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4
14화 새우인 듯 (1)
어휴, 겨우 한 건 더 해결했네. 이제 계약 마무리 짓고 각성만 시켜 주면 끝이다.
“안 하던 말 하려니까 쪽팔려 죽겠네. 얼른 사인해, 각성시켜 줄게.”
“알았어요. 아, 진짜 웃겨.”
“웃지 마.”
“아저씨 목까지 빨개졌어!”
“너도 만만찮거든?”
박예림은 낄낄거리며 계약서에 서명했다. 두 개의 서명란이 채워지자 계약서가 약하게 빛을 발한다. 이어 표면이 마치 코팅이라도 된 듯 매끄럽게 변했다. 예림이가 신기해하며 계약서를 만지작거렸다.
“이젠 수정 못 하겠네요.”
“수정할 수 있으면 안 되지.”
계약서를 돌려받아 인벤토리에 넣었다. 이걸로 준비는 다 끝났고.
”그럼 각성시키는 스킬 쓴다?”
“앗, 잠시만요.”
그녀는 손을 내젓곤 명상이라도 들어가려는 듯 바른 자세로 앉았다. 그리곤 깊게 심호흡했다.
“각성이 바로 될까요?”
“운이 좋으면. 길게는 최대 일주일까지도 걸려.”
될성부른 떡잎 스킬이야 바로 적용되지만 일부러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잡았다. 나중에 또 다른 사람을 각성시켜 줄 때도 이번처럼 바로 키워드 적용이 가능할진 알 수 없으니까.
“자, 하세요!”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는데. 나는 박예림을 향해 될성부른 떡잎 최적화 각성 스킬을 썼다. 그리고 이내.
“지, 진짜 메시지창 떴어요! 아저씨! 등급, 등급은 어떻게 확인해요?”
“상태창을 연다고 생각해 봐. 말로 해도 되고.”
“상태창! 어? 우와!”
박예림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얼굴 전체에 경악이란 두 글자가 새겨진 듯하다.
그래, 놀랄 만하겠지. 스탯 등급 S에 스킬은 무려 SS짜리까지 있을 테니. 잔뜩 흥분한 예림이가 소리치며 테이블을 손으로 짚으—
“아저씨! 저 에스—!”
– 파직!
으윽? 테이블이 부서졌어? 아니, 손이 파고든 건가? 두꺼운 상판이 손 모양 그대로 푹 꺼져 버렸다. 세상에.
“어…….”
“우, 움직이지 마!”
이런, 젠장. 분명 유현이가 C등급 이상은 갑자기 변한 신체 능력치에 바로 적응하지 못한다고 했었지. 예림이는 S급이니까… 망했네.
“지금 네 힘은 예전보다 엄청나게 강해진 채야. 그러니 아무것도 손대지 마. 알겠지?”
“네, 네.”
“그래. 조심해서 나가자.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거다. 사뿐사뿐 소리 없이 천천히 걷는다고 생각해.”
예림이가 느릿느릿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외줄을 타듯 위태로운 움직임이었다. 그것을 보는 나 또한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어린애를 앞에 둔 것처럼 불안했다.
여기가 지하가 없는 1층이라서 그나마 다행이다. 바닥이 무너져도 사람은 안 다칠 테니.
“천천히, 한 발자국씩. 그래, 그래.”
“저 조금은 익숙해진 거 같아요.”
“그래도 서두르면 안 돼. 하루는 걸린다고 했어.”
그녀로부터 눈을 떼지 않은 채 미닫이문을 열었다. 먼저 신발을 신은 뒤 예림이의 운동화를 챙겨 들었다. 운동화 많이 낡았네. 심지어 예림이 발에 비해 커 보였다. 신발 정도는 새로 사 주지 쓰던 걸 물려주냐.
“내가 신겨 줄 테니 발 내밀어.”
“네. 어… 한 발로 서기 좀 불안한데요.”
“그럼 조심해서 앉아. 천천히—”
윽, 바닥에 손자국이 살짝 남았다. 그래도 테이블과 달리 흠집만 조금 생긴 정도였다. 내민 발에 운동화를 신겨 주자 뭐가 재밌는지 까르르 웃는다.
