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61
161화 안개바다 일족 (2)
“송태원 씨!”
그를 부르며 노아에게 손짓했다. 노아가 눈치 빠르게 다가와 나를 들어 올렸다. 단숨에 날갯짓해 송태원과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주었다.
“약탈 스킬 말인데요.”
거인의 상태를 살피며 말했다. 팔을 잃었던 탓인지 최석원은 섣불리 덤비지 않고 리에트와 대치 중이었다. 검은 용의 전신에서 가시가 따다닥, 위협적으로 물결친다.
“분명 무기에 어리게 할 수 있었지요? 혹시 커다란 창을 다른 사람이 잡은 상태에서도 스킬 적용이 가능합니까?”
드래곤라이더 스킬을 가졌기에 강소영의 소유 무기 중엔 거창도 있었다. 중요한 기승수가 없어서 여태껏 제대로 쓸 일은 없었지만, 제법 비싼 값을 치르고 산 A급 무기가 인벤토리에서 썩어 가고 있다며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었었다.
“약탈 스킬이 적용된 채라면 저 갑옷을 충분히 뚫을 수 있을 텐데요.”
“불가능합니다.”
송태원이 딱 잘라 말했다.
“스며드는 약탈은 적용한 무기에도 효과를 발휘합니다. 무기의 스킬과 능력치는 물론 강도까지 하락시키기에 갑옷을 뚫기 전에 무기가 먼저 부서질 겁니다. 제가 중급 무기를 주로 사용하는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습니다. 무기의 성능보다는 내구도 위주로 고르죠.”
그마저도 몇 번 쓰지 못해 망가지기 십상이라 하였다. 양날의 검이라는 거로군. 송태원의 육체에는 스킬 다운용이 아니고선 효과가 없기 때문에 더더욱 맨손 격투 위주의 전투를 하게 되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약탈이 쌍방 적용된다면 SS급 스킬로 추정되는 저 갑옷 상대로는 S급 거창이라 해도 버티기 힘들지도 모른다. 단순히 찌르거나 베는 것이 아닌 돌격력까지 더해진 상태라면 무기에 가해지는 부담이 훨씬 커질 테니까.
약탈 스킬로 약해진 상태에서도 S급 장비 이상으로 튼튼한 창 같은 걸 어디서 구하… 아.
있다.
“형, 뭐 하는 거야?”
팔찌, 은혜를 벗어드는 나를 보고 유현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다가왔다.
“그거 벗으면 안 되잖아.”
“노아 씨와 함께 공중에 피해 있으면 돼. 저놈 날개는 없잖아.”
“그래도…….”
“바로 안전하게 피할게. 은혜야.”
– 삐잇.
푸른색 새가 포르르 나타났다.
“피해 무효화 스킬 적용만 안 될 뿐 단순한 무기로는 다른 사람도 사용할 수 있지?”
– 삑.
은혜가 대답하듯 울었다. 타인이 들고 휘두르는 것조차 안 된다면 애초에 팔찌를 빼앗길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여러 번 빼앗겼지.
“창으로 변해 줘. 최대한 커다란 돌격용 거창으로.”
파랑새가 다시 푸른 보석 안으로 들어가고 팔찌의 형태가 변하였다. 쭉쭉 길어지더니 내 키를 가볍게 넘어선다. 순식간에 늘어나는 무게를 감당치 못하고 얼른 바닥에 내려놓았다.
잠시 후, 반투명한 푸른빛을 띤 삼 미터쯤 됨 직한 거대한 창이 나타났다. 보석을 세공해서 만든 듯 빛을 품은 데다가 물결무늬까지 유려하게 새겨져 있다. 어딜 봐도 장식용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다시 말해 잘못 휘둘렀다간 와장창 깨지고 말 듯한 아름다운 창이었지만.
“튼튼함이 L급입니다.”
“…예?”
“절대 부서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반면에 저놈은 겨우 SS급이죠.”
자신 있게 장담했다. 현존하는 아이템 중에 가장 튼튼할 우리 은혜다. 약탈 스킬 적용해 봤자 S급 이상은 될 것이다.
“유현아, 거인 놈 시선 좀 끌 수 있겠어? 절대 무리하진 말고.”
