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82
182화 내 거는 (2)
세성 길드장에게 갈 거라고 하자 노아의 표정이 묘해졌다.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안절부절못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저녁에 생일 파티요, 저도 가지 말까 봐요.”
“왜 안 가요. 인맥 쌓기 좋다던데. 게다가 명우랑 동행하기로 했다면서요.”
명우에게 손댈 멍청한 S급은 없겠지만 그래도 안전이 최고니까. 어차피 둘 다 파티에 참석하는 김에 노아가 명우를 보호해 주기로 했다. 나야 뭐 집에 있을 거고 피스도 있고.
“저도 명우 형을 혼자 보내는 건 걱정되지만…….”
“형이요?”
“편하게 부르라고 하셔서요.”
명우가 생각보다 더 노아를 마음에 들어 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노아가 좀 많이 귀엽긴 하지. 착하고.
“저도 편하게 부르셔도 돼요.”
내 말에 노아의 두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 러고는, 싶은데요……. 아뇨,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뇨, 그러면… 안 되거든요. 정말로요.”
뭐지. 왜 명우는 되고 나는 안 된다는 거냐. 내가 생각보다 더 불편한 상대인 건가? 그러고 보면 귀여움 받고 싶다는 것 자체가 한참 연상을 대하는 태도긴 하지. 이리저리 일 시켜먹기도 했고… 좀 상사 같은 느낌이려나. 상사가 편하게 형이라고 해, 하면 싫긴 하다. 내가 잘못했네.
“신경 쓰지 말고 노아 씨 편한 대로 하세요.”
아무렴 가조오옥 같은 회사는 지양해야지.
선물을 챙기고 받으실 분에게 연락했다. 성현제 님의 택배가 곧 도착 예정이오니 공중정원으로 나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리수령 그딴 거 없고 무조건 본인이 직접 받아야 함. 그러니 댁에 계시냐는 물음에 기다리고 있겠다는 답변이 왔다.
‘초대는 안 해 놓고 선물은 받겠다는 게 조오금 배알 꼴리긴 한데.’
다른 데 쓸 수도 없는 거 버린다고 생각하자.
노아의 도움을 받아 세성 길드로 향했다. 아침에 가까운 오전이었지만 벌써부터 햇살이 따가워 모자를 하나 눌러썼더니 더더욱 택배 나르는 기분이 들었다. 길 막힐 일도 없이 일직선으로 날아간 덕에 도착은 금방이었다.
녹음 짙은 옥상정원에 성현제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집에서 나오기라도 했는지 가벼운 차림이다.
“바로 위로 가죠.”
노아가 아래로 내려가 성현제의 이 미터쯤 위에서 멈추었다. 날갯짓이 일으키는 바람에 색 옅은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올려다봐 오는 시선을 향해 일단은 미소로 답해 주었다. 그리고 인벤토리를 열었다. 목록을 줄줄이, 똑같은 명칭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스베일 양의 털실]그것을 모조리 꺼내 아래를 향해 쏟아부었다. 핫핑크의 부드러운 털실 뭉치들이 비처럼 떨어진다. 내 인벤토리는 물론이고 노아의 인벤토리까지 꽉꽉 채워 왔다. 포근포근한 털실이 생일의 주인공을 휘감아 쌓이고 데구르 굴러 흩어지다 못해 주위를 온통 핑크빛으로 뒤덮었다.
이어 성현제의 앞에 내려서려다가 날갯짓에 털실 다 날아갈까 봐 좀 떨어진 곳에 내렸다. 하늘거리는 핫핑크 털실 사이를 뚫고 다가가자 핫핑크투성이가 된 성현제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보온성 뛰어나고 오염에도 강해 웬만해선 더러워지지 않는 최고급 털실입니다.”
털실 자체도 비쌌지만 핫핑크로 염색하기 위해 공장을 빌리다시피 해 던전 아이템용 핫핑크 염료 따로 만들고 염색했다. 그러는 김에 예림이 숄도 하얀색으로 바꾸었었고.
