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66
166화 다음 날 (3)
– 꺄우으웅!
꾸응 끼웅거리며 피스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욕조에 안 들어가겠노라 항의하는 걸 억지로 들어 올렸다.
“싫어도 씻어야지. 착하지, 피스야.”
– 끄르르릉.
“도와줄까?”
동생이 묻는 걸 고개 저어 대답했다.
“진짜 반항하면 내가 감당이나 하겠냐. 나 봐주면서 부리는 엄살이야.”
성체까지도 필요 없고 유체 상태로도 앞발 한 번 휘두르면 나 정도는 그대로 나가떨어진다. 바동거리는 피스를 번쩍 안아 든 채 개인 욕실로 향했다.
예림이와 피스가 던전에서 나와 바로 향한 곳은 다름 아닌 해연길드 내의 대중목욕탕이었다. 집 놓아두고 웬 공중목욕탕이냐 하면, 던전 공략 직후 엉망인 상태로 집에 들어가기는 좀 꺼려지기 때문이었다.
며칠을 제대로 못 씻은 데 더해 몬스터의 체액과 살점도 여기저기 묻어 있는 경우가 흔하다. 그 꼴로 집에 들어가긴 그렇지. 이미 따뜻한 물 가득 채워져 있는 대중탕으로 직행해 피로 풀고 비치된 옷이나 가운 대충 걸치고서 집에 올라가 자면 딱인 것이다.
물론 이것도 시설 잘 되어 있고 길드 내 차량으로 이동 가능한 경우에나 해당되었고, 하급 헌터는 게이트실에 갈아입을 옷과 물티슈 따위를 준비해 두곤 했다. 엉망인 꼴로 나가면 승차 거부당하기 십상이니까.
‘피곤해 죽겠는데 대충 닦고 옷 갈아입기 정말 귀찮았지.’
자차 있을 때나 카풀 할 땐 신발만 갈아 신고 우비 입기도 했다. 그래도 냄새는 배니까 심할 땐 그냥 옷 갈아입고 더러워진 옷가지는 비닐에 넣어 꽁꽁 묶었지. 이런 소소한 데에서도 상급 헌터와 하급 헌터는 차이는 컸다.
아예 공간이 나뉘어져 있는 개인 탕으로 피스를 데리고 들어가 물에 넣었다. 사람 쓰는 목욕탕에 몬스터 넣는 게 잠깐 머뭇거려졌지만 일반인도 아니고 헌터 전용이잖아. 기승수는 동등한 팀원 취급해 줘야 마땅하다.
“어때, 나쁘지 않지? 여기 물 좋네.”
– 끄우웅.
동그랗던 눈이 가늘게 떠진 채 불만을 가득 품는다. 꿍얼꿍얼하던 피스가 돌연 풀쩍 뛰어올랐다. 도망치려는 건가 싶었는데,
첨벙!
공중에서 아성체로 커져서는 그대로 욕조로 떨어졌다. 당연히 물이 높게 튀고 나까지 폭포수라도 맞은 것처럼 흠뻑 젖어 버렸다.
“…재밌냐.”
– 갸르르르.
피스가 만족해하며 그릉거렸다. 그래도 미안하긴 했는지 내 뺨을 길게 핥고는 더 날뛰지 않고 둥근 욕조 안에 몸을 둥글게 말았다. 네 기분 풀렸다니 됐다. 피스 엉덩이를 툭툭 치며 다시 유체로 돌아가라고 한 뒤 꼼꼼히 씻겼다. 내 꼴을 본 유현이가 비치된 옷을 가져다주었다. 찜질복과 비슷한 간단한 상하의다.
“불로 오물을 태워 버릴 수 있으니 그렇게 신경 써서 씻길 것까진 없어.”
“그래도 제대로 씻는 거랑 같냐. 화염 저항을 그 정도로 정교하게 컨트롤하기도 힘들 거잖아.”
“그 녀석은 옷이 없으니 쉬울걸. 지금도 바로 물기 말릴 수 있으면서 일부러 가만히 있는 거야.”
