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쉬라고 해도 (3)
점심을 먹고 끌려간 카페에서 강소영이 합류했다. 망고를 겹겹이 두른 빙수에 부풀어 오른 팬케이크, 과일과 아이스크림을 얹은 와플, 치즈케이크와 티라미수와 또 뭐 이것저것이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다 먹을 수 있는 건가, 이거.
“노아 씨 딱 한 번만 타 보면 안 될까요?”
강소영이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부탁해 왔다. 노아는 스푼을 입에 문 채로 떨떠름해하며 옆에 앉은 나를 곁눈질했다. 아무래도 강소영이 부담스러운 듯했다. 나란히 놓고 보면 참 잘 어울리긴 하는데.
…잠깐만, 그럼 유현이는. 강소영이 노아에게 이성으로서 관심을 보이는 건 아니지만 호감이 생긴 이상 어떻게 발전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방해해야 하나. 음, 일단 노아가 강소영을 꺼리는 듯하니까.
“노아 씨는 기승수가 아닙니다. 자꾸 그러시면 곤란해요.”
강소영이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코메트도 있으니 더더욱 이러면 안 되는데, 근데 눈에서 떠나지를 않아요.”
“나도 직접 보고 싶네. 사실 나도 타 보고 싶—”
“빙수나 드시죠. 노아 씨, 이거 먹어 봐요. 맛있어요.”
“네.”
자꾸만 자기를 노리며 뜨거운 눈빛을 보내오는 두 사람 때문인지 노아는 약간 주눅이 든 상태였다. 적당히 좀 해라, 이 사람들아.
“강소영 씨, 혹시 세성 길드장님의 말투가 언제 바뀌었는지 기억하고 계십니까?”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강소영에게 물었다. 문현아야 성현제와 자주 마주치는 사이는 아니니까 알고 보면 말투 바뀐 지 두 달 이상 지났다거나 할 수도 있다. 내 물음에 강소영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아, 그러고 보니 바뀌셨죠. 언제부터였더라. 한 달 반쯤 전인가? 두 달 좀 못 된 거 같은데……. 예림이 S급 인정받기 며칠 전쯤이었을걸요.”
…딱 내가 회귀했을 시점이다. 물론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혹시 그 밖의 변화는 없었습니까? 갑자기 말투를 바꾼 이유 같은 건 못 들으셨나요?”
“이유요? 별 이유 있겠어요? 엄청 자연스러우시던데. 그 밖의 변화, 느은…….”
강소영이 말꼬리를 늘리며 나를 빤하게 쳐다보았다.
“한유진 님께 관심이 좀, 많으신 거 같아서 걱정돼요.”
“네?”
“길드장님은 즐거우신 거 같은데요, 그런 관심이 좋게 끝난 적이 별로 없거든요. 저희 길드장님 성격이 소올직히 좋은 건 아니잖아요. 근데 한유진 님한테는 무척이나 너그러우셔서요. 어제도 꽤 놀랐거든요. 특이한 던전이 나타났으니 오실 수야 있겠지만 옷 심부름을 다 해 주시고. 게다가 그렇게, 친해 보이시는 건…….”
“안 친합니다. 아니, 일주일 한정으로 친한 척만 할 겁니다.”
이제 6일 남았다. 강소영이 포크를 만지작거리며 눈꼬리를 늘어뜨렸다.
“이번에는 유독 더 재미있어하시는 티가 나셔서… 우리 코메트를 위해서라도 조심하셨으면 좋겠어요.”
“그건 그래. 동생은 그렇다 쳐도 성현제까지 서슴없이 대하는 건 위험하지. 예림이도 신경 쓰이는 모양이더라. 우리 블루를 위해서라도 조심해.”
벌써 우리 블루냐. 문현아에 이어 노아까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요. 저도 세성 길드장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걱정들 하는 건 알겠지만 조심하라고 해도 어쩔 수가 있나.
‘내가 먼저 접근해 봐야 할 판이니.’
마음 같아선 나도 그 인간 얼굴 티브이에서나 보고 싶다. 빙수 맛있다. 우유얼음 되게 부드럽네.
