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눈이 내리는 (2)
눈이 내리는 나무. 다섯 번째 근원.
유현이의 시체를 가져간 별을 헤아리는 새가 머무는 곳.
하나 하얀 깃털을 지닌 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눈에 들어온 것은, 설원 위에 조용히 누워 있는 내 동생이었다.
얼어붙은 산맥처럼 어마어마한 굵기의 나무뿌리 사이에, 발견해 낸 것이 신기할 정도로 작게만 느껴지는 인간의 몸. 꿈이기에 이렇게나 뚜렷이 보이는 것이겠지.
‘…춥지 않을까.’
가장 먼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죽은 사람이 추위 따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꿈이니까. 꿈속에서는 살아 있을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얼굴도, 약간 창백할 뿐이지 그저 잠에 빠진 듯했다. 상처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몸을 얕게 감싸고 있는 눈송이들이 티 없이 희다.
그러니까 깨우면 눈을 뜨지 않을까.
‘유현아.’
하지만 다가갈 수 없었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전형적인 악몽처럼 굴 필요는 없을 텐데. 아무것도 못 한 채 바라만 보는 처지는 현실에서도 충분히 많이 겪었다. 그러니까 꿈속에서라도 좀 움직일 수 있게 해 주지.
언제나 별로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았는데.
멍청하게 눈만 깜박이고 있자니 속이 다 아파 왔다. 눈은 끊임없이 내리고 있었다. 영원할 것처럼 느릿느릿 허공을 헤엄친다.
그 사이로 유독 커다란 눈송이가 둥실둥실 떠다닌다.
– 삐약!
…어라.
– 삐약삐약!
눈송이가 아니라… 삐약이네. 조그만 날개를 나름 열심히 파닥거리며 두둥실 이쪽을 향해 다가온다. 그러고 보니 쟤도 하얀 새긴 하지.
하얀 눈 사이를 하얀 새가 날고 있다.
– 삐약!
‘삐약아.’
눈앞까지 다가온 삐약이가 삑삑 울었다. 내가 꼼짝을 못 해서 안아 줄 수가 없구나. 지금 내 몸이 대체 어떻게 된 거지. 흔한 꿈처럼 형체 없이 들여다만 보고 있는 건가?
내 앞에서 빙글빙글 돌던 삐약이가 다시 둥실 날아갔다. 작은 몸에 계속해서 떨어져 내리는 눈송이를 파르르, 한 번 털곤 아래로 천천히 내려간다. 쌓인 눈 위에 풀썩 주저앉았다가 벌떡 일어나선 종종종 걸어간 곳은, 유현이가 있는 곳이었다.
-삐 -약!
새끼 새는 파다닥 쌓인 눈을 뛰어넘곤 삐익삐익 숨을 몰아쉬었다. 왜 안 날지. 벌써 아이템에 들어간 마석을 다 소모해 버리기라도 한 걸까.
특수 효과가 담긴 아이템은 사용자의 마력을 쓰는 것과 아이템에 들어간 마석의 마력을 소모하는 것, 두 종류가 있었다. 후자는 마력 수치가 없거나 낮은 사람 대상이다. 비행 스킬은 마나 소모가 커서 삐약이 아이템도 후자였다.
공간이동 스킬 쓰는 거 보면 삐약이 마력 수치가 생각보다 높은 것 같긴 하지만. 아니, 그 전에 꿈이지 참.
– 삐익, 삐약!
열심히 걸어가던 삐약이가 드디어 유현이 옆에 도착했다. 파다닥, 늘어진 팔 위로 올라가, 다시 파다닥 가슴 위로 올라선다.
창백한 이마를 스치며 흔들리는 검은 머리카락에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아마도 바람 탓이었을 터다.
– 삐약!
유현이의 가슴 위에서 삐약이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래, 삐약아. 알고 있어. 깨어날 리 없다는 것을.
눈을 감았다. 귓가에 삐약삐약 소리가 울리는 속에서 다시 눈을 떴다.
– 삐이삑.
“삐약아.”
