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74
174화 남매싸움 (2)
명우는 하룻밤 새 안장대용 하네스를 완성했다. 심지어 이런저런 유용한 옵션이 붙은 S급 장비였다. 나와 노아는 그저 입을 벌려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이렇게 빨리 완성될 줄은 몰랐어.”
밤을 꼬박 새운 명우가 햇살이 눈부시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장비를 시험해 보기 위해 다 같이 옥상 정원으로 나와 있었다. 블루가 오랜만에 본 명우에게 반갑다고 덤벼드는 불상사가 있었지만 명우는 의외로 수월하게 블루의 치댐을 받아넘겼다. 물어보니 그새 스탯이 더 오른 모양이었다. 그것도 체력과 근력 위주로.
레벨업 없이 계속 스탯이 오르다니, 저러다 S급 찍는 건 아니겠지.
“전부터 생각한 건데 난 역시 무기보단 이런 비살상 장비가 더 손에 맞는 거 같더라. 쌓인 경험치가 다른 탓도 있겠지만 박예림 헌터 창 만들 때보다 이 하네스나 피스 장비 만들 때가 훨씬 쉽고 빨랐어. 더 재밌기도 하고.”
하네스의 끈을 길게 펼치며 명우가 말했다.
“은혜도 방어를 위한 아이템이 아니었다면 L급 마석을 썼다 해도 저 정도 등급은 나오지 못했지 싶어. 그리고 사실, 몬스터 대상용이라 해도 무기를 만드는 건 약간 찝찝하긴 하니까.”
살상용 무기를 만드는 것이 찝찝하다는 말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헌터들 사이의 싸움도 종종 벌어지니 언제든지 사람을 향해 겨누어질 수 있는 무기다. 그 사실이 나는 이미 너무 익숙해져버렸지만, 명우는 그렇지 않겠지.
…나도 회귀한 게 아니라면 명우와 비슷한 생각을 스스로 떠올릴 수 있었을까.
“그럼 내가 부탁한 것도…….”
“아냐, 신경 쓰지 마. 지금 세상에 무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던전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거잖아. 물론 그런 이유가 없었더라면 무기는 만들지 않았겠지만.”
그러면서 하네스의 등 부분을 보여 주었다.
“색상은 어제 이야기한 대로 하얀색으로 했어. 눈에 띄는 색상이면 노려질 가능성이 있으니까. 하체 부분까지는 필요 없으니 가슴 줄로만 만들었고.”
흰색 가죽 줄에 연결고리는 금빛을 띠고 있었다. 내구성을 높이기 위함인지 군데군데 금속 장식이 덧대진 채였다. 그런데 가슴 부분만 있으니까 솔직히, 그, 음… 강아지…….
노아에게 무척이나 미안해졌다. 정작 당사자는 장비가 빨리, 뛰어난 성능으로 완성되었다는 사실에 싱글벙글거리고 있긴 하지만.
“등 부분에는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고리도 달았어. 그리고 이건.”
명우가 가운데에 길게 늘어진 줄을 들어 보였다. 끝에 금속 버튼 같은 것이 장식처럼 달려 있었다.
“안전용 줄이야. 이걸 이렇게 허리에 대고 버튼을 누르면.”
명우가 금속 버튼을 내 허리에 대고 눌렀다. 그러자 차락, 소리와 함께 벨트가 튀어나와 허리를 감았다.
“자동으로 벨트를 착용할 수 있어. 풀 때도 버튼만 누르면 돼. 속도를 중시했지.”
확실히 줄로 묶어 두면 안전하긴 하겠지만 비상시에 빠르게 풀 자신이 없어서 포기했는데. 이렇게 쉽고 편한 벨트까지 포함시키다니. 대단하다는 내 말에 명우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 상태로는 짧지만 드래곤용으로 바뀌면 일어설 수 있을 만큼 길어질 거야. 그리고 여기 봐. 여기 두 군데가 색이 좀 다르지? 이 부분은 일종의 흡착 효과가 있어. 여길 밟고 서면 웬만해서는 미끄러지지 않아.”
밟는 압력으로 흡착되는 거라 힘만 빼면 쉽게 발을 뗄 수도 있다고 했다. 설명하는 명우의 표정이 무척이나 즐거워 보여, 확실히 이런 류의 장비를 만드는 게 좋은가 보다 싶어졌다.
