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219
219화 대결 (3)
콰르르르─ 대량의 물이 흙모래는 물론 나무까지 휘감으며 대지를 쓸었다.
아마테라스 길드장은 예림이의 선언을 듣고 재빠르게 추가 대피령을 내렸다. 해안가 집들 싹 비우고 피해 보상은 아마테라스 길드에서 해준다는 말에 의외로 제법인데 싶었다. 이쯤에서 그냥 끝내자고 하지 않을까 했건만.
‘하긴 전투계 S급 헌터라면 아무리 자기편이라도 이런 구경 놓치고 싶지 않겠지.’
가쿠토를 무척이나 아끼기라도 하지 않는 한은 말이다. 대피령 내리고 판 깔아 주는 거 보니 그냥 길드원 1인 모양이었다. 반대로 1시간 정도는 버틸 거라 믿어서일 수도 있고.
[아아, 또 터지네요, 물이 솟아오릅니다. 이와하타 가쿠토 헌터, 재빠르게 피하고 있습니다. 과연 속도만큼은 대단합니다.]일본 쪽 해설은 아무래도 가쿠토 편을 들고 있었다. 안타까워하는 티도 팍팍 나고 한탄도 섞여 있었다. 한국에도 방송 나가고 있을 텐데, 어디.
휴대폰으로 한국 쪽 인터넷 라이브 방송을 찾아보았다.
[쏟아지는 물세례! 박예림 헌터, 연이어 물기둥을 불러냅니다! 한 개, 두 개, 세 개! 용이에요! 수룡이죠!] [가쿠토 헌터는 이제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야말로 자연VS인간과도 같은 압도적인 스케일! 아무리 바닷가라 해도 저 정도로 물을 다룬다면 마나 소모가 클 것이라 짐작되는데요, 송태원 실장님께선 어떻게 보십니까?]…응? 송태원 실장님이라고? 카메라가 옆으로 움직이며 열기 띤 두 해설자와 달리 침착 차분한 송태원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니 어쩌다가 저기에…….
[박예림 헌터는 마력 스탯이 유독 높은 편이며 시간제한도 걸어 두었으니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송태원이 사무적인 태도로 대답했다. 저번 A급 랭킹전 때도 송 실장님 해설을 원하는 낌새가 있긴 했지만, 경기장 사고 대비해야 한다고 거절했었는데. 이번엔 해외가 무대다 보니 결국 끌고 갔구나.
한국에서 해설 맡아 줄 다른 S급 헌터도 마땅치 않긴 했다. 리에트와 에블린은 외국인이고 김성한은 다들 자리 비웠는데 방송 나온답시고 길드 떠나 있을 성격이 아니고. 한신의 박민규는 거절했나?
그래도 그냥 A급 헌터한테 해설 맡기지 오랜만에 평화로울 분 굳이 끌어내고 그러냐. 너무하네.
[방금 솟은 물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온천인가요?] [온천이네요! 온천이 터졌어요! 박예림 헌터표 온천입니다!]그 말에 고개를 들어 살펴보자 정말로 김이 뿌옇게 오르는 물줄기가 보였다. 일본에 온천이 많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싸우다가도 터지네. 저거 설마 박예림 온천 되는 거 아니냐.
원래의 경기장은 커다란 물웅덩이가 되어 버리고 가쿠토는 해안가를 따라 도망치는 중이었다. 그 뒤를 예림이가 여유롭게, 하지만 무시무시한 기세로 뒤쫓았다.
주위에는 나와 명우를 제외하곤 스탯 A급 이상인 각성자들만 남았다. A급도 몇몇은 물에 휩쓸려 바다로 떠밀려갔다가 돌아오길 반복했다. 나도 푸른 버들잎 스킬을 쓴 동생에게 의지해 공중 높이 떠 있음에도 물이 튀어 젖어 버렸을 정도였다.
“또 간다! 준비해!”
예림이의 친절한 예고와 함께 물줄기가 솟아올랐다. 단순한 수압 자체도 엄청났지만 가쿠토가 길을 막는 물의 벽을 향해 칼을 휘두르자,
펑!
폭발하듯 터져나간 물이 순식간에 얼음 조각으로 변했다. 수백 개의 얼음 화살이 쏟아지는 꼴이었다. 그것도 가쿠토 자신이 내보낸 힘에 의해서.
치이익, 화산 열기 스킬을 최대한으로 썼는지 얼음 화살이 녹고 가쿠토의 주위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단순히 주변 공기만이 아닌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물을 전부 끓여 없애기란 불가능했다.
결국 열기가 사그라지자, 이번에는 드높게 솟은 물의 벽이 통째로 얼어붙었다. 삐죽삐죽 무시무시한 가시 벽이 되어 가쿠토를 향해 덮쳐든다.
“젠장!”
