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3
13화 두 번째 S급 (2)
– 치이이익.
꽃이 핀 듯 화려한 마블링의 살치살이 맛있는 소리를 내며 불판 위에 내려앉았다. 그 옆으로는 한우곱창이 지글지글 기름기 가득한 곱을 부풀린다.
역시 세상은 살 만해.
여기에 소주든 맥주든 한잔했으면 좋겠지만 지금 상황에는 좀 그렇겠지.
“술 마셔도 돼요.”
“…응?”
“엄청 마시고 싶은 얼굴인데. 술 취한 사람 맨날 봤으니 신경 쓸 거 없어요.”
…내 표정이 너무 뻔한 거야, 아님 쟤가 속마음을 읽어내는 거야?
“계약서 오갈 상황에 취할 수는 없지. 게다가 눈앞에 앉은 상대가 영 만만치가 않아서 말이야. 취했다간 다 털릴까 봐 겁나서라도 못 마시겠다.”
“내가 만만찮은 게 아니라 아저씨가 만만한 거 아니에요?”
박예림이 좋다고 웃었다. 꿀꿀했던 기분이 완전히 풀린 모양이었다.
대화하기 편하도록 일부러 방으로 들어왔기에 근처에 다른 손님들은 없었다. 애초에 시간이 어중간해 손님 자체가 적었지만.
김성한은 같이 식사하자는 제안을 거절하고 식당 안을 살펴본 뒤 밖에서 기다리겠다며 나가 버렸다. 저 인간 S급 만드는 건 그냥 포기할까 봐. 영 가까워지지를 않네.
“그런데 진짜 우리 부모님이랑 아는 사이예요?”
고기를 한 점 집어 들며 박예림이 물었다.
“모르는 사이면 내가 어떻게 널 딱 집어 찾아왔겠냐. 잘 아는 건 아니고, 어릴 때 신세진 적이 있어.”
“어릴 때요?”
“응. 나도 부모님을 일찍 여의었거든. 어린 동생 데리고 먹고사느라 고생 많이 했지.”
내 사연 너무 팔아서 너덜너덜해지겠다. 하지만 한국인의 정에 제일 잘 먹히는 게 그거잖아, 조실부모하여 의지할 곳 하나 없이 가여운 처지로 이하 생략. 부모 잃은 동정표면 대통령까지도 해먹는다.
“그때 너희 부모님께서 작게나마 도움을 주셨어. 벌써 십 년쯤 전이니까 넌 기억 못 할 거다.”
물론 나도 기억 못 하고. 술 대신 사이다를 잔에 따르며 말을 이었다.
“각성하기 전까지는 나 살기도 바빠서 찾아가 볼 생각을 미처 못 했어. S급 각성자 동생이 있긴 했지만 최근까지 사이가 별로 안 좋았거든.”
“진짜요? 그러고 보니 해연 길드장 가족 이야기는 못 들어 본 거 같아요.”
“바로 며칠 전에 화해했어. 각성도 하고 쓸 만한 스킬도 생기고 동생이랑 화해도 하고. 살 만해지니까 그제야 옛 생각이 나더라. 좀 이기적이지?”
“이기적이긴요. 내 삼촌을 봐요!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들도 널렸는데 뒤늦게라도 떠올려 주는 게 어디예요.”
박예림이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그 볼은 이내 야무지게 싼 고기쌈으로 채워졌다. 잘 먹네.
“야, 그거 땡초다.”
“저 매운 거 잘 먹어요.”
그러면서 생마늘까지 쌈장에 푹푹 찍어 먹는다. 쌈에 마늘이 몇 개나 들어가는 거야. 난 구운 거 아니면 속 쓰려서 못 먹겠던데.
“그래서 바로 수소문해 보고 널 찾아낸 거야. 처음에는 그냥 도와줄 일이 없나 하고 온 거였는데, 네 각성자 소질이 무척이나 뛰어나 보이더라고.”
“으에으어.”
“삼키고 말해.”
삼촌이라는 새끼가 조카를 굶기기라도 했나.
“그럼 이제 아저씨랑 계약만 하면 돼요?”
“응. 각성은 상황에 따라 바로 될 수도 있고 며칠 걸릴 수도 있어. 오래는 안 걸릴 거야.”
“바로 되면 좋겠는데. 집에 들어가면 난리 날 거라고요.”
“반쯤은 운이긴 하지만 노력은 해 보마.”
어떻게 키워드를 말하지. 부모님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 볼까.