유현이가 수건에 감싸여 있는 피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유현이를 마주 쳐다보던 피스가 발라당 몸을 뒤집었다.
– 꺄앙.
“그래, 그래. 얼른 닦아 줄게.”
안 그래도 피곤할 텐데 굳이 힘쓰게 할 필요 있냐. 드라이기로 마저 털을 말려 준 뒤 휴게실로 나갔다.
이런저런 시설을 갖춘 너른 휴게실 테이블에 먼저 나온 예림이가 앉아 있었다. 나를 보더니 식혜가 든 물병을 짤짤 흔들며 얼른 오라고 말한다. 그 옆으로 달걀도 보였다. 사우나 시설이 있긴 하다만 저런 것도 제공하냐.
“원래는 반나절쯤 지지고 나오는데.”
“자주 이용하나 보다?”
식혜 따르는 손놀림이 익숙하다. 물병을 탕 내려놓으며 예림이가 말했다.
“던전 공략 직후에는 멀리 가기 귀찮으니까 여기 오고요, 평소엔 현아 언니네 종종 가요. 거기 미역국도 맛있지만 떡만두라면 진짜 죽이거든요. 주방 아주머니 요리 관련 스킬 있는 거 아니냐는 소문도 돈다니까요.”
물론 명우 오빠 반찬도 그에 못지않다는 아부를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예림아, 놀라지 말고 들어.”
구운 계란을 까면서 말했다.
“MKC의 길드장이 사망했다. 바로 어젯밤에.”
“아, 결국 죽였네요.”
“…응?”
“길드장님이 그랬죠? 비밀은 지킬게요.”
예림이가 식혜를 컵에 따라 유현이를 향해 툭 밀었다. 테이블 위를 미끄러져 간 컵이 정확히 동생 앞에 멈춘다.
“그 자식이 아저씨 해치려고 했었다면서요. 그럴 만했죠. 이해해요, 이해해.”
“…아니, 유현이가 안 죽였는데.”
“네, 네. 그랬겠죠. 길드장님 저랑 같이 던전 돌고 있었잖아요. 알아요.”
예림이 이 녀석 말하는 것 좀 봐라. 식혜를 한 모금 마시며 유현이가 입을 열었다.
“아쉽지만 내가 못 죽였어.”
“뭐? 진짜? 실망이다, 한유현.”
“실망은 무슨 실망이냐! 그런 식으로 가볍게 이야기하면 안 되지. 이유가 뭐든 사람은 웬만해선 해치지 마. 법을 지키라고.”
깐 계란을 유현이와 예림이에게 주며 말했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지만 폭력을 우선시하지 마라. 둘 다 말이야. 물론 상대가 먼저 덤벼들면 봐줄 필요 없지만. 뿌리까지 아주 말려 버리, 아니 그래도 정도는 지켜야지. 특히 예림이 넌 직접 손대기보단 나나 길드에 연락부터 먼저 해.”
S급이니 뭐니 해도 주위에 어른이 없는 것도 아닌데 어린애 손 더럽힐 필요는 없다. 무릎 위에 자리 잡은 피스에게도 계란을 내밀어 봤으나 냄새만 맡을 뿐 입을 대진 않았다.
“MKC 길드장이 사라졌으니까 빠져나올 A급 헌터들이 많을 거다. 그중에선 예림이 네 팀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마침 S급 던전을 돌 수 있는 능력이 된다는 걸 증명한 참이니까.”
계속 S급 공략 팀에 소속되고 싶어 하는 A급 헌터라면 기회를 놓치기 싫겠지. 잘만 하면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 가능할 것이다.
“석시명 팀장이 쓸 만한 A급 헌터 명단과 자리를 마련해 줄 테니까 면접 보고 골라.”
“제가 직접요?”
