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 맡겨졌는데 (2)
해연 길드 소속 B급 헌터 김민의는 말하자면 만만한 상대였다. 대형 길드에서 영입할 만큼 쓸 만한 보조 스킬을 가지고 있었지만 보조계는 어디까지나 보조계다. 특히 중상급 헌터들 사이에서는 일명 ‘스킬빨’을 낮춰 보는 풍조가 만연했다.
헌터의 의의는 어디까지나 던전 공략이니 등급을 스탯만으로 책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다수였다. 전투계를 가장 윗줄로 두고 나머지는 일종의 부속 정도로 보는 경우도 많았다.
스탯이 아예 확실하게 낮으면서 유용한 상등급 스킬을 가지고 있으면 되레 대우가 좋아지기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들에게 조금의 위협도 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제아무리 스킬이 좋아 봤자 얼마든지 쉽게 누를 수 있기에 귀엽게 봐주는 것이다.
반면에 어중간한 스탯에 높은 등급의 스킬을 가지고 있다면 눈에 거슬려했다. 김민의는 그에 해당되었고 전투계 상급 헌터들이 다수인 해연에서 무시당하는 편인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당사자는 별 신경 안 쓰고 안전한 보조계가 개꿀이라며 만족스러운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진짜 스탯 A급 이상이래요?”
“S급 헌터를 상대했다는 말도 있던데.”
빠르게 퍼져 나간 소문 속에서 김민의가 해연 길드의 로비에 들어섰다. 평소 그와 인사하고 지내던 보안실 직원이 아는 척하려고 손을 들어 보였으나 김민의는 직원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냉랭하게까지 느껴지는 무표정한 얼굴이 전혀 딴사람 같아, 직원은 어색하게 들었던 손을 내렸다. 곧장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하는 김민의의 뒷모습을 사람들이 흘끔거렸다.
“…분위기는 완전 길드장님이네.”
“정말로 스탯 숨긴 건가? 보조계라 싸우는 걸 본 적 없으니.”
보안실의 A급 헌터가 중얼거렸다. 같은 팀으로 던전 공략을 간 적 있으나 보조계는 후방에서 보호만 주로 받는다. 당연히 김민의의 스탯치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일은 없었다.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김민의, 한유현은 곧장 석시명을 찾아갔다.
“한유진 씨를 세성에 맡기셨다고요?”
주위 사람들을 물린 석시명이 놀라워하며 말했다.
“형에겐 그쪽이 더 편할 겁니다.”
한유현은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정확히는, 한유진에게 성현제는 부담을 가질 필요 없는 상대였다. 챙겨 주지 않아도 되고 혹 피해를 입힌다 해도 신경이 덜 쓰이는.
제 살을 깎아서라도 품에 끌어안고 보호하고 싶어 하는 어린애들과는 다르게.
“…김민의 헌터에 대한 소문이 제법 퍼졌을 겁니다.”
한유현은 제 형에 대한 상념을 억지로 밀어내며 화제를 돌렸다.
“김민의가 자기 능력에 걸맞은 대접을 받고 싶어 한다는 말을 흘려 주십시오. 그러면 미끼를 무는 상대가 나타나겠지요.”
“이번에 한유진 씨를 노린 쪽에서 말입니까.”
트럭 운전사를 고용한 것은 동주로타리 길드였지만, 동주로타리 길드에 그 의뢰를 한 사람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헌터 협회 쪽을 의심했지만 아니었다.
“현재 한유진 씨의 보호를 맡고 있는 사람은 김민의 헌터고 그가 해연을 벗어날 마음을 품고 있다고 판단되면 분명 접근해 오겠지요. 마침 길드장님께서도 자리를 비운 상태니 좋은 기회입니다.”
석시명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보조계로 다른 전투계 헌터들에게 괄시받고 있었다는 건 사실이니 그 점을 부각시키면 되겠지요. 이참에 보조계 헌터를 무시하는 분위기도 환기시키고요.”
“세성 길드장이 알아서 차단하겠지만 그래도 혹 모르니 형에게 말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 주십시오. 알게 되면 어떻게든 끼어들려고 할 겁니다.”
자신도 같이 미끼로 나서는 편이 확실하지 않겠냐고 주장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한유진 씨가 도와준다면 일이 더 쉽겠지… 만, 좀 쉬셔야죠.”
