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8
18화 인사팀장 (3)
“죄송하지만 저는 지금 이대로가 편합니다.”
왕도마뱀 등딱지 위에서 얌전히 살기로 결심했다.
…그런 것치곤 벌여 놓은 일이 좀 많지만, 이왕 얻은 귀한 스킬 아예 썩히기는 너무 아깝잖아. 아무튼 최대한 안 나대고 조용히 편하게 살 거라고.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석시명이 포기하지 않고 말했다.
“이제 곧 누구나 쉽게 각성을 시도할 수 있게 됩니다. 헌터협회 예상 1년 이내 국내 각성자 수가 오백만 명을 돌파, 3년 이내 인구의 3분의 2 이상이 각성자가 되는 시대를 앞둔 이 시점에서 한유진 씨의 능력을 발휘하지 않는다는 것은 안타깝기까지 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안타깝기는 개뿔이. 말만 들으면 내가 무슨 희대의 스카우트쯤 되는 줄 착각하겠다.
“저를 높이 쳐주시는 것은 감사합니다만, 박예림 양의 일은 어디까지나 우연에 불과합니다. 이번과 같은 행운이 또 찾아올 확률은 거의 없죠.”
라고 말은 했지만, 마음만 먹으면 S급 소질 보유자를 더 찾아 내 최적화 각성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 해. 이 정도면 됐지 뭘 더해. 예림이만으로도 충분히 귀찮다. 딱 유명우까지 SS급 스킬 가지게 해서 길드에 넣어 줄 테니 그걸로 끝냅시다.
“물론 또다시 S급 각성자를 모셔오리라는 기대까지는 하지 않습니다. 그건 과한 것을 넘어서 도둑놈 심보지요. 아니, 아예 새로운 각성자를 스카우트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럼요?”
석시명이 어울리지 않게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그 뛰어난 통찰력과 분석력으로 저희와 함께 헌터계에 새로운 시스템을—”
“못 합니다!”
이 아저씨가 뭐래! 통찰이고 분석이고 죽 쒀서 개 주려고 해도 없다! 저 사실 커닝한 겁니다. 답안지 보고 왔어요, 미래에서.
“한유진 씨!”
“안 해요, 못 해. 그럴 능력 없습니다! 저 대학도 못 들어갔어요. 고등학교도 검정고시로 나왔다고요.”
이 미천한 학력을 봐서라도 포기해 줘.
“학력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입에서 욕 나올 뻔했다. 구인 사이트 들어가 봐라, 대졸 아래로 거르는 곳 수두룩하거든? 서류도 못 넣는 처지 겪어 본 적 없으면 그 입 다무시죠.
“어쨌든 못 해요, 안 해요, 진짜로 그런 거 할 줄 모릅니다. 제 손목을 자른대도 도장 안 찍어요.”
전 그냥 가끔 스킬 써 주고 애동이나 키우면서 잘난 동생 꿀 빨며 놀 겁니다.
귀 막고 절대 불가를 주장하자 석시명도 결국 포기하는 듯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인사팀이 아닌 일반 길드원 계약만 하도록 하지요.”
“그냥 지금처럼 반쯤 걸친 상태로는 안 됩니까? 공략 팀에 들어갈 일도, 해연에서 관리 중인 던전에 발 들일 일도 없습니다만.”
“헌터 자격증 보증과 교육이야 단기성이니 괜찮지만 직원 기숙사에 들어가는 것은 계약을 하셔야 합니다. 심지어 다른 곳도 아닌 상급 헌터 대상 거주지에 입실하실 테니까요. 아무리 길드장님 가족분이시라 해도 소속을 확실히 해 두어야만 합니다.”
석시명이 조금 전까지의 흥분했던 기색을 완전히 지우고 차분한 어조로 설명했다.
하긴 예림이 근처에 있어야 하니까 일반 직원 기숙사에는 못 들어가겠구나. 유현이 녀석 집이야 사택이니 형제인 내가 들어가 살아도 이상할 거 없지만.
“알겠습니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길드원이 아닌 일반 직원으로 계약하고 싶습니다.”
“헌터로서의 지원은 받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예. 교육만 받고 그 뒤부터는 헌터로서 일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어차피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하급 던전뿐이다. 그 정도야 내 돈 들여 들어가면 된다. 장비도 유현이 덕분에 충분히 갖추었고.
