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69
169화 무늬만 S급 (3)
난동을 부렸지만 MKC 헌터들에게는 별다른 제재가 가해지지 않았다. 이 정도 소소한 일로는 상급 헌터에게는 벌금 딱지조차 안 나온다. 헌터 협회 내이고 헌터 대상이니 기껏해야 주의나 받고 끝이었다.
“젠장, 두고 봐라. 절대 이대로 끝내지는 않을 테니까.”
최석원의 측근이 이 바득바득 갈며 대놓고 보복 의지를 불태운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상대에 대한 보호조치 같은 것도 없었다. 뭐 그건 일반 경찰들도 대충 넘기는 일이 흔하긴 했지만.
“해연에서 길드장님을 해친 것이 분명한데도 협회 놈들은 한통속이 되어 조사조차 하지 않고! 특히 김민의 네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여 버리겠다!”
상대가 안 되는 걸 체감케 해 주면 포기할 줄 알았는데 끈질긴 놈이네. 진짜 김민의를 공격하는 건 곤란하기에 놈의 앞으로 다가갔다. 노아와 예림이가 조심하라며 내 곁에 바싹 붙어왔다.
“헛짚는 게 하도 불쌍해서 알려 주는 건데, 김민의 씨는 보조계 S급에 아직 성장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최석원을 상대할 정도는 안 되었어. 칼을 겨눈다면 나머지 S급들 중 하나지. 보조계 말고 전투계 말이야.”
그때 있었던 나머지 전투계 S급이야 리에트와 송태원, 도중에 발 묶였다는 성현제와 에블린이다. A급이 이 갈고 덤벼 봐야 흠집도 안 날 뿐더러 나도 별 신경 안 써도 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양심도 없는 새끼야, 해연이 해치긴 뭘 해쳐. 최석원 그 개새끼가 칼 물고 설치다가 제풀에 엎어져 뒈진 거지. 얌전히 잘 사는 사람 먼저 납치하려 든 게 누군데 억울하다고 지랄이냐.”
괜히 해연 이미지 더럽힐 생각 말라는 소리에 놈이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씨팔, 그게 뭐 어쨌다고! 어차피 스탯은 F짜리가 건방지게!”
참 세상 살기 편한 마음가짐이다. 치사하고 더러운 속내를 보니 다른 S급들이 주도했다고 해 봤자 만만해 보이는 김민의를 계속 노릴 가능성이 크겠구만. 그럼 더 만만한 상대를 내미는 수밖에.
“그 건방진 F급짜리가 너네 집 대장 개새끼 실종에 3할 정도는 보탬이 되었지. 아니다, 애초에 나 잡으려다 삐끗한 거니 50퍼쯤으로 해 둘까? 그 정도는 될 거 같은데.”
“뭐… 이 새끼가!”
노아가 재빨리 나를 뒤로 당기고 예림이의 손이 나를 향해 날아든 주먹을 막았다. 말 그대로 어린애와 성인이 맞붙었지만 작고 가냘파 보이는 손은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커다란 주먹의 표면에 하얗게 얼음이 퍼지기 시작하고 최석원의 측근이 황급히 물러났다.
“예림아, 공격 스킬은 쓰지 말고. 협회 내잖니. 눈치 좀 봐주라.”
“공격 스킬 안 쓰고 죽이는 건요?”
“안 돼. 진정해야지, 평소 안 그러던 애가 입이 좀 험해졌네.”
보는 사람 많다. 이미지 관리하자, 예림아. 예림이에 이어 내 뒤에서 노아도 싸늘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빠르게 처리하는 편이 나을 거 같습니다. 그냥 넘어갈 눈빛이 아니에요.”
“안 돼요, 민의 씨. 손대지 마세요. 법은 지켜야죠.”
노아의 말대로 놈의 눈은 반쯤 뒤집어져 있었다. 긁어댄 보람이 있는지 김민의보다는 내가 더 거슬린다는 눈빛이다. S급보다 스탯 F가 훨씬 만만하기도 할 테고. 저런 놈들이야 쉬운 상대부터 노리기 마련이지.
