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고대용인종 (2)
챙! 그그극!
칼날과 손톱이 부딪치고 갈리듯 거친 소리와 함께 흘러내린다. 용인종의 잘려나간 손톱은 그새 재생되고 주위에는 진득한 독이 넘쳐나고 있었다. 독의 범위는 빠르게 퍼져나가 반경 백 미터는 됨직했다.
녹아내린 도시, 아마도 그 스킬일 터다. SS급 독 스킬이지만 광범위라서인지 S급 독 저항으로도 잘 버티고 있었다. 노아의 보조 덕도 크고.
‘역시 리에트도 대단하구나.’
힘도 속도도 분명 부족하다. 그 차이가 적은 것도 아니라, 원래라면 용인종을 저렇게 붙잡아 놓기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리에트는 기대 이상으로 완벽하게 적의 발을 묶었다.
으드득.
칼과 발톱이 부딪치는 힘을 감당 못 한 팔이 비명을 울린다. 하지만 리에트는 흔들림 하나 없이 몸을 뒤틀며 근접 타격 스킬, 눈부신 오라를 담은 발길질을 날렸다. 그사이 딜레이 없이 들어온 노아의 치유 스킬이 팔을 치료하고 다시금 칼날이 경쾌한 소리를 높인다.
찢기고 치유하고 부러지고 치유하길 계속해서 반복한다.
치유 스킬을 믿은 무식한 돌격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나 실은, 냉정하리만치 정확한 계산에 따른 부상이었다.
피하지 않고 막아서는 이상 부상을 입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곧장 회복 가능한 부상이 아니라면 용인종을 계속 막아 붙잡아두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리에트는 용인종의 앞을 무리치 않고 아슬아슬한 정도로 방해하며, 동시에 노아의 치유 스킬로 일정 시간 이내에 치료 가능한 수준의 부상만 입도록 조절하고 있었다. 용인종의 힘과 자신의 힘, 내구력, 노아의 치유력까지 모두 정밀하게 계산하여 예술적이리만치 정확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와 성현제의 스킬이 바탕이 되곤 있다지만 타고난 전투 센스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녀에게 쌓여 있는 유감이 일순 잊힐 정도로 멋있긴 멋있다.
“노아의 스탯 대여는 마력이 좋겠지요.”
끼어들면 화내겠다 싶을 만큼 즐기고 있는 리에트지만 오래 내버려 둬 좋을 건 없다. S급도 체력에 한계는 있으니까. 성현제와 한바탕하기도 했고.
“시계 좀 빌려주세요. 스톱워치 기능 있습니까?”
“물론 있지.”
더럽게 비쌀 회중시계를 받아 혹여 놓치지 않도록 체인을 손목에 감아 움켜쥐었다. 샬로스의 구슬 효과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번 바바르 사냥 때도 옷과 신발이 멀쩡했으니 손안의 시계도 무사하겠지.
그리고…….
“저를 방패막이로 쓸 수 있을 겁니다.”
모든 피해를 무효화시킨다. 이보다 더 좋은 방패가 또 있을까. 바바르 때는 공격받을 일이 없으니 미처 생각지 못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렇게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서 가만히 들려만 있는 건 심각한 낭비다.
내 말에 성현제가 그도 그렇군, 하고 작게 감탄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공격 스킬 두 배 공유는 접촉 부위가 바뀌어도 효과가 이어집니다. 왼손을 잡은 채로 오른손을 잡은 뒤, 왼손은 뗀다 해도 괜찮다는 거죠. 완전히 떨어지는 일 없도록 주의만 기울이면 다양하게 활용이 가능할 겁니다.”
노아에게 공유 스킬 효과 확인해 볼 때 같이 시험해 보았다.
“다만 적에게 빼앗기면 망해요. 바바르 때도 그랬지만 피해 무효라는 게 일정 이상의 타격이 들어올 때만 반응하는 것 같으니 그냥 잡아든다거나 당기는 건 가능합니다.”
아예 모든 외부 자극을 막아 버리는 아이템이었다면 듣지도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건 피해 무효가 아니라 사람 잡는 아이템이지. 모든 감각이 일시에 사라지는데 맨정신으로 어떻게 버티냐.
“다행인건 저놈 손은 평범하게 잡을 수 있는 몰골이 아니란 거죠. 날 선 손톱으로 붙잡으려고 들면 공격 판정받고 막힐 테니 조금만 조심하면 괜찮을 겁니다.”
