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파랑새
“명우야!”
녀석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올 것이 왔구나였다. 내가 잠 제대로 자고 쉬어 가며 하라고 마주칠 때마다 말했건만 괜찮다 염불 외우더니 저 꼴 됐지! 119, 아니 힐러를 부르는 게 나으려나.
피스와 삐약이를 내려놓고 휴대폰을 꺼내 들며 명우에게로 다가갔다.
“괜찮아? 혹시 어디 다친 건 아니지?”
일단 피 냄새는 안 난다. 그래도 쓰러지면서 부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있기에 섣불리 일으키지 않고 포션을 꺼내었다. 정신을 잃은 건 아닌지 명우가 죽어 가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약간 틀었다.
“마나… 포션…….”
마나 부족이구나. 그나마 다행이다. 얼른 마나 포션을 꺼내 먹여 주자 창백하던 안색이 조금 살아난다.
“물 좀 떠다 줄까? 아님 아예 며칠 입원해서 푹 쉬는 건 어떠냐.”
확 강제로 입원시켜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침대에 꽁꽁 묶어 놔 봤자 대장간으로 들어가면 그만이니.
“…괜찮아. 예상보다 마나 소모량이 너무 많아서… 포션이 부족했을 뿐이야…….”
“그놈의 괜찮다는 소리!”
아주 지겨워 죽겠네. 여전히 맥을 못 추고 흐느적거리는 명우를 부축해 소파에 앉혔다.
“밥은 먹었어? 마지막으로 잔 건 언제야?”
“쓰러져서 조금 자긴 잤지……?”
마나 포션을 하나 더 마시며 명우가 대답했다. 그러면서 뭘 잘했다고 웃는다.
“월화수목금월월에 야근 필수인 블랙 중의 블랙도 아니고, 왜 자청해서 몸을 갈아 대냐. 스케줄 짜서 정시 퇴근해. 주말엔 쉬고.”
“알았어.”
어째 평소와 달리 순순히 대답이 나온다. 무슨 심경의 변화인가 싶어 표정을 살피자 또 씨익 웃음 짓는다. 기시감 드는 얼굴인데. 그러니까.
“만든다던 거, 완성했냐?”
“응.”
등급 올라서 회복력도 좋아진 건지 그새 멀쩡해진 명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름다운 검이었다. 유리로 만든 듯 투명한 검날에 은은한 푸른빛이 감돌고 있었다. 실전용이라기보다는 장식용에 가까운 모양새였지만 아이템인 이상 깃든 힘은 결코 약하지 않을 터였다.
“무기를 만든 거야?”
“아, 드래곤 하트는 기본 형태가 검이라서.”
“…뭐?”
“디자인은 얘 취향이고.”
뭔 소린지 모르겠다. 그때 표롱, 하고 작은 새 한 마리가 나타났다. 한 손에 감싸질 만큼 작고 동글동글한 파란 깃털의 새였다.
– 삑.
“얘 취향.”
– 삐삑.
더더욱 뭔 소린지 모르겠다. 명우가 내미는 검을 반사적으로 받아 들었다.
[유은혜 – L급드래곤 로드이자 대명장 샬로스의 마석에서 탄생한 검
계약자 – 한유진]
음… 으음…….
이름, 이 왜 이렇지. L급… 예? 드래곤 로드? 대명장? 샬로스면 그 구슬 재료? 마석… 드래곤 하트……. 계약자는 또 뭐야, 왜 나야. 기억에도 없는데 웬 계약이죠.
“…그때 보여 준 투명한 마석, SS급 아니었구나.”
투명한 검신을 보자 떠올랐다. 용인종의 SS급 마석은 불투명한 하얀색이었지.
“응. L급 마석이었어. 정확히는 샬로스의 드래곤 하트라고 특정 이름을 가진 마석. 일반적인 L급 마석보다 등급이 더 높다더라?”
와… 그렇구나. 그렇구나. 와, 새로운 사실 하나 배웠네.
“그… 막 이렇게 등급 건너뛰고, 아니 갑자기 웬 L급이…….”
