡 일어나 돌진하고 있었다.
그 앞을 황가수호대가 급하게 막아서는 모양새.
‘오히려 잘되었다.’
멸세폭을 가진 휴고에게 저렇게 몰려드는 것은 오히려 죽음을 재촉하는 일.
그리고 황가수호대가 죽어 피가 흐르면, 그것은 오롯이 휴고의 힘으로 치환된다.
그러니 저쪽은 걱정이 없다.
나는 재빠르게 다른 방향을 살폈다.
그곳에는 루스가 온몸에 새파란 불을 휘감고 포이즈너를 몰아치고 있었다.
안 그래도 불과 독은 극상성이었다.
게다가 루스는 해독제까지 복용한 상태.
포이즈너는 연신 쩔쩔매며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마도진법사 아나투스.
놈은 자신의 특기를 살리기 위해 뒤쪽으로 물러서 주문을 웅얼거리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놈의 발밑에서 빛이 나며 마법진이 만들어지는 중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지체하지 않고 놈에게 다가갔다.
‘점멸.’
내가 바로 옆에 나타나자 아나투스가 즉시 반응을 했다.
방금 전 엘파바가 기습을 당해 죽는 걸 보고 미리 대비하고 있었던 모양.
순간적으로 아나투스의 양옆 바닥에서 불로 만든 뱀 두 마리가 생겨났다.
뱀들은 곧바로 입을 쩍 벌리더니, 내게 불덩이를 쏘아 내었다.
쾅! 쾅!
나는 두 번의 칼질로 두 개의 불덩이를 터트렸다.
그때 아나투스가 뒤로 더 물러나며 주문을 외는 것이 보였다.
‘굳이 놈에게 장단 맞춰 줄 필요 없지.’
스팟-
나는 점멸을 연속으로 사용하며, 거리를 벌리려는 아나투스에게 접근했다.
불뱀이 쏘는 불덩이는 점멸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했다.
이내 아나투스의 바로 앞에 선 내가 놈에게 검을 휘두르며 스킬을 사용했다.
‘멸세폭.’
순간 놈의 몸 아래 바닥에서 반투명한 벽이 솟아올랐다.
콰콰콰콰콰쾅-!
놀랍게도 벽은 멸세폭을 막아내었다.
그뿐만 아니라 멸세폭의 공격을 반사해 내게 되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