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70
170화 예림이
– 푸르릉.
유현이와 예림이가 나타나자마자 훈련용 인형 뒤로 숨어 버린 두 유니콘들이 머리만 배꼼 내민 채 경계 어린 눈빛을 보내왔다. 등급 차이 때문인지 종족 특성인지 다른 마수들과 달리 저 망아지들은 예민한 편이었다. 예림이와 처음 만났을 때도 손을 물어 버렸었는데, 이제는 아예 접근조차 하려 들질 않는다.
“하양아, 까망아. 이리 와.”
내 부름에 하양이가 먼저 또각또각 발굽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이어 까망이가 몸을 낮추었다가 풀쩍 단번에 뛰어온다. 아직 어린 망아지 크기지만 내 뒤에 둘 다 숨기는 무리건만 어떻게든 숨겠다고 서로 몸을 최대한 붙인다. 그러면서 내 옷자락을 잘근거렸다. 옷 씹는 버릇이 있어서 여러 벌 버렸지.
“저도 집 옮길래요!”
예림이가 외치고 망아지들이 또다시 흠칫 놀란다.
“한유현만 홀랑 들어가는 건 치사하잖아요!”
“아니, 유현이는 내 동생이잖아. 치사하단 소리가 왜 나오냐. 우리 원래 같이 살았어.”
같이 산 기간이 떨어져 산 기간보다 훨씬 길다. 회귀 전을 제외하면 이제 겨우 3년이니까. 별일 없었으면 여전히 같이 살고 있었을 거고. 올해 입대했으려나.
내 말에 예림이가 분한 얼굴을 하고 유현이가 보란 듯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망아지들이 기겁하며 타닥타닥 다시 인형 쪽으로 도망친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같이 살았지.”
“역시 치사해!”
…당연한 일 가지고 뭐 하냐, 둘 다.
“짐은 그것뿐이야?”
잠깐 여행 가는 것도 아니고, 캐리어 하나면 너무 적지 않나. 동생 집에 개인용품은 별로 안 보이긴 했다만.
“당장 입을 옷 정도만 챙겼어. 다른 건 집에도 있고, 필요한 건 사면 되니까.”
하긴 돈 있으니 무슨 걱정이겠냐. 그래도 다른 챙길 물건이 없다는 말은 탐탁찮게 들렸다. 예전 집 떠나서 3년이나 살았으니 이런저런 잡다한 추억거리들이 제법 쌓였을 만하지 않나. 아예 옮긴 건 아니니 해연 쪽 집에 둬도 상관없어서일까.
“먼저 들어가 있어. 방은 계속 쓰던 곳 쓸 거냐?”
“응. 그 방이 좋아.”
동생 녀석이 방긋방긋 웃고 있다 보니 나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도 성인이긴 한데 너무 귀엽게 구는 거 아니냐. 어릴 때 생각도 나고.
유현이를 올려보낸 뒤 두 유니콘에게도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말 한마디에 알아서 통통 뛰어간다. 그러곤 토라진 듯 불퉁하게 서 있는 예림이에게로 다가갔다.
“예림아.”
“저 혼자 사는 거 싫어요.”
툭 내뱉는 목소리가 조금 풀이 죽었다.
“기숙사 좋긴 한데, 전보다 편하긴 한데, 그래도 좀 쓸쓸해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어린애를 혼자 두었구나 싶어졌다. 언제나 활기차게 다른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고 놀러 다녀서, 아무 문제 없구나 생각해 버렸다. 쓸쓸해할 만한 게 당연한데도.
“미처 챙겨 주지 못해서 미안해.”
“아니에요. 안 맞는 사람들이랑 사는 것보단 훨씬 나아요. 하지만 나도 아저씨랑 같이 살고 싶은데. 안 돼요?”
“안 될 것까진 없지만 일단 성별이 다르고 나이도 어리고…….”
“아저씨보다 제가 훠얼씬 더 강하니까 상관없어요.”
“그래도 불편하지 않을까.”
“삼촌네 살 땐 사이 나쁜 사촌 새끼가 둘이나 있었는걸요. 방도 저 혼자 못 썼어요.”