카페의 커다란 유리창을 따라 빗물이 흘러내렸다. 나직한 빗소리 사이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웃음과 함께 오갔다. 노아는 물론이고 나도 주로 듣는 쪽이었지만 나쁘진 않았다. 문현아도 강소영도 즐겁게 사는구나. 예림이가 저 사이에 끼어 있다는 게 기뻤다.
유현이도 친구 한둘 정도는 있지 않을까. …없나? 나이도 비슷하겠다 노아보고 동생이랑 친구 하지 않겠냐고 물어볼까. 애가 잘 나가는 건 좋은데 솔직히 스무 살이면 캠퍼스 라이프 즐기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왜 던전 출퇴근입니까.
“노아 씨는 혹시 학교 가실 생각 없으세요?”
“학교요?”
노아가 고개를 갸웃하고 강소영이 앗, 하고 외쳤다.
“저 내년에 대학교 특례입학 하기로 되어 있는데, 같이 다니실래요? 수업 듣는 일은 별로 없긴 하겠지만요. 한유진 님은 어때요? B급이지만 스킬 영향력이 크니 가능할 텐데.”
이제 와서 무슨 대학이람. 게다가 상급 헌터 특별전형 허용 대학은 몇 없어서 자칫하다간 동생의 후배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유현이 놈 학교 가는 꼴을 못 봤으니 마주칠 일은 없겠지만. 됐다고 고개를 저었건만 문현아까지 부추겨 왔다.
“어차피 수업 죄다 째도 던전 공략으로 대체하면 졸업장 나오니까 그냥 가. 대졸 딱지 있어서 나쁠 건 없어. 아니, 형님 같은 위치면 있는 게 훨 편하지.”
수업 들을 필요 없다는 소리에 살짝 솔깃해졌다. 내년까진 아직 시간 많이 남았으니까 고민해 볼까. 간다면 유현이랑 다른 대학 가야지.
삐이이—
그때 돌연 휴대폰이 울렸다. 우리 넷만이 아니라 카페에 있는 휴대폰들이 죄다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던전 관련 재난 메시지다.
“어디 터지기라도 했나.”
문현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나 또한 폰을 확인했다. 상급 헌터 폭주로 인해 일부 구간 통행제한 및 접근주의 메시지였다.
던전 공략 직후 드물게 벌어지는 일이긴 하지만 뭔가 석연찮았다. 혹시나 싶어 포털사이트에 들어가자 속보가 떠 있다.
“…이런 미친놈들이.”
무심코 튀어나온 중얼거림에 문현아도 동감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해연 길드장이 협회와의 마찰로 신 헌터협회 건물의 일부를 파괴했다, 라. 협회에서 예상보다 더 화끈하게 나오는데?”
“막 나가는 거겠죠. 먼저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휴가라더니. 게다가 형님, 동생은 여기 없을지도 몰라.”
문현아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다. 사진상에는 무너진 건물 일부에 불이 붙어 있었지만, 그 정도야 유현이가 아니더라도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는 장면이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도 떨어지면 또 모를까. 불이야 흔하지.
“누명이면 더 내버려 둘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동생 만나러 가는 건 일이 아니죠.”
“같이 가 줄까?”
“그보다는 유현이에게 연락 좀 부탁드립니다. 전화 연결이 안 되네요. 노아 씨, 도와주시겠습니까?”
“네. 물론 도와드리겠습니다.”
교통이 통제되고 있으니까 날아가는 편이 빠를 것이다. 거기에 노아가 곁에 있다면 위험해질 가능성도 낮고. 독만 뿌려도 웬만해선 쉽게 접근하지 못할 테니까.
문자 한 통을 보내고 카페 밖으로 나갔다. 이어 노아가 용의 모습으로 변했다. 행인들이 기겁하고 몇몇은 놀라 우산을 버리고 도망쳤다. 미안해지네. 개중에는 놀라지 않고 폰을 꺼내 촬영하는 사람들도 있긴 했다.
노아의 등에 올라타자 기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빗물 탓에 평소보다 비늘이 미끄러워 불안정했다. 그래도 사람한테 안장까지 채우기엔 좀 거부감이 들어서. 떨어지면 잡아 주겠지. 은혜도 있고.
빌딩을 스쳐 지나가며 전화를 걸었다. 하루쯤은 안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묻기도 전에 대답한다.
[도련님의 행방은 나도 모른다네.]“정말입니까?”
