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2
12화 두 번째 S급 (1)
어제보다 날씨가 조금 더 더워졌다. 나는 하드 하나를 입에 문 채 명동역 주위를 뒤지고 있었다.
명동역 근처 고깃집.
이것 외엔 얼음마녀 박예림의 현재 거주지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실례합니다. 혹시 여기 박예림이라는 학생이 살고 있습니까?”
“아뇨, 그런 사람 없습니다.”
이번에도 꽝이다. 나는 휴대폰의 지도에 X표시를 했다. 이쪽 거리는 다 확인했고, 저쪽으로 가 볼까. 고깃집이 은근 많네.
얼마 안 남은 하드를 베어 물며 뒤를 힐끔 돌아보자, 약간 떨어져 쫓아오고 있는 더워 죽을 차림새의 김성한이 보였다. 상급 헌터는 더위도 안 타냐. 저 인간을 S급으로 만들어 주고 싶은데 엄두가 안 난다.
유명우의 경우는 운이 좋았지. 하지만 저 인간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핑계가 뭐가 있겠냐. 술자리라도 한번 마련해 봐?
‘아무한테나 사랑 고백하는 게 내 술주정이라고 우겨 볼까.’
물론 단순히 키워드를 말하는 걸론 안 되고 뭔가 느끼긴 해야 하니까 친해지는 게 우선이었다. 어떻게 친해지지. 역시 술인가. 술 좋아하려나?
길을 건너 구석진 곳에 있는 ㅁㅁ숯불갈비집으로 향했다. 술 생각하다가 고기 굽는 냄새 맡으니까 절로 군침이 넘어가는구나. 가게 벽에 붙은 메뉴를 보니 곱창, 막창도 하는 모양이었다.
곱창 좋지. 기름기 자글자글 목화솜처럼 부푼 곱창에 목구멍 싹 씻어 내려 주는 시원한 맥주 한잔! 삼겹살에 소주도 좋지만 난 역시 곱창이다. 곱창이 좋아. 곱창 먹고 싶어. 아직 이르긴 하지만 저녁 먹어도 될 시간인데, 먹고 마저 찾을까.
아이스크림 막대를 입에 물고 갈비집 입구로 다가가는데,
“뭐든 다 내 잘못이라지!”
쨍한 외침과 함께 유리문이 벌컥 열렸다. 문에 매달린 작은 종이 딸랑딸랑 부서질 듯 흔들린다.
“박수천 그 새끼 짓이라고오!!”
“저년이 어디서 소릴 빽빽 질러?! 이리 안 와?”
문을 박차고 나온 추리닝 차림의 소녀가 가게 안을 죽일 듯이 노려본다. 울분에 가득 찬 그 얼굴이 분명 낯익었다. 박예림, 맞지?
“저기—”
“그냥 다 죽어 버려!”
박예림은 소리를 버럭 지르곤 돌아서서 내달리기 시작했다. 어딜 가는 거야, 잠깐만 기다리지!
나는 순식간에 멀어져 가는 소녀를 따라 뛰었다. 상대는 여중생이고 나는 F급이나마 각성한 성인이니 금방 따라잡을… 뭐가 저렇게 빨라?
‘벌써 각성이라도 했나? 으악, 차가!’
차에 막혀 머뭇거리는 사이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 장갑이랑 허리띠 하고 올 걸 그랬나. 덥다고 빼 버리지 않았으면 바로 붙잡을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방향은 확실히 봐 뒀다.
차가 지나간 뒤 길을 건너 박예림이 향한 곳으로 뛰어갔다.
얼마 가지 않아 나무가 우거진 언덕이 나왔다. 남산의 끝자락 나무 사이로 아무렇게나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소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일단 확인부터 해 보고.’
혹 다른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떡잎 스킬을 쓰자 꽤 먼 거리임에도 상태창이 떴다.
[비각성자 – 박예림각성 가능 스탯 등급 A~S
최적화 초기 스킬
그림자 없는 낮(SS)
헤르메스의 신발(S)
하얀 사체(S)]
각성 가능 스탯 최고 등급이 S인 건 어느 정도 예상했다. 최적화 초기 스킬이 SS까지 있다는 건 조금 놀라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얼음 비슷한 것도 없잖아?!’
얼음마녀로 유명했던 그녀의 최적화 초기 스킬은 죄다 처음 들어 보는 것이었다. 그 사실이 가장 놀랍다 못해 경악스러웠다.
아니 자기한테 맞지도 않는 스킬 가지고 그렇게나 유명세를 떨쳤단 말이야? 대체 얼마나 재능이 뛰어난 거냐. 부럽다.
‘그런데 이 스킬들… 어떤 종류인지 영 모르겠네.’