“지금 내 능력으로는 다루기 불가능한 등급의 재료인데, 이스무아르가 샬로스 씨가 만든 정령이거든. 덕분에 개고생했지만 완성할 수 있었지! 다른 재료는 SS급도 아직 잘 못 다뤄. 그래도 이번에 숙련도 많이 올라서 곧 SS급 하급 아이템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거야.”
샬로스 씨, 정령도 만들어 주고 L급 마석도 내어주시고. 대장간도 그분 거 같은데 정말 아낌없이 주는 나무시군요.
“평소에는 팔찌나 반지 같은 걸로 변형시키는 게 편할 거야. 어차피 무기로써의 성능은 절대 부러지지 않는다는 것 외엔 없거든.”
L급인데? 일단 팔찌로 바꿔 보았다. 생각하기가 무섭게 변하긴 했는데… 투명한 사슬 두 줄에 파란 보석이 주렁주렁 매달린 게 더럽게 화려하다.
“이거 좀…….”
“얘 취향이 그래.”
– 삑.
파랑새가 내 손등 위에 내려앉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드래곤 하트로 만든 건데 왜 새일까. 샬로스 씨는 블루 드래곤이었던 것일까.
“음… 은혜야?”
– 삐익.
“조금 더 심플하게, 안 될까?”
파랑새가 삑삑거리자 사슬만 남기고 주렁거리는 보석들은 사라졌다. 아니, 하나는 남았다. 그 하나만큼은 절대 못 없앤다는 듯 삐이삐이 운다. 반지… 는 좀 그렇고 목걸이로 바꿔 보자 정말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보석 목걸이가 나타났다. 파랑새가 아니라 까마귀인가. 아니면 생전의 샬로스 씨 취향인 것인가. 드래곤이 보석 좋아하는 거야 유명하지만 다른 세계 드래곤도 그런 건가.
아무튼 그나마 팔찌가 나았다.
“…얘 이름 꼭 사람 이름 같네.”
“내가 지은 거 아니야.”
그냥 알아서 정해졌다고 명우가 변명했다.
“현재로서는 스킬이 하나밖에 없어. 이전의 샬로스의 구슬과 같은 피해 무효화 스킬이야. 다만 1회용이 아니고 등급 조절이 가능해. 마력이 가득 차 있을 때, 말하자면 풀 충전일 때 L급 수준 피해 무효화 최대 지속 시간은 1시간 안팎이고 전처럼 이론상 등급제한 없는 수준은 10분 정도? 소모된 마력은 얘한테 마석을 먹여서 충전할 수 있어.”
샬로스의 구슬이 드래곤 하트 파편 같은 거였을 테니 스킬 효과가 비슷할 거라곤 짐작했다. 하지만 L급 피해 무효화가 1시간에, 마석으로 보충도 가능하다니. 사기잖아.
“다만 마석 흡수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리고 최소 S급은 먹여야 하니까 필요할 때만 쓰는 게 좋을 거야.”
“S급 마석이야 구하기 어렵지 않고, 흡수하는 데 얼마나 걸리는데?”
“텅 비었다고 치면 일주일쯤?”
“그리 길지도 않네! 와, 이거 S급 헌터가 쓰면—”
“계약자 말곤 스킬 적용 안 되더라.”
설마 했던 찬물이 끼얹어졌다. 아니 왜. 내 억울한 눈빛에 명우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설명했다.
“그런 제약이라도 없으면 L급에 맞출 수가 없어서… 1회용도 아니고 단순한 방어막보다 더 윗줄이잖아. 일정 이상의 피해만 무효화하고 행동은 자유로우니까. 게다가 최대치는 등급 무제한이고.”
그건 그렇다. 하지만… 아니, 어차피 계약자 한정이면 나한테 적용되는 게 나을 것이다. 독 저주 저항에 두 배 스킬도 있으니까.
정말 좋은 아이템이로군. 이젠 지속 시간도 늘어났으니 세성 길드장님께 전보다 몸값 더 올라갔다고 통보라도 해야겠다.
“성장형이라 앞으로 다른 스킬이나 효과가 더 생길 수도 있는데…….”