석시명은 아쉬워하면서도 말을 바꾸었다. 한유진이 있다면 여러모로 편해지겠지만 제 형을 세성 길드에 맡겨 놓기까지 한 길드장이 받아들일 리 없었다.
대략적인 논의 후 한유현은 한유진의 자택으로 향했다. 사람 없는 집안에서 TV 소리가 들려왔다. 혼자 알아서 TV를 켜고 보는 몬스터가 있다며 형이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 삐약!
소파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던 하얀 새끼새가 한유현을 보고 삑삑거렸다. 천장의 인조 덩굴에 매달려 꾸벅꾸벅 졸고 있던 새끼용도 파드득 날갯짓을 한다. 한유현은 코메트를 가볍게 잡아챘다.
– 키이!
새끼용이 발버둥 치며 자신을 움켜쥔 손을 깨물었지만 잇자국만 조금 날 뿐이었다. 이어 삐약이 또한 집어 들고 거실을 둘러보았다.
새끼용은 사육장에 맡기고 새끼새는 세성으로 가져다주고. 그리고 또 챙길 것이 있던가.
‘…웬만한 건 알아서 챙겨 주겠지만.’
그렇기에 부탁한 것이지만, 그래서 더 거슬린다. 한유현은 소파에 걸터앉았다. 키익대던 코메트가 눈치라도 살피듯 잠잠해진다. 반면에 새끼새는 거리낌 없이 손바닥 위에 늘어져 앉은 채 삐약거렸다.
마수 사육 스킬. 그리고 양육자 칭호.
한유현은 양육자 칭호에 대해 알고 있었다. C급 이상 각성자의 양육자면 비교적 쉽게 얻는 흔한 칭호였기에 관련 정보 또한 얻기 쉬웠다.
짧은 시간 소소한 성장 버프를 주는 칭호. 등급에 따라 성장치와 적용 시간이 늘어나긴 했으나 알려진 가장 좋은 칭호도 큰 가치는 없었다.
하지만 한유진은 어떨까.
한유현은 자신이 다른 인간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이질감은 각성 후 성현제를 만나면서 분명해졌다. 저 거슬리는 남자가 자신과 동류며, 동족에 가깝다.
인간의 껍데기를 뒤집어썼지만 규격 자체가 다른 존재.
한유진이 마수 사육 스킬을 얻게 된 것은 그런 자신을 키운 탓이라 생각했다. 일반적인 양육자 칭호 대신에 인외의 것을 기르는 능력을 얻은 것이라고.
‘하지만 형은, 사람까지 끌어안으려 들었지.’
박예림과 노아 그리고 자신까지. 박예림까지는 그렇다쳐도 노아 상대로는 분명 과한 태도였다. 마수 사육 스킬이라 하였지만 실은 인간에게도 해당되는 것은 아닐까. 혹은 노아가 용종인 탓에 마수로 인식되기라도 하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치워 버리고 싶다. 마수든 인간이든 깨끗이.
한유현은 손에 쥔 두 마리의 몬스터를 차가운 눈길로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이것들을 전부 없애 버리고 싶을 만큼 하나 있는 피붙이가 소중했기에, 그래서 아직은 손댈 수 없었다.
* * *
직접 사람이 와서 안경과 렌즈를 맞춰 주었다. 눈에 뭘 넣는다는 게 거부감 들긴 했지만 안경은 또 부서질 수도 있으니 렌즈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유현이와 나름의 신뢰 관계에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말입니다.”
렌즈를 손가락 끝에 올리며 부루퉁하게 말했다. 전에 세성에는 가도 된다고도 했었고 둘이서 MKC 먹으려고도 했었고. 지난 삼 년간 이래저래 관계를 가져 왔을 테니 유현이가 저 인간을 어느 정도 믿고 있다는 건 이해가 시발 역시 싫어.
“그래도 바로 얼마 전에 나 혼자 당신 집에 들어갔다가 봉변당했다고 화냈었는데. 그런데 이렇게 덥석 떠맡기고 가 버리다니.”
심지어 삐약이는 세성 길드원에게 맡기고 그냥 가 버렸다. 테이블 위를 종종종 돌아다니는 삐약이를 바라보다가 성현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렌즈 끼기 전이라 표정은 잘 보이지 않는다.
“거래에는 신용이 가장 중요하니 말일세.”
