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 벌집 제거 (3)
“앞으로도 쓸 것 같아서 본격적으로 꾸며 봤습니다.”
석시명이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가 꾸몄다는 곳은 다름 아닌 이전 내 홍콩 납치 사건 때 썼던 방이었다. 일종의 작전실이라고 해야 할까.
입구는 미니 포털로 대체하고 방음과 보안 시설을 덕지덕지 붙였다. 그에 더해 며칠 틀어박혀 있을 것을 대비해 숙식 시설도 마련해 놓았다. 그 밖의 이런저런 장비들도 있었지만 컴퓨터 같은 알아보기 쉬운 것 외에는 용도를 알 수 없었다.
“어째 신나신 거 같네요. 미니 포털은 또 언제 구하셨답니까.”
“예비가 하나 있었습니다. 솔직히 이런 쪽이 더 재미있긴 하지요.”
석시명이 도수 없는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어째 안경 지분이 확 늘어나 버렸군.
잠시 후 세성 쪽 사람들이 도착했다. 서류가방을 든 남자와 지팡이를 짚은 사십 대 중후반쯤 되는 여자였다. 그녀의 손에 들린 지팡이는 검은색 잘빠진 몸체에 은색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바닥에 닿은 끝이 일정 간격으로 희미한 빛을 발하는 것으로 보아 평범한 지팡이는 아닌 듯했다.
“민지수 님께서는 시각장애인이십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남자가 먼저 알려 주고, 민지수가 정확하게 우리들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유현이부터 나, 석시명까지 차례로 닿아 오는 시선에 거침이 없었다. 아마도 저 지팡이의 능력이지 싶었다. 던전 아이템인가.
“처음 뵙겠습니다, 민지수 씨. 저는 한유진이라고 합니다.”
나를 향해 그녀가 방긋 웃어 보였다.
“성현제 씨로부터 말씀 들었어요. 친한 사이시라고요.”
안 친합니다, 소리가 혓바닥 위까지 기어 올라왔지만 도로 삼켰다. 대신 다른 질문을 했다.
“세성 길드 소속이 아니신 건가요?”
길드장이라 하지 않고 이름을 불렀다. 내 말에 민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라 필요로 할 때 잠시 도와드리는 정도지요.”
그녀는 서른 초에 시력을 잃고 초기 던전 브레이크에 휘말려 각성하였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인간과 몬스터 시체들 사이에서 헤매다가 자신의 스킬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다만 대외적으로는 몬스터의 사체에서만 정보를 얻어 내는 스킬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처음에는 저도 그런 줄로만 알았죠. 그래서 가끔 헌터 협회로부터 몬스터 조사 요청 정도나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현제가 찾아왔다고 했다. 몬스터가 아닌 인간의 시체로부터도 정보를 읽어 낼 수 있지 않겠냐면서.
“꺼려지진 않으셨습니까? 혹시 세성 길드장이 강제로 일을 시키거나 한 거라면…….”
“아니에요.”
민지수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물론 처음에는 꺼림칙했었죠.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라도 더 늘어난다는 사실이 더 반가웠어요. 그것도 남들은 못하는 특별한 일이라면 혹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당연하게 할 수 있었던 일들이 갑자기 높은 벽이 되어 버린 적이 있었기에. 그래서 더더욱 찾아 주는 사람들이 있는 지금이 즐겁다고.
그래도 죽은 사람의 기억을 뒤진다는 거부감은 있었기에 자의로 타인을 해친 범죄자에 한해서만 받아들인다고 하였다. 그녀의 스킬은 정보를 문자로, 마치 소설책 읽듯이 보여 주는 것이라 정신적인 부담감은 적은 편이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만큼 현실감도 별로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처음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 건, 역시 성현제 씨가 잘생겨서였죠.”
“···예?”
“얼굴을 만져 봤거든요. 정말 완벽했어요. 눈으로 직접 보면 더 미남이겠지요?”
그··· 잘생기긴 뭐, 잘생겼다만. 아니, 그래도.
“얼굴만 보, 만져 보고 손잡는 건 좀 가벼운 결정 아닐까요. 게다가 잘생겼다고 해도 거리감 같은 게 느껴지셨을 텐데요.”