“저 정도 속도라면 문제없어.”
“점점 빨라지는 거 같으니 조심해.”
이러니저러니 해도 스탯 SS급이다. 거대두꺼비 바바르처럼 방어에 집중되어 S급은커녕 중하급 헌터보다 느리고 둔한 경우도 있긴 하지만 저놈의 바탕은 최석원이다. 두터운 갑주 차림이라곤 하나 인간형인 만큼 결코 느리진 않을 터였다.
유현이가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이린이 동생의 팔을 타고 빙그르 돌며 화르륵 불길로 화했다. 정령의 불꽃이 하늘하늘 퍼져 나가더니,
푸른 버들잎의 이파리들을 집어삼켰다. 수백 수천 장의 불의 꽃잎이 흩날린다.
‘저런 것도 가능했구나.’
흑염을 쓸 때는 본 적 없는 광경이다. 원래 적의 시야 교란용이던 푸른 버들잎이 불꽃이 되어 더더욱 어지럽게 거인의 주위를 맴돈다. 몸뚱이는 잎이 닿아도 치직 소리만 내고 사그라졌지만, 안개로 이루어진 눈은 달랐다. 불이파리가 닿을 때마다 파 먹히듯 증발된다.
기기긱, 거인의 팔이 휘둘러졌지만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이파리를 다 막아 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게 최석원의 시야를 가리는 사이.
이린이 훌쩍 아래로 뛰어내렸다. 조용히 땅으로 스며든 불도마뱀이 거인의 발치로 다가가 막대한 화력을 뿜어낸다. 땅이 물렁하게 녹고 무거운 다리가 아래로 푹 꺼졌다.
‘예림이 있으면 저대로 확 굳혀 버릴 수 있을 텐데.’
유현이 녀석, 잘하는구나. 기억은 없어도 몸이 익힌 건 그대로라서인가 이린을 능숙하게 다루고 있다. 걱정 안 해도 되겠네. 비틀거리는 거인으로부터 시선을 떼어 흑룡을 향해 외쳤다.
“리에트, 소영 씨!”
내 부름에 리에트가 훌쩍 뒤로 뛰어 이쪽으로 다가왔다. 용의 머리가 숙여지고 그 위에 있던 강소영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리에트의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여느 기승수처럼 등에 타는 대신 머리에 안장 같은 걸 얹었다. 가시 사이로 줄을 걸치고 묶어 상당히 튼튼해 보였다. 창을 들고 돌격하기도 딱 좋은 위치다.
“이 창을 들고 공격하세요.”
“그걸요? 안 부서질까요?”
– 툭 치면 산산조각 날 거 같은데.
“안 부서집니다. 다른 능력은 없지만, 내구만큼은 L급이에요. 여기에 송태원 씨의 스킬을 적용할 겁니다. 아까 보셨지요? 갑옷 약화하던 거.”
“네! 근데 진짜 내구도가 L급이에요? 엄청 튼튼하겠네요.”
“튼튼한 거 말곤 없지만요.”
다른 무기들도 단단한 건 마찬가지라 이런 특이한 상황이 아니고선 큰 쓸모는 없다. 스탯 올려 주고 유용한 스킬도 달려 있는 무기 내버려 두고 안 부러지기만 할 뿐인 몽둥이 사용할 이유가 있을까.
송태원이 창을 들고 리에트의 머리 위로 뛰어올랐다. 창을 받아 든 강소영이 낚싯대 휘두르듯 가볍게 앞을 향해 겨누었다. 창의 손잡이 끝부분을 용의 가시 틈새에 끼워 단단히 고정했다.
그 옆쪽으로 송태원 또한 자리 잡았다. 그의 손이 창에 닿고 검은 그림자가 푸른 창날을 타고 오른다.
“노아 씨, 스탯 대여 아직 안 쓰셨죠? 강소영 씨에게 근력 대여 부탁드려요. 보조 스킬도 최대한 걸어 주시고요.”
– 네!
대답한 노아가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날개만 꺼내 든 채다.