“불편했겠다.”
“죽이고 싶었죠.”
예림이가 진지하게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잠깐 고민하다가 걸음을 옮겼다.
“우리 같이 산책 좀 하자.”
“너무 심각하게 나오는 거 아니에요? 아저씨가 싫으면 거절해도 돼요.”
“싫은 건 아니야.”
다만 걸리는 것이 있었다.
예림이와 함께 옥상정원으로 올라갔다. 가로등이 군데군데 서 있긴 하지만 제법 어둡다. 해가 졌음에도 여름 공기는 아직 후덥지근했다. 그리고 이내.
“윽.”
모기가 팔에 달라붙었다. 가로등 근처에는 다른 날벌레들도 우글거린다. 벌레 싫어.
“참, 아저씨는 모기가 물죠.”
“보통은 물지. 게다가 독 저항이 인식할 정도가 안 되는지 가려워.”
자기는 각성 후엔 모기 물린 적 한 번도 없다며 예림이가 차가운 탄식을 약하게 사용했다. 피부가 서늘해지며 하얀 안개가 주위로 퍼져 나간다.
“이러면 모기가 안 올걸요.”
“시원하네.”
“그쵸. 에어컨이 따로 필요가 없다니까요.”
그때 푸드덕 날갯짓 소리와 함께 블루가 나타났다. 부리를 쫘악 벌리며 인사하는 눈이 반쯤 감겨 있었다.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자는 녀석이다 보니 지금은 한창 잠들어 있을 시간이었다.
“계속 자지 왜 나왔어.”
– 꺄우.
“블루야, 오랜만!”
내게 머리를 비비고 예림이에게는 힘껏 들이받은 그리폰이 하품을 쩍 했다. 얼른 들어가 자라며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자 꼬리를 휙 흔들곤 다시 날아간다.
“블루 진짜 현아 언니 줄 거예요?”
“브레이커에서 이번에 몬스터 새끼 무사히 낙찰 받으면 안 보낼 수도 있고. 현아 씨가 잘 돌봐 주긴 할 것 같지 않냐.”
“엄청 아껴 주겠죠. 블루가 냉기 저항 있으면 저랑 같이 던전 돌아도 될 텐데. 현아 언닌 속성 안 타서 부러워요.”
“너한테 맞는 기승수도 반드시 구해다 주마. 냉기 저항 있는 몬스터 새끼 얻기만 하면 제일 먼저 키워 줄게.”
“특별대우라고 욕먹는 거 아니에요?”
“욕 좀 먹으면 어때. 원래 사회는 인맥 빨이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길을 따라 걸었다. 이번에 공략한 S급 던전 이야기도 나왔다. 보스를 혼자 빠르게 처리한 덕분인지 괜찮은 S급 아이템을 받았다고 했다.
“덕분에 남은 빚 다 갚게 됐어요. 그동안 반쯤 갚았었는데, S급 아이템 감정가가 딱 남은 금액만큼 나왔거든요.”
“경매 들어가면 좀 더 나올걸? 반쯤 갚은 것도 대단하네. 더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그 큰 두꺼비 나왔던 던전 덕이 컸죠. 그때 마석 제가 다 먹었잖아요. 두꺼비 부산물도 금액 분배했는데 그게 또 엄청 비쌌었죠.”
그 밖의 던전에서도 S급인 덕에 분배 비율이 높다 보니 차곡차곡 잘 모였다면서 활짝 웃는다. 이제 겨우 중학생인데 너무 기특한 거 아니냐. 내가 다 뿌듯해짐과 동시에 가슴 안쪽이 무거워졌다.
‘내 새끼 스킬의 키워드 효과…….’
예림이에게는 알고 적용한 건 아니다. 하지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유현이는 애초에 내가 양육자였지만 예림이는 다르다. 내게서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았고, 그로 인해 호감이 생긴 것이다.
그 사실을 계속 모른 척할 순 없었다. 무엇보다도, 나도 이 아이를 좋아하고 있으니까.