일단 인벤토리에서 계약서를 꺼내 들었다. 허공에서 양피지가 튀어나오는 것에 박예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인벤토리죠? 실제로는 처음 봐요.”
“너도 곧 가지게 될 거다. 던전 관련 물건만 넣을 수 있지만 편하지.”
평범한 물건은 넣을 수 없다. 던전에서 나왔거나 재료를 던전 부산물로만 써서 만들어진 것만이 인벤토리에 들어간다.
“계약 조건은 세 가지야. 내 스킬을 타인에게 말하지 않을 것. 향후 1년간 내 호위를 맡을 것. 해연 길드와 계약할 것.”
“아저씨의 호위요?”
“응. 난 F급밖에 안 되니까 지켜 줄 사람이 필요하거든. 그래서 내 스킬로 적당한 사람을 찾고 있던 차에 네가 눈에 들어온 거지.”
“에이, 그래도 그렇지 열다섯 살짜리한테 보호받으려 하다니. 안 쪽팔려요?”
“열 살짜리라도 스탯 등급만 높으면 나보다 강하니 안 쪽팔려.”
이제 와서 뭘 새삼 쪽팔리겠냐. 대충 대꾸하며 펜을 꺼내들었다. 이 펜도 안의 잉크도 던전 부산물 제작이다. 계약서를 펼쳐 조건을 적어 넣는데 박예림이 목을 쭉 빼 들여다봤다.
“계약을 어길 시 1년간 전체 스탯 20% 하락? 고작 이런 게 페널티예요? 어겨도 별문제 없겠는데.”
“20% 하락이면 클리어 가능한 던전 등급이 한 단계는 낮아져. 버는 돈 차이가 엄청나다고.”
“그래도 1년만 쉬면 되잖아요.”
“그건 그렇지. 하지만 이건 헌터협회 보증 계약서거든. 계약을 어기면 신용도가 바닥 치게 되는 거지. 정도에 따라 헌터 자격증이 정지되기도 하고.”
그래서 뒷거래가 아니고서야 계약서 자체 페널티가 강한 불법 계약서보다 헌터협회 보증 계약서가 훨씬 낫다.
“각성자 계약서는 막 무시무시한 벌칙도 있고 그런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있긴 해. 불법이지만.”
“스탯은 각성자만 가지고 있는 건데 지금 계약해도 효과 있는 거예요?”
“상관없어. 이건 저주 스킬을 응용한 거고 비각성자도 스킬 효과를 받으니까 신체 능력이 20% 하락할걸?”
“저주라니, 조금 소름이네요.”
내 조건을 다 적고 사인을 했다. 지켜보고 있던 박예림이 얼른 펜 달라고 손짓한다.
“그냥 이름 적으면 되죠?”
펜과 계약서를 받아들고는 대뜸 서명하려는 것을,
“어?”
계약서를 홱 빼앗아 버렸다. 박예림이 왜 그러냐는 듯 나를 쳐다봐온다.
“역시 어린애는 어린애구나.”
“아니, 왜요?”
토라진 듯 뾰족한 목소리가 물어왔다. 나는 그녀의 눈앞에 계약서를 흔들었다.
“서명하기 전에 제대로 확인을 해야지.”
“별문제 없잖아요.”
별문제 없기는.
“네 조건이 빠졌잖아.”
“…어, 진짜네.”
박예림이 멍하게 중얼거렸다. 지금 이 계약서는 내 쪽의 일방적인 요구만 담긴 계약서다. 민망했는지 그녀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깜박할 수도 있죠!”
“물론 깜박 잊을 수는 있지. 하지만 그런 변명으로 얼버무리는 건 계약서 앞에선 통하지 않아. 각성자가, 헌터가 된다는 것은 그런 거야. 헌터 일에 한해서는 성인과 같은 권리를 가질 수 있지만 동시에 성인과 같은 의무도 짊어져야 하지.”
나는 펜을 돌려받아 계약서에 박예림의 각성과 후원에 대한 조건을 추가했다.
“그리고 이런 계약도 보통은 조율을 하는 거다. 나는 이미 네가 높은 등급의 각성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털어놨어. 예상 각성 등급 B이상. 이건 네게 무척이나 유리한 정보야. 어딜 가든 괜찮은 대접을 받을 수 있고 혹 A이상이 된다면 3대 길드도 프리패스지.”
펜 끝으로 해연 길드와 계약 조건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계약 조건도 협상하지 않고 길드에 들어가겠다고 서명해 버리는 건, 바보짓밖에 더 되겠어? 당장 각성시켜 주겠다는 말에 홀려 받아들이기엔 너무 불리한 조건이잖아.”