성현제가 내 앞으로 다가와 거울을 들어 주며 말했다. 살짝 넣으면 된다고는 했는데 자꾸 눈이 감긴다. 다른 손으로 눈을 뜨게 하려 해도 무심코 움찔거려 대서.
“도련님과는 하루 이틀 거래해 온 것도 아니라. 계약서까지 썼다면 상대를 확실하게 믿을 수 있겠다는 정도의 신뢰는 있지.”
확실하게 믿을 수 있다, 라. 그 소리에 배알이 꼴렸다. 낮은 스탯 탓이 크겠지만 나는 그 정도까지 안 믿어 주던데. 걱정부터 했지.
“그에 더해 내가 도련님을 여러모로 도와주기도 했었고.”
“도와줬다고요?”
“홀로서기를 시작하기엔 문제가 많을 나이였지 않나. 빠르게 성장해 주는 편이 더 재미있을 상대이기도 했고.”
적당히 잡초 제거 정도나 해 주었다고 말했다.
“물론 되레 짜증 내며 꼬박꼬박 갚으려 들었지만. 도련님이 눈치챈 건 전부 갚아 왔어. 귀여운 성격이라니까.”
“모르는 건 남았다는 거군요. 그건 제가 대신 갚겠습니다.”
필요하면 언제든 꺼내들어 약점 삼을 인간이니 내버려 둬서 좋을 건 없다.
“도련님은 싫어할 텐데.”
“그때면 제 동생 아직 미성년자였을 거고 보호자는 접니다. 그러니 제가 갚는 게 맞습니다. 괜히 유현이한테 예전 일 꺼내 들 생각 하지 마세요.”
렌즈를 넣은 눈을 깜박였다. 명색이 형이고 보호자인데 아무것도 못 했다는 사실이 속상하다.
“…어린애한테 나쁜 물 들이거나 한 건 아니겠죠.”
“물들일 것도 없었지.”
어째 기분 나쁜 뉘앙스의 대답이다. 성현제가 내게 책 두 권을 내밀었다. 양손에 들린 책은 각각 ‘올바른 육아를 위한 부모의 마음가짐’과 ‘빈 둥지 증후군에서 벗어나기’였다. 뭐야, 이게.
“마음의 여유를 위한 독서 타임이라네.”
“책 선정이 뭐 이럽니까.”
자기계발류나 소설, 시집 같은 걸 줘야 하는 거 아니냐. 둘 중에서 올바른 육아 어쩌고를 집어 들었다. 할 일 많은데 언제까지 여기 붙잡혀 있어야 하나. 유현이는 또 뭔 일 치려는 생각인 걸까.
탈출하고 싶다. 집에 보내 줘.
‘은신 스킬 쓰면 빠져나갈 수 있을 텐데.’
물론 S급 헌터인 성현제에게는 먹히지 않는다. 저 인간만 비켜 주면 튈 수 있는데. 책을 대충 뒤적이며 성현제를 올려다보았다.
“계속 제 옆에 붙어 있을 겁니까? 길드장 주제에 너무 한가하시네.”
“그 길드장은 지금 던전 공략 중이라. 점심은 뭘 먹겠나. 먹고 싶은 게 있다면 뭐든 말하게.”
“저 다니던 초등학교 앞 분식점에서 팔던 떡꼬치가 먹고 싶네요. 십 년 전에 문 닫았지만.”
“미안하지만 점심은 시간이 빠듯하고, 저녁때까지 준비해 주지.”
뭘 준비해, 미친놈아.
“됐거든요. 엄한 사람들한테 민폐 끼칠 생각 하지 마십쇼.”
뭔 말을 못 해. 차라리 세성 길드장이 직접 낚아 온 자연산 활어 회를 요구할 걸 그랬나. 회 별로 안 좋아하지만 낚시하러 간 사이에 튀면 되니까. 물론 그런 뻔한 요구는 던전 공략 중 운운하며 거절하겠지만.
쓸데없이 한가한 세성 길드장은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덕분에 세성 길드 건물 내에 얼마나 많은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그걸 알아서 뭐 해.
상급 헌터들은 외부의 각종 시설을 이용하기엔 불편한 점이 많았다. 일단 몸 자체의 내구성이 높다 보니 머리카락도 쉽게 못 잘랐다. 철사 수준은 아니지만 힘도 더 들고 염색이나 펌 등도 일반적인 수준으론 불가능하기에 길드 내에 전문 미용실이 따로 있었다.
