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다음 날 (1)
S급 각성자라고 하여 지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이미 꽤 과로한 상태에서 전투를 거치고 부상까지 입은 채로 다시 하룻밤을 꼬박 새운다면 눈가가 아리고 머릿속이 지끈거려 올 수밖에 없었다.
송태원은 한숨을 삼키며 책상 위를 향해 있던 고개를 들었다. 그가 지금 있는 곳은 각성자관리실이 아닌 헌터협회의 집무실 중 하나였다. 원래라면 처리해야 할 서류가 협회를 거쳐 각성자관리실로 보내져 올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기다리는 대신 그냥 협회 책상 하나를 빌려 바로 받아 보고 있는 중이었다. 인력과 시간을 굳이 낭비할 필요는 없거니와 그럴 여유 또한 부족했다.
“MKC 관리 S급 던전은 이게 마지막입니다.”
협회 직원이 파일 하나를 책상 한쪽에 올려놓고 커피라도 가져다 드릴까요, 하고 물었다. 카페인이 통하진 않았지만 부탁하겠노라 대답한 송태원은 다시 서류로 시선을 옮겼다.
최석원은 불법 아이템을 사용, SS급으로 성장하였지만 견디지 못하고 폭주한 것으로 처리되었다. 현장에 있던 S급 헌터 송태원, 리에트, 노아에 더해 준 S급으로 추정되는 김민의와 A급 헌터 강소영이 합세해 최석원을 막아 내는 데 성공하였으나, 최석원은 근처 A급 던전으로 도주 후 행방불명이 되었다.
사실과는 상당 부분 달랐지만 그렇게 보고하였다.
무엇보다 SSS급으로 변한 최석원을 스탯 F급인 한유진이 처리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제대로 설명키 불가능하거니와 당사자 또한 비밀로 해 주기를 부탁해 왔다.
최석원의 행적은 송태원이 직접 MKC를 찾아가 알렸다. 길드장이 던전 내에서 행방불명되었다. 사실상 사망하였다. 이 소식을 접하게 된 상급 길드원들이 날뛰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어 밤새워 가며 MKC 내 S급 장비와 S급 던전 관련 서류들을 모두 수거했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관리실이나 협회의 다른 헌터에게 맡길 수 없었다. 길드 와해를 코앞에 두고 있는 만큼 길드원이 빼돌리지 않도록 빠르게 처리할 필요 또한 있었다.
덕분에 아침 해가 밝아오도록 MKC를 뒤지고 협회로 돌아와서도 놓친 것이 없나 마지막 검토를 직접 하는 중이었다.
‘정리가 끝나면 기자 회견도 해야…….’
씻고 옷도 갈아입어야 한다. 송태원은 건네받은 커피를 마시지 않고 감싸 쥐었다. 여름이지만 종이컵 너머의 온기가 달갑게 느껴졌다. 커다란 손안의 하얀 종이컵이 우스우리만치 작게 보여 나름의 틀어진 기분 전환도 되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불청객만 아니었더라면 말이다.
“송태원 실장.”
그가 나타난 것은 문이 열리기 전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송태원은 굳이 먼저 아는 척하지 않고 자신의 이름이 불린 뒤에서야 고개를 돌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현제, 세성의 길드장이 미소 띤 낯으로 서 있었다.
그리고 머리 위에 하얗고 동그란 새끼 새가 올라앉아 있다.
– 삐약!
사람이 아니라 표정을 알아보기 힘들지만, 저 새끼 새가 지금 무척이나 불만스러워하는 것 같다고 송태원은 생각했다.
“여기까진 무슨 일로 찾아오신 겁니까.”
나직이 울리는 송태원의 목소리에 성현제를, 정확히는 삐약이를 보고 굳어 버렸던 협회 직원들이 퍼뜩 정신 차리고 조용히 밖으로 도망쳤다.
“당연히 어젯밤 일을 묻기 위해서라네. 내가 없는 사이 한유진 군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모양이더군. 남의 것을 주웠으면 주인 손에 돌려주는 게 예의라고 말했었 않았나.”
“우선 한유진 씨는 물건이 아닐 뿐더러 스스로의 관리 소홀부터 탓하시지요.”
“그 부분에 대해선 할 말이 없군.”
성현제가 짐짓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애까지 버려두고 집 나가 버릴 줄은 나도 몰랐지.”
– 삑!