“당연히 네가 직접 봐야지. 네 팀인데. 지금 당장은 기본만 갖추면 돼. 방어계 보조계 치유계 세 타입으로. 힐러야 S급 던전 들어갈 만한 스탯 자체가 적으니 큰 문제 없으면 되는대로 받아들이고, 보조계는 네 속성 위주로 맞춰. 방어계는 어중간하게 방어 외 스킬이나 스탯 있는 건 별로야. 방어 쪽에 치중되어 있어야 A급 헌터로 S급 몬스터 공격을 막아 내는 게 가능하거든.”
자신과 동급 던전이라면 모를까 상위 등급에서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방어력으로는 버텨내지 못한다. 하지만 방어력에 집중되어 있고 힐러가 뒷받침해 준다면 A급 방어 헌터도 S급 상위까지 그럭저럭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근데 전 보호는 딱히 필요 없는데요.”
“넌 당연히 필요 없지. 보호받는 건 힐러와 보조 헌터야. S급 던전은 S급 헌터가 전방으로 나서고 그를 보조해 주는 형식이 보통이거든.”
다만 공략 정보가 완벽한 S급 하위 던전은 노련한 A급들만으로도 공략 팀을 만들기도 한다.
“예림이 너도 이번에 경험해 보지 않았어?”
“저랑 피스랑 앞서서 다 쓸어버려서요. 딱히 보조나 치유 스킬도 안 받았는데.”
“독불장군처럼 굴면 안 되지. 여차할 때 도움을 받지 못하면 안 되니까, 반대로 한눈판 사이 팀원들이 전멸당하는 수도 있으니 일정 거리 이상은 절대 떨어지지 마.”
언제 어디서나 안전이 최고다. 그 밖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조언을 건네주었다. 유현이도 시큰둥하게나마 몇 마디 거들었다. 예림이는 사기나 치지 말라며 투덜거렸지만.
“실질적으로는 예림이 네 주도하에 첫 S급 던전 공략한 거니까… 축하 선물이라도 해 줘야겠는걸. 뭐 사 줄까?”
“선물보다는 같이 저녁 먹고 놀아요! 길드장님도 특별히 끼워 줄게요.”
“나야 좋지만 유현이 너, 시간 되냐?”
“공략 내용 협회에 보고해야 하는데 얼마 안 걸릴 거야.”
“길드장님 수고요.”
“박예림, 너도 가야 해.”
“아니, 왜요!”
“S급 던전 공략은 특이사항이 있을 때마다 자세한 내용을 알려야 하고 이번 공략의 특이사항은 바로 박예림 너잖아. 앞으론 팀의 리더로서도 보고해야 하니 이참에 배워.”
“아, 그냥 팀원 1 하고 싶다~”
예림이가 투덜거리며 테이블 위에 길게 엎어졌다. 나도 저녁 되기 전에 일 처리 하나 해 둬야겠다.
* * *
“드디어 끝난 겁니까?”
요 며칠 햇볕을 못 받아서인가 좀 퀭해진 얼굴의 청년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을 보자 안타까운 감정이 절로 밀려들어 왔다.
유현이에게 신분을 강탈당한 김민의는 해연 길드의 밀실에 내내 갇혀 있었다. 유현이가 집에 있을 때는 그도 깨어났지만, 바깥에 나가는 것은 물론 통신도 막힌 채였다. 혹여 말이 새어 나갈까 싶어서였지만.
‘덕분에 그간의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지.’
TV야 볼 수 있었지만, 심야에 깨어나 있다 보니 김민의와 관련된 소식은 접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S급 헌터가 아니냐 하는 의혹도 아직은 확증 없는 루머다 보니 인터넷상이면 몰라, TV에서까지 떠들진 않은 탓도 있었다.
“게임도 슬슬 지겨워졌는데 다행이에요. 하마터면 독서를 시작할 뻔했다니까요~ 안고 계신 고양이 피스 맞죠? 실물로 보니까 더 귀엽네요!”
갑자기 갇혀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해맑은 태도에 더더욱 그가 안쓰러워졌다. 참 괜찮은 청년인 거 같은데.
“김민의 씨.”
