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안개바다 일족 (1)
어릴 적의 기억이라니,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물음이었다. 성현제는 지면을 통해 소량의 전류를 흘려보내며 입을 열었다.
“인터뷰는 홍보팀에 연락해서 스케줄을 잡도록. 내년 이맘때쯤이면 시간이 날 것도 같군.”
“매정하군요.”
한유진의 모습을 한 것의 대답에 성현제가 대놓고 실망 어린 표정을 지었다.
“흉내 내는 것은 겉모습뿐인 건가.”
돌아온 반응이 영 재미없다. 퍼져나간 전류에 에블린을 비롯한 협회 헌터들의 기척이 감지되었다. 안개에 휩싸이기 전과 위치가 달라지긴 했지만, 거리상으로는 여전히 가깝다. 그럼에도 쥐죽은 듯 조용하다는 것은 주위의 소리가 차단되었다는 뜻일 터였다.
“뿐이라기에는 완벽하게 닮았을 텐데요. 그러고 보니 알아채는 게 빠르더군요.”
“그야 내 아이템이라면 나를 보자마자 늦었다고 대뜸 탓하기부터 할 테니까. 몰래 도망친 건 신경도 쓰지 않고서 말이지.”
세성 길드장님도 교통체증에는 별도리 없나 보군요, 헬기는 그새 엿 바꿔 먹었습니까 등등. 그러곤 당연하다는 듯이 혀끝으로 이리저리 부려 먹으려 들 것이다. 제 가치를 잘 알고 있는 만큼 거리낌 없이, 그러면서도 일정 선 밖으로는 절대 발 디디지 않으면서.
“계속 시시하게 굴 거라면 다른 한가한 사람을 찾아보게. 고작 S급 따위가 지각까지 해서야 F급님 뵐 면목이 없어서 말이야. 내 프로필이 궁금하다면 세성 길드 홈페이지 방문을 추천하지.”
기본적인 것은 나와 있다고 말하며 휘어지는 눈매가 싸늘했다. 이 이상 붙잡혀 있기엔 시간이 아깝다는 기색이다.
“그래도 성현제 씨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인데 대접이 별로군요.”
“겉모습만 가지고서 뭘 할까. 반응이라도 비슷해야 흥미가 일지.”
차르르, 더 상대하기 귀찮다는 듯 금빛 사슬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상한 수색자의 사슬. 그것을 본 효도중독자, 한유진의 껍데기를 쓴 루가 폐야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사슬의 원주인을 조금도 기억하지 못하는 겁니까. 아무 이유 없이 당신 손에 들어가진 않았을 텐데.”
“그때 말한 초승달인가? 해마다 두세 번 정도는 보고 있지.”
“해마다 두세 번이라고요? 그쪽에서 연락해 오는 겁니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 라고까지 떠먹여 줘야 하는 건가.”
“하늘?”
“그쪽 동네엔 달이 없나 보군.”
맥 빠지는 대화라며 가볍게 투덜거린다. 이어 역시나 가볍게 손끝이 움직이고.
콰득!
쏘아진 사슬의 끝이 한유진의 가슴을, 진짜라면 마석이 있었을 부분을 단숨에 꿰뚫었다. 등 쪽으로 빠져나간 사슬 끝이 목을 휘감는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몰골이 끔찍했으나 한유진의 얼굴은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눈에 거슬린다.
“진심으로 진짜가 그리워지는군.”
“어릴 때의 기억이 있습니까? 어린 시절이 진짜 있긴 했어요?”
“왜 자꾸 묻는지 모르겠지만 귀엽고 잘생긴 아이였지. 무척이나 말이야. 지금 모습을 보면 충분히 짐작가지 않나.”
진짜 한유진이었다면 대답을 듣는 순간 오만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렸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잘난 건 인정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겠지. 하지만 가짜는 관찰하듯 성현제를 바라보았다.
“옮긴 게 아니라 심은 건가? 혹은··…·.”
나직한 중얼거림 직후 한유진의 모습이 사라지고 흐릿한 해파리와 같은 형체가 나타났다.