“팔찌가 없으니 인간형이 더 안전할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안아 들고 공중으로 떠오른다. 확실히 은혜가 없으면 용의 등에 타고 있기 좀 불안하지. 용인 채로 들리기엔 발톱에 다칠 수도 있고. 도중에 노아에게로 옮겨가 있었던 벨라레가 내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 쉬잇.
“너도 갑작스럽게 고생이다.”
그냥 잠깐 나왔다가 바로 돌아갈 생각으로 데리고 온 거였는데.
“준비됐어요, 언니!”
강소영이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어지간히도 흥분했는지 뺨이 살짝 붉다. S급 헌터의 스탯을 고스란히 얻은 데다가 노아의 근력 스탯까지 더해졌으니 주체 못 할 정도로 힘이 넘쳐나겠지.
거기에 역시나 스탯치가 늘어난 리에트와의 조합이다.
– 카르르!
흑룡 또한 즐거운 기색이 담긴 으르렁거림을 토해 냈다. 그리곤 머리를 낮추며 네 다리에 힘을 준다.
거인은 유현이에 의해 아직 발 묶여 있는 상태다. 크고 느린, 그야말로 완벽한 표적.
창날 끝에 검은빛이 일렁이고 흑룡의 발이 땅을 짓누른다. 비늘 아래 무서울 정도로 꽉 들어찬 근육이 느릿이 꿈틀거렸다.
직후, 잔뜩 당겨진 활시위가 놓아진 것처럼 검은 몸뚱이가 앞을 향해 쏘아졌다. 거인과 용. 둘 사이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진다.
유현이가 불길을 거두고 강소영이 이를 꽉 깨문다. 창의 끝이 거인의 품을 파고들기 직전, 송태원이 그렇잖아도 무거운 거창의 질량을 최대한으로 늘린다.
그리고.
콰과광!!
어마어마한 충돌음이 천지를 울렸다. 거창 돌격이라는 단순한 물리력의 부딪침이건만 수십 개의 폭탄이 동시에 터진 듯 온 사방이 흔들린다.
창의 끝은 정확히 거인의 가슴을 두드렸다. 갑옷이 움푹 패이다가, 약탈 스킬의 효과가 스며듦과 동시에 산산이 찢겨 나갔다. 회오리에 휘말린 종잇장처럼 갈기갈기 찢어지는 갑옷 안쪽으로 푸른 창이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안으로, 또 더 안으로.
이윽고 거대한 구멍이 뚫리며 거인의 몸뚱이가 절반으로 갈라졌다.
콰아아아─
거인의 몸을 꿰뚫고도 남은 힘이 길게 내달리며 직선상의 건물들을 줄줄이 쓸어버린다.
“노아 씨, 치유 스킬요!”
저 정도의 공격이라면 반발력도 장난 아닐 터다. 아니나 다를까, 창수인 강소영의 두 팔이 모조리 부러졌다. 창을 지탱하던 리에트의 가시 또한 꺾여 나간 채였다. 송태원 역시 창에 대고 있던 손이 거의 으스러지다시피 하였다.
둘은 그렇다 쳐도 강소영은 포션을 꺼내들 수도 없는 상태였기에 근처로 날아간 노아가 얼른 치유 스킬을 써 주었다.
쿠르릉.
찢기다시피 반 토막 난 거인의 몸뚱이가 무너져 내린다. 입을 크게 벌리고 있던 강소영이 활짝 웃었다.
“지인짜 최고예요! 오십 년 뒤에 죽어도 여한이 없을 거 같아요!”
…오십 년 뒤가 뭐야. 백세 시대에 A급 헌터치곤 단명이랄 수 있겠지만 여한 소리까지 나오기엔 너무 긴 세월 아니냐.
– 우리 스위티, 욕심도 없지.
용이란 용은 죄다 끌어안겠노라 당당히 선언하신 분이십니다만.
리에트의 머리 위로 내려서자 창이 다시 팔찌로 변했다. 은혜를 팔에 차며 마나포션을 꺼내 마셨다. 짙게 몰려오는 피로감을 느끼며 선생님 스킬을 껐다. S급이 너무 많아. 강소영도 지금만큼은 S급 수준이고.
당장 집에 가서 눕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성현제 이 인간은 여기까지 걸어서 오고 있나. 완전히 지각이다. 파티 끝났으니 댁에 돌아가시라고 문자나 넣어 줄까.