내가 진지하게 부르자 김민의의 표정도 덩달아 굳어졌다. 그가 불안해하며 입을 열었다.
“어… 아직 더 갇혀 있어야 하는 겁니까? 사나흘 정도는 괜찮을 거 같아요. 아직 못 깬 타이틀도 있고.”
“아뇨, 나가셔도 됩니다. 다만… 그사이 김민의 씨께선 준S급 헌터가 되셨습니다.”
“…예? 저 B급 헌터인데요? 스탯은 C급밖에 안 되는데요.”
난데없이 무슨 황당한 소리냐는 표정에 차분히 설명을 해 주었다.
“김민의 헌터께서는 돌진해 오는 트럭을 튕겨내고 사람들을 구조하였습니다.”
“네……?”
“또한 S급 헌터의 난동을 견제, 발을 묶어 두셨고요.”
“뭐, 뭐라고요? 뭔 급이요……?”
“세성 길드에서 A급 헌터를 손쉽게 제압하셨고 타 S급 헌터들과 협력하여 SS급 헌터의 폭주를 막아 냈습니다.”
그가 넋 나간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한껏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 동생이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일을 해 버렸네요. 내 옆에 서 있던 석시명이 계약서를 내밀었다.
“이번 일에 대해 비밀을 지키겠다는 새로운 계약서입니다. 조건이 좀 더 무거워진 대신 보상은 충분히 해 드리겠습니다.”
“입은 당연히 다물고 있을 건데요… 근데…….”
어째야 좋겠냐는 길 잃은 표정에 다정히 대답해 주었다.
“우선 예상치 못하셨을 사태에 대한 위로와 사과를 표하며, 방법은 대략 세 가지가 있습니다.”
“세 가지요?”
“네. 첫 번째는 다들 착각한 거라고, B급 헌터 맞다고 무조건 우기는 겁니다. 목격자와 증거가 많기 때문에 의심은 받게 되겠지만, 언젠가는 사그라지겠지요.”
다만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 한동안은 고생깨나 해야 할 거라는 말에 김민의가 울상을 지었다.
“특히 속았다고 생각한 상급 헌터들이 시비를 걸어올 수 있기에 책임지고 경호를 붙여드리겠습니다.”
“시비라니…….”
“김민의 씨가 보조계다 보니 더더욱 반감을 가질 가능성이 높거든요. 두 번째 방법은 신분 세탁하고 잠적해 버리는 겁니다. 몇 년 해외에서 지내셔도 괜찮고요.”
과하지만 가장 안전한 해결법이었다. 해외로 비밀리에 스카웃되어 국내 떴나 보다, 소문 흘리면 금방 잠잠해질 것이다.
“어우, 그건 좀… 아는 사람들 다 연락 끊어야 하잖아요. 저 썸타는 여사친도 있는데.”
“역시 좀 그렇죠? 마지막으로는 그냥 아예 S급 헌터로 못 박아 버리는 겁니다.”
제일 추천하는 방법이에요, 라는 말에 김민의가 입을 딱 벌렸다.
“아, 아니 저 B급이라니까요? 어떻게 S급 헌터가 돼요.”
“이미 준S급 헌터인걸요. 세 사람만 입 맞추면 고양이도 호랑이 되는 법입니다.”
안전하고 확실하게 잘 처리해 주겠다는 말에도 김민의는 떨떠름해했다.
“제가 거짓말은 잘 못 해서요. 좀 더 생각해 봐도 될까요?”
“빠르게 시작할수록 좋으니까 내일 중으로 대답 부탁드리겠습니다.”
김민의가 고개를 끄덕이며 석시명으로부터 압수당했던 휴대폰을 돌려받았다. 그간 온 메시지를 확인해 보며 그가 히죽 웃는다.
“아 미친, 다들 저더러 S급 헌터 된 거 축하한대요. 한턱 쏘라고 난리… 으아악 왜 니들이 사귀냐!”
김민의가 비명처럼 외쳤다. 저런, 아무래도 썸탄다고 착각했던 분이 그새 연애 시작하셨나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