그러고 보니 유현이도 화염 저항 조절 가능해질 때까지 머리 손질을 제대로 못 했다고 했었지. 열기를 무시하니 당연히 약간 곱슬진 머리를 펼 수도 없었다.
“이렇게 막 돌아다녀도 되는 겁니까?”
“여기서 새어 나가는 말 정도는 쉽게 막을 수 있으니 걱정 말게.”
보는 눈이 제법 많은데 진짜 괜찮은 건가. 하긴 내가 걱정할 바가 아니다. 코메트가 성장할 때를 대비한 사육장도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성체 가시날개암룡이 넉넉하게 지낼 만큼 넓은 사육장에 전면 유리창을 열어 바로 날아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건강에는 적당한 운동이 필수라며 전문 트레이너 붙여 주고 길드 내 의료시설에서 간단한 건강검진도 받았다. 자세하게 검사해 보자는 건 마음을 다해 거절했다. 그래도 피는 뽑혔다.
“전 아직까지 멀쩡합니다. 나이가 몇인데.”
서른 살까지 건강에는 별문제 없었다. 외상은 입었지만.
그리고 저녁에는 다른 음식들에 더해 떡꼬치가 나왔다.
“…진짜로 그 분식집 주인 찾아내서 만들게 한 건 아니죠?”
“다행히 주인 내외 모두 건강하다더군.”
유현이에게 보내 주기로 약속했다면서 내가 밥 제대로 먹고 있다는 증거 촬영을 하며 성현제가 말했다. 건강하시니 참 다행이긴 하다만.
“정말 대령하길 바라고 한 말 아니라는 거 잘 아실 양반이 왜 쓸데없는 짓을 합니까.”
“할 수 있는 일을 안 할 필요는 없지. 어려운 것도 아니고. 좀 더 밝은 표정을 지어 보게. 이러다 계약 파기당하겠어.”
파기당하는 건 상관없지만 동생 놈 걱정시킬 수는 없다. 표정을 펴려고 애쓰며 삐약이에게 마석을 먹였다. 삐약아, 공간이동 스킬 동반이동은 안 되는 거냐. 시도라도 한번 해 봐 다오.
“제 동생 관련 소식은 없습니까?”
“일 관련은 입도 벙긋 안 하기로 했다네.”
“궁금하고 답답하고 걱정되어서 체할 거 같습니다만.”
“소화제를 준비해 두지.”
“전화라도 하게 해 주세요.”
내 휴대폰은 압수당한 지 오래였다. 노아와 명우에게 전화하려다가 빼앗겨 버렸다. 감옥에 갇히기라도 한 거 같다, 갑갑해 죽겠다고 투덜거린 끝에 겨우 휴대폰을 돌려받았다. 동생 놈에게 전화를 걸자 이내 받는다.
“유현아, 얌전히 있을 테니까 집에 돌려보내 주면 안 되냐. 노아 씨 일도 최대한 미루고 쉴게.”
[안 돼. 조금만 더 거기 있어.]“야! 너, 위험한 짓 하려는 건 아니지?”
내 물음에 동생 놈이 작게 웃었다.
[걱정 마. 던전 밖에서 내가 위험해질 일은 없으니까.]그야 그렇지만. 성현제나 리에트 정도가 아니고선 유현이를 해칠 사람은 없다. 태생 S급이 두 명 더 있긴 하지만, 갑자기 튀어나오진 않을 테고. 설사 튀어나와도 자기 한 몸 정도는 지킬 수 있겠지. 동급이니까.
“그래도 엉뚱한 짓 하면 안 돼. 밥 잘 챙겨먹고. 집에 일찍 들어가. 밖이냐?”
[응. 곧 집에 갈 거야.]“그래. 웬만하면 나 좀 얼른 데려가 주라.”
[얌전히 잘 지내면.]동생 새끼 형한테 말하는 것 좀 봐라. 그래도 목소리를 들으니 안심이 되었다. 통화가 끝나자 성현제가 다시 휴대폰을 가지고 갔다.
“이제 가벼운 저녁 산책 후 씻기고 재우면 오늘 일정은 끝이라네. 열한 시 이전에 취침 요망이라더군. 자장가 불러 줘야 하나.”
“됐거든요.”
자장가는 무슨. 오던 잠도 달아나겠다. 그리고 그날 밤에, 불청객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