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63
163화 안개바다 일족 (4)
동생은 손이 별로 가지 않는 어린애였다. 울거나 떼쓰는 일이 거의 없었다. 어릴 때도 그 정도였으니 나이가 들고서는 더더욱 눈물 보기가 힘들었다. 나이가 들었다, 라고 해 봐야 여전히 어린 십 대였지만.
그것은 내 손을 떠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티브이 화면 속에서나 주로 마주칠 때 즈음에는 정말로 눈물 따위 볼 일이 없었다. 앳되던 얼굴은 순식간에 흔들림 없는 어른이 되었다. 되었다고 생각했다.
“유현아.”
가늘게 떨리는 몸을 마주 끌어안았다. 짧게 숨인지 눈물인지를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쩌지. 어릴 때는 어떻게 했더라.
나도 어린 건 마찬가지였던 때라 별달리 뾰족한 수는 없었다. 그냥 끌어안았다. 부둥켜안고 서툰 말로 달래 주려 애쓰기도 하고, 더 어릴 때는 같이 울어 버린 적도 있었다. 내가 어쩔 줄 모르고 있으면 저 알아서 눈물을 그치고 이젠 안 울어 형, 훌쩍이며 말하던 동생이었다.
그랬었건만.
“난 괜찮아. 조금 긁혔을 뿐이야.”
털끝 하나 다친 곳 없이 멀쩡하게 나가서 안심시켜 줄 생각이었는데. 저놈의 개새끼들이 방해를 했네.
“그놈은 죽었어. 걱정할 거 없어.”
“…….”
“다친 곳은 괜찮아? 치료 다 했어?”
“…형.”
“그래, 유현아. 괜찮아.”
“…안 괜찮아, 전혀 안 괜찮아!”
젖은 목소리가 소리쳤다.
“속이 너무 아파서, 죽을 거 같아. 형, 나는…….”
말하다 말고 작게 숨을 헐떡인다. 나까지 목이 막히고 말라붙는 느낌이 들었다. 어쩔 줄 몰라 하다가 퍼뜩 빼앗긴 기억을 떠올렸다. 한 손으로 동생의 등을 토닥여 주며 인벤토리에서 병을 꺼내었다. 유현이의 기억 구슬만 따로 담은 유리병이다.
“네가 빼앗긴 기억이야. 기억이 돌아오면 좀 괜찮아질 거다.”
던전에 들어가면 도움받을 수 있는 상대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아무것도 모른 채 날 보내야 했을 때보다 마음이 편해질 것이다. 부디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랐다.
유현이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가가 발갛다. 깨물었는지 입술에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온갖 서러움이 다 묻어났다. 그 엉망인 얼굴에 무척이나 속이 상했지만, 동시에 달갑고 안심되기도 하였다.
혼자 다 집어삼키고 멀쩡한 척 태연한 얼굴을 하는 것보다는 이편이 더 낫다. 더 보기 좋다.
“기억 되찾고 집에 가자.”
“…집에?”
“응, 집에. 옛날 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집이야.”
“우리 집……?”
“그럼 우리 집이지 누구 집이겠냐.”
우리 집. 동생이 멍하게 중얼거리는 사이 유리병을 열어 구슬을 꺼내었다. 유현이의 몸에 가져다 대자 이내 흡수되어 사라진다. 물기 어린 눈이 두어 번 깜박였다.
“기억나? 내가 한 짓 그렇게 위험한 거 아니었지?”
잠시간 말이 없었다. 갑자기 돌아 온 기억에 혼란스럽기라도 한 건지 입을 꾹 다문 채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래도 조각조각 난 듯한 표정이 점차 안정을 되찾아 간다. 위태롭게 흔들리던 눈빛도 그럭저럭 가라앉았다.
“…그래도 싫어.”
볼멘 목소리가 한참 만에 대답했다. 동생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진다. 얼굴 펴라고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S급이라고 주름 안 지는 건 아니다. 아마도.”
5년 후에도 다들 팽팽해서 모르겠다. 성현제 그 인간도 여전히 반들반들했었고.
“진짜 미칠 거 같았어. 죽을 거 같았어.”
“응.”