그냥 친분 있는 헌터로 끝낼 것이라면 입 다물고 있어도 괜찮다. 아는 사이 정도로 인사나 하며 지나치는 수준이라면 스킬 효과로 인한 시작이었다 해도 별로 거리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리 도덕적인 인간도 아니니까.
하지만 예림이는 너무 가까워졌다. 그리고 더욱더 가까워지고 싶어 하고 있었다. 우리 둘 다.
“예림아. 네게 말해 줘야 할 게 있어.”
스킬 창에는 대상이 키워드 효과를 알게 되면 스킬의 적용이 불가능하다고 적혀 있었다. 그 알게 되는 범위가 어디까지일까. 일단 내게 양육자를 비춰 보는 효과는 스킬 창에는 없었다. 키워드를 정확히 말해 주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스킬 창에 표시되지 않은 숨겨진 효과를 설명해 주는 것도 금지되어 있는 것일까.
‘만약 스킬이 적용 취소된다면.’
내 새끼 스킬의 성장 버프를 예림이에게 줄 수 없다는 건 큰 손해다. 하지만 내가 인어여왕의 스킬을 뜯어 낸 것처럼 어떻게든 보충해 주면 된다. 그러니까.
“일전에 나를 보면 어릴 때 알고 지내던 아저씨가 생각난다고 말했었지.”
내 말에 예림이가 크게 당황한 얼굴을 했다.
“어, 그거 역시 신경 쓰고 계셨어요? 지금은 안 그래요!”
“안 그래?”
“네! 처음엔 그 아저씨 생각이 많이 났던 건 사실이에요. 아저씨가 제 앞에 나타나 준 것도요, 계속 상상해 왔던 일이었거든요.”
예림이가 조금 부끄러워하며 말을 이었다.
“그 아저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건 알고 있지만 어릴 때 일이잖아요. 그래서 어쩌면 살아 있었고, 갑자기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었어요. 소공녀처럼요. 부모님 대신 옛날처럼 절 돌봐주겠다면서, 삼촌 집에서 데리고 나가 정원이 있는 저택에서 살게 되는 꿈같은 거 꿨었는데. 그런데 아저씨가 진짜로 나타나서 각성시켜 줬잖아요.”
상상과는 좀 다르긴 했지만 더 좋았다고 말했다. 돈이며 집이며 인형 같은 게 그냥 주어지는 것보다 자기 힘으로 얻을 수 있게 된 것이 더 만족스럽고 즐겁다고.
“그래서 비슷하게 느낀 건 사실이지만 이젠 아니에요. 아저씨가 더 좋아요.”
또렷하게 나를 마주 보며 말했다. 문득 김성한이 떠올랐다. 예림이 또한 김성한처럼 내게서 양육자를 생각나게 하는 키워드 효과가 사라진 것일까. 그럼에도 여전히 내게 호감을 나타내고 있다면.
어쩐지 속이 뜨끈해졌다. 조금 망설이다가 공포 저항 스킬을 껐다. 공포 저항을 켜 놓은 채라면 나 혼자 방어벽을 세우고서 쉽게 말해 버리는 셈이니까.
“일단… 고마워.”
“뭐가 고마워요. 아저씨가 저한테 잘해 주니까 좋아진 건데.”
“그래도 고마워. 그리고 예림아, 처음 우리가 가까워진 건… 사실은 내 스킬 효과 덕이 커.”
“…네?”
예림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입안이 약간 마르는 느낌이 들었다.
“일종의… 상대방에게 호감 같은 걸 느끼게 하는 스킬 효과가 있었어. 스킬 창에는 안 나온 탓에 나도 처음에는 몰랐는데, 네가 나를 어릴 때 돌봐 준 아저씨처럼 느낀 게 바로 그 스킬 때문이야.”
말을 하면서 스킬 창을 확인해 보았다. 박예림, 그 세 글자는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다행히 이런 식의 설명으로는 키워드 적용이 취소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한숨을 삼키고 다시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널 속인 거나 다름없지만 난…….”
“잠깐만요.”