줄을 죽죽 그어 해연 길드와 계약을 조건에 따라 우선적으로 계약—계약 조건은 헌터 업계 평균 이상, 으로 수정했다.
“자. 이 정도면 그럭저럭 공평한 계약서일 거다.”
박예림은 토라진 건지 놀란 건지 헷갈리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잠시 말이 없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고요.”
화났나?
“잔소리처럼 들렸을지도 모르겠지만, 너는 아직 어른의 도움이 필요한 나이라는 뜻이야. 네가 각성하고 나면 접근해 오는 사람들이 분명 많을 거다. B등급만 되어도 두 단계 낮은 던전이 D급이고 열 번만 무사 클리어하면 B급 던전에도 들어갈 수 있으니까.”
연 수입 수십억 원의 고아 중학생. 이 얼마나 뜯어먹기 좋은 수식어란 말인가. 심지어 박예림은 S급이다. 밝혀지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까지 떠들썩해질 터였다.
“그중에서는 지금의 나처럼 좋은 사람인 척 접근해서 뜯어먹으려 드는 놈들도 많겠지. 방금 당했다시피 너는 쉽게 속아 넘어갈 테고.”
“…….”
박예림의 시선이 계약서에 못 박혔다. 아직 표정이 굳어 있지만 화났다기보단 골똘히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하지만 삼촌은 싫어요.”
“그래, 알아. 그런 인간은 보호자로 두길 권할 만하지도 않고. 돈 빼돌려 튀지나 않으면 다행일걸.”
“백 퍼센트 들고 달아날걸요.”
삼촌 욕이 나오자 굳은 분위기가 약간 풀렸다.
“만약 네가 괜찮다면, 내가 그 역할을 해주고 싶어.”
“…후원해 준다는 게 그거 아니에요?”
“다르지. 단순한 후원자는 헌터로서의 거래까지 관여할 수는 없어. 하지만 후견인이 있다면 미성년자 헌터가 혼자 불리한 계약을 해버렸다 해도 무효 요구가 가능해. 특별법이 있어도 미성년자는 미성년자니까. 보통 부모들이 많이 맡지.”
헌터는 혈육이라고 해서 바로 후견인이 되지는 못한다. 무조건 해당 헌터가 직접 지정해야만 했다.
“그러니까… 내가 부모님 역할을, 대신할까 싶어서.”
일부러 민망한 척 헛기침을 했다. 실제로 좀 뻘쭘하기는 하고. 회귀 전이라 해도 열다섯 살짜리 딸이 있을 나이는 아닌데. 조카뻘쯤은 되겠지만.
“부, 부모님이요?”
“어, 어… 음. 물론 여러모로 어울리지도 않고 부족한 점도 많겠지만.”
“…왜 그렇게까지 해주시려는 건데요? 우리 부모님한테 신세 졌다고 해도 그냥 작은 도움이었다면서요.”
“나도 힘들었으니까.”
거짓이기도 하고 진심이기도 했다.
“어쩌면 단순한 대리만족일지도 몰라. 그때 나한테도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더라면, 하는. 뭐, 난 그리 든든해 보이진 않겠지만.”
“아저씨도 충분히 든든할 거 같아요.”
“정말?”
“…또 물어볼 필요는 없지 않아요?”
빈말을 두 번씩이나 해주고 싶진 않은 모양이었다. 한 번으로 만족 못 한 내가 잘못했네.
“아무튼 알겠어요.”
박예림이 쑥스러워하며 손바닥으로 뺨을 문질렀다.
“음,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그래, 나도. 그러니까…….”
그냥 술 마실걸. 뒤늦은 후회가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맨정신으로 말하는 수밖에. 죽을 듯이 어색해하는 편이 자연스럽기도 하고.
“말은 부모 대신이라고 했다만 당연히 내가 한참 모자라겠지. 하지만 네 부모님께서 너를 사랑하셨던 만큼, 은 아니고, 음, 뭐라고 해야 하지. …예림아, 사랑한다?”
“악! 뭐예요, 그게! 완전 이상해!”
빽 소리친 박예림이 얼굴을 붉히며 닭살 돋는다는 듯 팔을 비볐다. 내 얼굴도 틀림없이 빨개졌을 것이다. 맨정신으로 헛소리하기 더럽게 힘드네.
그래도 저 정도 반응이면.
[비각성자 ‘박예림’이 키워드에 감화되었습니다!]역시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