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협회장은 (3)
감사합니다.
그 한마디가 튀어나올 줄은 아무도 몰랐다는 듯 주위가 술렁였다. 당연하다. 공식적으로 나는 송태원의 실책에 의해 납치당하게 된 것이니까.
여기 모인 사람들이 원하던 그림은 내가 화를 내고 송태원이 머리를 숙이는 것이었겠지.
S급 헌터가 피해자의 책망 속에 굽히는 모습은 좋은 볼거리가 되어 줄 것이고, 그로 인해 협회를 향한 국민의 분노도 조금쯤 가라앉았을 터다. 내가 멱살이라도 잡아 주면 신나게 플래시를 터뜨려대지 않을까.
“정말로,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하지만 그런 뻔한 스토리는, 내가 성현제는 아니지만, 역시 재미없지.
송태원은 아직 내 의도가 짐작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나 자신에게, 정확히는 협회에게 해가 될 꿍꿍이란 것은 눈치챘는지 나를 향한 시선의 온도가 점점 낮아진다.
길게 끌면 안 되겠네.
“저를 구하기 위해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조차 감수하시다니!”
“…예?”
“내부고발자라는 이유로 송실장님에게 죄를 전부—”
“형, 여기서 그런 말 하면 안 돼.”
유현이가 뒤에서 나를 감싸듯 붙잡았다. 도중에 말이 끊겼지만 이해하긴 어렵지 않을 터였다. 내부고발자에 오명, 죄. 그리고 나를 구했다.
헌터협회 내에 납치범들과 협력한 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체계적인 수사가 필요하다며 미적대고 있지만 알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런 상황에서 납치 피해자가 송태원을 오명을 쓴 내부고발자라 칭했다. 그리고 현재 가장 큰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자는 다름 아닌 송태원이었다.
희생양으로 내밀어져 몰매 맞고 있던 사람이 사실은 정의의 편이었답니다. 짜잔.
“한유진 씨, 지금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송태원도, 협회 사람들도 당황한 표정이다. 송태원이 한 발 성큼 다가서는 것에 절로 몸이 떨렸다. 덕분에 겁먹고 놀란 얼굴을 만들어 내기란 무척이나 쉬웠다.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억울하잖아요…….”
“그만해, 형.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유현이가 나를 달래었다. 이어 협회 측 사람들이 급히 변명을 늘어놓았다.
“한유진 헌터의 오해입니다.”
“아직 납치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약간의 착란이 있었던 듯합니다.”
그들의 말을 굳이 막아 반박하진 않았다. 그냥 억울한 눈빛으로 쳐다만 보았다. 어차피 사람들은 내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일 테니까.
기관의 공식 발표와 말하면 안 되는데, 하고 튀어나와 버린 칙칙한 비밀. 대중의 관심과 무게가 어느 쪽으로 쏠리게 될지는 불 보듯 뻔했다. 별거 아닌 이야기에도 말할 수 없는 비밀 꼬리표가 붙으면 귀가 쫑긋해지건만, 헌터협회의 비리라니. 말라비틀어진 나무토막쯤 되지 않고서야 낚이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이제 그만 가자, 형.”
“하지만… 송태원 실장님이…….”
“괜찮을 거야. 나도 어떻게든 손써 볼게.”
동생의 다정한 목소리 속에서 송태원을 바라보았다. 묵묵하게 마주쳐오는 눈빛이 오싹할 정도로 차갑다. 저 눈동자 너머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처음 만난 날처럼 내 목을 조르고 싶으려나.
그때, 남자의 다물린 입매가 변했다. 아주 희미하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미소였다. 날이 선 송곳니와 같은.
‘입마개 하고 오신 줄 알았더니.’
이를 드러내시네. 순순히 꼬리 내린다면 오히려 실망이긴 하지. 온순한 척 몸을 옹그리다 못해 무는 것도 으르렁거리는 것도 잊어버렸다면, 눈독 들일 이유가 있나.
애초에 쉬이 이빨과 발톱을 뽑아 버릴 수 있었더라면 뒤틀어질 일도 없었겠지.
공항을 빠져나가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탔다. 휴대폰을 받아 들어 석시명에게 연락했다.
