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이린 (1)
‘부작용 같은 게 있는 건가.’
아니면 단순히 내가 너무 나댄 탓에 동생의 병(?)이 도진 걸까. 후자면 다행이지만… 다행 맞나? 부작용인 편이 더 해결하기 쉬울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러지 말고 관광이나 하다가 집에 가자. 이 동네 아직 볼 거 많아.”
남의 카드로 흥청망청 놀 수 있는 기회다.
“응. 성현제부터 처리하고.”
“…야, 내가 실종자 되면 관광 같은 것도 못 하게 되잖아.”
“걱정 마. 유명우 헌터가 만들어 준 아이템 있잖아.”
유현이가 안경을 벗어 내게 씌워 주며 웃었다. 어… 그렇긴 하네. 비록 내 껍데기가 되어 줘야 할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겠지만. 여기서 실종된 걸로 하고 좀 더 여유롭고 편하게 사는 것도 괜찮을지도.
순간 혹하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도 벌여놓은 일이 몇인데 나 몰라라 할 순 없지. 적어도 던전 다 해결하기 전까지는 안 된다. 그리고, 되찾아 올 방법을 찾는 것도.
“그런데 너, 눈 말이야—”
– 정리 다 된 건가요?
노아가 이쪽으로 날아 내려오며 말했다. 동시에 유현이가 움직이려 하는 것이 느껴졌다. 야, 이 자식아!
“노아 씨!”
황급히 선생님 스킬을 노아에게 걸고 유현이의 감각을 일방적으로 전달했다.
퍼드득, 급한 날갯짓과 함께 화살처럼 날아간 불길이 허공을 가른다. 당황한 노아가 몸을 크게 돌려 하늘 위로 치솟았다.
“무슨 짓이야!”
“위협만 하려고 했어.”
“아니, 위협도 하면 안 되지!”
일단 공격 스킬 두 배부터 공유를 멈추려 했다. 그러자 메시지창이 떴다.
[상대방이 거부하였습니다.]…망했다. 유현이도 메시지를 봤는지 입술 끝을 올려 미소 짓는다.
“이런 류의 스킬은 보통 상대의 동의 없이 취소가 불가능해. 비행 스킬 같은 걸 걸어 놓고 허공에서 취소해 버릴 수도 있으니까.”
설명해 주는 목소리가 쓸데없이 다정했다. 나도 아는데, 스킬을 직접 거는 게 아니라 공유하는 것에도 해당되는 줄은 몰랐지.
노아 때는 그냥 잡고 있던 손 놓는 걸로 해제했고 성현제는… 매번 기절했었구나. 잠깐, 그럼 바바르 때 정신 잃은 뒤에도 계속 스킬 공유되고 있었던 건가?
…와 씨, 진짜 위험했을지도. 그런데도 얌전히 던전 나와 준 거 보면 그 인간 내 생각보다 좋은… 좋은… 아니 역시 이건 아니다.
– 유진 씨, 괜찮아요?!
– 삐약!
공중을 크게 한 바퀴 돈 용이 다시 이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오지 마세요!”
제 동생이 지금 살짝 정상이 아닌 듯합니다. 노아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내게 유현이가 뾰로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자꾸 형을 뺏기는 기분이 들어서 쓸쓸해.”
“뺏기긴 뭘 뺏겨. 내 동생은 한 명뿐이다만.”
“주위에 다른 친한 놈들 많잖아. 나한테는 형밖에 없는데.”
이건 좀 많이 문제 있는 소릴세.
“야, 그러지 말고 노아 씨랑 친하게 지내. 아니면 강소영 씨도 있잖아. 친구도 사귀고 연애도 하고. 비각성자나 등급 낮은 사람들이야 벽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 해도 등급 비슷한 사람들 많잖아.”
예림이를 본받아라.
“형은 모르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야.”
투덜거리면서 인벤토리에서 가느다란 검을 꺼내든다. 주로 쓰는 것이 아닌 A급 무기다. 그것을 저만치 땅을 향해 던졌다.
콱.
