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인사 (1)
“처음 뵙겠습니다, 유명우 헌터님!”
“실물이 훨씬 더 멋지십니다!”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 필요한 재료는 없으십니까?”
온 사방에서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참을 두문불출하던 명우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자 빌딩 내의 헌터란 헌터는 죄다 몰려들었다. 중하급 헌터는 감히 끼어들지 못해 처음에는 열 명 남짓이었지만 소식을 듣고 꾸역꾸역 몰려와 지금은 서른이 넘는 A급 헌터가 로비를 채우고 있었다. 드문드문 해연에서 마주친 얼굴도 보였다.
안쪽 로비는 출입 허가를 받은 헌터들만 들어올 수 있으니 밖에는 더 많지 싶었다. 다들 눈에 S급 장비가 껴서 안달이다.
명우는 처음에는 좀 당황했지만 이내 당당하게 재료 쇼핑을 위해 부려먹을 자원자들을 골라냈다. A급 헌터들을 손가락 끝으로 부려먹는 모습이 흐뭇하게 느껴진다.
우리 명우, 완전히 갑 중의 갑이네.
“그럼 갔다 올게.”
“조심해서 다녀와라. 안전이 최고야.”
샬로스의 구슬도 있고 여차하면 대장간으로 피하면 되니까 별문제는 없겠지만. 명우가 떠나가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르르 그 뒤를 쫓았다. 하지만 몇몇은 남아 꿩 대신 닭이라는 눈빛으로 내게 관심을 돌렸다.
그때 주차장으로 통하는 입구 쪽에서 예림이가 나타났다. 아직 어리고 외양도 그리 강해 보이진 않지만 주위의 헌터들이 알아서 길을 비켜 준다. 앞을 가로막는 이 하나 없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 앞까지 다가온 예림이가 활짝 웃었다.
“아저씨~ 어? 못 보던 팔찌네. 예쁘다! 근데 옷이랑은 좀 안 어울리는 거 같아요. 아저씨도 제대로 코디 받고 다녀요.”
“그런 거 귀찮아.”
길드장들처럼 방송 타고 이미지 관리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뭣 하러. 팔찌를 살펴보던 예림이가 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노아 오빠는 없네요.”
“왜? 볼일이라도 있어?”
“아뇨, 그냥 예쁘잖아요. 반짝거리고. 아, 그거 아세요? 소영이 언니 코메트 보러 왔다가 노아 오빠 비행 연습하는 거 보고 종일 넋 나가 있었대요. 요즘도 툭하면 안 돼, 나한테는 코메트가 있어, 하고 중얼거린다니까요. 엄청 마음에 들었나 봐요.”
그럴 만은 하지. 코메트도 S급 용종으로 자랄 거긴 하지만 노아에 비할 바는 못 된다. 물론 노아는 사람이지만. 아니, 사람이라서 말이 통하니 더 좋은 건가? 강소영에게 리에트도 한번 보여 주고 싶구만. 반응이 궁금해지네.
“특수 격리소에 간다고 했죠?”
“응. 꼭 같이 갈 필요는 없는데.”
구치소와는 분위기가 다를 거라 애 데리고 가기가 좀 그렇다. 하지만 예림이는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저 있을 때는 제가 아저씨 경호원이에요. 그렇게 계약했잖아요.”
납치 때 파기된 예림이와의 계약을 해주 처리하고, 굳이 재계약하진 않으려고 했다. 계약서 같은 걸로 묶어 놓을 필요가 있나 싶어서였다. 그런 거 없이도 날 도와주려 할 아이니까. 하지만 예림이는 다시 계약서를 작성하길 원했고 이번에는 내가 요청 시 보호해 줄 것 정도로 조건을 정했다.
어디든 따라갈 거라는 예림이를 내려다보다가 문득 귀에서 흔들리는 귀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창랑의 인어여왕 귀걸이, 였지.’
물방울, 인어여왕의 귀걸이와 확실히 유사한 디자인이다. 특히나 저 푸른 보석은 크기만 다를 뿐 똑같은 광물로 보였다. 정확히 감별할 능력까진 없지만 색도 커팅도 완전히 같다.
‘명우가 다른 재능 있는 사람에게 스킬을 가르칠 수 있다면, 패륜아들도 가능하겠지.’
저 귀걸이가 물방울의 것이 맞다면 그녀의 스킬은 수계, 빙 계열일 것이다. 나머지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을까. 신입은 모르겠고 사슴, 늑대, 나무. …역시 잘 모르겠구만. 물방울은 있는데 불꽃 같은 건 왜 없냐.
아무튼 뜯어낼 수 있는 건 다 뜯어내야지.
“유현이도 만나 봐야 하는데 어째 답장이 없네.”
주차장으로 들어서 폰을 꺼내들며 말했다. 팔찌에 대한 것과 명우와 던전 가는 거 말해 줘야 하는데.
“길드장님요? 김성한 아저씨나 석 팀장님한테 물어봤어요?”
“아니. 전화해 볼까.”