“주제에 충성스런 개새끼 씨, 이름이나 알자.”
“최동균이다. 똑똑히 기억해 둬라.”
같은 최 씨네. 혹시 친척이라 더 저러는 건가. 최동균은 나한테 험한 꼴 보여 주겠다며 왁왁거렸고 예림이는 창을 꺼내들다가 내 제지로 씩씩거렸다.
“범죄는 안 된다.”
“길드장한테 말하는 건요?”
“그것도 안 돼. 말하지 마. 민의 씨도 나서지 마시고 말하지도 마세요. 아예 저놈 근처에도 가면 안 됩니다. 예림이 너도 마찬가지야. 저 새끼가 접시 물에 알아서 코 박고 죽어도 정황상 괜히 의심 산다.”
마침 헌터증도 나왔기에 애들 달래 가며 자리를 떠났다. 복도를 걸어가는 내내 예림이의 걸음걸이가 킹콩처럼 요란했다. 저러다 바닥에 구멍 나겠다.
“저걸 어떻게 그냥 내버려 둬요?”
“우리나라는 사적인 제재가 허용되어 있지 않단다, 예림아. 그리고 어차피 저런 놈들은 오래 못 살아요.”
괜히 네 손과 이미지 더럽힐 필요 없다고 다독이다가 한산한 복도에서 걸음을 멈췄다.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
화장실은 넓고 깨끗한 데다가 칸이 여느 공중화장실과 달리 튼튼하고 두꺼웠다. 평범하게 만들어 놓으면 파손율이 높다던가. 각성자 등록하러 막 각성한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다 보니 그런 모양이었다.
사람은 없었지만 그래도 혹 모르니 가장 안쪽 칸으로 들어가 휴대폰을 꺼내었다.
그냥 내버려 두기엔 김민의의 안전도 문제에 유현이가 또 괜히 나설까 봐 걱정되었다. 녀석 귀에 오늘 일이 안 들어갈 리 만무하고, 어떻게든 손써 버리겠지.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상대가 먼저 적의를 드러낸 이상 필요한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MKC 헌터들을 해연에 흡수하려는 지금 상황에서는 여러모로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어쨌든 예전 직장 동료니까 대놓고 해치는 건 자제해야지.
[이유가 마음에 들지 않아.]성현제가 이내 답장을 보내왔다. 뭔 소린지 모르겠다.
[적지도 않은 이유가 마음에 들지 않다니, 무슨 소립니까.] [한유진 군이 끌어안고 있는 어린애들에겐 이빨도 발톱도 있지.]뭐야. 그러니까 우리 애들 위한 부탁을 자기한테 하지 말라 이건가. 애들이 충분히 알아서 처리할 수 있으니까?
[저 죽이겠다는 놈입니다만. 자칭 댁 아이템 관리 제대로 안 할 생각입니까?] [그럴 리가.]계속 빙빙 돌려 말하기냐. 문자 오고가는 게 답답해져서 전화를 걸었다.
“싫으면 싫다고 그냥 말을 하세요. 다른 방법 찾을 테니까.”
끈 떨어진 A급 헌터 하나 묻는 것쯤 어렵지 않다. 성현제를 통하는 게 제일 쉽고 빠른 방법이니 연락한 거지.
[부탁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야.]어르듯 부드럽지만 동시에 내려다보는 티가 나는 목소리가 말했다.
[계산 없이 그놈이 거슬리니 치워 달라 말한다면, 얼마든지 들어주겠네. 내가 그 정도쯤 못 해 줄까.]“부탁이 아니라 거래면 됩니까.”
[저런, 쌀쌀한 소리를 하는군. 순수하게 스스로를 위해 내게 매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이건만.]뭐라는 거야 진짜.
“댁 잘난 건 인정하지만 그래 봤자 내가 정말로 원하는 건 못 줘요.”
[줄 수 있다면?]“그럼 이미 달려가서 무릎이라도 꿇었겠죠. 울면서 매달릴 수도 있고. 엎드려 기어 구두라도 핥아드립니다. 정말로.”