“이런 거 좀 설레지 않아요?”
“설레긴커녕 살 떨린다만.”
여기서 설레는 게 왜 나와?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라고 재차 주의 준 뒤 계산대로 향했다. 테이블값 물어줘야겠네.
“여기 계산이요. 그리고 상이 조금 부서졌—”
“앗, 날파리!”
“안 돼!”
– 파직
식탁 모서리가 무슨 비스킷처럼 바스러졌다. 예림이가 아차, 하며 웃는다.
“식당에서 벌레는 내가 다 잡았거든요. 그래서 버릇이 들어 버렸네요, 아하하.”
웃지 마. 계산대 안쪽의 직원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식탁과 예림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우리 애 때문에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나는 사과와 함께 카드를 내밀었다.
“좌석 테이블과 저 식탁 가격도 포함해서 계산 부탁드리겠습니다.”
비싸게 긁으셔도 돼요.
해연 길드로 돌아오는 길은 비교적 순탄했다. 차의 앞좌석 머리 받침대가 박살 나고 내려서는 예림이의 발끝에 보도블록이 갈려 나갔지만 사람만 안 다치면 괜찮다.
그러니 다가오지 마라, 예림아. 얘가 자꾸 달라붙으려고 하네. 갑작스런 변화에 불안해질 만도 하겠지만 네가 한 번 잡기만 해도 내 팔은 으스러진단다. 나 스탯 F야.
해연 길드에는 길드장인 유현이에게만 박예림의 일을 알렸다. 자칫 말이라도 새어 나갔다간 귀찮아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S급에 대해선 헌터협회에서 등급 심사를 받으며 알려지도록 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김성한이 불운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주위를 경계하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주말 저녁이라 로비에 사람이 몇 없어서 천만다행이었다. 1~3층 외의 구역에 들어가려면 보안 검사를 거쳐야 했지만 유현이가 미리 말해 놓은 덕분에 그냥 넘겼다.
“뭔가 두근두근하네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예림이가 또 내 곁으로 다가왔다.
“붙지 말라니까. 피할 데도 없구만.”
“안 건드려요. 그 정도도 조절 못 할까 봐.”
“머리 받침대를 아예 으깨 놓고선 그런 말이 나오냐. 앞에 사람 탔으면 넌 살인범 됐어.”
살인범이란 말에 예림이의 입술 끝이 뾰족 튀어나왔다. 말이 과했나 싶었지만 앞일을 생각하면 이정도 경고는 해 두는 게 낫다. 비각성자와 스탯 S급은 종이 다르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차이가 나니까.
사고 방지를 위해서라도 스스로가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을 항상 머릿속에 새겨 두고 있어야 한다.
길드장실에는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이 유현이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녀석이 비즈니스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서 오세요, 박예림 양.”
“…안녕하세요.”
예림이가 어색해하며 꾸벅 인사했다. 낯가리는 성격이 아닌 거 같았는데, 웬일이지.
“우선은 능력치 변화에 적응하는 동안 머무실 장소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스탯 S급은 평균적으로 하루면 적응이 끝납니다. 그 후로는 예전과 다름없는 일상생활이 가능하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유현이 녀석이 정중하게 설명했다. 어쩐지 낯설게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S급 각성자의 가치를 생각하면 저게 정석이긴 하겠지만. 내가 예림이를 너무 대충 대했나.
“이쪽으로 따라오시지요.”
유현이가 앞장서서 방을 나섰다. 나는 어쩌지. 슬슬 피스 밥 줄 시간인데 가 봐도 되나?
“아저씨, 안 오고 뭐 해요!”
멀뚱히 서 있는 나를 박예림이 손짓해 불렀다. 얼른 안 오냐고 째려보기까지 한다. 생각해 보니 후견인 해 주기로 했었지. 따라가야겠네.
올라올 때와는 다른, 1~3층에서는 멈추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에는 각성자들을 위한 훈련 시설이 있었다.
긴 복도를 따라 걸어가며 유현이가 설명을 이었다.
“지하 2층부터 3층까지는 단련을 위한 공간입니다. 다만 A급 이상의 본격적인 전투 훈련은 안전을 위해 경기도에 위치한 훈련소로 가야 합니다. 특히 살상력 있는 스킬은 도심지에서의 사용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배워야 할 게 많을 거 같네요.”