연락처를 열자 예림이가 고개를 쭉 빼어 들여다봐 왔다.
“제 번호 뭐라고 등록했어요?”
“예림이.”
“아저씨, 진짜 아저씨 같다. 전부 그냥 이름이네.”
아니 뭐가 또. 그럼 이름으로 적지 뭐라고 적으랴. 예림이가 내 폰을 빼앗아들곤 연락처를 쭉 스크롤해 내렸다.
“길드장님도 그냥 동생이네요? 의외다. 어? 이건 뭐예요? 스킬? 누구지?”
“성현제.”
“…세성 길드장님이요?”
“어.”
“이름도 아니고 어쩌다 스킬이 된 거예요?”
“그냥 그거라서.”
와, 스킬 취급, 하고 예림이가 웃었다. 왜 이렇게 텅 비었냐며, 앱 추천해 주는 예림이로부터 폰을 다시 돌려받아 김성한에게 전화했다. 유현이의 위치를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특수 격리소요?”
[예. 한 시간쯤 전에 나가셨습니다.]거길 왜 간 거지. 지금 특수 격리소에는 윤경수를 비롯한 A급 헌터들이 갇혀 있었다. MKC의 최석원은 혼자 구치소로 빠져나가고 나머지는 엄중 처벌될 예정이었다.
내가 엮인 일이니 방문까지는 그렇다 쳐도, 왜 연락을 안 받냐. 거기 전화 통화 막아 놓았나? 아니, 문자 보낸 건 한 시간 전이었는데. 살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길드장님 특수 격리소에 있대요?”
“응. 빨리 가 봐야겠다. 아무래도 불길해.”
“소영 언니 부를까요? 차로 가는 것보다 배는 빠를 텐데.”
…음, 그건.
“딱지는 쌓였지만 사고 난 적은 없어요.”
“…그래. 부탁할게.”
어디 남는 헬멧 없나.
* * *
작은 도마뱀 형태를 한 불의 정령이 조용히 주인의 발목을 맴돌았다. 이어 스르륵, 발아래로 내려가 바닥에 스며든다. 희미하게, 거뭇한 그을림만 조금 남긴 채 겹겹의 벽을 통과하는 정령의 움직임은 명령을 내린 주인 외에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대기실 의자에 자리한 한유현은 옅게 미소 띤 채 테이블 건너편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송태원이 다 참지 못한 한숨을 흘려냈다.
“피해자 본인이 아닌 이상 특수 격리소 수감자와의 면회는 불가능합니다. 친형제라 하여도 안 됩니다.”
“까다롭군요. 그저 몇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을 뿐입니다만.”
“수감자의 동의가 있다면 가능하겠지만 윤경수도 다른 헌터들도 모두 면회를 거부했습니다.”
받아들일 리가 있을까. 얼굴엔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한유현이 수감자들을 어떻게 처리하고 싶어 하는지는 불 보듯 뻔했다. 송태원은 성현제와는 다른 의미로 까다로운 청년을 향해 말했다.
“그러니 이만 돌아가 주십시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형이 올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오늘 방문하기로 했다지요.”
“…알겠습니다.”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송태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건 당사자인 한유진이 도착한다면 면회를 막기 힘들어진다. 하나 동시에 제 형 앞에서의 한유현은 감당할 만하게 얌전해질 것이었다.
‘신기할 정도지.’
가장 눈에 띄게 변하는 것은 한유현이었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리에트는 얌전히 구치소에 들어갔고 성현제도 무슨 속셈인지 햇병아리 헌터를 관대하게 대했다. 박예림이야 말할 것도 없고. 기승수 때문이겠지만 문현아와도 퍽 가깝다고 들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송태원으로서는 달가운 현상이었다. 그 중심인 한유진은 대화로 해결 가능한 상대였으니까.
그렇게 한숨 돌리는 순간이었다.
퍼엉!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쿠르릉—
무너지고 부서지고 불타오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벽에 걸린 비상 전화의 벨이 울리고 송태원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수화기를 들었다. 수감 시설의 일부가 부서졌다는 다급한 목소리가 한유현의 귀에까지 흘러들었다.
“얌전히 갇혀 있는 데 질리기라도 한 모양이군요.”
차분하게, 다정할 정도로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며 한유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발치로 붉은 것이 희미하게 스쳐 올라가 모습을 감춘다. 송태원은 얼굴을 딱딱히 굳히며 젊디젊은 헌터를 돌아보았다.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구속 조치가 되어 있는 상태니 격리소 내 헌터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글쎄요.”
재차 폭음이 들렸다. 한유현은 인벤토리에서 길고 날렵한 검을 꺼내들었다. 그의 한쪽 눈동자로 붉은빛이 깃든다.
“인벤토리 봉인구가 부서지면 구속 조치도 소용없을 겁니다만. S급, A급 헌터들이니 상급 포션도 회복이나 저주 저항 장비도 넉넉히 갖추었겠지요.”