그 정도쯤 어렵지 않다. 그깟 자존심 갖다버리는 거 새삼스럽지도 않고. 진짜 바닥 좀 기어서 바라는 대로 모든 게 잘 끝날 수 있다면 감사할 따름이지.
진심으로. 더 잃을 일 없이, 되찾기까지 할 수 있다면.
[…전화상이라는 게 아쉽군.]성현제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내 부족함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거래가 아닌 부탁으로 받아들여 주지.]“…일단은 감사합니다.”
속 안 뒤집고 순순히 들어줬으면 더 고마웠겠지만. 이어 식사는 제때 하고 있느냐 둥의 쓸데없는 잔소리를 하기에 전화를 끊었다. 체중계 보낼 테니 몸무게 재서 보고하라니, 헬스 트레이너냐.
“그럼 나도 생일 챙기는 게 좋을까요?”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예림이의 고민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그편이 안전해요.”
“뭐, 사 주지. 생각나는 게 없는데. 그 아저씨 돈도 많잖아요. 안 가진 거 없겠죠?”
“사 주긴 뭘 사 줘.”
무슨 이야기 하나 했더니 세성 길드장 생일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신경 쓸 필요 없어.”
“하지만 안 챙기면 괜히 시비 걸어올 수도 있다는데요.”
“걱정 마. 세성 길드장이 너한테 헛짓거리 하면 내가 멱살 잡고 던져 버릴 테니까.”
“멱살 잡았다가 그대로 들려가는 미래가 눈에 선한데요. 길드장놈님 막 날뛰고 서울 막 불바다 되고.”
내가 그렇게나 못 미덥냐. 물론 나도 내 무력에 대해선 믿음이 바닥치고 땅을 뚫는다만.
“그리고 쓴 게 있으니까요. 5억 질렀으니 만 원 정도는 갚아주죠, 뭐.”
착하기도 하지. 그보다 노아도 생일 선물 해 줬던 건가. 한국에 없을 때였으니 해외에서 보냈다는 거잖아? 설마 싶어서 물어봤더니 노아가 아니라고 대답해 주었다.
“전 시비 걸 대상이 아니라 챙겨줄 필요 없었어요.”
“시비 걸 대상이 아니라고요?”
“그게… 음, 누님의 부속품 같은 느낌이었지요. 굳이 건드릴 필요 없이, 길들여져 있다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생일 선물로 트집 잡는 것도 관심 있는 상대에게나 하는 거니까요.”
“아니 노… 민의 씨가 어디가 어때서 관심이 없대요? 그 인간한테 관심 받아서 좋을 거 없긴 하지만, 얼마나 유능하고 잘났는데. 보는 눈이 없네.”
어디 하나 빠지는 곳 없는 사람이 노아 씨 아니냐. 심지어 성장 환경이 그 리에트다. 그 환경에서 이렇게 성격까지 좋으니 완전 천사 수준이지. 그런 놈 신경 쓰지 말라면서 다시 걸음을 옮겼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에게 저녁에 인터뷰할 거라고 말해 놓고 차에 올라탔다.
“리에트는 소영 씨와 던전에 들어가 버렸으니 여유는 좀 더 생긴 셈이네요. 두 사람이면 금방 나오겠지만 소영 씨 일로 승부 보기로 해 놓고서 말도 없이 멋대로 행동했으니 그걸 빌미로 유리하게 날짜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승부라뇨?”
예림이가 뒷좌석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며 물었다.
“저 없는 사이에 무슨 일 있었던 거예요?”
리에트와의 일을 대략적으로 설명해 주자 예림이가 신나 하며 노아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도 응원해 줄게요! 버프 걸어 줘도 되나?”
“개인적인 대결이니까 안 되지. 딱 나까지만 도와주기로 했어. 아, 숄 빌려주는 건 괜찮겠다. 속성 효과는 못 받지만 노아 씨에게 유용할 거야.”
비행과 회피에 도움이 되는 데다가 숄 형태라 전용화 상태로도 사용 가능하다.
“다른 사람이 버프 걸어 주는 건 안 돼도 스탯 대여는 괜찮을 거고요. 유현이나 세성 길드장에게 부탁하면 상당한 도움이 되겠지요.”
