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71
171화 상품 (1)
“진짜 난 안 가도 되겠어?”
최석원과 관련된 일로 오늘쯤엔 협회나 각성자 관리실로 가 봐야 했다. 하지만 동생은 갈 필요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형은 대외적으로는 전투 관련 능력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까. 단순 목격자일 뿐이니 굳이 갈 이유 없어. 내가 김민의 헌터와 함께 가면 돼. 게다가 MKC 쪽에서 시비도 걸어왔었다며.”
“걔들이야 예민해질 만한 상황이잖냐. 혹여 마주쳐도 적당히 넘겨 줘. 해연에도 여럿 들어올 텐데 인상 나빠져서 좋을 거 없으니.”
최 어쩌고와 같이 왔던 헌터들도 길드 옮기게 해 주겠다던 내 말에 솔깃해했으니 나머지야 말할 것도 없을 터다. 최 어쩌고 외에는 크게 시비 걸어올 것 같지도 않고, 그놈은 성현제가 처리해 주겠지.
“김민의 씨 잘 챙겨줘.”
계약 조건에 무척이나 만족하고 있긴 하지만 일단은 본의 아니게 휘말린 사람이니. 유현이와 함께 현관 쪽으로 걸어가며 거실을 향해 소리쳤다.
“예림아, 넌 안 가냐!”
“전 쫌 늦어도 돼요!”
“되긴 뭘 돼. 10시에 수업 있다며. 짐 거의 안 챙겨 왔으니 그 전에 기숙사에도 들러야 하잖아. 얼른 나와.”
학용품은 하나 없이 인형만 들고 왔다. 예림이가 툴툴대며 나타났다.
“진짜 느긋이 가도 되는데. 전 길드장이랑 달리 비행 스킬도 있거든요. 한유현이 걸어서 돌아가는 동안 날아서 휙 일직선으로 들어가면 되니까 금방이에요.”
뻐기며 말하는 예림이를 유현이가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기억력이 나쁘군.”
“뭐?”
“유현이 비행 스킬 대용 스킬 있잖아. 둘이 싸우진 말고.”
어젯밤에도 한바탕 할 뻔한 걸 겨우 말렸다. 아침 식탁에서도 젓가락이 벽에 꽂히는 불상사가 일어났었고. 진심으로 죽자 살자 덤비는 건 아닌, 가벼운 다툼이긴 했지만. 그 가벼운 다툼에 스탯 F급 등 터진다고 잔소리를 늘어놓고 나서야 겨우 진정되었다.
나란히 서서 미안하다고 얌전히 사과하는 모습이 좀 귀여웠지. 화난 척해야 하지 않았더라면 사진을 찍어 뒀을 텐데.
“그거랑은 다르죠! 뛰는 거랑 나는 게 어떻게 같아요. 게다가 던전 밖에서 나뭇잎 날려대는 거 민폐예요. 그거 누가 다 치워요?”
실물 잎이 아니라 스킬이라서 사라지는 거다만. 워낙 진짜 같아서 자세히 안 보면 착각할 법은 했다. 유현이가 그것을 지적하며 비웃기 전에 재빨리 먼저 나서서 화제를 돌렸다.
“예림아, 여기 열쇠. 곧 다 바꾸긴 할 거지만 일단 가지고 가.”
전에 송태원으로부터 받은 열쇠들을 내밀었다. 유현이만 옮겨 왔다면 모를까 예림이도 있는데 문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포털 키는 물론이고 현관 문 열쇠도 전부 교체할 생각이었다. 다른 길드들이 항의해 올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내 집이다.
정 싫으면 계약 끊든가. 세성과 브레이커는 그럴 일 없겠지만.
“진짜 저 가져도 되는 거예요?”
“너도 여기 사는 사람인데 당연히 되지. 열쇠가 없는 게 더 이상하지 않냐.”
“그건 그렇죠!”
