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92
192화 소장님 (2)
휙─
밤공기를 가르며 나이프가 날아왔다. A급 헌터 루카스는 다리를 교묘하게 비틀어 제 발목을 노리는 나이프를 부츠 아래로 흘려냈다. 날이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것만으로도 A급 장비인 부츠의 굽이 길게 깎여 나갔다. 이어 콰득, 벽에 큰 파형을 그리며 나이프가 깊숙이 들어박혔다.
“젠장!”
그는 욕설을 내뱉으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투명한 방어막이 손앞에 나타나기가 무섭게, 순식간에 치달아 온 남자가 루카스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앙!
폭음과도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내 방어막이 산산조각 나듯 사라졌다. S급 몬스터의 공격도 웬만한 것이라면 충분히 버텨 주는 S급 방어 스킬이다. 그것이 맥도 못 추고 파괴되고 말았다.
루카스는 코앞까지 다다른 주먹에 일렁이는 검은 그림자를 보고 이를 악물었다. 재빠르게 몸을 낮추었지만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상대, 송태원이 무릎을 세워 루카스의 상체를 가격했다.
“컥!”
무릎차기에 이어 스쳐 지나간 주먹이 펼쳐지며 아래로 뚝 떨어져 루카스의 뒷머리를 움켜잡았다. 그대로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며 송태원의 다른 쪽 팔꿈치가 루카스의 척추를 내리찍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공격이었다. 하지만 A급 방어계 헌터의 몸뚱이는 전투불능이 되는 것으로 그쳤다.
송태원은 기절조차 하지 않은 헌터를 와이어로 묶어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루카스가 핏물을 내뱉으며 제 앞에 서 있는 남자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고작, 큭, 비각성자 좀 건드렸다고! 그것도 경상이었어! 우리나라에서는 아무 문제도─”
“여기는 한국입니다.”
송태원이 사무적으로 말했다. 무뚝뚝한 목소리가 차분히 이어졌다.
“한국에서는 각성자가 비각성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습니다. 또한 상급 헌터의 체포불응 및 도주는 중범죄에 해당됩니다.”
단순히 경상을 입힌 것이라면 합의로 해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상급 헌터가 법에 따르기를 거부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그들을 제어할 목줄의 수가 부족한 현실에서 한 번 틀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사태가 커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송태원의 설명에도 루카스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우리 덕분에 목숨 부지하고 있는 거잖아! 시발, 헌터가 없었으면 이미 뒈졌을 것들인데!”
분해하던 루카스가 자신을 향해 내리꽂히는 서늘한 눈빛에 순간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송태원이 꿈쩍도 하지 않자 이번에는 대담하게도 그를 향해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한국의 송이 미친 새끼란 소리 여러 번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하잖아! 병신이 아니고서야 S급 헌터가 비각성자한테 머리 숙이겠냐! 힘을 가졌으면 누리는 게 당연한 욕구지! 거세된 개새끼도 아니고 상급 헌터가 어떻게─!”
콰광!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자신을 욕하는 소리를 흘려듣고 있던 송태원이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폭음이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그 이상의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툭, 하고 기절한 사내가 그의 근처로 떨어졌다. 또 다른 A급 외국인 헌터였다.
“살아 있습니다.”
공중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흩날리는 잎새를 계단처럼 가볍게 밟고 내려오는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한유현은 나이프가 박힌 벽 위에 내려섰다. 그의 시선이 입을 다문 루카스를 가볍게 스치고 지나갔다. 잠깐 눈길이 닿았을 뿐인데도 A급 헌터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한유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단축키를 누르고 신호음이 울리며 상대방이 전화를 받는다. 그 순간 한유현을 휘감고 있던 공기가 확연하게 변했다.
“응, 형. 방금 끝냈어.”
누구도 건드릴 수 없던 맹수가 주인의 손에 뺨을 부비는 고양이처럼 돌변하는 모습이 송태원의 눈동자에 비춰졌다.
“바로 집에 갈 거야. 뭐 시킬 건 없고? 아냐, 졸리면 기다리지 말고 자. 괜찮아.”
제 형이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는지 한유현이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얼마 안 걸릴 거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는다. 그리곤 송태원을 돌아보았다. 부드럽게 풀려 있던 표정이 그새 무감각해졌다.
“필요하시면 태워다 드리겠습니다.”