둘 다 스탯 좋으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를 더 갖추면 리에트와의 싸움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다. 이왕 붙는 거 이겨야지.
“세성 길드장도 초대해서 사람 잘못 봤다는 거 확실하게 느끼게 해 주자고요.”
우리 노아 씨는 충분히 잘났다. 그 인간 관심은 필요 없지만 무시받는 건 안 되지.
해연으로 돌아와 김민의를 깨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김민의는 스탯을 B급으로 올려야 안전할 거라는 말엔 울상을 지었지만, 사육시설 쪽으로 출근하며 놀고먹어도 된다는 소리에는 반색했다.
“안 그래도 던전 도는 거 물리던 참이었거든요!”
직접 몬스터를 잡진 않지만 피 튀기는 현장이 영 적응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헌터라고 해서 다들 몬스터 사냥을 즐기는 건 아니었다. 대체로 싸움을 좋아하는 전투계 중에서도 드물게 평화주의자가 있었고 보조나 치유 쪽은 그 비율이 더욱 높았다.
그래서 젊었을 때 바싹 벌고 나중에 헌터 관련 사무직 할 생각이었는데 잘되었다며 좋아하는 얼굴을 보니 양심의 가책이 많이 사라졌다. S급이 된 이상 사무직으로 받아주는 곳은 없겠지만 연봉 잘 챙겨줄 테니 은퇴하고 놀고먹으세요.
“계약 기간은 5년입니다. 그때까지 비밀 엄수하셔야 하고요.”
“네, 네~. 근데 진짜 S급 헌터만큼 돈 주는 거예요?”
“당연하죠. 아무리 집 지키기만 한다 해도 S급 헌터인데 푼돈만 챙겨주는 건 이상하게 비칠 테니까요.”
예림이와 똑같이 기본급 연 백억이다. 김민의는 진짜 그렇게 챙겨줄 줄 몰랐다며 좋아 죽으려 했다. B급 중급 헌터일 때는 던전 열심히 돌아도 백억의 반의반도 못 벌었으니까. 보조계다 보니 상대적으로 던전 수입이 적기도 했을 터다.
“대신 신분은 필요할 때마다 빌려주셔야 합니다.”
“얼마든지요! 근데 인터넷은 연결해 주면 안 돼요?”
“손 간수 잘하시리라 믿고 편의 시설 최대한 갖춰드릴게요.”
만에 하나 적대 세력에서 공격해 오거나 한다면 가장 먼저 노려진다는 위험성이 있다는 솔직한 주의사항에 던전 도는 것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라며 헤죽 웃는다. 백억인데 그럴 수도 있죠, 라니. 낙천적이어서 좋구나. 하긴 더 위험한 일 하고도 쥐꼬리만큼 버는 사람도 세상에 널렸다.
이어 석시명에게 넘겨진 김민의는 저녁에 교육받은 대로 인터뷰를 하였다. 대략 흔한 B급 보조계였지만 S급으로 성장할 수 있어서 기쁘고도 감격스러우며 다른 보조계 헌터들도 희망을 가지라는 내용이었다. 시스템이 사라지면 F급도 S급 될 수 있다 했으니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다.
그리고 밤에, 유현이와 열 받은 예림이가 찾아왔다.
“아저씨!”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한 얼굴의 예림이가 목소리 높여 소리쳤다.
“한유현 진짜 아저씨랑 같이 살기로 했어요?!”
“…응?”
그러고 보니 유현이 녀석 짐을 챙겨왔네. 손에 큼직한 캐리어가 들려 있다. 어떻게 된 일이냐며 동생을 바라보자 배시시 웃는다.
“형이 먼저 우리 집이라고 했잖아.”
그야 그랬다만.
“아예 옮기는 건 아니고, 저쪽은 바쁠 때만 쓰려고. 안 돼?”
“안 될 거야 없지만. 여긴 애들 많아서 밤에 시끄러울 수도 있다.”
“괜찮아.”
그럼 마음대로 하란 소리에 예림이가 울상을 지었다.
“아저씨, 저는요!”
…넌 또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