[높이 평가해 주는 건 고맙지만 나라고 해서 앉은 자리에서 모든 걸 다 알 순 없지. 그보다 또 무모하게 굴고 있는 모양이로군.]“걱정되시면 몸소 행차라도 해 주시든가요. 헬기 좋아 보이던데.”
[한유진 군이 나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슬프군. 도움을 원한다면 직접 와서 공손히 부탁해 보게나.]“그새 저보다 좋은 아이템이라도 찾아내셨나 봅니다?”
[그랬다면 한유진 군은 이미 내 앞에 있겠지. 두 번째는 존중할 필요가 없거든.]“제가 제일 잘나서 천만다행입니다.”
농담처럼 말하지만 농담이 아닐 것이다. 통화 내용을 들었는지 노아가 나를 걱정스럽게 돌아보는 걸 괜찮다고 달래 주었다. 스킬창이 나 정도로 이상한 인간이 세상에 또 있으면 신에게 항의할 일이다.
‘나서 줄 생각은 없는 듯하지만 끝까지 모른 체하진 않겠지.’
빚이 더 쌓이면 안 갚고 튈 궁리나 해야겠다. 도하민에게 연락해 볼까 했지만 유현이 녀석 휴대폰 부숴먹었다는 게 떠올랐다. 피스와 둘이 던전 돌 때 지갑 날려먹었댔으니 헌터증이나 운전면허도 새로 발급받았을 테고.
– 저기 맞죠?
노아의 말에 휴대폰을 집어넣고 고개를 들었다. 저만치 연기가 피어오르는 건물이 보였다. 각성센터 옆의 신 협회 빌딩. 본건물을 부수긴 아까웠는지 옆에 붙은 2층짜리 별관의 일부만 무너져 있었다. 계속 내리는 비 탓에 불도 거의 다 꺼져 연기만 솟아난다.
‘쪼잔하긴.’
유현이가 진짜로 날뛰었으면 본관까지 폭삭 내려앉았겠지. 속보 사진 정말 과장되게 잘 찍었구만. 뒤늦게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문자를 보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니 곧 도착할 것이다.
[각성센터 좀 부숴 줄래요? 동그란 건물.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그때 헬기가 접근해 왔다. 헌터로 보이는 무장한 남자가 아래로 내려가라 손짓해 왔지만 무시하고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해 석시명에게로 보냈다.
– 헬기 부숴도 됩니까?
“아직은 안 돼요. 일단 내려가죠.”
무너진 건물 앞으로 내려서 얼굴 나오게 인증샷 찍었다. 여기에 제 동생은 없는 듯합니다, 하고 동영상도 촬영했다. 그새 통신 방해라도 하는지 해연으로 보낼 순 없었지만 폰만 무사하면 되니까.
“한유진 씨.”
검은 양복의 남자가 접근하려다가 전용화를 푼 노아의 살벌한 시선을 맞곤 굳었다.
“사랑하는 제 동생 얼굴이나 볼까 하고 왔는데,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애가 안 보이네요. 분명 여기 있다고 기사도 났었는데. 웃는 얼굴로 물었건만 돌아오는 시선은 차가웠다. 너무하네.
그사이 주위를 포위하는 인원이 더 늘어났다. 수상함을 느끼지 않도록 휘익, 등급만 빠르게 확인했다. A급 세 명, 나머지는 B이하.
“여기 계시면 안 됩니다. 저희와 함께 가시죠.”
“궁금한 게 있는데, 저 건물 안에 사람이 있습니까?”
“전부 대피했습니다. 속보로 나갔듯이 해연 길드장인 한유현 헌터가—”
“그래서 내 동생은 어디 있는데.”
걔가 고작 벽 좀 부수고 말았다니 헛소리도 정도껏 해라.
“도주 중입니다.”
“미쳤나, 진짜.”
“친동생의 일이니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란 사실은 이해합니다. 일단 장소를 옮겨 자세한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세한 내용? 내가 보기엔 여기 건물이 죄다 폭삭 무너진 거 같은데.”
“예?”
“물론 내 동생 짓은 아니고. 근처에 미처 발견 못 한 던전이 터져서.”
나를 향한 얼굴들이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어리둥절해졌다.