“무서운 느낌은 있었죠. 그것도 없었으면 간도 쓸개도 다 내줬을 걸요. 그런 미남이 친절하게 대해 오는데 누가 버텨요.”
당장에 짐 싸들고 세성에 들어갔을 거라며 민지수가 소리 내어 웃었다. ···어쨌든 성현제가, 세성이 일 처리는 잘해 준 모양이었다. 그녀의 능력이 알려지면 노리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 철저하게 감추고 보호해 주었다.
오늘도 원래는 해연 쪽에서 정보 읽기를 원하는 시체를 보내오라 할 예정이었는데 민지수 씨가 직접 방문을 원했다고 하였다.
“한번 만나고 싶었거든요, 요즘 제일 유명한 사람을요.”
“위험을 감수하실 정도는 아닙니다만.”
대놓고 유명하단 소리 들으니 좀 쪽팔리다. 얼굴을 만져 봐도 되겠냐는 요청에 고개를 숙여 주었다. 손길은 조심스러웠고 따뜻했다.
“또, 이번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말도 들었고요.”
“계속 관계를 이어 갈 수 있다면 저희로서야 반갑고 감사한 일입니다.”
예림이 스킬은 진짜 가능하면 안 썼으면 하니까. 최소한 성인이 될 때까지 만이라도 말이다.
민지수 씨는 석시명과 함께 시체를 보관해 놓은 곳으로 갔다. 함께 온 세성 소속 헌터도 자료를 내려놓고 동행했다. 알고 보니 그 남자의 스킬이 대상의 이미지를 흐릿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였다. 은신까지는 아니지만 주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민지수 씨를 잘 기억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나.
“앞으로 저분께 부탁드리면 되겠다.”
“박예림은 별로 안 좋아할걸.”
자료를 함께 정리하며 유현이가 말했다.
“자기가 있는데 왜 다른 사람 쓰냐면서.”
“예림이가 관련 스킬을 가지곤 있다지만 원래는 학교 다니며 친구들이랑 어울릴 나이잖아. 이런 일을 할 게 아니라. 평범하지 않은 일이 더 재밌어 보일 나이이기도 하지만.”
공부 빼고 다 재밌겠지. 그래도 너무 던전 공략에만 빠지면 안 되는데. 어디 중고생 헌터 모임 같은 거 없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도하민이 도착하고 강제로 자료 정리에 끼워 넣었다. 석시명 말대로 제대로 된 팀 같은 걸 만들든가 해야지 인력이 부족하네.
“역시 해외로 많이 보냈네. 일본이랑 중국이 제일 많고··· 이 표는, 음······.”
“매입 매출 장부입니다, 주님.”
도하민이 말했다.
“볼 줄 알아?”
“가게 운영했으니까 당연히 알지. 햄스터 용품 중에 수입품도 많고. 아직은 해외 쪽이 더 다양하거든.”
그러곤 줄줄이 베딩이 어쩌고 영양제가 저쩌고 한참을 떠들어 댔다. 그렇게나 잘 아신다니까 대신 봐주시면 되겠네. 수출 판매 경로 다 넘기자 도하민이 울상을 지었다. 골드 햄스터가 아깝지 않은 인재야. 잘 데려왔어.
회귀 전에도 헌터들 사이에서 살벌, 아슬하게 정보상 일 잘하고 있었으니 그 수완의 자질이 어디 가진 않았을 터다. 그래도 이번에는 잘 보호해 줘서 편히 살게 해 줘야지. 안전을 위해 아끼는 햄스터 가게 접고 숨어들어야 했을 테니 속깨나 탔었겠지.
자료 정리가 꾸물꾸물 진행되어 가고 한 시간여쯤 지난 뒤, 석시명과 민지수 씨 일행이 돌아왔다.
“트럭 운전사에게 의뢰를 한 사람은 김준배로 헌터인 모양입니다.”
“어, 혹시 이 사람인가?”
도하민이 종이 한 장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벌꿀 국내 수송을 맡은 소형 길드 소속 헌터와 동명인데.”
“어디 봐봐.”
D급에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다. 하지만 동일인일 가능성이 높겠지. 트럭 운전사와 관련이 없다 해도 던전 부산물 밀매에 개입했으니 잡아들일 죄목이야 충분하고.