“던전 들어가기 전에 그 자식이 마음을 바꿀 수도 있었잖아. 그리고 만약에, 제대로 도움받지 못했다면. 그럼, 던전 안에서.”
진정되었나 싶던 목소리가 또다시 바들바들 떨리며 힘겹게 이어졌다.
“…던전 안에 남으면, 흔적 하나 없이, 사라져 버리는데. 나는, 형.”
“미안.”
“…미안하단 소리 하지 마. 또 안 그럴 거 아니잖아. 형은.”
“미안해. 하지만 유현아, 난 안 죽어.”
앞날을 어떻게 안다고 오만한 소리였지만, 진심이었다.
“절대 못 죽어. 무슨 일이 있어도 아직은 안 돼. 못 죽어.”
어떻게 건진 목숨인데.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건만 감히 어떻게 끝을 낼까.
“적어도 너 결혼하는 건 봐야지. 예림이도.”
혼주석에 앉는다는 중요한 의무가 있다. 인벤토리에서 삐약이용 손수건을 꺼내 동생 얼굴을 닦아 주었다. 이러는 게 대체 몇 년 만이냐.
“내가 약해빠진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무모한 건 아니다. 답 없는 상황에 몸 던지진 않아. 최소한 내 목숨은 붙여 놓을 자신 있을 때만 움직인다고. 그리고 말이다.”
어느새 튀어나온 이린이 손수건 끝을 물었다. 달라는 듯 당기더니 꿀꺽 삼켜 버린다. 그래, 너도 오늘 수고 많았다. 얼마든지 먹어라.
“네가 그랬잖아. 무슨 일이 있어도 나 구해 주겠다고. 난 너 믿고 있어.”
동생의 표정이 느슨히 풀어졌다. 이럴 때 보면 참 알기 쉬운 얼굴이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정말로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유현이 널 믿고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 있을 테니까. 네가 봐도 난 쓸모가 많잖냐. 어떤 상대든 나 살려 놓게 만들 자신 있어. 협박을 하든 아부를 하든, 어떻게 해서든지. 그러니까 구하러 와. 서두르지 말고 확실하게 준비해서. 난 언제까지든 기다릴 수 있어.”
지금에 비하면 손에 쥔 거 하나 없을 때도. 별별 무모한 짓 다 하면서도 살아는 남았다. 몸뚱이 하나조차 변변찮았던 과거에 비하면 지금이야 넘칠 정도의 패를 쥐고 있다.
“…애초에 구해질 일이 없으면 되잖아.”
“그러면야 좋지만 세상일이 어디 뜻대로 되더냐. 오늘만 해도 잘 끝날 줄 알았지. 그 새끼가 SSS급으로 부활할 줄은 꿈이나 꿨겠냐고.”
“최석원의 계약자가 형을 탐내고 있다는 건 또 뭔데.”
“아, 그거? 도마뱀 후임 놈 있잖아, 그때 그 좀비. 걔가 자기랑 계약하면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구해 주겠다고 했는데 거절했어. 그 새끼 너한테도 관심 있는 거 같던데 계약 같은 거 하자고 해도 절대 받아들이면 안 된다. 나도 거절했으니 너도 뭔 제안을 하든 거절해.”
유현이가 잠깐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차 엉뚱한 생각 하면 절대 안 된다고 다독인 뒤 일어났다.
“게이트 닫히기 전에 나가자.”
“아까 우리 집이랬지.”
“그래, 우리 집이지.”
유현이가 몸을 일으켰다. 어깨부터 발치까지 흘러내린 핏자국이 눈에 들이박힌다. 최석원 그 씹어 먹을 개새끼가. 너무 편하게 보내 줬다.
“…오늘, 같이 자도 돼?”
“눈물 자국 남아 있어서 그런가, 열 살쯤 더 어려 보이니 돼.”
팔베개도 해 줄까. 자장가도 불러 줄 수 있는데. 웃으며 하는 말에 유현이도 겨우 작게 미소 지었다.
“그런데 형, 세성 길드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었어?”
“당연히 튀었지. 이 정도면 오래 버틴 거다?”
“무모한 건 아니라고 하더니 혼자 돌아다녔다고.”