검이 바닥에 박혀들고 다시 대검, 단도, 대거에 시미터 등 다양한 무기가 서로 거리를 벌린 채 땅에 꽂혔다.
“…뭘 하려고?”
선생님 스킬이 머릿속까지 읽어내는 건 아니다. 몸이, 마력이 움직이는 걸 미리 읽어내는 것뿐이다. 낚싯대만 꺼내든 상태에서는 그걸로 낚시를 할 건지 사람을 팰 건지 알 수 없다.
“효율이 나빠서 잘 안 쓰는 스킬이야. 상급 무기들을 1회용으로 쓰는 건 좀 부담되니까.”
좀이 아니겠지.
“무슨 스킬인지 몰라도 쓰지 마. 아깝잖아. 그리고 이왕이면 말로 해결하자.”
“선생님 스킬 계속 쓸 거야? 거슬리는데.”
“말로 해결할 생각 있냐.”
“아니. 전혀. 스킬 거부당하면 많이 괴로워?”
“어, 많이.”
“미안해, 형.”
하하하. 빨간색 눈을 마주보고 웃으며 유현이에게 건 선생님 스킬을 거두었다. 동생 놈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금방 끝낼게.”
성현제 씨, 튀세요. 아무래도 동생 말리는 건 글러먹은 듯합니다. 댁 목숨은 아깝지 않지만 스킬은 아쉬우니.
그때 불도마뱀이 스르륵 유현이의 뒷목을 돌아 반대쪽 어깨로 이동했다. 평소와 달리 까만 두 눈이 나를 바라본다. 역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재차 바늘처럼 찔러왔다.
“이린.”
내 부름에 정령이 눈을 깜박였다. 별생각 없이, 반쯤은 습관적으로 떡잎 스킬을 썼다.
[최초의 불의 정령 ? 이린현재 스탯 등급 C
각성 가능 스탯 등급 F
최적화 초기 스킬
정령의 계약(L) 획득
계약자 ? 한유현]
처음 봤을 때는 마치 아이템창과도 같았던 상태창이 각성자나 몬스터의 것처럼 변했다. 그보다 L급 초기 스킬이라니.
정령의 계약에 계약자 한유현. 저 스킬이 유현이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건 틀림없었다. L급이나 되는 게 단순한 계약 스킬일 리는 없고, 대체 무슨 효과를 가진 스킬이냐.
“도마뱀 새끼, 너 이리 좀 와 봐라.”
“형?”
하여간 도마뱀이 문제야. 손을 뻗어 이린을 움켜쥐었다. 의외로 순순히 잡힌 정령이 머리를 갸웃 기울였다. 말을 못 하니 캐물을 수도 없고.
이걸 어쩌나 고민하다가 선생님 스킬을 썼다. 순간 속이 후끈 뜨거워지는 착각이 들었다.
겉모습은 손바닥 위에 올라가는 작은 도마뱀이었지만, 전해오는 감각은 끝 모를 불길이었다. 모래알 대신 새빨간 불꽃이 날름대는 사막 속에 떨어진 기분이다.
“너…….”
생각보다 장난이 아닌데. 조금 당황하면서도 스킬에 집중했다. 호수 던전에서 용인종을 파고들던 것처럼.
그리고 그때처럼.
“어?”
눈앞이 잠깐 암전되었다가, 밝아졌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낯선… 아니 낯익은 거실이었다. 던전이 나타나기 전, 유현이가 각성하기 전에 살던 집.
[안녕!]그곳 거실에서 고양이만큼 덩치가 커진 동글동글한 도마뱀이 내게 인사를 건네 왔다.
“…이린?”
[응, 맞아. 형, 이린이에요!]활기차게 대답한 불의 정령이 입을 크게 벌리며 웃음 지었다.
* * *
박예림은 고개를 들었다. 자신에게 적용되어 있던 스킬이 사라졌다. 살벌한 병아리반 선생님, 그 스킬의 주인처럼 시각 공유까지는 불가능했지만 스킬이 사라지기 직전, 한유현이 누군가를 위협할 목적으로 공격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다른 몬스터라도 나타났나?”
