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207
207화 이상현상 (1)
‘이 녀석들, 쉬지도 않고 달리기라도 했나.’
S급 던전쯤 되면 그 넓이가 만만치 않다. 유현이와 피스가 들어간 곳은 그나마 층수가 3개뿐이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넓어져 마지막 층쯤 되면 직선으로 가로질러도 하루가 족히 걸릴 수준이었다.
그걸 나흘 만에 돌파하다니. 보나마나 무리한 게 분명해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뭐가 그리 급하다고. 역시 두 번 다시는 둘만 보내면 안 되겠다 싶었다. 다른 팀원이 있으면 눈치도 보일 거고 말려라도 주겠지.
이번에도 김성한이 동행했다. 내 옆자리에 앉은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S급으로 성장하고 시간이 좀 지나서인지 회귀한 직후 마주쳤을 때보다 몸이 더 좋아진 거 같다. 원래도 A급에 방어계여서 그리 큰 차이는 없어 보이지만 키도 조금은 더 커졌겠지.
“할 말이 있으십니까?”
김성한이 내게 물었다. 상냥한 어조였다. 키워드 효과가 사라졌다고 해도 그간 내가 해 준 것이 있어서인지 회귀 전은 물론이요 회귀 직후와도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S급으로 성장하게 도와도 줬고 해연과 이것저것 협력 관계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길드장인 유현이와 사이좋은 형제 관계가 되었으니. 전보다 날 좋게 보는 건 당연했다.
반면에 나는 그가 약간 더 껄끄러워졌다. 회귀 전 잃었던 사람들에 대한 정보 의뢰를 한 뒤부터, 묻어 두었던 기억들이 자꾸만 비집고 나오려 드는 탓인 듯했다. 석시명도 그렇고 김성한도 그전보다 아무래도 불편하게 느껴졌다.
“S급으로 성장한 뒤에 여러 가지로 많이 변하셨죠?”
지금보다 더 확 변해 버린다면 좀 나아지려나. 그러려면 SS급쯤은 되어야겠지. 김성한이 조금 쑥스러운 듯 제 주먹을 접었다 폈다.
저 손에 붙들린 적이 몇 번 있었다. 공포 저항이 없을 때의 내게는 A급 헌터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단순히 기세로 압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했지만 폭력이 섞인 적도 있었다. 그렇게 당하고도, 잔뜩 겁에 질려 놓고도 또 덤벼든 나도 참 나지만.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저 자신은 물론이고 주위도 변하였죠.”
하지만 그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고, 김성한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유현이를 많이 도와줬고 도와줄 사람이다.
“여기저기서 연락도 많이 왔지요. 특히 최근 MKC 길드장이 실종되고 나서─”
“거절하셨죠? 당연히?”
참지 못하고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잡다한 상념들이 내쫓기듯 확 밀려나갔다. 예림이도 그렇고 뭘 그렇게들 탐내는 거냐. 못 줘. 안 줘. 김성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S급이 되었고 박예림 헌터처럼 어린 것도 아닌데 언제까지 남 밑에 머물 거냐며 설득인지 시비인지 모를 소리들 많이 들었습니다. 물론 다 거절했죠.”
“괜한 참견들이네요, 정말. 물론 성한 씨는 길드장 자리도 충분히 맡을 만한 분이라고 생각하지만요……. 어, 부길드장 이야기 나오고 있다면서요?”
해연길드에는 아직까지 부길드장이 없었다. 길드장뿐이었다. 유현이 나이가 워낙 어리다 보니 부길드장이 있으면 내부 세력이 갈라질 수도 있고 외부에서도 실질적인 리더는 부길드장이라는 말이 나올 가능성이 높았기에 일부러 길드장만 두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제 유현이도 스물이고 마침 김성한이 S급 헌터가 되었기에 그를 부길드장으로 올리게 될 거라고 석시명이 말해 주었다.