“혼자 아니었다. A급 독 스킬 지닌 벨라레 있었고 은신 스킬도 썼는걸. 너야말로 나 없이 최석원을 만나러 가 놓고서. 서로 숨기는 거 없기로 하자, 응?”
“형 하는 거 봐서.”
“지금은 열 살쯤 더 먹어 보이는구나. 혼자 자고도 남을 나이 같은데.”
실없는 소리를 하며 게이트를 빠져나갔다. 휑한 풍경 속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다들 무사해서 한시름 놓았다. 강소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린 채 인간으로 돌아온 리에트의 품에 안겨 있었다. 벨라레 또한 주인의 어깨에 올라앉아 있다.
“최석원은 죽었습니다.”
나를 보는 시선들에 놀라움과 의아함이 깃들었다. 스탯 F급짜리가 S급들을 순식간에 전투 불능으로 만든 괴물과 함께 갔다가 괴물 퇴치 완료되었습니다, 하고 돌아오면 누구든지 놀라고 말겠지. 의심도 할 테고.
“물론 제가 처치한 건 아니고요, 일종의 차도살인 같은 겁니다. 자세히는 말 못 하지만 남의 손 좀 빌렸지요.”
아무튼 깔끔히 처리되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내 말에 노아와 송태원이 안도했다. 송태원은 미심쩍은 기색이 남아 있었으나, 나는 물론이고 유현이까지 무사한 모습에 믿긴 하는 모양이었다. 던전에서야 살아 나오는 게 진실이다.
반면에 리에트는 조금 아쉬워하는 티를 내다가 내게 대뜸 말했다.
“자기야, 동생한테 잘해.”
…미친? 내가 왜 저 인간한테 그딴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거지.
“네가 할 소리냐? 너야말로 노아한테 잘해 주시지.”
“자기는 없어서 모르─”
“리에트 헌터.”
유현이가 내 앞을 반쯤 가리듯 나서며 리에트의 말을 끊었다.
“괜한 소리 하지 마십시오.”
“편들어 주는 건데 까칠하긴.”
아니, 왜 리에트가 유현이 편을 들어 주는 거냐. 이유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남의 편보다야 낫긴 하지. 내 동생이 그새 마음에 들기라도 한 건가. 보는 눈은 있다만 형으로서는 반갑지 않았다. 전형적인 나쁜 친구잖아.
“이번에는 저도 유진 씨가…….”
노아가 조금 우물쭈물하며 말하다가 유현이의 눈총을 받고 입을 다물었다. 심지어 송태원까지 뭔가 묘한 눈빛으로 유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내가 떠난 사이에 유현이가…….
“신경 쓰지 마.”
동생이 나를 감싸듯 말했다.
“형이랑 다르게 나에 대해 잘 모르니까 과장되게 반응하는 것뿐이야.”
…하긴, 유현이가 우는 건 나도 오랜만에 보는 거라 놀랐었다. 그래도 리에트와 송태원이 저러는 게 영 찝찝한데.
“나 피곤해, 형.”
“응?”
“아직 불안하기도 하고. 얼른 집에 가고 싶은데.”
“그래? 그럼 빨리 가야지. 송태원 실장님, 이거 받으세요.”
송태원에게 기억 구슬들을 건네주었다.
“안개에 휩싸였던 사람들의 기억입니다. 맞는 주인에게 가져다 대면 알아서 흡수될 거예요. 송태원 씨 것도 있지 싶습니다. 노아 씨도 확인해 보세요.”
두 사람이 각자의 기억을 찾아갔다. 뭐가 없어졌었던 건지 슬쩍 물어보았다. 노아는 강소영이 리에트 면회할 겸 데이트하자고 꼬드기는 기억이었고 송태원은 삼 일 연속된 야근과 놓쳐 버린 분리수거일이었다.
뒤처리는 미안하지만 송태원에게 떠넘겼다. 무려 MKC 길드장이 SS~SSS급으로 변했다가 사망한 초유의 사태였기에 한 번쯤은 나나 유현이를 붙잡을 줄 알았건만,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렇다 쳐도 유현이는 중요한 증인인데도 어쩐 일인지 내일 출석하라는 말로 끝냈다.