그나마 헤르메스의 신발은 비행이나 민첩 종류지 싶은데 그림자 없는 낮과 하얀 사체는 특성조차 짐작 가질 않았다. 떡잎으로는 스킬 내용까지는 확인 불가능한 게 아쉬웠다.
보조 스킬이면 안 되는데. 그래도 스탯이 S급이니—
“한유진 씨.”
아 씨, 깜짝이야! 성한이 놈이 불쑥 옆에서 나타났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냐고 묻는 표정이다.
“저 학생한테서 강한 기운이 느껴져서 접근해 보려고 합니다.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니까 꼭 사이비가 된 기분이 들었다. 김성한은 박예림을 힐끗 쳐다보곤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접근한다. 머리를 굴리며 박예림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아직 어린 소녀는 돌아앉은 채라 표정을 확인할 순 없었다. 하지만 그 뒷모습에는 진한 슬픔이 드리워져 있었다. 잔뜩 움츠린 가는 어깨가 애잔하다.
“저기, 학생.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나는 무해한 사람이란다. 믿어 주렴.
박예림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울지는 않았지만 눈가가 빨갛다. 아랫입술에는 잘근잘근 깨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안녕? 나는—”
“원조교제 안 해요.”
“나도 안 해!”
사람을 뭐로 보고!
얇은 얼음장 같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박살 났다. 여기서 왜 그딴 소리가 튀어나오냐!
“박예림, 맞지?”
내 말에 그녀가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났다. 그리곤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보내왔다.
“…스토커?”
“아니거든!”
원조교제로도 모자라서 스토커까지 나오냐! 진심으로 억울했다. 맹세코 회귀 전에도 그런 쪽으로는 깨끗했다고. 다른 쪽으로는 더럽지만.
“나는, 그러니까 옛날에 네 부모님께 신세 진 적이 있는 사람이야.”
이번에도 너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사실 인연이 있음, 을 써먹기로 했다. 그냥 스카우트하러 왔다고 말하기엔 애가 경계심이 너무 강하다.
“부모님께요?”
“그래. 수상한 사람 아니다.”
“엄청 수상해 보이는 아저씬데.”
아저씨! 그, 그래. 중학생에게는 아저씨로 보일 나이긴 하지. 내 나이 벌써 서른… 이 아니잖아! 회귀했잖아! 아직 이십댄데!
“…나 아직 스물 중반밖에 안 됐거든?”
“군대 갔다 왔어요?”
“…어.”
“그럼 아저씨 맞네.”
…각성 못 해서 군대 다녀온 것도 억울한데 너무하다. 얘한테 내 보호를 맡길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위장이 따끔거렸다. 어릴 때부터 성격이 장난 아니었구만.
“아무튼, 나는 널 후원해 주고 싶어.”
“역시 원조교제 맞잖아! 경찰 아저씨!”
“아니야! 아니라고! 자, 여기 헌터 자격증이랑 길드 임시 소속증!”
얼른 지갑을 꺼내 자격증과 소속증을 내보였다. 그것을 본 박예림이 눈썹 끝을 치켜올렸다.
“뭐예요, F급이잖아요. 후원은커녕 아저씨 살기도 벅찰 거 같은데.”
…뼈아픈 소리만 골라 하는 녀석이로군.
“길드 소속증도 좀 봐 줄래.”
“해연 길드? 여긴 유명한 덴데.”
“그래, 해연 길드 길드장 한유현 알지? S급 헌터. 걔가 내 동생이야.”
박예림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새삼스럽게 살펴보았다.
“그 잘생긴 오빠랑요? 별로 안 닮았는데.”
“…그놈은 오빠냐.”
“군대 안 갔다 왔잖아요.”
“S급은 어차피 면제야.”
“그럼 능력 있는 오빠로 수정.”
…맞는 말이라서 더 뼈가 아팠다. 그래도 조금은 미안했는지 박예림이 자세히 보니 비슷하긴 하네,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능력 있는 동생을 둔 것도 능력이죠. 그렇게 불쌍한 표정 짓지 마요, 아저씨.”
“내가 언제.”
“한 오 년쯤 진흙탕 구르다가 기어 나온 조난자 같은 얼굴이던데요.”
뭐지. 기억을 읽는 능력 같은 거라도 있나.
“엇나간 소리는 이쯤하고, 나는 너를 각성자로 만들어 줄 수 있어.”
“각성자요?”
박예림이 흥미 어린 눈빛을 했다. 각성자야 한창 핫한 직업이니 애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물론 C급 이상만. 어느 직업이든 다 그렇듯 바닥은 없는 셈 쳐 버리지.