특수 격리소의 비인도적인 구속 조치라 해도 포션을 꺼내 쓸 수만 있다면 벗어날 수 있다. 저주 관련 제약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봉인구가 부서졌으리라 확신하는 건지 궁금하군요.”
“저렇게 소란스러우니 당연한 추측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도와드리겠습니다.”
한유현이 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송태원은 반사적으로 그 앞을 막아섰다. 이대로 보내면 윤경수를 비롯한 헌터들 중 살아남는 자가 없을 것이다.
“도움은 필요 없—”
“송 실장님, 당신도, 그 밖의 애꿎은 사람들도 다치는 꼴 보기 싫으면 가서 대피나 시켜.”
“협박하는 겁니까.”
“참고 있는 겁니다. 아니면 성현제에게 따지시든가. 던전 안에서 깔끔히 처리했다면 이런 수고를 들일 필요는 없었을 텐데. 혹시 내 몫을 남겨 준 건가?”
송태원은 결국 옆으로 비켜섰다. 실상 던전 안에서 몰살당했다 해도 이상할 거 없는 자들이었다. 한유현을 막다가 피해를 늘리기보다는 그의 말대로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렇게 결론 내렸음에도 송태원의 안색은 좋지 못했다. 문밖으로 유유히 걸어 나가는 저보다 한참 어린 청년을 바라보는 눈길이 더없이 차가웠다.
고삐 풀린 짐승들. 묶어 놓을 목줄조차 없는 괴물들.
그 자신 또한 포함되었기에 더더욱 혐오스럽다. 송태원은 어금니를 사리물고 뒷정리를 위해 발을 옮겼다.
* * *
강소영 헌터의 실력은 대단했다. 뿐만 아니라 예림이와의 조합 또한 엄청났다. 신호에 걸리거나 돌아가야 하는 길에 막히면 바이크째 들어다 날아 넘어 버리니 그야말로 막힘이 없었다. 비록 내 속은 조금 뒤집어졌지만 무서울 정도로 빠른 시간 안에 외곽에 있는 특수 격리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길드장님 벌써 일 쳤나 봐요.”
이미 격리소 건물 한쪽이 무너져 내린 후였지만. 안전을 위해 주위가 허허벌판이라 다행이다. 하지만 불이 번져 가고 있었다. 멀찍이 소방차가 보였지만 불이 난 곳까지 접근은 못 하고 있었다. 자칫 헌터들 싸움에 휘말리기라도 했다간 애꿎은 피해자만 생기게 될 테니까.
“예림아, 불 좀 꺼 줄래?”
“네! 소영 언니, 아저씨 좀—”
“아니, 나도 들어갈 거야.”
내 말에 예림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저씨 미쳤어요?”
“고운 말 쓰자. 그때 그 아이템 있어. 걱정 말고 불 끄는 거 부탁할게. 여기까지 태워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영 씨. 혹시라도 휘말리지 않게 피해 계세요.”
“감사는 노아 씨 연락처로 받고 구경만 할게요!”
강소영이 들떠 하며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촬영하는 거냐, 지금. 그보다 노아의 연락처라니, 포기 못 한 건가. 이해는 간다만 코메트를 생각하시죠.
바리케이드가 쳐지고 격리소 헌터들이 지키고 있었지만 S급 헌터인 예림이를 막지는 않았다. 나도 예림이의 덤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팔찌를 사용하고 사람들은 대부분 대피했는지 인적 없는 건물 쪽으로 들어가자 타다 남은 시체가 눈에 띄었다.
“예림아, 넌 불 번지는 쪽으로 가.”
“시체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야! 그래도 봐서 좋을 거 없어!”
아예 안 보는 건 무리라도 덜 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내 잔소리에도 예림이는 듣지 못한 척 주위를 동동 떠다니며 탄식으로 잔불을 꺼뜨렸다. 그사이 시체가 한 구 더 나타났다. 이번에는 얼굴이 기억났다. 지난번 던전에서 공격해 온 헌터들 중 하나다.
‘…유현이 녀석.’
적당히 넘어갈 것처럼 굴더니. 건물 잔해를 피해 좀 더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누군가가 내 앞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유현이가 웃는 낯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일찍은 무슨! 다 죽인 거냐? 윤경수는?”
“지금쯤 숨통이 끊어지지 않았을까. 신경 쓰지 마. 세성 길드장이 봐준 게 이상한 거고, 탈출까지 하려 들었으니 당연한 결과야.”
성현제의 재활용 정신은 나도 의외였지만 탈출이라니. 미심쩍은 눈길을 보내자 동생 놈이 뻔뻔하게 미소 지었다.
“그만 가자. 몇 시지? 점심이나 먹을까?”
“살아 있는데요.”
뭐? 예림이의 뜬금없는 말에 나와 유현이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예림이가 바라보는 그곳에 윤경수가 서 있었다. 목이 반쯤 잘린 채로.
“아니, 죽은 건가? 근데 움직여요. 뭐지?”
예림이가 고개를 갸웃 기울이고 유현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윤경수가 입을 벌렸다.
“안녕!”
낯선 여자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