상체를 일으켜 베개 옆에 주저앉아 있던 삐약이를 감싸들었다. 왜 털이 젖어 있냐. 그러고 보니 창을 대신하는 스크린의 빛이 흐릿하다. 정원에 비가 내리고 빗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작게 들려오고 있었다.
“너, 설마 또 공간이동 스킬 써서 나갔다 온 건 아니겠지.”
– 삐약.
배고프다는 듯 조그만 부리 끝이 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기운 없는 거 보니까 또 스킬 쓴 거 맞구만. 멋대로 나갔다가 큰일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혼자 밖에 나가면 안 돼. 나쁜 사람이 잡아간다.”
마석을 꺼내 먹이며 당부했다. 못 알아듣겠지만. 잡혀간다고 해도 마나만 충분하면 다시 돌아오긴 할 것이다. 공간이동 스킬이 좋긴 좋지.
‘그런데 이 녀석 이동 거리가 얼마나 되는 걸까.’
홍콩까지 왔으니까 짧진 않을 텐데. 물론 한 번에 온 게 아닐 가능성도 있다. 젖어 있는 삐약이를 이불로나마 일단 닦았다. 추운데 감기… 아니, 여름이지.
꿈 때문인지 순간적으로 겨울이라는 착각이 들었다. 왜 하필 눈이 내리는 곳이야. 쓸쓸하고 춥잖아. 그러니까 딱 한 번만 움직일 수 있게 해 주지. 한 번 안아라도 주게.
“여름이라도 혹 모르니까 완전히 말리자.”
– 삐약!
삐약이를 안아 들고 마른 수건을 꺼내었다. 하얀 솜털을 꼼꼼히 닦은 뒤 애완동물용 드라이어로 말려 주었다.
“일어났어?”
드라이어 소리가 멈추기 무섭게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어제 일이 떠올랐다. 까맣게 잊고 있었네. 드라이기 선을 뽑고 서랍 속에 정리해 넣은 다음에 삐약이를 안아 들고 돌아섰다. 독 저항 스킬도 다시 켰다.
“성현제가 말해 줬어?”
“응.”
그래도 내 눈치를 조금 살피는 기색이다. 다른 사람에게 멋대로 수면제를 먹이면 안 되지. 그런데.
“수면제는 왜 가지고 다니냐. 잠이 잘 안 와?”
“내가 쓰는 거 아니야. 그냥 잠이 좀 얕은 거지 못 자지는 않고.”
“홍콩에서는 잘 자더니. S급이라도 잠은 푹 자야지.”
내 말에 유현이가 짧게 침묵했다.
“…화 안 내?”
“음, 다음번에는 말하고 줬으면 좋겠다. 효과 좋은 거 같더라.”
꿈자리가 좀 그래서 그렇지 잠 자체는 푹 잘 잔 거 같았다. 이래저래 피곤하던 것도 많이 풀렸고.
“형.”
“그래서 정확히 뭐라고 했는데? 그 인간도 자세히는 모를 텐데.”
“왜 자꾸 시선을 피하는 거야.”
내가 그랬나. 유현이 얼굴을 제대로 못 보고 있기는 했다.
“역시 화났잖아.”
“안 났어. 그런 걸로 화 안 내.”
“그럼?”
고개를 들어 동생을 마주 보았다. 역시 어리다. 스물다섯 살도 많은 건 아니지만 그보다 더 어리다. 뚱하면서도 불안해하는 얼굴을 보며 웃었다.
“그냥 내가 좀 미안해서. 다 말해 주기로 했는데 또 입 다물어 버렸네. 이리 와 봐, 유현아.”
다가온 동생을 한 팔로 가볍게 끌어안았다가 놓아주었다.
“지금 몇 시지? 아침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 * *
간단하게 아침을 차렸다. 유현이가 돕겠다고 했지만, 그냥 자리에 앉아 있으라 말했다. 뛰어난 실력은 아니다만 그래도 집안일 도맡은 게 몇 년인데. 게다가 밑반찬은 냉장고의 것을 옮겨 담는 것으로 끝이라 직접 한 건 계란프라이 정도뿐이었다. 밥이야 쌀 씻어다 전기밥솥 버튼만 누르면 되고.