평범한 손으로 잡아당기면 힘에서 밀려 빼앗기고 말겠지만 용인종의 손 구조로는 불가능하다. 설명을 가만히 듣고 있던 성현제가 내 왼쪽 손목을 잡아들었다.
“춤출 줄 아나?”
“갑자기 또 무슨 헛소리신지.”
“서로의 동작과 호흡을 맞추는 데 그보다 더 좋은 게 없지. 또한 무용과 무술은 상통하는 점도 많아. 카포에라 같은 것도 있잖은가.”
서로 호흡을 맞춘다면 뭐, 댄스스포츠 같은 거 말하는 건가.
“누구 씨처럼 한가하고 여유로운 인생이 아니었던지라 잘 모르겠네요.”
“걱정 말게. 지금부터라도 배우면 되니까.”
걱정이겠냐. 거절한다. 성현제의 헛소리를 귓등으로 흘리며 드래곤의 모습으로 비행 중인 노아를 불렀다.
“노아 씨! 이 인간에게 마력 스탯 대여 부탁합니다!”
노아가 이쪽으로 방향을 틀고 리에트 또한 꽉 짜 맞춰졌던 공방을 느슨히 하며 우리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머리 위까지 다가온 노아의 눈가가 축축이 젖어 있다.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 없는데.
– 괜찮으세요?
“보시다시피 멀쩡합니다.”
진통제를 못 쓴 거 빼곤 새삼스럽지도 않은 수준이고. 샬로스의 구슬은 일단 노아가 계속 가지고 있도록 했다. 감각을 공유하여 완벽한 타이밍으로 치유 스킬을 써 주는 힐러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곤란해지니까.
노아가 스탯을 대여해 주고 공격 스킬 효과 두 배 또한 공유했다. 그사이 리에트는 용인종과 함께 점점 접근해 오고 있었다. 내 스킬과 아이템에 대해 잘 알지 못할 텐데도 미리 계획한 것처럼 움직이고 있다.
금색 용이 다시 안전거리를 벌리고 스톱워치를 누름과 동시에 샬로스의 구슬을 사용했다. 앞으로 십 분, 그리고 칠 분.
수색자의 사슬이 보다 강력한 뇌기를 머금으며 물결친다. 바로 수 미터, 단숨에 좁힐 수 있는 거리의 용인종을 향해 성현제가 발을 내디딘다.
격전의 장소로 돌입하기 직전, 그가 나를 향해 입꼬리를 올렸다.
“Shall we dance?”
…내가 이러려고 회귀했나 자괴감 드네. 좀 닥칠 수 없냐는 내 대답 대신,
쿠르르릉!!
묵직한 울림과 함께 빛이 땅을 내달렸다. 미리 알고 빠르게 몸을 피한 리에트와 달리 정통으로 뇌격에 맞은 용인종의 전신을 파직거리는 전류가 휘감는다.
“□□□□!”
스킬 효과가 배로 올랐음에도 그리 큰 타격은 없어 보였다. 무어라 소리친 놈이 전신에서 독기를 흩뿌리며 돌격해 왔다.
치유 스킬이 없었더라면 리에트의 몸을 갈가리 찢어 놓았을 칼날 같은 손톱을 성현제는 피하지 않고 맞받아쳤다. 내 팔로, 한쪽 팔로 몸을 받쳐 잡고 다른 쪽 손으로 내 손목을 잡아든 게 제 말대로 춤 동작과 비슷해 보이긴 했다. 망할.
“우와, 뭐야 자기야?!”
몸을 피했던 리에트가 다시 접근하며 놀라 외쳤다. 용인종도 당황했는지 공격이 이어지질 않는다. 그사이 성현제가 인벤토리에서 금빛 띠는 기다란 장침 같은 것을 꺼내들었다.
– 크르륵!
제 공격이 무산된 것에 열 받은 용인종이 전신의 근육을 부풀린다. 손톱, 발톱, 뿔과 꼬리. 단단한 비늘과 군데군데 솟은 가시까지, 온몸이 무기라 해도 좋을 그 흉악한 형태가 더더욱 거친 기세를 뿜어냈다.
반면에 성현제는 정말로 춤이라도 추듯 우아하게 스텝을 밟았다.
“전류는 그냥 쓰면 주위로 퍼져 버려 손실이 크지.”