언젠가는 다양한 기능성 아이템들만 만들어도 되는 날이 오게 되겠지. 만약 던전과 각성자 시스템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더라도, 명우의 손재주는 그대로니 공방을 차려도 좋을 것이다. 언젠가는, 꼭.
“성능엔 자신 있지만 혹시 모르니 은혜 켜고 시험해 봐.”
노아에게 하네스를 건네주며 명우가 말했다. 하네스를 착용한 노아가 용의 모습으로 변했다. 옅은 금빛을 발하는 비늘 위의 하얀색 가죽 줄이 제법 잘 어울렸다. …잘 어울린다고 해도 되는 건가.
– 유진 씨!
얼른 타 보라며 노아가 재촉하듯 꼬리를 흔들었다. 이러면 안 되지만 정말로 덩치 큰 강아지 같다. 귀여워.
“그럼 실례할게요.”
노아의 등 위로 올라가 허리벨트를 착용했다. 서 있을 필요는 없기에 흡착 부분에 무릎을 대고 손잡이 끈도 잡았다.
“제대로 한번 비행해 봐요. 모의 전투를 한다고 생각하고요.”
급격한 비행 시에는 내가 버틸 수가 없어서 등에 타는 것이 아닌 노아가 안아 들고서 날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노아의 손이 묶이는 셈이었다. 보조로서 전투에 참가한다면 모를까, 직접적인 싸움이 된다면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리에트와의 싸움 때 어떤 식으로 해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하네스로 버틸 수만 있다면 걱정이 해결된다.
좀 더 실감 나는 움직임을 위해 블루를 도와달라 불렀다. 녀석에게는 놀아준다는 소리로 들렸겠지만. 이어 선생님 스킬을 노아에게 썼다. 노아가 하늘로 날아오르고 블루가 순식간에 뒤쫓아 왔다.
– 꺄아.
펄럭, 희미하게 금빛을 띤 하얀 깃털날개가 크게 한 번 퍼득이더니 순식간에 노아를 지나쳐 하늘 높이 치솟았다. 아직 덜 자랐지만 비행 실력만큼은 용종보다 뛰어난 그리폰이다. 진짜 드래곤도 아닌 노아로서는 여전히 따라잡기가 힘들었다.
휘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블루가 번개처럼 노아를 향해 내리꽂혔다. 금빛 피막 날개가 물결치듯 움직이며 노아의 몸이 수직으로 곤두선다. 그 움직임을 미리 알고서 손잡이를 잡은 손아귀에 힘을 잔뜩 주었다. 벨트와 연결된 끈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무릎에 닿은 흡착판이 아직 효과를 발휘하고 있어 생각보다 버티기 쉬웠다.
그러나 이어, 몸이 완전히 뒤집혔다. 삼각형을 그리며 빠르게 주위를 돌아 덤벼오는 블루를 피해 노아가 롤러코스터처럼 한 바퀴 크게 맴돈 것이었다. 무릎이 떨어지고 몸이 공중으로 떴지만 버틸 수는 있었다. 노아는 이내 다시 정상적으로 날갯짓하고 나도 정신 차리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 괜찮아요?
“네, 조금 더 날아 보죠.”
잠깐 머뭇거리던 노아가 곡예에 가까운 비행을 이어 갔다. 급하강에 급상승, 급회전에 블루와 싸우듯 공중에서 부딪치기까지. 팔이 좀 아파 오긴 했지만 중간부터는 요령이 생겨 허리벨트 끈에 최대한 의지하는 식으로 팔 힘을 줄였다.
딱 한 가지, 멀미약만 챙기면 문제없겠다. …독 저항이 문제네. 전에 독 저항 무시하는 멀미약 만들어 달라고 요청은 해 놨는데 감감무소식이고.
“잠깐… 쉬죠.”
어지럽다. 노아가 날개를 길게 펼쳐 수평으로 비행했다. 그 옆으로 블루도 따라 날개를 나란히 했다.
“할 만은 하네요. 너무 연속으로 오래 곡예비행 하지만 않는다면요.”
리에트와 싸우기 전에 배를 비워 놔야겠다. 굶으면 멀미가 더 난다고 하지만 토하는 것보다야 낫지.