조그만 부리가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손끝을 힘껏 쪼았다.
“강소영 헌터도 현장에 있었습니다.”
“소영이는 데이트 중이라. 어제의 감각을 잊기 전에 되살려야 한다며 새벽부터 리에트 헌터와 던전에 들어가 버렸다네.”
깨어나기가 무섭게 던전 공략 보고서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가 따로 없었다.
강소영과 리에트가 던전에 들어가 버렸으니 남은 사람들 중 성현제에게 객관적인 정보를 줄 만한 사람은 송태원밖에 남지 않았다. 한유진도 정보 제공을 거절치는 않을 것이나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가장 마지막에 상대하는 편이 좋다. 정보의 격차는 적을수록 필요한 것을 정확하고 깊숙이 뽑아낼 수 있는 법이니.
“곧 공식 발표가 있을 예정입니다.”
“재미없는 농담이로군. 아침은 먹었나?”
송태원은 대답 대신 S급 각성자 중에서도 유독 이질적인 남자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어젯밤의 일을 떠올렸다.
한유현.
역시나 성현제와 비슷하게 선득한 느낌을 주는 각성자였다. 하지만 어젯밤만큼은 다르게 느껴졌다.
사방을 내려다보는 짐승이 아닌 인간. 그것도 이제 겨우 성인이 된 어린애. 그렇게 비춰지고 생각되었다. 목줄에 매인 척 흉내만 내는 짐승이 아닌, 타인을 향한 온갖 감정에 휘감긴 채 무력하게 바닥을 길 수밖에 없는 평범한 인간으로 보였다.
허면, 눈앞의 이 남자도 가능할 것인가. 혹은 다른 S급 각성자들은. 한유진이 이미 끌어안고 있는 S급 각성자들은 어떠할까.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40대 중후반의 여자가 들어섰다. 전 헌터협회 실무자였지만 자리를 빼앗겼다가 이번 사태로 복귀한 최은영이었다. 송태원과 성현제를 번갈아 바라 본 그녀가 배부른 미소를 머금었다.
“어휴, 살맛나네. 우리 송 실장님도 여러모로 대단하시지만.”
큰 걸음으로 저벅저벅 두 남자에게로 다가가며 말을 잇는다.
“여전히 예술적이야, 세성 길드장님. 새로운 패션도 잘 어울리시네요. 내가 협회 떠나고 가장 아쉬웠던 게 성현제 씨 실물 가까이서 볼 기회가 없어진 거였는데.”
“이런, 개인 연락처를 드린 줄 알았건만, 실례했군요.”
“번호야 머릿속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요. 다만 세성 길드장님과 사적인 만남을 가지기에는 제 용기가 살짝 부족합니다.”
최은영은 웃는 낯 그대로 송태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다만 눈길은 한결 부드러워진 채다.
“MKC 단속은 얼추 끝났으니 뒷정리는 맡겨 두셔도 됩니다. 이제 그만 들어가 보세요.”
“괜찮습니다.”
“송 실장님은 괜찮아도 보는 사람은 안 괜찮습니다. 마침 차 좋은 거 끌고 오셨을 분도 계시겠다,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세성 길드장님.”
“책임지고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지요.”
“그럼 송 실장님께서 협회 분위기 흐리는 S급 헌터 몸소 쫓아내 주시는 것으로 알고, 내일 뵙겠습니다.”
핑계를 덧붙이며 급한 불은 껐으니 모레 오셔도 됩니다, 라는 말에 송태원은 약간 머뭇거리다가 책상을 정리했다.
* * *
눈을 떴을 때 방은 이미 제법 밝아져 있었다. 동생은 아직 곤히 잠이 든 채였다. 스킬이나 포션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큰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자체 에너지도 소모되니 꽤나 피곤할 터였다. 최석원 개새끼.
심지어 안개인지 스킬인지에 회복 저하 효과가 붙어 있었는지 어깨 쪽의 흉터가 아직 남아 있었다. 옷깃 사이로 드러난 붉게 도드라진 흔적을 보자 또다시 열이 오른다. 진짜 그렇게 쉽게 죽게 내버려 둬선 안 되는 거였는데.
‘아침… 이 아니라 점심인가.’