벨라레를 건네받고 노아의 도움을 받아 사육시설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집에 오니 좋구나. 어지간히도 피곤했던지 따뜻한 물로 샤워하다가 몇 번이나 벽에 머리를 부딪힐 뻔했다. 욕조였으면 틀림없이 물속에서 곯아떨어져 버렸을 것이다.
우리는 침대에 눕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 * *
“끝까지 쓸모가 없었네.”
실망스런 목소리가 안개로 가득 찬 수조 속을 울렸다. 루가 폐야는 길고 부드러운 촉수 끝으로 턱 아래를 문질렀다.
그 S급 인간이 스스로를 바치도록 유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나 현재 저 세계에서는 당해낼 자가 없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자신의 일족을 해치워 버릴 줄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당연히 내게 도움을 청해 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빠져나가 버렸어.”
만약을 대비해 초승달의 흔적이 느껴지는 남자를 확인할 겸 묶어 놓기도 했다. 현재 세계에서 패륜아들의 선택을 받은 자는 틀림없이 그 인간이라고 확신했다. 허니 그 남자만 막으면 패륜아들이 끼어들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지금 인간의 힘으로 막아 냈을 리는 없고, 양육자가 패륜아들의 선택인가? 어째서지?”
폐야는 다섯 번째 촉수를 느릿하게 갸웃거렸다. 양육자는 분명 드물었다. 하지만 긴긴 시간과 수많은 세계가 존재했기에 그간 나타난 숫자는 열을 가볍게 넘어갔다. 그리고 매번, 패륜아들은 양육자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양육자를 방해물로 여겼다. 쓸모 있는 태생 S급들이 양육자 탓에 이상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초기에 양육자를 살해하고 세계 관리를 시작하는 일도 흔했다.
양육자를 잃은 태생 S급은 그들답지 않게 슬퍼하긴 했으나 이내 원래의 성정으로 돌아갔다. 키워 준 상대라 하나 애초에 동족이 아닌 것이나 다름없는 사이다. 사랑을 주고받는 데 선도 한계도 존재했다.
그러니 이번에도 패륜아들은 양육자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디아르마의 스킬을 얻은 것은 의외였으나 키운다는 점에서 연관이 있으니 패륜아와 관련된 남자, 성현제가 전해 주었으리라 추측했다.
실제로 마석을 품은 양육자를 돌보고 있는 것도 그 남자였다. 하지만 양육자는 SSS급 무해의 일족을 던전으로 데리고 가 처리했다. 던전 안에서의 일은 알 수 없지만, 패륜아의 개입이 있었을 것이다.
즉, 이번 세계에서 패륜아들이 선택한 사람은 양육자다.
“이상하네~ 뭔가 더 있는 걸까.”
흥미롭다. 폐야는 티타임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마트폰을 닮은 물건을 모양만 갖춘 귀에 대고 전화하는 시늉을 내었다.
“안녕, 채터박스.”
[무슨 일이야? 무해의 왕.]“여기서는 해파리야. 그렇게 된 거 같더라.”
[□□리, 해파리. 거의 항상 그랬지 않나? 해파리가 있는 세계라면 말이야.]“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나 좀 도와줘.”
[응? 왜? 적당히 하고 말 거라더니.]“뭔가 특별한 게 있어.”
폐야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감이 와. 이번에는 진짜야.”
[진짜라고 해서 진짜인 적이 열에 한 번도 안 되었을 텐데. 그리고 그쪽 세계의 신입은 귀찮다고. 신입인 주제에 유능해. 나와는 상성도 별로야.]“그럼 우선 한 가지만 찾아 줘.”
[한 가지?]“하얀 새가 가지고 간 인간의 시체.”
양육자가 가장 깊게 생각하는 것.
[하얀 새라니, 쉽게 찾지는 못할 거 같은데.]“종적을 감추었으니까 어딘가에 보관해 뒀을걸. 십중팔구 눈이 내리는 나무 주변이겠지.”
[거기 엄청 넓잖아. 오래 걸릴 거야.]“보답은 톡톡히 할 테니 최대한 빨리 부탁해. 인간들은 금방 죽어 버린다고.”
하얀 새가 왜 굳이 그걸 가지고 갔는지도 궁금하다. 루가 폐야는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