예림이가 신나 하며 열쇠를 받아 챙겼다. 둘을 현관까지 배웅하며 옷에 털이 묻진 않았나 살펴보았다. 유현이는 괜찮았지만 예림이는 그새 피스를 끌어안기라도 했는지 군데군데 빨간 털이 묻어 있다. 현관에 놓아 둔 테이프 크리너로 털을 떼 주었다.
“오늘은 어디 안 나갈 거지?”
“응. 명우한테나 가 보려고.”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해. 건물 내에서도 절대 혼자서는 다니지 말고.”
“걱정 마. 피스 옆에 붙이고 다닐 테니까. 노아 씨도 있고.”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놈이 무슨 애 혼자 집에 두고 나가는 것 같은 얼굴을 한다. 정신적으로 치면 열 살 차이다, 이놈아. 그 옆에서 예림이도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저한테도 연락하세요, 아저씨. 바로 날아올 테니까요.”
“그래, 그래. 공부 열심히 하고. 대학 쉽게 갈 수 있다고 해서 게을리 하지는 마라.”
“아, 원래는 방학인데.”
“중학교는 슬슬 개학할 때 됐잖아. 뭣보다 보충수업이고. 예림이 너, 수업 제대로 안 들으면 연락해 달라고 말해 놨어.”
“예, 예.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올게.”
둘이 나란히 문을 나섰다. 현관 바로 앞에 있는 미니포털 너머로 사라지는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을 닫았다.
내 옆으로 바싹 다가붙는 피스와 함께 거실로 돌아가자 커튼이 활짝 젖혀진 복층이 보였다. 아침에 예림이가 뛰어내린 흔적이었다. 커튼보다는 가벽 같은 걸 대는 게 어떻겠냐는 말에 끝끝내 고집을 꺾지 않더니 저러고 싶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올라갈 때도 날아서 커튼 열고 들어가고 내려올 때도 그냥 뛰고. 편해 보이긴 했다.
‘그래도 커튼은 좀 닫고 다니지.’
방문도 아니고 벽을 열어 놓은 셈이잖아. 잠깐 머뭇거리다가 계단을 올라갔다. 예림이는 신경 쓰지 말라 했지만 그래도 여자애 방이니 함부로 드나들기 꺼려진다.
“피스 넌 안 돼. 털 날려.”
– 끼웅.
피스가 따라 올라오려다 말고 걸음을 멈췄다. 네 털로 뒤덮이는 건 내 침실로도 충분하단다. 지금은 덜해졌지만 날이 막 더워졌을 땐 털갈이하는지 엄청 날렸었다.
제법 넓은 복층에는 한밤중에 옮겨 온 침대와 작은 서랍장 외의 가구는 없었다. 제대로 준비하자고 했지만 예림이가 굳이 밀고 들어온 탓이었다. 넓은 게 좋다면서 예림이가 직접 골랐다는 너른 침대 위에는 커다란 인형이 뒹굴고 있었다. 이불의 절반은 바닥까지 닿아 늘어진 채다.
침대를 정리하고 커튼을 쳤다. 가구를 더 들이긴 해야 할 텐데 뭘 사야 하나. 옷장에 책상도 필요할 거고. 유현이도 원래라면 아직 공부용 책상이 있어야 할 나이인데.
‘저녁에 같이 가구 사러 갈까.’
유현이도 뭐 더 필요한 게 있을지도 모르고. 예산은 넉넉하니 제일 좋은 걸로 사야지. 요즘 애들 책걸상 브랜드가 뭐가 제일 잘나가지. 그리고 또 그릇이랑 수저도 더 사야 할 거고. 앞으로 계속, 같이 지내려면.
…순간 머릿속이 죽은 듯이 새하얘졌다.
돌아올 거라 믿은 적이 있었다. 언제까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계속 포기 못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돌아왔다. 그 사실에 순수하게 행복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지만.
– 삐약.
어느새 날아왔는지 삐약이가 내 앞에 동동 떠 있었다. 피스가 올라오진 못한 채 끙끙거리는 소리도 들려온다. 서랍장 위의 시계를 보자 애들 나가고 삼십 분 넘게 흘렀다. 한참을 멍하게 서 있었구나.