점심이라기엔 또 좀 이르고. 아무튼 밥 챙겨먹여야지. 침대에서 내려서자 유현이가 눈을 가늘게 떴다. 더 자라고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밤새 시력이 또 조금 올라간 탓에 렌즈는 끼지 않았다. 매일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보니 렌즈든 안경이든 매일 새로 맞춰야 했다. 그래도 이젠 없어도 제법 잘 보인다.
– 쉬잇.
광합성이라도 하려는 듯 창틀 위에 올라가 있던 벨라레가 나를 향해 머리를 치켜들었다. 보석뱀을 데리고 침실에 붙은 욕실로 들어갔다. 벨라레는 물을 좋아하는지라 샤워기를 고정시키고 틀어 주자 그 밑에서 빙글빙글 맴을 돈다. 나도 대충 씻고 침실을 나섰다.
삐약이 데리러 가야 하는데. 여기로 보내 달라고 할까.
– 삐약!
“…응?”
주방과 이어진 거실 쪽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새삼 놀랍지는 않았다. 알아서 공간이동 해 온 모양이구나. 우리 삐약이 기특…….
“일어났군.”
“…시발, 미친?”
성현제다. 입에서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동시에 닫고 나왔던 침실 문이 벌컥 열리며 부스스한 머리에 덜 깬 얼굴의 유현이가 나타났다.
“형!”
“나올 거 없어. 저건 내가 처리할 테니 가서 더 자.”
들어가라 했지만 유현이는 졸린 눈을 하고서도 성현제를 노려보고 섰다. 세성에 맡길 땐 언제고 뭘 또 으르렁거리고 있냐, 가서 씻기부터 하라며 동생을 겨우 다시 침실로 들여보냈다.
성현제는 어젯밤 감감무소식이었던 주제에 얄미울 정도로 멀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인간이 제때 도착했더라면 최석원에게 성현제 씨만큼은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애절하게 소리쳤을 텐데.
“오랄 땐 안 오더니 웬 무단침입입니까.”
“놓고 간 걸 전해 주는 김에 변명이나 할까 해서.”
성현제가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삐약이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공간이동 해 온 게 아니었구나.
“들어는 드리죠.”
시큰둥하게 대답하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피를 많이 흘렸으니 역시 고기를 먹여야겠지. 하지만 며칠 집을 비운 탓에 냉장고에 쓸 만한 요리 재료가 있을 리… 있다. 신선한 채소에 고기는 물론 해산물까지 보였다.
성현제를 돌아보자 그가 카드 한 장을 꺼내 식탁에 내려놓았다.
“이것도 잊고 갔더군.”
“막 쓰라고 준 건데요. 그보다 냉장고 채운 거…….”
“비록 집 나가 버리긴 했으나 계약은 계약이지. 내겐 한유진 군을 잘 먹일 의무가 있다네.”
“그 계약, 파기된 거 아니었습니까.”
“일정 수준의 보호 장치를 마련하였음에도 제 발로 나가 버린 건 위반 사항이 아니라서. 역시 은신 스킬인가?”
스킬 들통나는 게 싫어서라도 제시간에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예, 예. 드디어 숨겨진 보너스를 발견하셨군요. 축하드리며 보너스 스킬인 만큼 이용 요금은 받지 않겠습니다. 필요하실 때 언제든지 연락 주십쇼.”
“무료라니 의외로군.”
“가끔은 이런 서비스도 있는 거죠. 물론 출장비 따로에 기본 30분 초과 시 10분당 추가 요금 붙습니다.”
정말 양심적인 요금제다. 벨라레를 내려놓고 냉장고 안의 재료들을 꺼내는데 성현제가 묘하게 만족스런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쳐다봅니까?”
“역시 진짜가 좋다 싶어서.”
“헛소리할 거면 대파나 써시죠.”
S급 대파가 따로 있냐. S급이 직접 썬 대파를 줄이면 S급 대파지. 파 한 단을 통째로 던져 줬더니 들고서 빙그레 웃는다. 대파 좋아하시나 봐.
“해파리가 나타났었다고요?”
치이익, 달궈진 팬 위에서 고기가 익어 간다. 성현제가 계란찜용 그릇에 달걀을 깨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초승달을 아느냐고 묻더군.”
“아. 패륜아 쪽 중 한 명인데 지금은 잠들어서 못 만나요. 해파리와 아는 사이였다더군요.”