“예. 내부 구도가 크게 바뀌는 것이니만큼 천천히 진행될 예정입니다.”
“좀 더 빨라도 괜찮지 않을까요. 김성한 씨야 해연 초기 멤버로 오래 유현이를 뒷받침해 주셨으니 반대할 사람도 없을 텐데요. 누구보다 그 자리에 잘 어울리신다고 생각합니다.”
마음 같아선 얼른 자리 굳히고 눌러앉았으면 싶다. 회귀 전의 김성한은 끝까지 유현이 곁에 남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김성한이 충성스럽다고 해도 S급 헌터가 된 이상 마음이 조금쯤은 흔들릴 수도 있으니까. 그를 유혹하는 사람들도 계속 나타날 테고.
몇 안 되는 믿을 만한 사람을 잃을 수는 없다.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하시거나 원하는 게 있으시다면 언제든 편히 말씀해 주시고요. 그간 제 동생 도와주신 게 감사해서라도 뭐든 할 수 있는 거라면 다 해 드리겠습니다.”
“한 소장님께는 이미 충분히 신세 졌는걸요.”
“그래도요.”
키워드 효과는 사라졌으니 다른 걸로라도 붙잡아 둬야지. 김성한이 서비스직의 마음으로 미소 짓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한 소장님께서는 길드장님을 정말 많이 아끼시는군요.”
“그야 동생이잖습니까. 제가 키우다시피 하기도 했고, 아직 어리기도 하고요.”
그냥 평화롭게 살 수 있었다면 지금만큼 싸고돌지도 않고 걱정도 덜했겠지. 밥 잘 챙겨먹고 다녀, 술 많이 마시지 말고, 대학생이라고 너무 늦게 다니면 안 된다, 용돈 부족하지는 않아? 이런 소리 정도나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몬스터가 드글거리는 던전에 들어간 동생을 마중 나가고 있다. 망할 놈의 던전 같으니라고. 딱 백 년만 더 늦게 생기지.
유현이와 석 팀장에게 얼른 김성한 씨 부길드장 자리에 앉히라고 재촉이라도 해 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쌓여 있는 메시지 중 하나를 열었다.
[특별히 좋아하는 동물은 없습니다.]송태원의 답장이었다. 좀 더 캐묻고 싶었지만 던전에 들어간 탓에 대화가 끊겼다. S급은 아니고 MKC가 제대로 관리 못 하는 바람에 급히 공략이 필요해진 A급 던전이었다.
협회 소속 S급 던전은 대부분 공략 완벽한 하위급이라 협회의 A급 팀으로도 관리 가능했지만 그러다 보니 평소엔 헌터팀이 부족해 급한 공략 건이 생기면 송태원에게 떠넘겨지기 일쑤였다. 진짜 딱 뒤처리나 맡고 있는 꼴이었다.
“각성자 관리실을 좀 더 키워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보나 마나 국회에서 막고 있겠죠.”
상대적으로 간섭하기 쉬운 헌터협회에 지원이며 예산이 들어가고 손대기 힘든 각성자 관리실은 찬밥 신세였다. 던전 브레이크 막는 건 나라 지키는 것과 동일하잖아. 행안부 소속이긴 하지만 국방 예산 좀 떼서 주면 안 되나. 대충 40조쯤 되니 딱 1조 원만 배정해 줘도 국가 소속 S급 팀 번드르하게 재정비할 수 있을 텐데.
송태원 씨가 아깝다. 항공모함 들여놓고 텅 비워 놓는 꼴 아니냐. 물론 송태원은 혼자서도 충분한 화력을 내지만, 그래도. 어차피 굴릴 거면 제대로라도 굴리라고.
‘설마 기승수도 관리할 돈 없다고 안 받아 주는 건 아니겠지.’
A급 던전이니 급하게 들어갔다고 해도 오늘이나 내일쯤 나오겠지. 피스랑 삐약이 인형 완성되면 그거라도 먼저 보내드릴까. 의외로 좋아할지도 모른다.