그때 노아와 블루가 해연 길드 건물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 눈에도 이상한 것이 비추어졌다. 공중을 가로지르는 물줄기였다.
허공을 구불구불 기어가며, 물줄기가 모양을 만들어 냈다. 글자였다.
아저씨!
예림이냐. 내 시력으로는 흐릿했지만, 노아의 시력으로는 창문을 열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예림이가 뚜렷이 보였다. 이어 물줄기가 다시 새로운 모양으로 바뀌었다.
오늘 저녁에
치킨!
…편한 휴대폰 놔두고 뭐 하냐. 싱글벙글 웃는 예림이를 향해 두 팔을 들어 동그라미를 만들어 주었다. 그래, 너 먹고 싶은 거 먹어라.
예림이가 무어라 입을 벙긋거리고 물줄기가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
물로 만들어진 하트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그때였다. 돌연 나타난 불꽃이 하트를 휘감았다. 물이 순식간에 증발되고 불길 또한 흩어져 사라졌다. 예림이보다 몇 층 위쪽 창가에 유현이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나를 향해 미소 띤 얼굴로 손을 흔든 동생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문자를 보내는가 싶더니 예림이가 오만상을 찌푸린 채 제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그리곤 씩씩대며 창가에서 멀어져 갔다.
‘…둘이 뭐 하냐.’
기사에 해연 길드 불꽃하트, 이딴 거 뜨는 게 아닐지 몰라. 그래도 둘이 은근 잘 놀긴 하는구나.
불과 얼음이 상극이라곤 하지만 적당히 가까이하면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다른 방향으로 보면 도리어 잘 맞는 사이이지 않을까.
아래로 내려가자 하품을 하던 명우가 어떠냐고 소감을 물어왔다. 당연히 완벽하다고 칭찬을 퍼부어 주었다. 벨트 작동도 잘되고 손잡이도 튼튼하고 흡착 부분도 유용했다.
“저녁에 내가 치킨 튀겨 줄까?”
“그러면야 고맙지. 아, 나도 도울게.”
명우 혼자 만들면 유현이 녀석 또 입에 안 대려고 할 수도 있으니까. 내가 같이 만들었다고 하면 먹을지도 모른다.
“노아 헌터도 오죠.”
“저도요? 그래도 될까요?”
명우의 말에 노아가 반색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안 될 거야 없지. 얼마든지 오라는 대답에 뛸 듯이 기뻐한다.
저녁까지 눈 좀 붙여야겠다며 명우가 돌아갔다. 블루는 아직 성이 차지 않았는지 공중을 빙글빙글 돌며 간간히 노아에게 같이 놀자는 듯 꺅꺅거렸다.
“노아 씨, 노아 씨에게는 새 공격 스킬이 하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말에 노아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제대로 된 공격 스킬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제일 가지고 싶은 건 다른 스킬이지만요.”
“가지고 싶은 스킬이요? 뭔데요?”
“…소형화요.”
노아가 조금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피스처럼 유체화도 괜찮고요.”
그 말에 무심코 피스를 돌아보았다. 거대화에 유체화 스킬을 가진 피스다. 소형화 스킬도 있기는 하겠지. 그런데 왜 작아지고 싶다는 거지. 귀엽긴 하겠지만. 금색 새끼 드래곤… 음, 좀 과하게 귀여울 거 같은데. 지금도 체형이 유선형으로 부드러운 편이니 어려지면 진짜 동글동글하니 예쁘겠지. …상상할수록 반칙이다.
“음, 그런 스킬 얻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저도 한번 알아볼게요. 소형화면 저한테도 유용할 거 같고요.”
들려 다니기 편하겠지. 배구공에게 얻을 수 있는 방법 없냐고 물어봐야겠다.
노아에게 내가 일종의 성장 방법을 알아보는 스킬 같은 걸 가지고 있다고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김성한도 그 스킬로 S급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고. 그리곤 내새끼 스킬을 노아에게 사용했다.
시스템 창이 눈앞에 떠오르고 노아의 미습득 최적화 스킬 목록이 나타났다. 스킬 이름밖에 볼 수 없었지만 대부분 보조계로 보이는 스킬들이었다. 그중에서 단 하나뿐인 S급 스킬이 눈에 들어왔다.