기승수를 키우는 것은 소속 길드원으로서가 아닌 해연 길드와 건당 계약하는 식으로 할 생각이었다. 그래야 적당히 키우고 적당히 놀지.
역시 프리랜서가 최고다.
“가능이야 합니다만 대신 조건은 낮아질 겁니다. 현재 한유진 씨께서는 박예림 님의 후견인 노릇 외의 일은 하실 생각이 없으신 것이지요?”
“네. 그럴 수 있다면요.”
“솔직히 말씀드려 한유진 씨의 학력과 경력은 해연 길드 공개채용 자격에 미달됩니다.”
…언제는 학력 따위 중요치 않다더니. 상황 바뀌자마자 바로 말도 바뀌네.
“물론 S급 각성자를 발굴, 계약에 성공하셨다는 것만으로도 입사 자격이야 충분합니다. 문제는 그 이후죠. 처음 한두 달 정도는 괜찮겠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월급만 받아 간다면 결국 말이 나오고 말 겁니다. 박예림 님의 후견인 일이야 엄밀히 따져 길드 업무는 아니니까요.”
그런 문제인가. 나로선 상관없다. 뒷말 좀 나와 봐야 이미 전 국민에게 조리돌림 당한 적 있는 몸, 간지럽지도 않다고. 나보다 악플 많이 받아 본 사람 몇 없을걸?
…떠올렸더니 조금 우울해지네.
“괜찮습니다. 조건도 그냥 최저임금만 맞춰 주세요.”
까짓 월급 얼마 안 받아도 된다. 설사 피스에게 키워드 적용을 실패한다더라도 나에겐 아직 주식이 남아 있으니까. 탈모약 개발한 제약회사 이름도 생각났고 각성센터 이후 줄줄이 나오는 S급 덕분에 주가 오르는 회사들도 기억하고 있다.
주식은 내 퇴직금과 그간의 저축으로 지르면 되니 월급이야 먹고살 만큼이면 충분하다. 현재 최저임금이 얼마였더라. 8천 원쯤 되나?
“최저임금이라. 출퇴근도 안 하실 테니 어떻게 맞춰 드려야 할지도 난감하군요.”
석시명이 웃으며 말했다. 설마 아예 안 주려는 건 아니겠지.
“요청 시 인사팀 업무를 돕는다는 조건으로 연 5천 어떠십니까. 주 10시간 이내로요.”
“…사내식당만 이용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됐어. 안 받아. 밥만 먹게 해 줘.
일주일에 열 시간 일하고 연봉 5천이면 거저먹는 거나 다름없었지만 저 아저씨가 있는 인사팀엔 발도 들이기 싫다. 순식간에 밑천 다 털리기나 하겠지.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군요.”
석시명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시는 대로 숙식 제공만 해드리겠습니다.”
…진짜 숙식으로 끝? 아니 이럴 때는 보통 조금은 더 챙겨 주지 않냐? 건더기 하나 없이 칼같이 잘라 내 버리다니, 역시 이 아저씨 겉보기와 달리 성격 안 좋아.
“혹 일에 대한 열정이 생기신다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예.”
낙하산으로 뒷말 나오기는커녕 동정의 시선이나 잔뜩 받겠네. 옆에 있는 예림이도 벌써부터 불쌍해 죽겠단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걱정 마세요, 아저씨. 저 이제 돈 많아요.”
“나도 내가 쓸 돈 정도는 있어.”
아껴서 주식 사야 하지만.
아, 근데 진짜 너무하네. S급 각성자도 가져다 바쳤는데 숙식제공이 다냐. 혹시나 싶어 서류 정리 중인 석시명을 슬그머니 쳐다보았다.
“박예림 양 계약 성공 인센티브 같은 건 없습니까?”
“입사 전의 일이니 당연히 없습니다. 아, 인센티브 조건 추가로 넣어드릴까요?”
…입사 전이라서 없다니, 사기당한 기분이 들었다. 예림이 계약할 때 나도 좀 얻어내야 했나. 너무 애만 챙겨 버렸어.
그래도 아직 하나가 남아 있었다.
“S급이나 성녀님처럼 S급에 준하는 A급 각성자와 계약 성공 시 인센티브 조건 추가해 주세요.”