유현이와 피스가 이번에 들어간 던전은 서울 밖이었다. 근처긴 해도 차로 꽤 달려야 했다. 던전 건물 앞에 도착하자 협회 관련자들과 기자들 몇이 대기 중인 것이 보였다.
“협회는 그렇다 쳐도 기자들 소식 한번 빠르네요.”
“미리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길드장님의 저번 S급 던전 공략 기간이 신기록이었으니까요. 이번에도 같은 조건이라 기대하고 대기 탄 거죠.”
그렇군. 하긴 소식 듣고 왔다기엔 서울 안도 아니고 너무 빠르다. 차에서 내려서자 카메라가 이쪽을 향해 왔다.
“저 혼자 들어가도 되지 않을까요?”
내 말에 김성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은혜도 있으니까. 여기까지 오느라 한참 걸렸는데 건물 안에서 꼼짝 않는 거 보면 기다리고 있는 거겠지.
나 혼자 던전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장 안쪽, 게이트 실의 문을 열자 두 녀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유현이와 아성체 크기의 피스가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형.”
동생이 환히 미소 지으며 다가왔다. 군데군데 핏물이 튀어 굳은 자국에 옷자락도 더럽혀진 채지만 눈에 들어오는 상처는 없었다.
“보고 싶었어.”
“다친 데는 없고? 너 잠도 안 잤지.”
“별로 안 졸려서. 잘 필요도 없었어.”
그럴 줄은 알았다만 정말로 그랬냐. 내가 무리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도 안 듣고. 어릴 때처럼 안겨오는 동생을 마주 끌어안아 주었다. 삼 년간 못 했던 걸 다 하려고 드나, 어째 갈수록 어리광이 늘어나는 거 같다.
“나가기 전에 예장 넣는 거 잊지 말고. 아직 들키면 안 되니까. 기자들 여럿 대기 타고 있더라.”
“응.”
“피스는 왜 저러고 있어?”
피스는 여전히 아성체 상태로 게이트 앞에 선 채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낯선 태도였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걱정하자 유현이가 나를 놓으며 옆으로 물러섰다.
“순서를 정했거든.”
“뭐?”
“피스가 졌어.”
대체 무슨 소리냐. 유현이가 물러서자 그제야 피스가 움직였다. 조그맣게 크기를 줄이고는 내게로 도도도 뛰어왔다.
– 끼아아앙.
유독 애달프게 길게 울며 매달려 오는 피스를 안아들었다. 피스가 내 가슴에 온몸을 부비며 꼬리를 쳤다.
– 끼앙, 끼우웅.
“…유현이 너, 피스 괴롭힌 건 아니지?”
“아니, 전혀.”
좀 수상쩍은데. 진짜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자 동생 놈이 내 옆으로 바싹 달라붙었다. 둘 다 씻겨야겠다. 피스한테도 몬스터 피가 여기저기 그대로 묻어 있네. 털 굳어 뭉친 것 좀 봐라.
“형은 별일 없었어?”
“나야 아무 일 없었지. 너야말로 왜 이렇게 빨리 나온 거냐. 무리하지 말랬잖아.”
내 물음에 유현이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게이트실 한쪽에 달린 감시카메라를 바라보았다. 녹화가 되고는 있지만 만일을 대비한 자료로써 보통은 아무도 볼 수 없게 며칠간 보관되다가 깨끗이 삭제된다.
유현이의 손끝에서 가느다란 불꽃이 나타나고,
콰득.
작은 화살처럼 쏘아진 불꽃이 카메라를 박살 냈다. 직후 내 폰이 울렸다. 김성한이었다.
[내부카메라 고장 알림이 들어왔는데 괜찮으신 겁니까?]“네, 별일 없어요. 단순한 실수입니다.”
전화를 끊은 후 동생을 바라보았다. 유현이가 입을 열었다.
“던전 안에서 이상한 시선을 느꼈어.”
“시선?”