[고요한 상처(S)]…스킬명이 어째 소리 없는 비명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상처라는 이름이 붙었으니 공격 스킬일 가능성이 높았다. 어쩌면 회복 스킬류일지도 모르지만, S급이면 그것도 환영이다.
나머지 스킬 중에서는 괜찮은 공격 스킬로 보이는 이름은 없었고 랜덤으로 돌리기엔 도박이니, 유일한 S급 스킬을 얻는 게 낫겠지. 고요한 상처를 선택하자 다시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대상자 노아의 고요한 상처(S) 습득 조건상급 각성자 500명 제압
(진행도 459/500)]
상급 각성자 제압이라니, 이건 틀림없는 공격 스킬이다! 내새끼 스킬 효과에 더해 라우치타스의 천적으로 습득 조건이 많이 완화되었을 것임에도 500명이었다. 원래는 명우처럼 만 명쯤 되지 않았을까.
‘마흔한 명밖에 남지 않은 건 다행이네.’
동시에 노아가 험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또다시 들었다. 몬스터도 아니고 상급 각성자를 상대할 일이 저렇게나 많았다니. 헌터 관련 체계가 빠르게 자리 잡힌 한국과 달리 해외는 아직 불안정한 곳이 많은 탓이 컸겠지만, 그래도 신경 쓰였다.
“상급 각성자를 41명만 제압하면 새로운 S급 스킬을 얻을 수 있다네요. 조건을 보니 공격 스킬인 것 같아요.”
“정말요?”
내 말에 노아가 기뻐하다가 살짝 걱정스런 얼굴을 했다.
“누님이 나오기 전에 스킬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유 없이 싸움을 걸고 다니는 건 안 되잖아요.”
“걱정 마세요. 좋은 장소가 있습니다.”
이유 있게 싸움 걸면 되지. 유현이에게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목적지를 알려 줬다. 위험한 곳은 아니었기에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답장이 돌아왔다. 예림이에게도 말해 준 뒤 노아를 타고 날아올랐다.
우리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경기도에 위치한 상급 헌터 전용 훈련소였다. A급 이상의 본격적인 전투 훈련은 안전을 위해 수도 밖, 도심지를 벗어난 전용 훈련소에서만 행해져야 했다. 협회와 길드 공용 훈련소는 인적이 없는 황량한 땅에 자리 잡고 있었다. A급 던전 브레이크까지 터진 곳이라 주위에 민가라곤 단 한 채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라도 몬스터로 오해당해 공격당할세라 훈련소 관리를 맡은 협회에 미리 연락해 놓고 연무장으로 내려섰다. 어차피 부서질 게 뻔하기에 바닥재 따위 없이 흙바닥의 휑하니 넓기만 한 운동장 위로 흙먼지가 일어났다.
‘제법 많네.’
연무장에 나와 있는 헌터 수만 해도 일곱이다. 안쪽에도 더 있겠지. 저들을 잘 꼬셔서 노아와 대련하게 만들면 조건을 금방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뛰어난 실력을 보인 사람에게 주겠다고 하고 상품이라도 하나 걸까. 홍콩에서 얻어 온 A급 아이템 중 괜찮은 거 한둘 정도면 되겠지.
“여기까진 무슨 일이십니까.”
그때 건물 안쪽에서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송태원이었다. 도복 비슷한 것을 입고 있는 그의 이마에 땀이 희미하게 어려 있다. S급이라도 거칠게 움직이기 더운 날씨긴 하다. 보통은 품이 헐렁해야 할 옷인데도 송태원에게는 몸에 딱 맞아 보였다. 정말 몸이 좋기는 좋다니까. 부럽다.
“견학 겸 대련을 할까 싶어서요.”
노아로부터 내려서며 한 말에 또 다른 목소리가 반응해 왔다.
“몸을 단련해 두는 것이야 환영할 일이지만 여기 시설은 한유진 군에게는 맞지 않을 텐데.”
성현제였다. 저 인간은 왜 또 여기 있는 거지 싶어 돌아보자, 손에 든 활이 보였다. 손가락 사이에 느슨히 끼워져 있는 화살은 분명 어제 에블린이 가져간 명우표였다. 저걸 시험해 보려고 온 건가. 에블린도 같이 와 있으려나? 오늘은 셋 다 필요 없는데. A급이 필요하지 S급은 사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