“하여간 눈치 빠르다니까. 마석이 들어가 있는 것까지 알아차리다니.”
유현이로부터 성현제가 해 준 말을 듣고 혀를 쯧 찼다.
“디아르마의 금 간 마석과 SS급 용인종의 마석이야.”
“…괜찮은 거야? 그런 걸 몸에 넣어도.”
“이게 일종의 스킬인데, 마석을 융합해서 새로운 용종을 만들어 낼 수 있어. 스킬이 제대로 적용된다면 나를 따를 거고 등급도 S급 이상이 되겠지.”
다만 아직까지 영 소식이 없는 게 조금 불안했다. 등급에 따라 결합하는 데 시간 소요가 다르니 꽤 걸리긴 하겠지만 너무 변화가 없다.
“몬스터가 꼬이는 부작용도 생겨 버렸는데, 이건 나도 예상치 못한 거였고.”
“용종이 태어나면 상처도 없어져?”
“아니. 상처는 그대로야.”
“더는 쓰지 마, 그 스킬.”
유현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아깝잖아. 흉터 좀 남는다고 사는 데 지장 생기는 것도 아니고.”
“지금 그것도 마음 같아선 끄집어내고 싶어.”
몸 좀 아끼라고 투덜거리며 동생이 젓가락 끝으로 꽈리고추찜을 집었다. 저거 맛있지. 살짝 기대를 담아 쳐다보고 있자 꽈리고추를 베어 문 유현이가 움찔 굳었다.
“맛있지 않냐.”
“그… 러네.”
“명우가 만든 거야.”
“…어.”
유현이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전에 명우가 만든 반찬 가져다주려다가 그럴 것 없다며 거절당했었다. 이제는 생각이 좀 바뀌지 않았을까.
“다른 것도 먹어 보고 입에 맞으면 말해. 챙겨 줄게.”
“…아니, 괜찮아.”
어째 대답하는 목소리가 부루퉁했다. 심지어 꽈리고추 이후론 다른 반찬에는 손도 안 대고 계란프라이만 먹었다. 아니 왜! 맛있는 것 좀 먹어라!
“골고루 먹어.”
내 몫의 계란을 밀어 주며 말했다. 계란만 가지곤 반찬 부족할 텐데. 김이라도 꺼내 올까.
“그리고 지금 내 공포 저항 등급 C다.”
“…뭐?”
“송태원 씨 스킬 중에 상대의 스킬 등급을 내릴 수 있는 게 있더라고.”
송태원에게는 미안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현이에게는 말해 줘야 한다. 혹시라도 잘못 걸려 스킬 등급 떨어지면 안 되니까. A급이 반나절 지속이면 S급도 최소 한 시간 이상은 유지되지 싶었다.
다른 유면 몰라도 저항 스킬 같은 게 등급 떨어지면 위험에 처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 스킬이 있었다니. 심지어 등급 하락 폭도 크고.”
“아, 그건 내가 공격 스킬 효과 두 배 공유해 줘서야. 보통은 3등급 정도 떨어진다더라. 그것만으로도 S급이 C급 되니까 조심해. 접촉을 오래 해야 적용 가능하니 전투 중에 당할 일은 없겠지만.”
“그 스킬 공유 좀 하지 마. 위험하단 거 알잖아.”
“이젠 계약서 쓰고 공유할 거야.”
수정해야겠지만.
식사를 끝내고 치우는 건 동생이 했다. 역시 기특하고 착하다. 왜 연애 안 하지. 너무 완벽한 탓인가.
[지난밤, 서울 강서구 □□산 인근에서 발생한 던전 브레이크는—]티브이를 틀자 어젯밤 발생한 던전 브레이크에 대한 특별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 봐도 정규방송 외엔 죄다 던전 브레이크 이야기뿐이다. 나와 관련된 방송은 깨끗이 사라졌다.
오랜만의 던전 브레이크니 그럴 만은 했지만.
‘고작 저걸로 잘 끝날 거로 생각하면 안 될 텐데.’