“손 내미세요.”
순순히 내밀어진 손바닥 위에 마지막으로 뜨개바늘 한 쌍을 꺼내 얹어 주었다. 이것 또한 특제품이다.
“생일 축하드립니다. 비록 저는 초대받지 못했지만, 선물은 드리고 가겠습니다. 치매 예방하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이런, 열세 번째 요정님인가.”
성현제가 눈을 휘어 미소하며 헛소리를 했다.
“바늘에 찔려 잠들면 한유진 군이─”
“아 진짜 무슨 소린가 했네. 양심 있습니까?”
자기가 잠자는 공… 아 씨, 상상만으로도 기분 나쁘다. 애초에 뜨개바늘로 찔리기나 하냐.
“불청객은 이만 꺼지겠으니 영원히 잠드시거든 연락 주세요. 화환이라도 보내드릴 테니.”
“불청객이라니, 섭섭한 소리를.”
돌아서는 나를 성현제가 붙잡았다. 그대로 끌어당기더니 모자를 벗겨 던지고는 내 머리 위에 제 턱을 얹는다. 저번에도 이러더니 또냐.
“초대 못 받았으니 불청객 맞잖습니까.”
“내 아이템은 어디든 프리패스지.”
“엉뚱한 핑계 대지 마시고 진짜 이유나 들어 봅시다. 기분 나빠진 것과 관계있습니까?”
아무 이유 없이 우울증 같은 게 왔을 리는 없고, 뭔가 있겠지. 성현제는 잠깐의 침묵 뒤 입을 열었다.
“지루해져서.”
“…예?”
순간 가슴이 철렁해졌다. 공포 저항이 없었더라면 겁까지 먹었을 듯했다. 벌써 질린 건가 싶었는데, 주어는 내가 아니었다.
“똑같은 일을 다시 반복하는 느낌이 들더군. 같은 장소, 같은 인테리어, 같은 프로그램이며 메뉴들, 앞서 들어온 선물들까지 이미 받아 본 것 같은 기분이고.”
성현제치고는 상당히 시무룩해진 목소리였다. 반복하는 느낌이라. 회귀 전 기억이 좀 더 뚜렷해지기라도 했나 더럽게 예민하네.
‘여태까지는 죄다 달라진 일들의 연속이었지.’
내가 개입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회귀 전과 같은 일은 거의 없었을 정도로, 많이 틀어졌다. S급 헌터와 길드가 둘이나 사라지고 협회도 뒤바뀌고 기승수 사육에 대장장이에 새로운 S급 헌터에 회귀 전에는 경험해 본 일 없을 던전들까지.
하지만 생일 파티는 다르다. 예정된 그대로로 달라질 일이 없었을 터였다. 초대 손님이 약간 더 늘어난 것 외에는 모든 것이 변함없었겠지.
‘그래서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더 강하게 느껴진 건가.’
바뀌어 버린 다른 일들과 달리 유독 똑같은 만큼 더욱 선명하게 기시감이 들었을지도.
“핫핑크 털실 선물이 낯설지 않다니, 놀랍네요.”
“물론 한유진 군은 예외라네. 아주 새롭지.”
그야 나는, 가장 동떨어진 사람이니까. 원래라면 조금의 영향도 주지 못하고 묻혀 있었을 엑스트라다.
문득 그래서 성현제가 내게 더 관대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킬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 흥미를 끄는 대상으로서 말이다.
내가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그에게 있어 새로운 일은 없었을 것이다. 고작 생일의 반복으로도 기분 상할 만큼의 무료함을 느끼는 인간이 수개월, 수년의 반복을 참아내긴 힘들겠지.
그런데 내가 알아서 크게 뒤틀어 주고 있으니 무의식중에 달갑게 받아들인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일부러 빼놓아 보았지.”
또 심장이 뜨끔했다. 설마 이상한 기시감을 느낀 김에 실험이라도 해 보고 있었던 건가.