“당신들 눈에는 아직 안 보이나 봐. 흑색의 거대한 드래곤이.”
놈들 대신 노아가 흠칫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얼간이들은 여전히 영문 모를 표정이었다.
“쪼잔한 새끼들아, 해연 길드장이 날뛰었다고 기사 내려면—”
콰과광!!
귀를 때리는 폭음이 울렸다. 기다렸다는 듯 눈썹 한 번 까딱 않고 말을 이었다.
“이 정도 난장판은 쳐 줘야지.”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얼빠진 얼굴들만으로도 저들이 보고 있을 광경이 짐작되었다. 건물이 부서지고 돌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그리고.
– 크르르르.
살벌한 으르렁거림이 공기를 진동시킨다.
“제, 젠장! 던전 브레이크다!”
“용종, 최소 A급 던전이야!”
“노아 씨, 안전을 위해 기절들 좀 시켜 주시겠어요?”
S급 용종이 나타났는데 쩌리들이 날뛰면 위험하잖아. 노아가 도망치는 헌터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어 하나둘 헌터들이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어찌나 동작이 빠른지 스탯 낮은 내 눈에는 금빛 물결처럼 비춰졌다.
다른 사람이 더 없는지 확인을 부탁한 뒤 돌아섰다. 각성센터의 잔해를 깔고 앉은 흑색의 저주독룡이 나를 향해 머리를 뻗는다.
각성센터 건물 날아갔으니 휴가를 좀 더 늘려도 되겠어.
– 자기야, 나는 재밌는데 이래도 돼?
“당연히 되지. 던전 브레이크를 처리해 준 거니까 협회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게 되지 않을까.”
해연 길드장이 폭주했다, 는 오보였습니다. 기절한 얼간이들이, 거대한 용의 흔적이 증거가 되어 줄 것이다. 리에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의심할지도 모르지만 잡아떼면 그만이다. 터진 던전 게이트는 어디 갔냐고? 바로 어제도 사라졌는데 오늘 또 사라질 수도 있지.
“사람 없다니까 옆의 빌딩도 마저 밀어 주시죠, 사악한 드래곤님. 깔끔하게.”
– 얼마든지, 공주님! 이걸로 애 키워 주는 값은 치르는 거야~
“열과 성을 다해 돌봐 드리겠습니다.”
걸걸한 웃음소리와 함께 용이 뒷발로 몸을 일으켰다. 꼬리가 땅을 치고, 두 뒷다리의 비늘이 일제히 흔들렸다.
으지직, 지면이 강력한 압력에 신음성을 흘린 직후.
콰— 앙!!
짧고 굵은 굉음을 울리며 드래곤의 몸체가 빌딩을 들이받았다. 유리창이 일제히 터져 나간다. 반짝거리며 흩어지는 조각들을 감상할 틈도 없이 드높은 건물이 쩌억 갈라졌다. 튼튼한 철골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빌딩이 설탕공예처럼 가볍게 부서져 내린다.
“조심하세요.”
어느새 다가온 노아가 나를 뒤로 당기며 튀어온 건물 잔해를 팔로 쳐냈다. 리에트가 커다란 발로 쾅쾅 남은 덩어리들을 밟아 뭉갰다. 잘한다. 속이 다 시원하네.
“역시 던전 브레이크는 위험하다니까요. 마침 S급 헌터인 노아 씨가 있어서 천만다행입니다.”
눈을 깜박깜박하던 노아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살짝 웃었다.
* * *
비는 계속해서 내렸다. 여름이라고 해도 감기 걸릴지 않을까 걱정될 즈음, 차가 나타났다. 여러 대다. 구급차도 섞여 있었다. 내려서는 사람들 중에 유현이도 보였다. 동생이 다가와 내게 우산을 씌워 주었다.
“왜 비를 맞고 있어.”
“여기 꼴을 봐라. 피할 곳이 없잖아.”
“우산이라도 챙기지.”
주변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잡담을 나누는 사이 기절한 헌터들을 챙기는 손들이 분주하다. 내게 꽂히는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송태원이다. 저 사람도 우산이 없네. 반갑다는 듯 웃어 주자 비에 젖은 얼굴이 굳어졌다.
휴가 기간이긴 하지만 시간 내주지 않으면 안 될 분위기다. 나는 언제 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