“응. 내 스킬이 그거거든. 타인을 각성자로 만들어 주는 거. 거기에 길드장도 등에 업고 있으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가능하지.”
“그래 봤자 F면 별 소용없잖아요.”
“걱정 마. 네 등급은 최소 B 이상이니까.”
자신 있는 말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것도 알 수 있어요?”
“나는 알 수 있지. 다른 사람들에겐 비밀이야.”
“내가 비밀을 안 지키려면 어쩌려고 막 말해요? 이 아저씨 조심성 없네.”
“그걸 대비해서 계약서란 게 있단다. 널 각성시켜 주는 건 계약서를 작성한 뒤야. 각성을 포기하고 비밀을 떠들어 댄다면 글쎄, 과연 누가 널 믿어 줄까. 증거도 없는데.”
이렇게 하면 각성자가 될 수 있다! 라는 별의별 루머가 인터넷에 한가득이다. 그러니 각성시켜 줄 수 있는 스킬이 있대, 라고 떠들어 봤자 새삼 주목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심지어 그 비슷한 소리를 하는 사기꾼도 이미 여럿 있으니 의심이나 받겠지.
미간을 살짝 좁힌 채 생각에 잠겨 있던 박예림이 입을 열었다.
“각성자가 되면 독립할 수 있어요? 삼촌 집에서 살기 싫어요.”
“독립할 수 있어. 첫 번째 던전 쇼크 때 미성년자 각성자가 여럿 생기면서 특별법이 만들어졌거든. 14세부터는 자신의 등급보다 두 단계 낮은 던전에만 출입 가능하다는 제약 외에는 헌터로서는 성인과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 있어. 다시 말해 보호자 허락 없이 길드에 들어갈 수가 있지. 해연 길드에는 기숙사가 있으니 헌터 등록만 하면 바로 집 나와도 돼.”
미성년자의 던전 출입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분명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법이었지만, 던전이 세상에 막 나타났을 때에는 각성자의 수가 적었다. 그런 와중에 던전은 계속 터져 나가니 어린애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등급보다 두 단계 낮은 던전 출입만 가능하다는 제약을 두어 미성년자 헌터들의 사상률은 낮았다. 그 제약은 10회 이상 무사고 던전 클리어 또는 18세부터 풀어진다.
‘각성센터가 생긴 뒤로는 각성자가 넘쳐난다는 이유로 던전 출입 가능 연령을 점차적으로 높여 나가기 시작했었지.’
그렇게 하는 게 옳다. 하지만 아직은 특별법 개정 전이니 박예림이 독립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보호자가 없으면 불편한 점도 많을걸? 아무래도 아직 넌 어리고—”
“됐어요. 보호자 같은 거 없는 게 훨씬 나아. 이대로면 어차피 얼마 못 버티고 가출해 버릴걸요.”
박예림이 부루퉁하게 말했다. 가출이라, 했던가? 인터뷰에서 본 거 같기도 하고.
“삼촌이 잘 안 대해 줘?”
“학교 갈 때 빼고는 용돈 한 푼 없이 부려먹는다니까요. 내 핑계로 우리 부모님 재산 다 차지한 주제에! 저 식당도 우리 아파트 팔아서 낸 거예요. 그러면서 주위에는 오갈 데 없는 어린애 돌봐주는 맘씨 좋은 사람인척 해대고!”
버럭 소리치는 목소리 끝에 울음기가 섞여 있었다. 돈이 엮이면 혈육이고 뭐고 다 내다버리는 사람이 세상에는 널려 있다. 그래도 한 재산 받았으면 신경 좀 써 주지, 너무하네.
“원한다면 법적인 도움도 줄 수 있어.”
어지간한 길드라면 변호사도 여럿 두고 있었다. 해연 길드에도 당연히 있을 테고, 길드 소속 S급 각성자의 일이라면 두 발 벗고 나서 주겠지.
“아뇨. 그냥 두 번 다시 엮이고 싶지 않아요.”
“그래, 마음대로 해. 계속 여기 서서 이야기하는 것도 좀 그렇고, 이르긴 하지만 저녁 먹으러 갈까?”
스킬을 쓰려면 좀 더 대화를 나눠야 하니까.
“곱창… 은 안 좋아할 거고.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뇨, 좋아해요. 삼촌 가게 거는 맛없지만. 요 앞에 유명한 데 있으니까 따라와요. 좀 비싸도 괜찮죠?”
“당연히 괜찮아. 마음대로 먹어도 돼!”
나에게는 해연 길드 법인카드가 있다. A급 이상 발견하면 접대비로 쓰겠다며 가지고 왔지. 그러니 아주 기둥 뿌리를 뽑아도 돼,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