왜 굳이 성현제까지 찾아가 물은 것일까. 수색자의 사슬 때문에? 해파리와의 대화는 그리 길지 않았지만 시간이 틀어진 공간이었던지 놈을 태워 버리고 안개가 걷히고 나자 자정에 가까워져 있었다고 했다.
“덕분에 캔디박스를 못 보게 되었다며 불평을 들어야 했지.”
웬 사탕상자. 어린애라도 동행하고 있었나. 그에게 안개바다 일족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또 계약 같은 건 하지 않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저주독룡종이 아니라서 해주 못 해 드려요.”
“아직은 한유진 군이 첫 번째이니 걱정 말게나. 생각보다 시시하기도 했고.”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성현제에게 찾아갔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국내에 있는 S급 헌터들이라도 단속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명 없긴 하지만. 두 명 늘려 놨는데 두 명이 사라져 버렸네. 노아와 세성의 신입을 포함하면 두 명 더 늘어난 셈이긴 하다.
“세성의 새 S급 헌터, 에블린이었던가요. 그 사람은 믿을 만합니까? 다른 S급 헌터에게도 해파리가 접근할 수도 있으니까요.”
“잡상인과 사이비종교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아가씨지.”
“그건 저도 싫습니다.”
아무튼 쉽게 넘어가지 않을 거란 소리였다. 우리 애들이야 걱정할 거 없고 문현아도 혹할 성격 아니고. 김성한도 유현이를 배신할 사람이 아니니 남은 건 송태원과 한신뿐이다. 송태원도 딱히 걱정은 없을 테니 한신의 박민규를 한번 만나 봐야겠군.
S급 헌터들이 해파리에게 넘어가는 것까지 막고 나면 국내 정리는 얼추 끝나는 셈일 테다.
“MKC 헌터들은 양보하세요. 우리 쪽 팀 두 개나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요.”
길드장이 죽었으니 빠져나올 A급 헌터가 제법 많을 것이다. 수담은 상대적으로 작은 데다가 부길드장이 잘 추슬렀지만 MKC는 덩치가 큰 만큼 많이 새어 나오겠지. 거기에 S급 던전과 S급 장비 매물도 나올 것이다.
“아, 힐러! 힐러는 특히나 절대로 빼 가지 마세요. 세성엔 A급 힐러 이미 있잖습니까.”
“상급 힐러는 많을수록 좋네만.”
“안 돼요, 절대로. S급 헌터가 셋이나 되는데 A급 힐러가 하나도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순순히 양보하시죠.”
내 기억으로 MKC A급 힐러는 실력이 제법 좋았다. 중국인 남자였던가.
냉기 저항 아이템도 다 우리 애 거를 외치며 상을 차렸다. 중간에 유현이가 돕겠다고 주방에 기어 들어왔지만 포션이나 바르고 있으라며 거실로 쫓아 보냈다. 저 정도 부상이면 휴가 길게 내도 되지 않나.
“한유진 군.”
밥그릇과 수저를 둘만 놓느냐 인심 써서 셋을 놓느냐 고민하는데 성현제가 나를 불렀다.
“도와준 게 있으니까 특별히─”
성현제가 내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어느새 틀어 놓은 물소리가 싱크대로부터 들려왔다. 그가 나직하게, 물소리에 섞여 S급 헌터라도 엿듣지 못할 목소리로 물었다.
“끝까지 계약하지 않을 자신 있나?”
해파리와의 계약을 말하는 것일 터다. 그가 내 속을 파헤치기라도 할 듯 들여다봐 왔다.
“무슨 상관입니까.”
“빼앗기는 건 익숙하지도, 좋아하지도 않거든.”
“익숙하지 않다니 편하게 살아오셨네요.”
“다정하게 표현하자면 한유진 군을 걱정하고 있다네.”
그러면서 눈웃음 짓는 게 퍽이나 다정해 보인다. 계약해 볼 생각 있는데요, 하면 당장에라도 족쇄 채울 시선이다. 동생에게 도와달라 말하면 유현이 놈은 상냥하게 목줄까지 내밀겠지.
“계약할 생각 없습니다.”
상황을 모면하고자 하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해파리의 제안은 여전히 유혹적이었다. 하지만.
“동생이 아직 어려서요. 걔 두곤 못 가겠더라고요.”
아파 죽겠다는데, 어쩌겠냐. 마주 부둥켜안아 주는 수밖에. 그리고.
“댁은 잼 바른 식빵이나 드시죠.”
그 정도가 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