“그래, 내려가자.”
계단을 내려가자 피스가 얼른 발치로 달라붙는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확인해 보자 예림이 담당 가정교사다. 예림이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단다. 나간 지 꽤 됐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 예림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앗, 아저씨! 블루가 놀아 달라고 해서… 지금 바로 날아가요!]전화를 받자마자 변명을 늘어놓는다. 녀석 참. 그래도 경쾌한 목소리를 듣자 나까지 기운이 나는 것 같다.
뒷정리를 대충 해 놓고 나도 집을 나섰다. 피스는 물론이고 삐약이에 벨라레까지 따라붙었다. 그나마 코메트는 자고 있어서 다행이지 다 데리고 다니기도 은근 힘들다. 내가 피곤해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피스가 안아 달라 하지 않고 앞장서 걸음을 옮겼다.
‘기특하다니까.’
우리 애들은 정말 하나같이 너무 잘나서 문제다.
빌딩 쪽으로 향하는 길에 조용한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위를 올려다보자 노아가 부드럽게 날아 내려오고 있었다. 내 앞에 착지해서는 평소보다 더 수줍게 미소 짓는다.
“안녕하세요, 유진 씨.”
인사를 하고는 어째서인지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저어… 해연 길드장과 박예림 헌터가 한유진 씨와 함께 살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
“벌써 말이 퍼졌나 보네요.”
“어젯밤에 조금 요란했었으니까요.”
하긴 예림이가 커다란 침대 들고 공중을 가로질러 오고 유현이가 마음에 안 드는 티 팍팍 내며 실수인 척 침대 불태워 버리려고 했으니까. 그 난리를 치고서 소문이 안 나는 게 더 이상하겠지.
“어쩌다 보니 예림이도 제 집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아직 어리다 보니 혼자 사는 게 쓸쓸했던 모양이더라고요.”
유현이야 친동생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고.
“그렇군요. 박예림 헌터는 아직 어리죠……. 저는 별로 안 어리고요.”
“예림이보다야 나이가 많지만 노아 씨도 어린 편, 아, 아니에요.”
너무 애 취급하면 기분 나쁘겠지. 안 그래도 자꾸 어리게 느껴져서 태도로도 티가 많이 날까 봐 걱정이다. 보통 저 나이대면 어른스러워 보이고 싶을 테니까. 심지어 전 길드장이기까지 하니 자칫하면 무례하게 보일지도 몰랐다.
“노아 씨는 훌륭한 어른이죠.”
“…네.”
노아가 약간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어째 뭔가 실망한 것 같기도 하고……?
“노아 씨?”
“아뇨, 그, 전에 누님께서 계실 땐 유진 씨 집에 머무르게 해 달라고, 했었잖아요.”
“네, 그랬죠. 리에트는 던전 들어갔으니 당분간은 괜찮을 거예요.”
“…네, 맞아요.”
“그리고 이번에 리에트를 이기면 불안감도 많이 덜어낼 수 있을 거고요.”
굳이 숨어들 필요 없을 정도로 자신감이 생길지도 모른다. 내 말에 노아가 발이라도 동동 구를 것처럼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누나와의 싸움이 걱정되는 건가. 무섭기는 하겠지.
어린 시절부터 내내 자신을 억압해 왔던 오랜 공포의 대상이다. 묶인 줄을 단숨에 끊어내고 날아오르기란 쉽지 않은 일일 터다. 손을 뻗어 노아의 어깨를 살짝 토닥여 주었다.
“너무 부담 가지지 마세요. 이기든 지든 노아 씨가 한발 나아간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유진 씨, 저는. 그러니까…….”
노아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무어라고 말했다. 네? 하고 되묻자 얼굴을 붉힌다.
“아니요, 그게, 저도…….”
또 작게 웅얼거리더니, 이내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은신 스킬을 쓴 모양이었다. 바로 눈앞에서 스킬을 썼건만 내 스탯이 워낙 낮다 보니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노아 씨?”