‘그러고 보니 초대장, 예림이와 명우에게 유독 늦게 왔었지.’
유현이에게는 일찌감치 도착했었다. 문현아야 국내에 없었던 탓이고, 리에트도 진작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림이는 그보다 늦었고 명우는 더욱 늦었다. 설마 반복되는 느낌이 덜 드는 상대일수록 뒤로 미룬 건가. 예림이야 회귀 전에도 S급은 아니라 해도 손꼽히게 유명한 A급 헌터였다. 하나 명우는 이름조차 들어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많이 뒤바꿔 놓고 개입했지만, 원래라면 성현제와는 조금도 연관되지 않고 악평 정도나 떠돌았던, 영향력 없는 F급 헌터가 바로 나다.
‘진짜 쓸데없이 예리한 인간 같으니라고.’
그냥 기시감이 드는구나, 하고 넘어가도 될 일인데 굳이 확인을 해 보냐.
“제가 그렇게 특별하게 느껴지신다니 참으로 감사하군요. 하긴 여러모로 잘났죠, 정말.”
“감사는 내가 해야지. 덕분에 도련님은 물론 송태원 실장까지 재미있어졌어.”
“남의 동생 상대로 재미 운운하지 마시죠. 그전에 유현이와는 저보다 더 오래 알고 지내지 않았습니까. 뭘 새삼.”
“새삼이라니. 한유진의 동생이 아닌 한유현이라면 애초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거야.”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같은 태생 S급이라 관심을 가지고 도와준 게 아니었나.
“한유진 군이 아니었다면 아마 한유현과는 길게 엮일 일 자체가 없었을 거라네. 그건 얌전히 사회에 섞일 성질이 아니었거든. 리에트보다도 더 홀로 거칠 것 없이 떠돌았겠지. 그런 것이 알아서 숙이고 제 둥지를 만드는 모양새가 신기했어.”
“…꽤나 잘 안다는 듯이 말하시네요. 그리고 그딴 식으로 부르지 마십시오. 내 동생까지 물건 취급하란 적 없으니까.”
머리 위에서 나직한 웃음소리가 떨어져 내렸다.
“한유현은 드물긴 해도 유일하지는 않지. 하지만 한유진의 동생은 하나뿐이라네. 눈길을 끌 정도로 독특했고, 특히나 그렇게 만들어진 이유가 궁금했거든.”
태생 S급은 자신을 포함해 몇 명이나 되니 의외로 그리 큰 가치를 두지 않는 건가. 하긴 리에트에게는 꽤나 담백하게 대했었다.
‘…그래서, 내가 없었으면.’
유현이와 리에트의 모습이 동시에 떠올랐다. 속이 쓰렸다. 지금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요즘은 썩 괜찮아 보이고… 그렇지만…….
내가 없었다면.
“이제는 이유를 알았으니 괜히 건드릴 생각은 없다네. 잘해 주기로 했으니 그 정도는 참아야지.”
내 침묵이 길어지자 성현제가 걱정할 것 없다며 달래듯이 말했다. 참겠다는 소리까지 하다니, 좀 놀랍다.
“절 건드리는 게 더 효과가 좋아서는 아니고요?”
대답이 없다. 보나 마나 겉으로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나 짓고 있겠지.
“애한테 쓸데없이 시비 걸지 마십시오. 송 실장님도 좀 내버려 두고요. 안 그래도 피곤하신 분인데.”
“울타리 범위가 너무 넓은 거 아닌가. 한유진 군이 품고 있는 아이들까지는 내버려 두겠지만. 그리고 나는 송태원 실장에게 잘해 주고 있다네.”
송태원이 들었으면 미간의 주름이 평소보다 두 배쯤 깊어졌을 소리다.
“이번에도 초대장과 함께 맞춤 정장을 보내줬지. 슬프게도 바로 반송당했지만.”
“받으면 안 된다는 거 뻔히 알면서 무슨 짓입니까?”