“초승달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지만 안 되겠지. 좀 더 조사가 필요하겠어. 이 세계엔 의외로 신기한 것들이 많네~”
웃음기 섞인 말을 더 들을 필요 없다는 듯이, 안개를 꿰뚫고 황금빛 벼락이 내리쳤다.
* * *
쿵, 쿠궁
검푸른 거인, 최석원이 휘청거리는 몸을 바로잡으려 했다. 균형을 잡느라 비틀거린 걸음걸음마다 아스팔트가 갈라지고 건물이 장난감 블록처럼 짓밟혔다.
“스탯 SS급입니다, 조심하세요! 리에트 너도 섣불리 덤비지 마!”
최적화 스킬은 S급 수준 그대로였지만 혹 모른다. 최적화 스킬이 아닌 새로운 SS급 스킬이 생겨났을 확률도 있었다.
‘공유 스킬은 대기 시간이 아직 남아 있고.’
사용한지 딱 일주일 지났다. 아직 반일을 더 기다려야 다시 쓸 수 있었다. SS급 스탯이라고 해도 리에트의 돌진에 밀려나는 것으로 보아 상대 못할 수준까지는 아닌 듯했다. 그래도 쉽지는 않겠지만.
일단 건드려 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공유 스킬 쿨타임 찰 때까지 시간 끌며 버티면 된다. 예림이가 있으면 좋았을 텐데. 성현제 이 인간은 더럽게 느리네. 상황 봐서 김성한도 불러야겠다. 현아 씨와 한신 길드장도 부를 수 있으려나. 요 며칠 정보가 차단된 채라 던전 공략 들어갔는지를 알 수가 없다.
“우선 리에트와 소영-”
말이 나오다 말고 끊겼다. 유현이가 돌연 나를 제 어깨에 들쳐 멘 탓이었다.
“야, 뭐 하는 거야!”
“내가 할 소리야. 일단 형을 피신시키겠습니다.”
유현이가 송태원을 향해 말했다. 아차, 이 녀석 기억 돌아오다가 말았지. 지금 동생 눈에 나는 막 각성한 스탯 F급으로 비칠 터였다. 스킬은 물론이요, 은혜에 대해서도 까맣게 모르니 내 행동이 이상하게 보이겠지.
“유현아, 나 피해 무효화 아이템 있어. 최대 L급.”
“…뭐?”
나직하게 한 말에 동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아이템이 있다고?”
“내 전용이야. 그러니 이 중에선 내가 제일 안전해.”
걱정할 거 하나 없다는 말에 유현이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못 믿어 하는 유현이에게 송태원이 거들어 말했다.
“한유진 씨의 말이 맞습니다. 그에 더해 A급 던전 공략과 던전 브레이크 처리까지 끼어들었지요. 이번 일도 새삼스럽지는 않습니다.”
아니, 지금 그런 것까지 알려 줄 필요는 없지 않나.
“그게, 무슨…….”
송태원의 말에 유현이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상당히 크게 충격 받은 얼굴이었다.
“F급이라며. 그런데 내가, 정말로 내가 형을 그냥 두고만 보고… 있었다고?”
“유현아.”
“어째서 그걸, 난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건데!”
“뭘 했기는. 당연히 날 보호해 주고 있었지.”
최대한 차분하게 말해 주었다. 분명 많이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간 정말 여러 가지 변화가 생겨났으니까. 해연에 S급 헌터가 둘이나 더 생기고 마수 사육 시설이 만들어진 데다가 기승수들과 명우, 노아, 또 세성과의 관계에… 음, 성현제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 안 하는 편이 낫겠다. 그 인간 괜히 오라고 했나.
“최근에도 네가 내 경호원 노릇까지 해 줬었어. 외모 바꿀 수 있는 아이템 써서 내내 같이 다녔었는데. 근데 안경은 어쨌냐.”
최석원을 만나러 갈 때 썼다고 노아 씨가 말했는데 안 보인다.
“…뭔지 몰라서 인벤토리에 넣어 놨어. 계속 같이 다녔다고.”
“그래. 야, 일단 좀 내려놔 봐.”