“일단 이놈들부터 족치죠.”
“조용히 사람 풀까요?”
석시명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조용히 말고, 대놓고 가려고요. 각성자 관리실장님께서 수고 좀 하셔야지요.”
“그랬다간 연관된 사람들이 죄다 숨어 버리지 않겠습니까.”
“집에 불난 쥐새끼처럼 바쁘게 뛰어다니겠지요. 그리고 우리에겐 도하민 씨가 있고 말입니다.”
협회 관련자들 중 주요 용의자들. 이들의 움직임을 추적하면 벌꿀 밀매와 연관된 사람을 확실하게 집어낼 수 있다. 협회와 별 관련도 없는 소형 길드가 터져 나간 거 보고 놀라 팔딱대면, 백 프로 아니냐.
그때부터는 조용히 사람 푸는 거고.
“···대여섯 명일 거라더니 두 배가 넘잖아.”
울상을 짓는 도하민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우리 송실장님 대접이라도 한번 해 드려야 하는데.”
안 받으려 하겠지만. 마음 같아선 명우에게 부탁해 S급 장비라도 하나 마련해 주고 싶다. 어떻게 들려 줄 방법 없나.
* * *
김준배가 소속된 길드 동주로타리는 서울에서 인천으로 접어드는 외곽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길드장 이름이 동주인가.
“여기까지 따라오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차에서 내린 송태원이 나를 보고 미간을 약간 좁혔다.
“저희 쪽과도 관련된 일이니까요. 원래 헌터 대상 범죄는 관련 길드와 종종 협조하지 않습니까. 해연에서는 여기 이 김민의 헌터가, 길드는 아니지만 헌터 관련 시설인 저희 쪽에서는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제가 나왔죠.”
인력이 부족해요, 하고 일부러 한숨을 내쉬어 보였다. 근데 진짜 부족하긴 했다. 사육 시설과 빌딩 인력 대부분이 내가 고용한 사람들이 아니니까. 난 단순한 건물주일 뿐이지.
“노아 헌터가 있잖습니까.”
“노아 씨는 다른 일로 바쁘셔서요.”
동주로타리를 덮치면 바로 소식 듣고 움직일 놈들을 잡기 위해 대기 중이다. 은신에 기동력까지 갖춘 노아는 너무 유용해서 고작 이런 일에 보내긴 아깝지. 던전 안에서는 보조계지만 바깥에서는 그야말로 최고의 헌터가 아닐까. 특히 도하민과 발맞추면 정보 은밀 기동 삼박자를 다 갖출 수 있다.
빠르고 비밀스럽게 정확한 목표물을 겟. 너무 쓰기 좋아서 미안해질 정도다.
“우리 든든한 김민의 헌터가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얌전히 구경만 하겠습니다. 어차피 송 실장님께서 나셨으니 순식간에 끝날 거 같은데.”
내 옆에 버티고 선 김민의, 유현이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송태원의 시선이 유현이에게 잠깐 닿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퇴로부터 확인, 차단해.”
송태원의 손짓에 그와 함께 온 헌터들이 움직였다. 협회가 아닌 각성자 관리실에 소속된 사람들이다. 수는 적었지만 전부 중급 이상 전투계 헌터들이라 소형 길드를 상대하기엔 부족함이 없을 터였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각자의 위치를 잡아 대기하고 송태원만이 건물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도주자가 문제인 거지, 맞서 덤벼든다면 그 혼자서도 얼마든지 처리 가능한 상대들이었다. 아니, 아군이 휘말릴 수도 있으니 되레 혼자 몸이 더 편할 것이다.
입구의 벨을 눌렀으나 대답은 없었다. 창을 통해 새어 나오던 불들이 황급히 꺼진다. 카메라로 송태원의 얼굴을 확인하고 도망칠 생각인 모양이었다.
쿠드득-
송태원이 닫힌 문을 잡아 뜯어 내듯 열었다. 이어 그의 뒷모습이 어둑한 실내로 사라졌다.
“이거 무단 침입-!”
외침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대신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나 걸릴까?”
“3분 이내.”
유현이가 눈으로 건물의 위아래를 훑으며 대답했다.