‘유현이 기억은 어떻게 되찾지.’
알아서 돌아왔다면 좋겠는데. 고개를 돌려 유현이를─
구구궁.
무언가 묵직한 굉음이 귀를 후려쳤다. 동시에 몸이 공중을 날았다. 바닥에 처박히고 나서도 얼른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억지로 고개를 들었다. 짙은 피 냄새가 코를 찌른다. 저만치 멀리,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거인이 쓰러진 자리다. 그를 향해 떡잎 스킬을 썼다.
[각성자 ? 최석원(무해의 일족)현재 스탯 등급 SSS
각성 가능 스탯 등급 A~S]
순간 눈을 의심했다. 스탯 등급 SSS. 거인이었을 때보다 한 단계 더 올라갔다. 공포저항 메시지창이 눈앞에 떠오른다. 공기 중을 떠도는 피 냄새가 머릿속을 할퀴는 기분이었다.
아직, 다른 메시지창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니 무사하다.
“…최석원!”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놈이 내 쪽을 바라본다. 이를 악물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쓰러진 흑룡이었다. 한쪽 어깻죽지가 깊숙이 갈라진 채 피를 쏟아내고 있다. 정신을 잃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리에트는 스킬의 영향인지 단순히 기운이 빠진 건지 일어나지 못한 채 황금색 눈을 번득이며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 옆으로 강소영도 보였다. 땅에 굴러떨어진 채 정신을 잃었다. 송태원은 그 옆에서 간신히 상체만 일으킨 채다. 어딜 다쳤는지는 모르겠지만 핏자국이 보인다.
그리고 노아는 저만치 잔해 사이에 쓰러져 있었다. 금빛 날개가 힘없이 늘어져 있다. 움직임은 없지만, 마지막 보은이 발동되지 않았으니 살아 있을 것이다.
“그 정도 힘을, 아무 대가 없이 얻지는 않았겠지.”
최석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놈은 거인의 것과 비슷한 갑옷 차림이었다. 드러나 있는 목 위의 피부가 시체처럼 창백하다. 머리카락은 안개가 뭉친 듯 탁한 푸른색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두 눈 또한 인간의 것이 아니다.
“말해 보시지, 뭘 내놓았는지.”
숨을 삼키며 시선을 다시 옆으로 돌렸다. 동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의식을 잃지는 않았다. 웅크리고 앉은 채 핏기 없는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주위로 피가 스며든 흔적이 보인다.
속이 서늘해졌지만 아직은 괜찮다.
다시 최석원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분명 작은 것은 아닐 텐데 내가 도와줄 수도 있거든.”
“도와줄 수 있다고?”
최석원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쉰 것처럼 메말라 있다.
“네놈이 어떻게.”
“네가 계약한 그 해파리와 안면이 좀 있어서. 가끔 만나는 사이야. 지금 꼴을 보니 정상은 아닌 듯한데 그대로 몬스터라도 되어 버리는 건가? 아니면 마지막 불을 활활 태우는 거라거나.”
내 말에 놈이 입술 끝을 비틀어 웃었다.
“처음에는 남은 생명의 절반. 지금은 하루 정도 시간이 남았다. 처음 건, 빌어먹을. 함정이나 다름없었어.”
“함정은 무슨. 평범한 사람은 내 목숨을 바칠 테니 최강이 되게 해 달라고 외쳐 봤자 중2병이냔 소리나 들을 텐데.”
F급은 저런 계약 받아 주지도 않아요. 최석원의 일그러지는 얼굴을 감상하며 말을 이었다.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줄까?”
놈이 움직였다. 순식간에 가까워져 내 멱살을 붙잡고 거칠게 당긴다.
“형!”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발 얌전히 있어라.
“엘릭서나 저주 해제 같은 건 소용없다. 단순히 수명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그 여자가 가지고 가는 거라더군.”
“그럼 더 쉽겠네. 해파리가 나를 무척이나 탐내고 있거든.”
목조이니까 멱살 좀 놓으라고 놈의 손을 툭 치며 말을 이었다.
“네놈보다 훨씬 더. 그러니 날 가져다주고 협상해.”
살려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