예림이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한쪽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럼, 어, 아저씨가 저한테 잘해 준 것도… 스킬… 때문이에요?”
“응? 아니, 스킬은 너한테 적용된 거니까.”
“…진짜죠?”
“진짜야.”
“다행이다.”
예림이의 얼굴에 잠시 드리워졌던 불안한 기색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활짝 웃으면서 내 팔을 아프지 않게 툭 친다.
“전 또 아저씨가 스킬 때문에 친절한 건 줄 알고 놀랐잖아요. 스킬 아니었음 저 안 좋아하는 줄 알고.”
“그럴 리가 없잖아. 그리고 스킬에 지속시간이 있어서 지금은 너한테도 효과 사라졌어. 좀 전에 더는 나를 어릴 때 알던 그 아저씨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잖아. 스킬 효과가 사라졌기 때문이야.”
“진짜요? 그럼 저도 양심의 가책 같은 거 느낄 필요 없겠네요?”
그동안 찝찝했었는데 속 시원해졌다며 기지개까지 쭉 켠다. 기분 좋다고, 날아갈 것 같다더니 정말로 공중에 살짝 떠올랐다. 나와 눈높이를 맞춘 예림이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저씨 정말 쓸데없는 걱정 하고 있었구나.”
“…쓸데없는 걱정이라니.”
“그렇잖아요.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나서 이것저것 다 퍼주고, 나 너 좋아해, 귀여워해 티 팍팍 내놓고선 사실은 스킬로 네가 날 좋아하게 만든 거였어, 라니. 솔직히 그 반대여야 맞는 거 아니에요? 아저씨가 날 홀린 게 아니라 내가 아저씰 홀린 거 같았다고요.”
…그 정도였나. 잘 모르겠다.
“예림이 네가 먼저 날 좋아해 주니까 그런 거지. 그게 스킬 효과 때문이었고.”
“비싼 밥 사 주고, 각성하게 해 주고, 계약이며 이것저것 도와준 사람을 안 좋아할 정도로 양심 없지 않아요, 저.”
“그래도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해 볼 일이라고.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정신계 작용 하는 스킬을 쓴 것부터가 문제야. 가볍게 넘어가면 안 돼. 예림이 네가 잘 몰라서 심각성을…….”
“또 이러신다.”
예림이가 내 말을 끊으며 내 손을 잡고 악수하듯 흔들었다.
“그냥 미안했다, 하고 끝내요. 그리고 블루 살았던 복층 저 주시면 돼요.”
“복층? 거기 넓긴 한데 한쪽이 벽 대신 난간으로 트여 있어서 네 방으로 쓰긴 불편할 텐데.”
“커튼 달면 되죠. 예전부터 복층에서 살고 싶었어요! 가짜지만 창문도 나 있잖아요. 열 수 있으면 진짜 완벽했을 건데. 저는 짐 많아서 다 옮기는 건 힘들고, 기숙사랑 아저씨 집이랑 둘 다 쓰려고요. 길드장님처럼요.”
그래도 되죠, 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얼굴 펴세요. 그만 미안해하고 대신 저까지 들어오는 거 틀림없이 싫어할 한유현 퇴치하는 걸 도와주세요!”
“그렇게 싫어하진 않을 거 같은데.”
“말 듣자마자 인상 확 찌푸릴 모습 눈에 선하거든요. 지금도 아저씨 늦게 들어온다고 언짢아하고 있을걸요.”
그러니 얼른 들어가자며 앞장서는 뒷모습을 조금 멍하게 바라보았다. 이렇게 마무리 지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마음은 확실히 가벼워졌다.
우리 예림이가 너무 착해서, 너무 쉽게 용서를 해 주네. 그때 예림이가 나를 홱 돌아보았다.
“또 그렇게 보신다. 그러면서 뭘 계속 미안해해요.”
“응?”
“빨리 와요. 어서요.”
팔랑팔랑 흔드는 손짓을 따라 발을 내디뎠다. 시원한 안개가 주위를 맴도는 탓인가, 팔에 매달리는 온기가 유독 기껍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