“그럼 위협을 하진 않았겠지.”
건물의 잔해 너머로 시선을 옮기며 성현제가 말했다. 그의 말대로 몬스터였다면 위협이고 뭐고 할 필요 없이 바로 소각해 버렸을 것이다. 그럼 대체 누굴 상대로 위협을 가한 걸까.
박예림은 얼른 공중으로 몸을 띄웠다.
“아저씨!”
물에 휩쓸린 것에 이어 크라켄이 잘 다져 놓기까지 해 원래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황폐한 땅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의식을 잃은 제 형을 안아들고 있는 한유현도.
“무슨 일이에요?!”
당황하며 둘에게로 다가가려는 박예림의 앞으로 금빛 용이 급하게 날아와 막았다.
– 잠깐만요!
– 삐약삐약!
“노아 오빠? 삐약아?”
– 해연 길드장이 좀 이상한 거 같습니다. …멀쩡한 거 같기도 한데, 한유진 씨 말도 잘 안 듣는 거 보면 이상한 거 같아요.
– 삐약!
“아저씨 말을 안 듣는다고요? 이상한 거 맞네요!”
– 그리고 세성 길드장을 처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건 멀쩡한 거 같은데.”
– 제게도 위협을 가해 오긴 했지만 이것도 평소와 다름이 없어서 헷갈립니다.
“앗, 노아 오빠한테 공격한 거였구나. 이상한 거 맞아요! 삐약이도 있고 뭣보다 아저씨 보는 눈앞인데!”
박예림은 한유현과 넉넉히 거리를 두고 아래로 내려섰다. 붉은색 두 눈이 그녀를 바라봐 왔다. 살의는 없이, 약간의 짜증만 깃든 시선이었지만 박예림은 본능적으로 더는 접근해선 안 된다고 판단 내렸다.
대신 노아에게 한유진이 왜 기절했냐고 물었다.
– 이유는 모르겠어요. 해연 길드장도 당황한 눈치였습니다.
“다행이다. 아저씨한테 손댈 정도로 맛 가진 않았나봐요.”
– 선생님 스킬 거부하려고 했······.
“와, 진짜 맛 갔네.”
– 저희를 입막음할 생각인데 유진 씨가 말리지도 못하게 되었으니 언제 공격해 올지 모릅니다. 조심하세요.
“입막음이요? 그게 쉬울 줄 아나.”
박예림은 얼음나무 창을 고쳐 쥐었다. 어느새 다가와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성현제가 눈썹을 약간 들어 올렸다.
“까다롭겠군.”
“그래도 이쪽은 셋이잖아요. 제가 발 묶어 둘 테니 뒤통수라도 후려치세요.”
자신 있는 박예림의 말에 성현제가 냉정히 대답했다.
“상황이 간단하지가 않아, 꼬마 아가씨. 크라켄 처리를 위해 한유현은 공격 스킬 효과 두 배 적용을 받은 상태지. 그건 한유진을 떼어 놓기 전까지는 유지가 될 거라네. 동시에 피해 무효화와 독 저항 효과를 받을 수 있는 아이템도 가지고 있는 셈이야.”
“…사기다.”
박예림은 순식간에 불타 사라진 크라켄을 떠올렸다. 변변한 화염 저항도 없는 자신은 스치기만 해도 중상을 입지 않을까.
하지만 물러설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되레 더욱 의욕을 불태우며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노아 오빠, 저 마력 스탯 대여 좀!”
이어 그림자 없는 낮이 한유현을 향해 펼쳐졌다. 그와 거의 동시에,
화르륵—
한유현의 주위로 불길이 둥근 장벽처럼 일어났다. 공기 중의 수분까지 바싹 말리는 열기에 박예림이 혀끝을 찼다.
“그림자에 닿기는커녕 근처도 못 가서 증발해 버리겠네! 우리 길드장님 쓸어버릴 자신 있는데, 도와주실래요?”