“물론 한유진 군의 것도 있으니 질투하지 말게.”
아, 시발. 헛소리 좀 제발. 괜히 저만치 앉아 있는 노아를 살펴보았다. 바싹 붙은 채라 목소리를 크게 내진 않았으니 노아의 스탯으론 듣기 힘든 거리긴 하지만 신경 쓰이잖아. 시선이 마주치자 노아가 꼬리를 탁탁 흔들었다. 마치 얌전히 잘 기다리고 있어요, 주장하는 강아지 같다.
“하얀색을 원하나, 검은색을 원하나, 아니면─”
“검은색이요.”
거절해 봤자 통하지도 않을 테니 대충 받고 말자.
“욕심이 없는 한유진 군이군. 그러니 스무 벌 모두 주겠네.”
“무슨 금은쇠 셋도 아니고 스무 벌이야! 사양하겠습니다!”
“겸손하니 열 벌 더.”
…생일빵 같은 거 좋아하지 않지만 오늘만큼은 찬성한다. 물론 나 말고 다른 S급들이 대신 때려 주는 걸로.
“그래서 제 초대장은 안 주실 겁니까? 저녁에 줄 선물이 훨씬 더 좋은 건데.”
“직접 모시러 갈 생각이었지.”
퍽이나 그랬겠다. 나는 쏙 빼놓은 채 이질감을 끝까지 비교해 보고 확인했겠지.
“오늘의 주인공님께 그런 대접까지 받을 수는 없지요. 제 발로 알아서 찾아가겠습니다.”
심심하거든 뜨개질이나 하고 계십쇼.
다양한 꺼림칙함을 품에 넣고서 해연 길드로 향했다. 예림이는 수업 중인 시간이고 유현이는 업무 중이었다. A급 랭킹전이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사이 MKC의 해체는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해연과 세성, 뒤늦게 발 끼워 넣은 브레이커까지. 이미 나눌 건 다 정해지다시피 했다.
“세성 길드장한테는 왜 간 거야.”
집무실 소파에 앉은 내게 유현이가 주스를 내어주며 말했다. 여전히 내가 나돌아 다니는 걸 반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예전과 달리 날카로운 기색은 없다. 지금도 불만은 담겼지만 탓하는 게 아닌 단순한 질문에 가까운 어조였다.
“초대장 왜 안 보냈냐고 따지러 갔지 뭐. 직접 데리러 오겠다기에 내 발로 간다고 했어.”
“꼭 갈 필요는 없는데. 나도 안 갈 생각이었고.”
“너 안 가면 예림이는? 아직 그런데 혼자 보낼 순 없잖아.”
“브레이커 길드장에게 말해 뒀어. 또 내가 안 가면 김성한 헌터가 대신 참석하게 될 거고.”
나 때문에라도 셋 중 한 명은 해연에 남기로 했었다. 김민의가 S급으로 알려져 있다고 해도, 해외 S급들이 여럿 들어오는 판에 가짜 S급으로는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왜 미리 말 안 해 주고.”
“형이라면 가라고 등 떠밀었을 테니까. 이따가 같이 저녁 먹자면서 말해 줄 생각이었어.”
혹시 시계인가. 유현이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며 말했다.
“그럼 형도 준비해야겠네.”
“어, 응.”
전화로 나도 생일 파티에 참석한다고 준비를 명령하는 동생을 빤하게 쳐다보았다. 능숙하게 길드장 노릇을 하고는 있지만.
‘…갑갑할까.’
성현제의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같이 간다는 말에 예림이는 크게 기뻐했다. 아저씨 혼자 놔두고 가는 게 계속 신경 쓰였다며 직접 옷을 골라 주겠다는 걸 겨우 말렸다. 우리 예림이 센스가 나쁘진 않은데, 좀 많이 귀여운 쪽으로 몰려 있어서.
명우와 노아에 이어 문현아까지 일부러 이쪽으로 와 합류한 뒤, 그놈의 생일 파티에 참가하기 위해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