“최대한 자극적으로 기사 뿌려 주세요. 현대판 노예매매, 경매 시작가 10억 달러, 각성자를 수집하는 권력층 등등. 사실 기반에 적당한 과장 섞어서 뽑아 주십시오. 최소 일주일은 어딜 가나 제 이야기가 나오도록요.”
[어려운 일은 아니나 괜찮으시겠습니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건 달갑지 않다 하시지 않았습니까.]자기가 밑밥 다 깔아 놓고 뭘 이제 와서 걱정하는 척이냐. 옆에 유현이 있다는 거 알고 저러는 건가. 음흉한 아저씨 같으니라고.
“살다 보면 싫은 일도 가끔은 해야 하는 법이니까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참, 덤으로 해연 이미지 올리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당연히 기회를 놓칠 순 없지요. 맡겨 두십시오.]“그리고 조사해야 할 것도 몇 가지 있는데… 이건 직접 얼굴 뵙고 이야기하지요.”
통화가 끝났다. 옆자리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던 유현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괜찮겠어? 한번 말이 떠돌기 시작하면 깨끗이 지우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텐데.”
“그걸 아는 놈이 일부러 평판 떨어뜨리고 다녔냐.”
“난 그런 거 신경 안 써.”
“나도 마찬가지야.”
검색 안하면 그만이다. 물론 당분간은 살펴봐야 하지만.
그리고, 남의 멱살 잡고 끌어당기려면 나도 손목 잡혀 부러질 각오 정도는 해야지.
그새 올라온 공항 동영상을 확인해 보았다. 와, 나 진짜 불쌍하게 나왔네. 심지어 앞뒤로 키 크고 덩치 좋은 놈들이 서 있으니 더더욱 작고 말라 보인다. 민망할 정도구만.
‘효과는 좋겠네.’
대중에게, 그리고 송태원 씨. 당신이 보호해야 할 이상적인 일반인의 모습이 아닙니까. 얌전히 살고 싶었지만 각성자들에게 휘말려 납치까지 당한 무력한 피해자. 속사정은 집어치우고 겉만 봐 주세요.
* * *
그날 저녁, 헌터협회에서 낮에 불거진 의혹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내부고발에 대한 것은 일부 사실이며, 정확히는 협회장과 협회 인사 몇이 주축이 되어 송태원 실장을 통해 한유진 납치 사건에 도움을 주었다고. 덧붙여 송태원이 책임을 지고 나선 것은 원활한 수사를 위한 눈가리개였다고 변명하였다.
그 자리에는 송태원도 나와 있었으며 그는 차분히 긍정을 표했다. 한유진 헌터가 오해할 만하였다고.
‘정말 개 같군.’
욕이 아니다. 기껏 공을 건네줬더니 주인에게 가져다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또 꼬리는 치지 않고 있겠지. 단순한 의무일 뿐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닐 테니까.
그래도 일단 송태원을 향한 화살들은 치워냈고.
“거품 꺼지기 전에 빠르게 정리하죠.”
“심하게 상한 부분만 적당히 도려낼 줄 알았습니다만.”
나와 같은 화면을 보고 있던 석시명이 말했다.
“판 깔아 놓은 게 누구신데 이제 와서 약한 소리를 하십니까. 이번 기회에 정리해야지 저 두 번은 이 짓 못 해요.”
할 능력도 없다.
* * *
다음 날부터 온갖 매체에서 내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아예 일생을 죄다 조명하려는 듯 각성 전은 물론이요 어릴 적까지 끄집어내졌다. 정말이지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애가 애를 키우는데 어떻게 저러나, 참 타고났다 싶을 정도로 잘 챙기고 다녔죠.]티브이 화면 속에서 나를 안다는 사람이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내 기억에는 없는데 대체 누구신지. 조실부모하고 훗날 S급 헌터로 성장하는 동생을 키웠다는 스토리까지 아름답게 꾸며져 더해지자, 내 인지도는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다. 여기에 유현이의 고생담도 슬쩍 끼워졌다.
S급으로 각성했지만, 나이가 어린 탓에 여기저기서 노려대어 어쩔 수 없이 형을 멀리했다. 키워 준 부모나 다름없는 하나뿐인 혈육을 억지로 모른 척한 채 길드를 키워간 젊다 못해 어린 헌터. 3년이란 시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거대 길드 중 하나로까지 성장하게 되고…….