명우가 갑자기 심각한 얼굴을 했다. 나도 덩달아 표정이 무거워졌다. 부작용 같은 거라도 있나.
“스탯 정수 증가는… 무리더라.”
“…응?”
“그게 S급 템만 되어도 스킬 따로 있어서 스탯 증가는 서브거나, 아니면 간신히 S급 턱걸이어야만 정수 증가 효과가 붙는다더라고. 정수 증가가 좀… 저렴한 축에 든다고 해야 하나. 같은 등급 아이템이라도 정수 증가면 품질이 낮은, 뭐 그런 거. SS급부터는 정수 증가 아이템이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해.”
“…그렇구나.”
어쩐지 S급 정수 증가 아이템 구하기가 힘들더라니. 쓰는 사람도 별로 없을 텐데 왜 안 보이나 했다. 살짝 서럽네.
“그래도 이것만 해도 어디야. 아니, 피해 무효화 스킬이 훨씬 대단한 거지! 혹시나 싶어서 부탁해 본 거였는데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만들어 줄 줄이야. 심지어 재료에, 시간에…….”
예상 밖의 아이템에 당황했던 마음이 가라앉자 감동이 밀려왔다. 동시에 손에 든 팔찌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과하다, 진짜.
“네가 썼어도 되었을 텐데. 애초에 너한테 남겨 준 거기도 하고. 나한테 이렇게까지—”
“그런 거 말고 다른 말 있잖아.”
명우가 단호하게 내 말을 끊었다. 흠칫 녀석을 쳐다보았다. 빛이 날 정도로 뿌듯한 얼굴이다. 충분히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이며 눈빛이었다.
그걸 본 순간 내가 해야 할 말이 떠올랐다.
“고마워. 정말로.”
“별말씀을.”
“진짜 고맙다.”
“천만에.”
“명우 넌 최고야. 대단해.”
“나도 내가 좀 대단한 거 같긴 해. 아, 진짜 힘들긴 힘들었다.”
“이젠 쉬어 가면서 해라. 제발.”
명우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걸려 있던 무거운 짐 하나를 덜어낸 것처럼 밝고 가벼운 태도였다.
“그래도 혼자 다니거나 하진 마. 전에 써 봤으니까 알고 있지? 피해 무효 스킬 써 봤자 일상생활 수준의 접촉은 문제없다는 거. 애초에 접촉 가능한 상태에서의 방어 능력을 원했으니 당연한 결과지만.”
“어, 알고 있어.”
막 다뤄도 되니까 들고튀기 좋은 상태가 되겠지. 하지만 내가 혼자 다닐 일은 없고 무엇보다 던전에 막 들어가도 위험할 일 없어졌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이제 유현이도 내 걱정 덜 하겠지.
“은혜야, 앞으로 잘 부탁해.”
– 삑.
손목에 내려앉은 파랑새가 대답하듯 울었다. 그때 내 발치에서 넋 놓고 앉아 있는 삐약이가 눈에 들어왔다. 뭔가 충격이라도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왜지. 자기가 노리던 마석이 아이템으로 변해 버렸다는 걸 눈치채기라도 했나.
“삐약아?”
– …삐약.
팔찌… 가 아니라 새를 보고 있는 건가. 그때 은혜가 파다닥 삐약이 앞으로 다가갔다. 벌떡 일어난 삐약이가 묘하게 전투적으로 소리쳤다.
– 삐약!
– 삑삐삐
– 삐약삐약!
그리곤 삐약이가 조그만 날개를 파닥이기 시작했다. 애처로울 정도로 열심히. 그런 삐약이를 보던 파랑새가 다시 내 손목으로 날아오른다. 이어 팔찌의 보석 안으로 스며들 듯 사라졌다. 그래서 보석 하나는 남겨 둔 건가.
– 삐약… 삐.
“헉, 삐약아! 왜 울어!”
조그맣고 까만 눈에서 눈알보다 더 큰 물방울이 뚝뚝 서럽게 떨어졌다. 얼른 안아 들고 달래 줘도 계속 삐약삐약 운다.
“왜 그래, 왜.”
– 삐약, 삐약.