텅! 당기는 대로 휙 끌려간 내 등으로 가시 돋친 꼬리 끝이 내리쳐졌다. 이어 빙그르 몸이 돌며 맞잡힌 손등이 무시무시한 독기를 담은 손톱을 막아 낸다. 연이은 공격 무효화로 용인종이 빈틈을 보이기가 무섭게,
콱!
금색 장침이 비늘 틈새를 파고들었다. 칼날이 부딪치는 소리, 사슬이 긁히는 소리. 장침을 제거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리에트와 성현제가 동시에 용인종을 몰아갔다.
“덕분에 공격력을 집중시키려면 준비가 필요하다네.”
“거참 번거로운, 윽, 속성이네요.”
어지러워. 발이 한순간 땅에 닿았다가도 제대로 딛고 서기도 전에 다시 홱 옆으로 당겨 빙그르 돈다. 망할 인간이 어떻게 움직이려는지 미리 알 수 있으면 뭐 하냐. 몸이 안 따라주는데.
– 크아아!
용인종이 괴성을 지르며 코뿔소처럼 돌격해 왔다. 단순한 발 디딤에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땅이 파이고 갈라진다. 우르릉! 동작 하나하나에 천지가 울린다. 하나 그것도 전부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큰 동작의 공격에 빈틈만 더 커져 가시 돋친 등줄기에 침이 줄줄이 셋이나 더 꽂혔다.
“그래도 집중만 시킬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위로,
차르르—
사슬이 뻗어 나가며 손실을 최소화한 전격이 내달려 몸 이곳저곳에 박힌 침을 타고 그 안쪽으로 쏟아져 내린다.
– 캬아악!
겉으로 보이는 섬광은 처음의 뇌격에 비해 훨씬 초라했다. 그저 전류가 조금 튄 정도였다. 하나 용인종은 전과 달리 몸을 뒤틀며 피를 토해 냈다.
그 감각을 알고 있는 내가 반사적으로 움츠러들 정도였다. 고통까지 전해지진 않았지만 눈앞이 새하얗게 점멸하고 몸속을 칼날 같은 전류가 튀어 다니는, 그 사실은 느껴져 입안이 다 말라붙는다.
“다른 그 어떤 속성보다 강력한 파괴력을 지니지.”
나직하게, 동시에 자신만만하게 성현제가 말했다. 확실히 대단하다. SS급 저주독룡종. 종족도 종족이지만 스킬 상태만 봐도 바바르보다 윗급인 최상위개체다. 비늘을 뚫고 체내에 직격했다 해도 그런 무시무시한 상대를 한 방에 무력화시키다니.
그러나 아직 죽진 않았다. 진득한 독처럼 속을 헤집는 공격에 일순 약화되었지만 지니고 있는 강력한 회복력, 혹은 스킬이 고개를 치켜든다.
괴롭게 비틀거리지만 결국 쓰러지진 않은 용인종의 머리 위로.
콰과과!!
얇은 칼날이 아닌, 묵직한 거인의 망치가 내려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스킬을 휘감은 검이 내리꽂혔다. 약해진 용의 비늘을 파고들어 정수리를 꿰뚫고 뒷덜미를 넓게 가르며 척추를 부숴 들이박힌 칼!
그 손잡이를 놓으며 리에트의 몸이 뒤로 날아오르듯 공중제비를 돈다. 동시에 호쾌하게 소리친다.
“칼까지 태워 버려!”
금속. 그것도 스킬을 받아들이기 좋은 최상급 무기. 그 아낌없는 외침에 사슬의 춤이 대답한다.
또다시 빛이 달린다. 칼이라는 바뀐 매개의 난폭함 때문인지, 한층 더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전격이 사냥감의 전신을 씹어 삼킨다.
– 끄르륵.
비명도 신음도 아닌 맥없는 목울림이 들려왔다. 엘릭서라도 퍼붓지 않는 이상 확실하게 끝났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빛을 잃어 가는 용인종의 탁한 눈과 마주쳤다. 놈이 무어라 입술을 달싹거린다.
‘어떻게 알아들을 방법이 없나.’
저놈 주인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선생님 스킬을 용인종에게 좀 더 집중해 보았다. 단순히 감각만이 아닌, 더 안쪽까지 파고들 수는 없을까. 죽어 가는 중이라 반발도 없다. 두 배의 효과도 있으니 혹시나. 그때.
[이렇게 적극적으로 와 주다니, 고맙군.]누군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어, 싶은 순간 눈앞이 암전되었다. 아주 잠깐 동안.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낯선 곳에 서 있었다.