“총 인원은 아홉 명이고 다섯 명은 아래로, 네 명은 위쪽에서 무언가 급히 처리 중인 모양이야.”
“그걸 다 알 수가 있냐?”
“움직임이 크면 집중 안 해도 대충 들려. 내려온 다섯 명은, 방금 끝났군.”
다시 쾅, 하고 두꺼운 문 같은 걸 부수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명 소리도 난 듯했다. 그리고 침묵이 내려앉았다.
“2분쯤 지났나?”
위층의 네 명이 연락 돌릴 시간은 있어야 했을 텐데. 다행히 소식이 전해졌는지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석시명이다. 이어 꺼졌던 건물의 불들이 다시 켜지기 시작했다. 퇴로 차단 중이던 헌터들이 안으로 들어가 제압된 범죄자들에게 수갑을 채운다. 2층으로 올라가자 문이 열린 금고 앞에 서 있는 송태원이 보였다. 장갑 낀 손에 피가 약간 묻어나 있었다. 그 외의 싸움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치신 곳은 없으시죠?”
“···없습니다.”
당연히 없겠지만, 그래도 말이야. 피라미들 상대로 아주 가벼운 운동이나 한 셈이었지만 전투는 전투라서인지 그가 약간 무섭게 느껴졌다. 숨을 한번 길게 삼키곤 금고 쪽으로 다가섰다.
“손대지 마십시오.”
“걱정 마세요. 그보다 송 실장님. 주인 없는 장비들이 좀 있는데 혹시 관심-”
“없습니다.”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홍콩에서 얻은 장비들 중 마고스의 숄을 비롯한 자잘한 장비는 예림이에게, 날붙이는 유현에에게 주었다. 사람 몸에 착용할 수 있는 아이템에는 한계가 있고 특성도 맞춰야 했기에, 그러고도 제법 여러 개가 남아 있었다.
일단은 공짜로 얻은 거니 가격 없는 셈치고 송태원이 가져갔으면 싶었지만, 너무 눈 가리고 아웅인가. 따지고 보면 장물이기도 하고.
“그럼 나중에 괜찮은 아이템 나오면 싸게 팔아 드릴 테니 사시겠어요?”
“과도한 할인 또한 법에 저촉됩니다.”
…신입이 나랑 같이 던전 공략한 사람에게 맞춤 보상해 준다고 한 걸 믿고 같이 던전이라도 돌아야 하나. 그 전에 공직자 헌터 계약 조건부터 바꿔야 하지. 개인 아이템은 가지게 해 줘라! 이건 진짜 바꿔야 해.
마지막으로 저녁 사겠다고 했지만 그마저도 거절당했다. 공직자 상대하기 너무 어려워.
* * *
“괜찮아! 동주로타리와 우리가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는 없어!”
중년 남자가 손에 든 휴대폰을 향해 자신 있게 말했다. 허나 말과 달리 얼굴은 어두웠다. 터뜨린 던전에서 나온 벌꿀의 수송을 맡았던 소형 길드. 그것을 이렇게나 빨리 추적해 냈다. 상대가 지닌 정보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래도 혹 모르니까 흔적이란 흔적은 최대한 빨리 지워 버려.”
남자는 전화를 끊고 급히 집을 나섰다. 그가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은 타인 명의로 마련해 둔 별장이었다. 이곳의 금고에 불법 던전 관련 계약서와 대가로 받아 낸 마석 및 아이템을 보관해 두었다.
‘여기까지 찾아내는 건 힘들겠지만.’
없애 버리자. 아니, 아까우니 다른 곳으로 옮겨 놓자. 이 별장은 출입이 잦았으니 꼬리를 잡힐 확률이 높았다. 별장에 들어서 불도 제대로 켜지 않고 급히 거실 벽에 감추어 놓은 금고를 여는 순간이었다.
콰장창-!
“뭐, 뭐야!”
거실의 유리창이 깨졌다. 당황한 남자의 입을 보이지 않는 손이 틀어막았다.
“조용히.”
부드러운 억양의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을 꼼짝 못하게 얼어 붙이는 위압감 또한 서려 있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잡았습니다.”
[근처로 차를 보냈습니다. 다음 위치는-]펄럭, 희미한 날개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몸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