무심코 앞으로 걸어가는 나를 보이지 않는 손이 부드럽게 붙잡았다.
“전 이대로 따라갈게요.”
왜지. 이유를 모르겠다. 편한 대로 하라고 말하곤 다시 걸음을 옮겨갔다. 나와는 다르게 피스는 아마도 노아가 있는 곳을 정확히 바라보고는 내 뒤를 쫓아왔다.
빌딩으로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아는 척을 해 왔다. 명우 효과 때문인지 여전히 1층 로비를 어슬렁거리는 헌터의 수는 많았다. 진짜 카페라도 하나 낼까. 상급 헌터들은 돈 많으니 비싸게 받아먹어도 장사 잘될 거 같은데.
명우의 작업실은 전보다 더더욱 경비가 엄중해졌다. 들어 보니 그간 무단 침입하려는 헌터가 몇 있었던 모양이었다. 명우에게 잘 보이고 싶은 상급 헌터가 드글대고 있어서 별문제 없이 처리되긴 했지만.
“혈기만 앞서는 멍청한 놈들은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다들 각 길드에서 중징계를 받았다며 대장간 앞을 지키고 있던 헌터가 말해 주었다.
대장간 안은 그새 설비가 더 늘어났다. 사람 또한 낯선 얼굴이 몇 더 보였다. 전에 봤던 서동백이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선생님 뵈러 오신 거지요?”
“선생님이요?”
“본격적으로 아이템 만드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해서요,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스킬 가르치는 걸 시작했구나. 그러고 보니 저기 저 이민석 씨도 수리가 아닌 형태가 덜 잡힌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손님이 와 계시긴 한데, 한유진 씨라면 괜찮을 거예요. 이쪽으로 오세요.”
손님? 서동백을 따라가자 마나열로를 앞에 두고 명우와 또다른 사람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얌전히 땋아 내린 머리카락에 동그란 안경을 쓴 여자. 세성의 S급 헌터인 에블린이었다. 그녀는 화살을 들고 있는 명우를 집중해 바라보고 있었다. 전에 만든다던 화살의 주인이 바로 에블린이었던 모양이다.
“유진아.”
내가 온 것을 눈치챈 명우가 진지하던 표정을 풀며 미소를 머금었다. 마지막으로 보고 얼마 안 지났건만 몸이 더 좋아진 것도 같고. 여자지만 S급 헌터라 키 크고 신체의 균형도 잘 잡힌 에블린 앞에서도 별로 안 꿀려 보였다.
…둘이 은근 잘 어울리네. 혹시 화살 만들어 주는 게 에블린이 마음에 들어서일까.
“내가 방해하는 거 아닐지 모르겠네.”
“전혀 아니야. 어서 와.”
내가 다가가자 에블린이 흥미 가득한 눈길로 바라봐 왔다.
“말로만 듣던 그 캔디박스? 정말 반가워요.”
“…예?”
갑자기 웬 캔디박스 타령이냐. 그때 허공에서 스륵 나타난 팔이 나를 끌어안듯 하며 뒤로 당겼다. 노아였다.
“조심하세요. 에블린 헌터는 마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안?”
노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에블린의 미간이 좁아졌다. S급치곤 약한 편이던 그녀의 기세가 순식간에 흉흉해진다. 사나운 빛을 띤 눈동자가 나를, 노아를 노려보았다.
“입이 너무 가벼워. 아무리 주인을 바꾸었다고 해도 옛 동료의 스킬에 대해 떠들고 다니면 안 되잖니.”
이런. 그녀의 말대로 타인의 스킬에 대해 함부로 밝히는 건 민감하게 반응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노아도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유진 씨에게 접근하도록 놓아두기엔 당신은 너무 위험합니다.”
“충성스럽기도 해라.”
공기가 더더욱 살벌하게 날카로워져 가는 가운데.
터엉!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망치를 내려쳐 시선을 끈 명우가 냉랭하게 에블린과 노아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