“빠져 달라 한다면 오히려 섭섭하지.”
흑적색의 코트, 실레키아의 날개가 연미복 위로 내리덮어졌다. 사슬이 길게 몸을 흔들고 성현제의 손가락 사이에 금색 깃털이 들렸다. 황금 그리폰의 깃털. S급 황금 그리폰 사냥 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선생님 스킬이 아쉽군. 알아서 타이밍 잘 잡도록. 참고로 자갈은 잘 타지 않아.”
“네!”
알아들었는지 눈이 반짝거린다. 성현제는 망설임 없이 불길이 휘감아 도는 영역으로 뛰어들었다. S급 화염 저항이라 해도 완전히 무효화시키지 못하는 열기가 덮쳐들기 직전, 그의 손끝에서 깃털이 쏘아졌다.
그리폰의 깃털이 바람을 끌어들인다. 휘우웅, 공기가 요동치는 소리와 함께 커튼을 열어젖히듯 불길이 거세게 양옆으로 밀려나갔다. 동시에,
콰르릉!
벼락이 내려쳤다. 허나 전격은 목표물에 닿지 못하고 바닥에 꽂힌 단검에 이끌려 그 주위만 할퀴었다. 흙과 돌이 튀어 오르고, 직후 단검이 폭발했다. 원래는 사방으로 비산해야 할 파편이 화살처럼 성현제를 향해 쏘아진다.
카가각—
휘둘러진 사슬이 파편을 막아 냈으나 쏘아져오는 방향을 알고서도 다 처리하는 건 불가능했다. 성현제의 손등과 귀 끝에 붉은 선이 그어졌다. 어깨에 반쯤 박혀든 것도 하나 있었다. A급 무기를 희생시킨 공격에, 두 배 스킬 효과까지 더해졌다. S급 헌터라 해도 보통은 고슴도치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한유현은 공격을 잇기 위해 장검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어느새?”
발이 무겁다. 그림자 없는 낮에 걸려든 것이었다.
성현제가 그리폰 깃털로 불길을 밀어내기 무섭게 박예림이 창백한 비를 쓴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불에 닿지 않아도 자신의 그림자에 훨씬 못 미친 채 죄다 녹아 버렸는데.
“얼음 화살 속에 돌멩이 한두 개쯤 넣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
뒤로 물러서며 파편을 뽑아낸 성현제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얼음은 녹아도 그 속의 자갈은 운동성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목표 지정이 가능한 스킬이 아닌, 단순히 돌을 던진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중 한두 개는 한유현의 그림자에 닿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벼락이 바닥을 후벼 파며 돌을 튕겨내 눈을 속인 사이에.
대상의 등급이 높은 만큼 움직임을 묶어 둔다고 해도 그저 속도가 좀 느려지는 정도일 뿐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도 같은 S급을 상대하기에는 큰 페널티다.
“어차피 많이 움직일 생각은 없었어.”
정신을 잃은 형을 내려다보며 한유현이 말했다. 잠시 밀려났던 불길이 그리폰의 깃털을 삼키며 새빨갛게 흔들린다.
사방에 꽂힌 무기들이 희미한 진동음을 내었다. 붉게 달아오른 눈이 희미한 금빛을 띤 눈을 마주보았다.
“제일 거슬리는 벌레를 찢어 놓을 준비는 끝났으니까.”
“저런, 도련님 질투심이 생각보다 강하군.”
“도둑에게 질투를 왜 하지.”
분노하고 처단할 뿐이다. 그때.
그그그긍—
땅이 흔들렸다. 이어 바닥이 붕괴하는 소리와 함께.
콰과과과—!
여기저기서 물이 치솟기 시작했다. 지면을 뚫고 올라온 바닷물이 수 마리의 용처럼 꿈틀거린다. 한유현도 성현제도 무심코 밤하늘을 향해 고개 쳐든 수룡들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동시에 박예림이 소리쳤다.
“한유현, 머리 좀 식혀!”
상대적으로 초라한 불길을 향해, 거대한 물기둥이 내리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