“각성자 등록 후 정식으로 교육받으시게 될 겁니다. 그전까지는 스킬 사용만 주의해 주시면 됩니다.”
“네.”
그러고 보니 예림이 스킬 효과가 뭘까. 궁금하네.
“이 체력 단련실이 박예림 양께서 하루 동안 머무실 곳입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여러 가지 운동 기구들이 있는 너른 방이었다. 높은 천장에 보통 재질이 아닌 것 같은 벽과 바닥이 눈에 띄었다.
“여기 있는 기구들은 망가져도 상관없습니다. 감각을 익히는 데 사용해 주세요. 벽과 바닥 또한 S급 1레벨의 근력은 감당 가능한 수준입니다. 혹 근력 스탯이 100을 넘어섭니까?”
“아니요. 61이에요.”
“그 정도면 문제없겠군요.”
61이라니. 무려 내 스탯 총합의 세 배다. 근력만 따지면 열다섯 배고. 스탯이 열다섯 배라고 해서 실제 힘도 열다섯 배 차이 나는 건 아니지만 감히 범접치 못할 차이인 건 확실했다.
“저쪽으로 샤워실과 수면실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두 시설 또한 망가져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가급적이면 스스로의 힘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신 뒤 사용해 주세요.”
“필요한 게 생기면 어떻게 하죠?”
“수면실의 전화기를 통해 요청하시면 됩니다. 혹 전화기를 부쉈을 경우 수면실 문 옆의 비상벨을 누르세요.”
그 밖의 질문이 있으십니까, 하고 유현이가 물었다. 박예림은 고개를 저어 대답했다.
“그럼 나머지 이야기는 내일 능력치 적응 후 하도록 하죠.”
그렇게 말하고 유현이가 몸을 돌렸다. 나도 이제 올라가서 피스 밥 줘야지. 애 기다리겠다.
“아저씨, 어디 가요!”
돌아서려는데 예림이가 소리를 빽 질렀다. 어디 가긴.
“집에 가지.”
“나 혼자 두고요? 어떻게 그래요? 책임진댔으면서!”
틀린 말은 아닌데 뉘앙스가 좀 묘하다. 유현이가 나가다 말고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책임이라니, 형?”
“후견인 해주기로 했거든.”
“후견인?”
“부모님도 안 계시고 얹혀사는 삼촌과는 사이가 안 좋대서. 그 집과는 엮이고 싶지 않대.”
나쁠 건 없지 않나. 하지만 유현이의 표정은 나빠 보였다.
“미성년자 각성자의 후견인은 부모가 아니라면 보통 등급이 더 높거나 비슷한 각성자가 맡아. 그래야만 컨트롤이 가능하니까. 후견인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내가—”
“이미 아저씨가 해주기로 했거든요?”
박예림이 유현이의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그녀의 표정이 나이답지 않게 싸늘해, 과거이자 미래에 본 얼음마녀 박예림이 떠올랐다. 얘는 또 왜 과민반응이지.
“박예림 양, 후견인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그건 안 됩니다. 혈육이라는 안전망도 가지지 못한 등급 낮은 후견인이 피후견인에게 조언을 하다가 폭행당한 사례가 이미 여럿 있으니까요.”
어… 그런 문제도 있구나. 하긴 자기보다 훨씬 강한 질풍노도의 사춘기 청소년을 다루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무서워졌다. 계약서에선 예림이가 날 보호하기로 되어 있으니 괜찮으려나?
“전 아저씨를 지켜 주기로 계약했어요. 그러니까 안전에는 문제없다고요. 애초에 아저씨를 해칠 생각도 없지만요.”
“그렇다고 해도 형이 후견인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심지어 등급 차이가 너무 심한 만큼 그 밖의 여러 가지 문제도 뒤따르겠지요.”
“…몰라요, 그런 건. 하지만.”
박예림은 나를 한번 쳐다보곤 말을 이었다.
“아저씨를 후견인으로 내주지 않겠다면 해연 길드에 들어가지 않을 거예요.”
…뭐? 아니, 잠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