젠장, 내 동생 너무 고생한 거 아니냐. 근원인지 뭔지는 뭐가 그리 바쁘다고 애 다 크기도 전에 각성하게 만들고. 미성년자잖아 개새끼야. 어린애 괴롭힌 새끼들은 다 죽어 마땅하다.
그리고 그 사이로.
[던전 아이템 밀수출! S급 장비도 포함돼.]속보가 떴다. 헌터협회 간부 중 하나가 던전 아이템을 해외로 빼돌린 사실이 발각된 것이었다.
던전 아이템은, 특히 상급 장비는 개인이 마음대로 국외 유출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막고 있었다. 던전 관리를 위해, 즉 국가 안보를 위해 충분한 장비의 보유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외국인도 정식 경매를 통해 상급 아이템 구매가 가능은 하였지만, 국내 헌터와 달리 수수료와 세금이 무겁게 책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S급 장비의 경우 무조건 국내 헌터에게 구매 우선권이 주어졌다. 때문에 실질적으로 S급 장비의 국외 유출은 없다시피 하였다.
그런데 협회의 간부가 그 귀한 S급 장비를 빼돌려 해외에 팔아먹었다. 안 그래도 협회 비리로 한창 난리인 이때에. 각성자 납치에 이은 아이템 유출 건으로 오프라인 온라인 할 거 없이 불에 기름 끼얹은 듯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이 년 후에나 들통나는 일이지만.’
제보자 한유진, 해연과 세성 협동 수색. 이미 다 드러난 일을 되짚어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름과 인상착의를 기억해 내는 덴 조금 애먹었지만.
이 년 후 아이템 유출 사건에 연관된 사람은 방송을 탄 저 반대머리 아저씨 한 명만이 아니었다. 다수가 엮여 있었고 발칵 뒤집혔던 만큼 나도 사건 내용을 상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것뿐만이 아니지.’
아이템만 해 잡수셨을까. 던전 거래 관련 비리에 하급 헌터 착취에 불법 던전 부산물 생산 등등. 체계 아직 덜 잡혔고 사각지대 많은 데다가 돈은 엄청 되지. 덕분에 짧은 시간 안에 구린 짓 펑펑 터져 나왔었다.
현재 시점에서 덜미 잡을 일은 그중 채 반도 안 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물러날 준비를 하세요. 마침 핑계도 좋지 않습니까.”
연락받고 몸소 찾아온 협회 간부가 딱딱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 정도 시선이야 공포 저항 꺼도 간지럽지도 않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터뜨리고 싶은데, 원활한 인수인계를 위해서는 이사님께서 직접 후임자를 밀어주는 게 여러모로 유리할 테니까요.”
“고작해야 벌금으로 끝날 일이네.”
“평소라면 그렇겠죠. 하지만 지금은 헌터협회와 관련되었다 하면 제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몇 배나 부풀어 오르는 물결이 아닙니까.”
특히 협회 관련자의 비리라면 말이다. 평소에는 소소히 기사 몇 개 뜨고 끝날 일이 지금은 늘씬하게 두들겨 맞고 옷 벗어야 할 분위기다. 장작 던져 넣기 무섭게 손에 손에 들린 횃불들이 신나게 화형식 거행하겠지.
본보기용으로 던진 제물도 열심히 불타다 못해 곧 재만 남기 직전이다.
“…협회에 자기 사람들을 밀어 넣고 휘두르기라도 할 작정인가.”
“천만에요. 제 사람은 없습니다.”
명우 표 안경으로 외모를 바꾼 석시명이 예비명단 몇을 보여 주며 입을 열었다.
“헌터협회 초기 임원들 중 일부입니다. 현재의 임원들에 비해 업무 처리 능력이 월등한 분들이시죠. 은퇴하셔도 뒷일 걱정은 조금도 하실 필요 없을 겁니다.”
대놓고 비교하는 말에 자존심 상하긴 하는지 이사님의 인상이 잔뜩 찌푸려졌다. 그 외에도 미래에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 명단도 있었다.
전부 다 갈아치우는 건 무리라 해도, 유능한 사람들이 늘어나면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적어도 지금보다는 낫겠지.