던전을 일부러 터뜨렸다. 만에 하나 그 사실이 밝혀진다면 이건 섶 지고 불에 뛰어든 꼴이다. 그냥 얌전히 은퇴들 하시지 왜 기껏 내려 준 동아줄로 제 목을 매실까.
‘시장에 나온 벌꿀 역추적하고 내게 답변 안 한 놈들 추려내고.’
똑똑하게 굴었다면 일부러 나한테 은퇴하겠노라 말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벌꿀 판매 경로를 추적하는 게 제일 급한데, 슬프게도 자꾸만 성현제가 떠오르네.
‘사람이나 시체로부터 정보 얻어내는 스킬 가진 헌터가 세성에도 분명 있을 테니까.’
홍콩에서 시체까지 가져간 거 보면 틀림없다. 예림이에겐 시키기 싫을 뿐더러 던전에서 나오려면 최소 일주일에서 열흘 이상 걸릴 테니 너무 늦어진다.
뭘 던져 주지. 마석 조합에 대한 걸 말해 주겠다 해 볼까. 나중에 맞춤형 기승수 만들어 줄 수도 있다는 식으로 던지면 틀림없이 물 거 같은데.
‘전기 저항 상급 몬스터 구하기 힘들지.’
세성 길드장님 체면에 S급 기승수 정도는 되어야 할 테고. 물론 고작 벌꿀 거래 루트 추적 대가로 만들어 주겠다는 건 아니다. 그냥 이런 게 가능할 수도 있다는 정보 제공이지. 아직 스킬 성공이 확실한 것도 아니고, 내가 어느 정도까지 원하는 대로 몬스터 조합이 가능한지도 모르고.
좀 사기 느낌이 나지만, 뭐. 그 정도로 많이 가졌으면 등쳐먹혀도 된다.
부엌에서 나온 유현이가 티브이를 힐끗 쳐다보며 소파에 앉았다.
“너, 길드에 안 가 보냐? 오랜만에 던전 터져서 시끌시끌할 텐데.”
“난 아직 던전에 있어. 게이트석 써서 나왔다는 거 알려져서 좋을 일 없으니 공략 끝날 때까진 얌전히 있을 거야. 형도 공포 저항 등급 복구되기 전까진 집에 있을 거지?”
당연히 그럴 거 아니냐는 확신을 담은 눈빛을 슬쩍 피했다.
“아니 나야 바쁘게 움직여야지. 어제 던전 브레이크 내 일 묻으려고 터뜨린 게 분명한데 어떻게 앉아 있냐. 그리고 일상생활이야 공포 저항 없어도 당연히 괜찮거든. C급만 되어도 어디냐. 보통 사람들은 공포 저항 같은 거 안 달고 살아.”
C급도 무척이나 대담하시군요 소리는 들을 거다. 내 말에 동생 놈의 표정이 뽀로통해졌다. 집 지키게 만들기 미안하지만, 이참에 푹 쉬어라.
“그럼 나도 같이 다닐래.”
“해연 길드장님 던전 공략 중 아니었냐.”
유현이는 대답 대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잠시 후, 스물 초반의 청년 하나가 석시명의 손에 끌려 나타났다.
“헐, 길드장님 던전 들어가신 거 아니었어요?”
예전 김성한에게 술집을 추천해 주었던 해연의 B급 헌터 김민의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유현이를 쳐다보았다. 유현이가 그를 향해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일주일간 신분 좀 빌려줘.”
“예?”
“어차피 방학이니 쓸 일도 없잖아. 마침 휴가도 냈고.”
“아니 저 유럽 여행가려고 휴가 낸 건데…….”
주춤주춤 물러나는 김민의를 보며 유현이가 안경을 꺼내 들었다. 이어 석시명이 알약을 내밀었다.
“그냥 푹 자고 일어나면 됩니다.”
“비행기랑 숙소 예약도 다 해 놨는데요!”
“세 배로 보상해 드리고 휴가 기간도 연장하겠습니다.”
김민의는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알약을 받아 들었다. 민의 학생, 미안해. 동생이 별 사고 안 치도록 노력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진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