분명 한유진이 시킨 일일 것이다. 송태원은 짧게 사양의 말을 돌려주었다. 한유현은 대답을 듣자마자 곧장 담에서 내려서 걸음을 옮겨갔다. 두 번의 권유 따윈 없었다. 실상 권유를 해 온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송태원은 멀어져 가는 한유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휴대폰을 꺼내었다.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송 실장님. 답장은 안 해 주셔도 돼요. 혹시 제 동생에게 뭔가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만 살짝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피곤하실 텐데 얼른 들어가서 쉬세요.]송태원의 머릿속에 그날 밤의 일이 떠올랐다. 한유진에게 휴대폰을 내밀던 성현제가. 맹수들 사이에서도 유독 독보적이던 그 괴물이, 한유진을 쉽게 제 옆에 세울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단순한 장난일 수도 있고 언제든 변덕스럽게 발치로 밀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먼저 물러나고, 손 내밀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한 사실이었다.
송태원은 망설임 끝에 답장 없이 휴대폰을 껐다.
“자, 내 명함.”
명우에게 오늘 아침에 도착한 따끈따끈한 명함을 내밀었다. 유현이와 예림이, 노아도 한 장씩 받아갔다. 피스랑 삐약이도 궁금해하기에 줘 봤는데 피스는 금방 흥미를 잃었고 삐약이는 자기 잠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명함에 박힌 연락처는 사무용으로 새로 만든 것이었다. 이로써 휴대폰이 세 개가 되었다. 처음 것은 요샌 잘 쓰지도 않는데 없앨까.
“꽤 그럴듯하지? 그래서 좀 부담스럽지만.”
명함 같은 거 만들 일은 회귀 전에도 없었는데. 심지어 직책명이 있어 보이니까 계면쩍기도 했다.
“한유진 소장님이네?”
“그, 일단은. 그렇게 됐지.”
아, 어색해. 진짜. 웃지 마라.
“…너도 이참에 대장간 체계를 정비하는 게 어때? 지금은 떡고물 노리고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맡기다시피 하고 있으니까.”
“아직은 딱히 불편한 거 없긴 한데, 쌓이면 귀찮은 일이 생길 수도 있겠지. 나도 명함 파야 하나.”
“만드는 곳 연락처 줄까?”
“응.”
석시명에게 받은 연락처를 명우에게 문자로 보내 주었다. 석하얀 팀은 이미 알아서 잘하고 있댔으니 문제없고.
“그런데 명우 너, 샬로스의 구슬 말이야. 안 돌려받았다며?”
유현이에게 빌려준 피해 무효화 아이템. 그걸 아직 동생이 가지고 있다고 했다. 명우가 돌려줄 필요 없다고 말했다면서.
“어. 위험할 때 쓰라고. 던전 자주 들어가잖아.”
“하지만 그거 이제 몇 개 없지 않아? 다시 만들 수도 없을 텐데…….”
L급 마석, 그것도 드래곤 하트라는 범상치 않은 재료 덕에 만들어진 아이템이다. 내 말에 명우가 샬로스의 구슬을 하나 꺼내 내게 던져 주었다.
“혹시 모르니까 너도 가지고 있어.”
“…응?”
“예비용으로. 은혜를 빼앗기거나 마력이 다 닳았을 수도 있고 네 주위 사람이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하지만, 그럼 명우 넌?”
“아직 하나 남았어. 그리고 나야 위험한 던전 갈 일도 별로 없으니까. 여차하면 대장간으로 피해도 되고.”
그래도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세상이다. 갑자기 S급 던전이 터질 수도 있고 상급 헌터가 공격해 올 수도 있다. 여벌 목숨과도 같은 귀한 아이템을 고작 한 개 놓아두고 다 줘 버리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유현이까지 챙겨 주면, 내가 너무 미안해지잖아.”
“미안하긴 무슨. 그리고 넌 동생 없으면 안 되잖아. 이젠 덜 불안해하겠지. 그거면 됐어. 진작 줄 걸 그랬나.”
웃으며 하는 말에 목덜미가 뜨끈해졌다. 신을 믿지는 않지만 혹 존재한다면, 명우와 마주친 것은 힘든 일 많았다며 내게 준 선물이 아닐까. 마주치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회귀한 그날 바로 각성센터에 갔더라면 영영 얼굴도 이름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만나게 되어 정말로 다행이었다.
“…명우 너도, 없으면 안 돼. 너도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니까. 하나 남은 건 남 주지 말고 꼭 가지고 있어.”
명우는 물론 다른 모든 사람도. 이번에는 잃지 않기를 바랐다.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걱정하지 마. 솔직히 내가 제일 안전하지. 유진이 너야말로 이젠 소장님이시니까 사육소에 붙어 있으세요.”