‘뭐지.’
성현제도, 노아와 리에트도 없다. 손에 쥐고 있던 회중시계도 사라졌다. 통역 목걸이도 샬로스의 구슬이 달린 목걸이도, 다른 아이템들도 없다. 그나마 옷은 그대로였다. 아니, 찢어졌어야 할 바지가 멀쩡하다.
당혹감 속에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저만치 앞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인간 남자에 가깝지만 머리에 굽어진 뿔이 솟아 있다. 그리고 눈까지 인간의 것이 아니다. 낯선 형식의 제복 비슷한 차림에, 목과 드러난 손목에 길게 갈라진 흉터들이 보였다.
떡잎 스킬을 쓰자, 명우의 대장간에서처럼 정보가 상태창이 아닌 머릿속에 떠올랐다.
‘독과 저주의 고대용인종. 아까 그놈보다 더 강하고… SSS급쯤? 그 밖의 정보는… 모르겠군.’
저주독룡왕의 주인이라기엔 좀 약한 거 같은데. 세 번째 애완동물쯤 되나.
그보다 여긴 대체 어디지. 일단 내 몸 자체가 어디론가 옮겨진 건 아닌 듯했다. 아이템도 사라지고 옷도 멀쩡해졌으니. 정신 계통 스킬에 걸린 건가? 등급이 높아도 준비 없인 쓰기 힘든 종류의 스킬인데.
‘내가 먼저 파고들려고 한 탓인가.’
그사이 용인종이 내게로 다가왔다. 리에트의 것과 비슷한 금속성 황금색 눈이 나를 관찰하듯 내려다보았다.
“또다시 내 일에 훼방을 놓았군. 덕분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무리해서 비쿠스를 보내는 바람에 일시적이지만 등급까지 하락했지.”
놈이 말했다. 비쿠스, 조금 전에 죽인 용인종의 이름이다. 그리고 등급 하락.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놈의 멱살부터 잡았다. 물론 꿈쩍도 하지 않는다. 빌어먹게도.
“네놈이, 내가 들어간 던전에 라우치타스를 보낸 거냐?”
“그 일은 정말로 예상 밖이었지. 한유현이 그렇게 허무히 죽어 버릴 줄이야.”
느긋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당시 한유현은 SS급에 가까운 상태였다. 저주독룡왕의 앞이라 해도 목숨을 위협받는 수준은 절대 아니었어. 일부러 적당한 수준의 라우치타스를 보내기도 했었고. 그러니 죽는 건 한유진, 너만이어야 했는데.”
“무슨 헛소리야. 날 죽일 거였으면 그냥 게이트가 닫힌 후 A급, 아니 B급 수준 몬스터만 보냈어도 됐을 텐데.”
“그때 던전 게이트가 열려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나?”
놈의 말에 뒷목이 뜨끔해졌다. 회귀 전, 던전에 들어가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었지? 그리 오래 지나지는 않았었지만, 한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그리고.
유현이는 혼자 들어왔다. 힐러도, 보조도, 그 밖의 헌터들을 수많이 거느리고 있는 길드장임에도. 혼자 들어왔기에 더더욱 F급짜리 헌터와 자기 자신의 목숨까지 동시에 챙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유현과 새롭게 계약을 했지. 제 형이 위기에 처한, 닫혀 있는 던전에 들여보내 주는 조건으로. 하지만 한유진, 네가 살아 있는 한 한유현이 적극적으로 협조해 올 가능성은 낮았기에 형을 지키지 못할 수준의 몬스터를 보내었다. 한유현이야 우리가 보낸 것인 줄은 꿈에도 모르니까, 어디까지나 던전 오류로 인한 사고로 한유진이 사망한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지. 원망할 상대는 없으며 지키지 못한 건 스스로의 무력함 때문이니. S급 헌터의 특성상 힘을 갈구하게 되었을 터이고 다루기 무척이나 쉬워졌을 거야. 그런데.”
한숨을 섞어 말이 이어졌다.
“제아무리 소중한 피붙이라 해도 태생 S급이 목숨까지 내어줄 줄은 정말로, 몰랐어.”
유현이를 죽일 생각은 없었던 건가. 그렇다 해도 바뀌는 건 없다. 이 새끼를 어떻게 족치느냐, 그 문제만 더욱 선명하게 뇌리에 박힐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