“몬스터는 분명 아니었고 던전 밖의 누군가가 지켜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 형에겐 정말로 아무 일 없었던 거 맞지?”
아무래도 걱정이 들어 더 빨리 나왔다고 유현이가 말했다. 시선이라니.
“바로 들어가서 물어볼까?”
마침 게이트 앞이니까. 걸음을 옮기려는 나를 유현이가 붙잡았다.
“아니, 지금은 가지 마.”
“응? 왜?”
“…감이 별로 안 좋아, 형. 시선을 느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어. 형을 위한 던전이라고 해도 나올 때는 일반 던전으로 연결되잖아. 그러니 박예림이라도 나오길 기다렸다가 확인하자.”
자신과 피스 둘만으로는 불안하다고 유현이가 조금 시무룩하게 말했다. 아직 최석원 때 일의 영향이 남아 있는 것일까. 자신 없어 하는 모습이 가슴 아팠다. 유현이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피로가 쌓인 상태니 그러자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림이도 금방 나올 테니까. 너보다 더 빨리 공략 끝내게 될 줄 알았는데.”
블루도 있으니 늦어도 내일쯤엔 나오지 않을까.
“…설마 예림이한테도 이상한 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
순간 걱정이 덜컥 들었다. 유현이는 다행히 시선만 느꼈다고 했지만, 혹시라도 그 이상의 문제가 생겼으면 어떡하지.
“호수와 강이 있는 던전이니 괜찮을 거야.”
유현이가 달래듯 말했다. 진짜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당장이라도 던전에 들어가 배구공을 탈탈 털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힘겹게 눌러 참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S급 던전이다. 지친 애들을 데리고 들어갈 순 없었다.
‘…그러고 보니 성현제는.’
제일 먼저 던전에 들어간 그 인간에게는 별일 없었을까. 무슨 일이 생기든 멀쩡하게 살아 돌아올 사람이긴 하지만 아주 야악간 걱정되었다. 그래도 동업자니까 한 손톱 반의반만큼.
…괜찮겠지. 크게 다치는 게 잘 상상도 가질 않는 인간이니.
얼른 가서 씻고 푹 쉬라며 애들 데리고 밖으로 나가자 협회 사람들과 기자들이 달라붙어 왔다. 물론 바싹은 아니고 둥글게 거리를 벌린 채로 질문을 던져 왔다. 대부분 정말로 나흘 만에 S급 던전을 공략 성공한 거냐는 물음이었지만 다른 내용도 있었다.
“해연길드의 박예림 헌터가 일본의 헌터와 친선대결 예정이라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요즘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화제가 기자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한국 VS 일본, 헌터 대결. 한일전하면 뭐든 화제가 되건만 무려 S급 헌터 간의 싸움이다.
A급 랭킹전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퍼져나간 소문에 더더욱 사람들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었다. 해연길드도 헌터협회도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실이라며 말을 아끼고 있었지만 부정은 아니었기에 진짜 한다더라! 박예림 헌터 던전 공략 끝나면 바로 일본 건너간다더라! 사실은 박예림이 아니라 한유현이 싸운다더라! 성현제라는 말도 있더라! 하며 온라인 오프라인 모두 난리였다.
“자세한 내용은 박예림 헌터가 던전에서 나온 뒤 발표될 예정입니다.”
적당히 대답해 주자 다른 기자들까지 정말로 박예림 헌터가 나서느냐, 너무 어리지 않느냐 하며 주제를 옮겨갔다. 유현이에게 현재 가장 빠른 S급 던전 공략 기록 보유자로서 직접 나설 생각 없느냐고 묻는 기자도 있었다.
우리 예림이가 뭐 어때서. 얕보지 마라.
“그만 물러나십시오.”
“이번 공략 기록은 해연에서 따로 발표할 예정입니다.”
해연길드원과 김성한이 사람들을 막아섰다. 그사이 피스를 데리고 유현이와 함께 차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