삐약거리며 또 날개를 파닥파닥. …설마 자기는 못 난다고 우는 건가. 블루나 코메트가 나는 건 신경 안 썼었는데, 같은 새를 본 탓일까. 하지만 삐약이의 날개는 몸에 비해 너무도 작았다. 솜털이 대부분이고 제대로 된 날개깃도 없다.
“…저기, 명우야.”
“응?”
“혹시 시간 나면, 삐약이용 비행 아이템 하나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그냥 느리게 떠다니는 정도면 되는데.”
“알았어. 그 정도야 금방 만들어 줄게.”
흔쾌히 대답하는 모습이 정말이지 든든하고도 고마웠다. 내가 너 없이 어떻게 사냐, 진짜.
* * *
“이젠 제대로 아이템 제작소를 차려야지.”
삐약이를 달래 놓고 오랜만에 명우와 저녁을 먹었다. 만들어 놓은 반찬도 물론 맛있었지만 바로 조리된 건 감탄이 나올 수준이었다.
절로 유현이와 예림이 생각이 났지만 명우가 둘 다 별로 좋아하질 않아서 눌러 참았다. 예림이는 눈치 보면서 반찬 얻어 가긴 하지만 유현이까지 끌어들이기엔 명우에게 미안했다. 유현이 녀석 명우한테 살갑게 좀 대하지. 첫 인상부터가 글러먹긴 했지만.
“이번에 은혜 만들면서 느낀 건데, 시스템이라는 거 의외로 사람 발목 잡는 거 같더라.”
“그걸 느꼈어?”
“그야 대장간에서는 스킬 쓰는 게 밖이랑은 다르잖아. 상태창도 안 뜨고. 유진이 너야말로 알고 있었던 눈치 같은데.”
“아, 나도 시스템을 벗어날 일이 있었거든.”
무엇보다도 도마뱀 주인 놈의 기억 덕이 컸다.
“특히 스킬 설명창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되지. 뭐라고 해야 하나, 불 피울 수 있는 능력이면 무언가를 태울 수 있습니다, 로 끝나 버리잖아. 음식을 조리하거나 추위를 피하거나 어둠을 밝히는 등도 가능한데. 게다가 정확하지 않은 설명도 있고.”
“뿐만 아니라 스킬이라는 거 애초에 내 능력이잖아.”
명우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스킬창이 있고 사용하면 써지는 거지만, 창이 안 뜨니까 느낌이 전혀 다르더라고. 무엇보다 L급 아이템은 시스템 내에서의 나는 절대 만들 수 없는 수준이잖아. 하지만 이스무아르와 힘을 합치고 마력을 다루는 요령을 파악하니 가능했어. 정해진 스킬을 벗어났다, 라고 해야 하나?”
그걸 벌써 깨닫다니. 명우 녀석, 역시 대단하다. 나도 어찌어찌 디아르마의 능력을 사용하긴 했지만 기억에 놈의 마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텐데.
“그래서 아이템 제작 스킬은 없지만 재능은 가진 사람들을 한번 키워 볼 생각이야.”
“키운다고?”
“어. 나 혼자 아이템을 만드는 것보단 팀을 이루는 편이 낫잖아? 일단 해연의 이민석 아저씨에게 제안해 보려고. 수리 스킬만 가지고 있지만 그것도 아이템을 다루는 능력이잖아. 게다가 현실에서의 경험은 나보다 훨씬 많으시고.”
스킬을 가르친다, 라. 시스템이 없는 세계에서는 그게 정석이긴 했다. 재능 있는 제자를 들여 특별한 능력을 가르쳐 익히게 만드는 방식이.
“네 대장간 안에서라면 가능할지도. 나도 관련 소질 가진 사람들 찾으면 보내 줄게.”
“확실한 건 아니니까 성공하면.”
“아, 그리고 나온 김에 레벨 올리러 가자.”
내새끼 스킬 쓴 지 벌써 며칠째냐. 한참 지났다. 내 말에 명우가 이제는 한가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 가는 거 유현이 녀석을 끌어들일까. 둘이 좀 친해도 질 겸. 정령 이름은 지었을까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