유명우. SS급 제작 스킬이면 비록 S급 던전에는 들어가지 못해도 성녀처럼 준S급 취급은 받을 것이다.
원래는 그냥 넣어 주려고 했는데 억울해서라도 대가 받아내야겠다.
내 말에 석시명이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펜을 꺼내 들었다.
“얼마든지 추가해 드리지요. 원하시는 금액 또는 보상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냥 딱 천억만 달라고 하려다가 멈칫했다. 어차피 시간만 지나면 돈 부족할 일은 없어지게 된다. 그러니 돈보다는.
“혹시 제가 화염 뿔사자 새끼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예, 길드장님으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뭐랄까, 그 녀석이 참 귀엽더라고요. 저를 따르기도 잘 따르고요. 그래서 화염 뿔사자와 비슷한 등급의 새끼 몬스터 한 마리, 또는 한 단계 낮은 등급의 새끼 몬스터 세 마리를 받고 싶습니다. 테이밍과 사육 비용도 해연 길드에서 부담하는 조건으로요.”
“새끼 몬스터를요?”
석시명이 드물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긴 어이없을 만도 했다. 돈이나 아이템 대신 애완동물을 선택해 버린 꼴이니까.
하지만 유현이 소유에 그 녀석 돈으로 키우고 있는 피스와 달리 인센티브로 받을 몬스터는 온전히 내 것이 된다.
화염 뿔사자와 같은 등급이라면 그 녀석만 데리고도 B급 던전을 공략할 수 있을 테니, 돈 몇 푼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키워드 적용 실패하면 뭐, 애동 한 마리 더 늘어나는 거고. 내 돈 들여 키우는 건 아니니 손해 볼 건 없지. 나중에 몬스터 사육 규제 완화되면 방송에라도 나가 볼까. 인기 많을 텐데.
“…불가능한 조건은 아니지만 특이하군요. 무언가 다른 목적이라도 있으십니까?”
석시명이 통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있어 보입니까?”
“있어야 하는 게 정상이겠지만… 모르겠군요. 일단 조건은 추가해 드리겠습니다. 다만 상등급 새끼 몬스터는 사로잡기도 힘들고 경매에도 잘 나오지 않기에 지급이 늦어질 수 있습니다.”
“S급 각성자도 그리 자주 나오는 건 아니죠, 하하.”
물론 난 두 달 안에 유명우를 SS급 제작 스킬 보유자로 만들 생각이지만. 내 새끼 세 번쯤 쓰면 스킬 얻을 수 있겠지?
내 입사까지 끝마치고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동안은 이 아저씨 안 마주쳤으면 좋겠는데.
“그럼 앞으로도 자주 뵙죠.”
뭐라냐. 인사팀 쪽으론 쳐다도 안 보고 피해 다닐 건데.
…설마 막 찾아오고 그러진 않겠지?
밖으로 나와 석시명으로부터 받은 예림이 부모의 유산 자료를 살펴보았다. 50평짜리 아파트에 땅도 팔아치우고 상가 건물도 하나 있는 거 역시나 관리가 힘들다는 핑계로 팔아치웠다.
이렇게 많이 받아먹어 놓고선 애 운동화도 안 사주냐. 양심에 털이 나다 못해 아주 이중삼중 빽빽하겠구만.
“진짜 소송 안 할 거야?”
내 물음에 예림이가 관심 없는 표정으로 끄덕거렸다.
“길게 엮이기 싫어요. 어차피 저 기본급만 연 백억 넘는다면서요.”
그건 그렇지만. 하긴 앞일을 생각하면 거머리들에게 적당히 먹이고 떼어내는 편이 나을 것이다. 계속 연락하려 들고 방송에 나와서 눈물 호소하는 지랄 떨면 귀찮아지니까.
“그럼 법무팀에 들러 준비물 좀 챙기고 바로 찾아가 보자. 아직 오전이니 식당 문은 안 열었으려나?”
“일요일엔 오후 1시부터 영업 시작하니 집으로 가면 될 거예요.”
예림이가 집 주소를 말해 주었다. 좋은 동네 사네. 하긴 뜯어먹은 게 얼마냐. 그런 것치곤 가게는 소박하다 못해 초라한 편이었지만.
설마 그새 유산 날려먹었나? 그렇다면 약점 잡긴 더 쉽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