최석원은 과하게 커진 몸뚱이에 아직 적응하지 못했는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그래도 먼저 덤벼들 때까지 구경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현이가 머뭇거리며 나를 내려놓아 주었다. 혼란 속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동생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잘못될 일은 없어. 끽해 봐야 자잘한 상처 정도나 입겠지. 피해 무효화에 최저선도 있거든. 지금은 나보단 차라리 네가 더 위험하다고. 푸른 버들잎 응용법은 기억하고 있어?”
“어?”
“그거 이파리 밟고 다닐 수 있어. 비행 스킬 대용으로 사용 가능하다. 능숙해지면 비행 스킬보다 더 나은 점도 있을 거고.”
“비행 스킬 대용이 된다고? 진짜?”
유현이가 무심결에 기뻐하다가 아, 하고 다시 표정을 굳혔다. 저번에 말해 줬을 때도 좋아라 하더니 비행 스킬이 많이 고프긴 했던 모양이다. 그에 더해 이린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정령의 불꽃과 그것을 받아들여 무기화했을 때의 감각을 선생님 스킬을 써 가며 가능한 자세히 전하였다.
그사이, 거인이 제 몸을 느릿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쪽 발이 크게 내밀어지며 걸음을 옮긴다.
“바리케이드를 벗어나게 해선 안 됩니다.”
송태원이 휴대폰을 꺼내들며 말했다.
“일단 대피 반경은 최대한 늘리도록 하겠습니다.”
“김성한 씨에게 연락해 바리케이드 밖에서 대기 부탁드리겠습니다. 한신과 브레이커도 부를 수 있을까요?”
“한신 길드장은 던전 공략 중이고, 브레이커 길드장은 몬스터 경매 참가를 위해 출국했습니다.”
문현아 씨 언제 해외 나가셨대. 나와 송태원의 대화를 듣던 유현이가 의아해하며 끼어들었다.
“SS급 상대라면 김성한은 큰 도움 못 될 텐데.”
“성한 씨 S급으로 성장했어.”
유현이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해연에 S급 헌터가 둘이야?”
“셋이다.”
“…뭐?”
“피스까지 포함하면 넷이지.”
“…피스는 또 뭔데.”
우리 길드장님, 자기 길드 전력 파악도 안 되어서 어쩌냐. 최석원 저 새끼는 왜 남의 동생 기억을 훔쳐 가 가지곤 애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어.
노아가 전용화해 날아오르고 리에트가 몸을 낮추며 거인의 뒤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이어 검은 표범처럼 발톱과 이를 드러내며 뛰어오른다.
카가각!
-으, 이거 엄청 단단한데?
흑룡의 송곳니가 검푸른 갑주를 길게 긁었다. 하지만 희미한 실선이 그어지는 것으로 끝이었다. 리에트가 공중에서 크게 회전하며 네 다리로 거인의 몸뚱이를 강하게 찍어 눌렀다.
쿠궁, 거인의 한쪽 무릎이 땅에 닿으며 둥근 구덩이를 만들어 낸다. 거대한 기둥과도 같은 팔이 자신을 짓밟는 용을 향해 휘둘러졌으나 리에트는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날렵함으로 공격을 피했다.
-아직은 느려서 할 만한데 빨라지면 답 없겠어.
리에트가 냉정하게 말했다. 역시 공유 스킬 사용 가능해질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아.
“리에트, 소영 씨! 지금 드래곤라이더 스킬 스탯 통합 어느 정도 된 상태입니까?”
“대략 6할 정도예요!”
강소영이 크게 소리쳐 대답했다. 6할이라. 둘이 꽤 잘 맞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절반 조금 넘는 정도였다.
“소영 씨, 지금 스킬 하나 쓸 테니까 거부하지 마세요! 리에트 너도야.”
이어 선생님 스킬을 둘에게 사용해 서로 감각을 연결시켜 주었다. 드래곤과 그 라이더가 순간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곤 동시에 놀라 외친다.
-스텟 봐! 자기야, 대체 뭘 한 거야?
“세상에, 백 프로예요, 백 프로! 리에트 언니 스탯 전부 다 합쳐졌다고요! 한유진 님, 진짜 사랑해요!”