“이런 식으로 협박해 사람을 갈아치운 사실이 들통나면—”
“전 아~ 무런 문제 없겠죠. 뭐 어쩌겠어요. 공직자도 아니고 완전독점 개인사업 하는데. 기껏해야 벌금이나 물어 주려나.”
국가도 국민도 내 편이다. 욕 아주 안 먹지는 않겠지만 일부겠지. 게다가 내 가치를 생각하면 설사 살인을 저지른다더라도 자택구금에 몬스터 열심히 키우십시오, 땅땅 하고 끝날 것이다.
불공평한 일이지만 대체할 수 없는 존재이니 어쩌겠냐. 이미 유현이가 피스 덕분에 최단기 S급 던전 공략까지 해 버린 마당에 날 어떻게 버리겠어.
“그러니 부디 빠른 시일 내에 현명한 판단을 내려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깔끔한 이미지로 깔끔하게 떠나야 다른 도전도 해 보시죠.”
왜, 흔히들 하시는 국회의원이라든가. 그러니 눈감아 준달 때 받아먹어라.
기한을 통보받은 이사님께서는 씹어뱉듯 곧 연락하겠노라 말하곤 자리를 떠나갔다. 자, 이제 몇 명 남았지.
– 꺙!
피스가 폴짝 뛰어 공중에 던져진 공을 물었다. 삐약이도 얼른 쫓아갔으나 바닥에서 파닥거리기만 할 뿐, 공 근처에도 가질 못했다.
– 삐익, 쉭!
천장에 덩굴처럼 늘어뜨려 놓은 밧줄에 매달린 코메트가 자기에게도 던져달라는 듯 날개를 파닥거렸다. 위를 향해 공을 던졌지만,
텁!
피스가 재빠르게 낚아채 버렸다.
– 시이잇!
“피스야, 동생한테 양보도 해 줘야지.”
– 갸르릉.
피스가 모르는 척 내 다리에 몸을 문질러 비볐다. 꽤 오래 떨어져 있어서인가 어리광이 더 는 거 같다. 피스를 쓰다듬어 주며 코메트에게 다시 슬쩍 작은 공을 던져 주었다. 강소영이 선물해 준 금색 펄이 들어간 공을 새끼용이 얼른 붙잡아 안은 채 파라라락 공중을 어지럽게 맴돈다. 삐약이가 그것을 보고 날개를 파닥거렸다.
– 삐약삐약!
“비행 발찌 달아 줄까?”
– 삐약!
전에 명우에게 부탁했던 삐약이용 비행 아이템을 꺼내었다. 다리에 착용하면 날 수 있는 아이템이긴 한데.
– 삑삑! 삐약!
삐약이가 마치 동그랗고 하얀 풍선처럼 동동 떠올랐다. 안전을 생각해서 느린 속도에 부드러운 비행 옵션을 넣었더니 여느 새처럼 멋지게 난다기보단 그냥 떠다녔다. 둥실둥실.
– 삐약!
삐약이는 만족하는 모양이지만. 동동 공중을 배회하더니 내 머리 위로 사뿐히 내려앉는다.
‘리에트도 곧 나올 테니 한 마리 더 늘어나겠네.’
리에트는 범죄 행위의 대가로 협회의 던전 공략을 도와주는 중이었다. 그녀가 S급 던전에 대신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송태원은 납치 사건에 개입하지 못했겠지. 그편이 내겐 더 손쉬웠으려나.
철컥.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명우는 아닐 테고.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저녁은 먹었어?”
유현이겠지 싶어 현관 쪽으로 향하는데 피스가 풀쩍 내 앞을 막아섰다. 그리곤 아성체 크기로 변한다.
– 그르르.
유현이가 아니구나. 얼른 공포 저항부터 켜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이내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름 아닌 송태원이었다. 열쇠는 어디서 구한 거지. 한신인가.
“연락도 없이 찾아오시다니, 조금 놀랍네요.”
“한유진 씨께서 헤집고 다니신 덕분입니다.”
피로감 섞인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협회의 높으신 분들이 징징대기라도 했나 보군. 웃음이 조금 새어 나왔다.
“죄송하지만 전 세성 길드장과 달리 무릎 꿇는 정도로는 넘어갈 생각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