“나도 그러고 싶다, 정말로.”
새끼 몬스터들 돌보면서 애들 돌아오길 기다리면 얼마나 편해. 유현이와 예림이가 헌터가 아니었으면 더 좋았겠지. 샬로스의 구슬, 예림이한테 줘도 될까. 팀도 점점 갖춰 가고 있고 곧 S급 던전 공략 들어가게 될 텐데.
“구슬 예림이에게 빌려주면 안 될까? 던전 공략 갈 때만이라도.”
“마음대로 해. 대신 은혜 관리 잘하고.”
“고맙다, 진짜.”
계속 걱정되었는데 이걸로 한시름 놓았다. 물론 구슬을 쓸 일 없는 게 최고지만. S급 헌터가 피해 무효화 아이템을 써야 할 정도면, 다른 팀원들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건 겪지 않는 편이 좋다. 진심으로.
“처음 뵙겠습니다, 한유진 소장님.”
사십대 중반 즈음의 세련된 정장 차림의 여성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김하연 법무팀장님.”
마주 고개를 살짝 숙이며 악수를 받았다. 약간 딱딱하고 큰 손이었다. 덩치도 꽤 좋은 편이었다. 각성자는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각성하면 스탯이 낮지는 않을 듯했다.
해연의 법무팀장인 김하연이 소파에 앉으며 가지고 온 인형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새끼 화염뿔사자 인형이었다. 웬 인형이지. 기승수 사육소와 해연간의 법적 계약 문제로 온 거 아니었나.
“요즘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짝퉁입니다.”
“아, 예. 그렇군요.”
“석 팀장 말로는 정품 캐릭터 상품을 만드실 생각이 있으시다고 하더군요.”
“…네? 없는 건 아닙니다만.”
“정품 태그에 피스 발도장을 넣는 게 어떻겠습니까.”
김하연이 진지하게 말했다. 발도장… 귀엽긴 할 거 같은데.
“금색으로 도드라지게요. 만지면 약간 말랑한 느낌이 드는 특수 인쇄가 좋을 듯합니다.”
“좋을 것 같긴 한데요……. 혹시 캐릭터 상품 이야기하러 오신 건, 아니시지요?”
“맞습니다만.”
그녀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다른 부분은 법무팀에서 정리 중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피스는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일과 취미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이기에 직접 움직인 것일 뿐입니다.”
원래는 훨씬 더 무거운 일에 주로 나선다고 했다. 특히 헌터 관련 법안 쪽으로 다른 길드 법무팀들과 함께 여러 가지 작업을 한다고 하였다. 법을 넘어서지 않는 경계선 내에서.
사육소 관련은 사실 김하연이 직접 끼어들 정도는 아니라나. 그러면서 피스의 실물 사이즈 인형에 삐약이를 올릴 수 있는 방식으로 구현하자는 이야기를 하였다.
“장식용 작은 피규어나 스노우볼 같은 것도 귀여울 겁니다.”
“확실히 귀여울 거 같긴 하네요. 유체 말고 성체도 멋있거든요. 성체를 모델로 한 상품도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 밖의 몬스터들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캐릭터 상품 외의 꽤 귀담아 둘 만한 정보도 여럿 있었다. 대화의 반 이상은 피스와 삐약이의 귀여움이었긴 하지만, 우리 애들은 정말로 귀여우니 어쩔 수 없지.
“석 팀장 그 너구리가 꽤나 신이 났더군요.”
자리에서 일어나며 김하연이 말했다.
“오랜만에 좋은 먹잇감을 발견한 모양이니 너무 휘말리진 마십시오. 사람 이미지 메이킹하기 좋아하는 인간입니다. 그래도 실력은 있으니 적당히 받아 주면 도움은 되실 겁니다.”
“아, 그렇군요. 사실 저도 외모 관리까지 철저히 하라는 건 좀…….”
“그건 하시고요. 한 소장님께서는 S급 헌터들 사이에 주로 서시게 될 겁니다. 최소한 초라해 보이는 것은 피해야만 합니다.”
그… 건 그렇지. 갑자기 자신감이 하락하네. …역시 좀 꾸미긴 해야 하나.
다음 날도 사육소 정비를 위해 해연에 붙어있다시피 하였다. 석시명의 잔소리는 덤이었다. 아무리 목소리가 좋아도 결국 질리긴 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참견을 당하고, 드디어 세성 길드장과의 약속 시간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