-소영아, 너 빨리 S급 돼야겠다!
“둘 다 S급 스탯이면 진짜 죽여주겠네요! 생각만으로도 진짜 최고예요, 언니!”
아니, 소영 씨, S급 되는 건 천천히 하세요.
혹시나 싶었는데 선생님 스킬로 드래곤라이더 스탯 통합률을 올리는 것이 가능했다. 그것도 단번에 백 퍼센트라니 예상보다 더 효과가 뛰어났다.
끼기기긱
그때 귀에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거인이 크게 발을 굴렀다.
쿠궁!
땅이 거세게 흔들렸다. 넘어질 뻔한 걸 유현이가 잡아주었다. 다시 한번 쿠구궁, 땅이 흔들리고.
콰과과과!
지면이 창날처럼 치솟았다. 길게 선을 이어 무시무시하게 솟아오르는 돌기둥을 이리저리 뛰며 피한다. 여유 있는 몸놀림이었지만 피하는 방향이 한쪽으로 몰아진다고 생각한 순간.
리에트의 움직임이 두텁게 솟은 대지의 벽에 가로막혔다. 그녀의 힘으로 못 뚫을 정도는 아니다. 쉽게 부술 수도, 잘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아무런 방해가 없을 때의 일이었다.
-이 새끼가!
순간적으로 멈추고 만 리에트의 꼬리를 거인의 손이 움켜쥐었다. 가시가 까득까득 손바닥을 할퀴고 독이 흘러넘쳤으나 최석원은 아랑곳 않고 그대로 흑룡을 끌어당겼다.
“형은-”
반사적으로 나서려던 유현이가 나를 돌아보았다.
“노아 씨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보조계 힐러야.”
재빠른 대답에 동생이 불안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푸른 버들잎이 흩날리고 한유현이 송태원을 붙잡고 위로 뛰어올랐다.
잎을 밟으며 공중을 달려 순식간에 돌벽을 넘어선다. 두 사람의 아래로 용을 끌어당기는 거인과 네 발의 발톱을 세워 버티는 리에트의 모습이 보였다. 바닥이 파이고 긁히는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유현이가 입을 열었다.
“스탯이 SS급이라곤 하나 저 정도로 타격이 없다는 건 아마도 저 갑주 자체가 스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길게 설명할 것 없이 송태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손에 검은 그림자가 맺히고 이어 유현이가 송태원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송태원의 몸이 아래로 빠르게 떨어짐과 동시에 유현이의 두 눈이 붉게 물들었다. 이린의 몸이 타오르듯 커지고 이내 거대한 불꽃의 창이 되어 손에 들린다.
직후, 송태원이 거인의 팔에 착지했다. 검은 그림자가 갑주를 두른 팔 위로 둥글게 퍼진다. 범위는 작았다. 그 조그만 과녁을 향해 창이 던져졌다.
약탈 스킬을 최대한 적용하기 위해 아슬아슬한 순간까지 버티던 송태원이 약간의 화상을 입으며 뒤로 물러났다. 거의 동시에 불의 창이 약화된 부분을 파고들었다.
카가각!
눈부실 정도로 새빨간 불길이 회오리친다. 갑옷을 녹이고 안으로 파헤쳐 들어가.
퍼버벙-!
무시무시한 열기를 뿜어내며 터졌다. 거인의 팔이 너덜너덜해지며 힘이 빠지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리에트가 보이지 않는 칼날을 휘둘렀다. 약화된 팔이 완전히 잘려져 나간다. 주위의 돌기둥과 돌벽 또한 칼날에 썩둑썩둑 토막 났다.
팔 하나를 잃은 거인이 쿵쿵대며 물러선다. 그리고 이내.
“재생해 버렸어요.”
강소영이 허무해하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잘려 나간 팔이 순식간에 되살아났다. 팔다리를 잘라 내는 건 소용없고, 역시 몸뚱이를 단번에 부숴야 하나.
이대로 스킬 공유가 가능해지는 아침까지 버텨 볼까, 아니면. 나는 노아에 의해 화상을 치료받은 송태원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