저거 왠지 칙쇼였을 거 같은데.
쿠르릉, 육중한 얼음가시 벽이 덮쳐들고 피하기 힘든 크기 탓에 가쿠토는 도망치는 대신 벽을 꿰뚫었다. 열기를 집중해 얼음을 녹이고 S급 스탯에 따른 무시무시한 힘과 검격 스킬로 두꺼운 얼음을 단숨에 파괴한다.
비록 쫓기는 사냥감 신세라 해도 S급은 S급. 요란한 소리와 함께 얼음벽이 반으로 쩍 갈라졌다. 파편이 눈부신 빛을 내며 사방으로 튀고 가쿠토의 몸이 벽 사이에서 위로 솟아오르자마자,
“컥!”
바닷가에서 해일이 밀려들었다. 거인이 손바닥으로 후려친 것처럼 가쿠토가 철썩, 파도에 맞아 나뒹굴었다.
[대단한 쓰나미, 쓰나미!]일본은 물론 한국 방송에서도 엄청난 해일입니다, 저 높이! 난리를 떨었다. 쿠르르르, 물이 또다시 땅을 휩쓸었다. 나무가 뚝뚝 꺾이고 근처에 있던 운 나쁜 차가 뒤집어졌다. 가쿠토는 열기와 또 다른 스킬인지를 조합해 덮쳐드는 물을 막아 냈으나 겨우 제 몸 하나 건사하는 모양새가 초라할 지경이었다.
“차이가 너무 큰데.”
“바닷가니까.”
유현이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반대로 사막 한가운데였으면 불리했을걸.”
지금이야 물을 단순히 끌어오기만 하면 되지만 사막이면 만들어 내야 하니 마나 소모도 훨씬 크고 수량도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말하자면 포탄이 무한정 쌓여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냥 마음껏 신나게 쾅쾅 쏴대기만 하면 된다.
“한여름에 붙었어야 했는데, 아쉽다. 안 그래?”
시청자분들 속 시원하게 얼려 줬을 텐데, 하면서 예림이가 창을 치켜들었다. 마고스의 숄이 길게 펄럭이고 귀걸이 또한 찰랑거린다. 그녀의 주위로 물줄기가 솟아올랐다. 열 개쯤 되는 물줄기가 마치 히드라 머리들처럼 주인의 곁을 에워싸며 꿈틀거렸다.
[야마타노오로치! 흡사 야마타노오로치입니다!]그건 또 뭐냐. 전봇대 다섯 개쯤 묶어 놓은 듯 굵직한 물줄기가 가쿠토를 향해 창처럼 날아들었다. 심지어 도중에.
쩌저적─
단단하게 얼어붙으며 말 그대로 거대한 얼음 창이 되었다. 그대로 쾅! 쾅! 쾅! 땅을 내려찍었다. 끊임없이 쏘아지는 거창 공격에 가쿠토는 막을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이리저리 피하기만 하였다.
고작 열기로 녹일 물량이 아니다. 검으로 맞서 부수기에는 수가 너무 많다. 튼튼해서 맞아도 끄떡없거나 광역 스킬로 단숨에 처리해 버리지 않는 이상은 도망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일본 방송은 안타까움에 겨워 연신 탄식하고 한국 방송은 신나게 소리치고 있었다.
[박예림! 박예림! 박예리이임!!]거 목쉬시겠네. 역시 나도 플래카드 하나 만들어 와서 흔들걸. 이따금 보여 주는 일반 관중들 또한 흥분 속 잔치 분위기였다. 북 치고 꽹과리 치고 난리 났다.
“지금 몇 분이나 지났지?”
1시간 내로 잡겠다고 했으니까. 시계가 없어서 휴대폰 시계로 확인해야만 했다. 시계……. 아직까지 아무 말 없는 게, 혹시 정말로 잊어버린 건가. 깜박할 수도 있긴 하지만. 살다 보면 잊어먹을 수도 있긴 하지만.
“왜?”
“아냐, 아무것도.”
쳐다보는 눈길에 동생이 의아해했다. 왜기는. 그냥 대놓고 물어볼까.
아무튼 대략 삼십여 분쯤 지난 듯했다. 마침 방송에서도 시간을 알려 주었다.
[박예림 헌터의 1시간 예고 후 34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26, 25분 남았는데요. 슬슬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마나 소모량도 클 테니 말이에요. 하지만 이 상황을 보고도 1시간 버텼다고 가쿠토 헌터의 승리라고 말하면 정~ 말 어이없겠죠!] [사실상 현재로서도 박예림 헌터의 승리 아니겠습니까!]원래라면 가쿠토가 경기장을 벗어나는 순간 패배다. 하지만 예림이가 먼저 조건을 내걸었으니까. 자신 있어 보이지만 상대가 워낙 빨라서 잡는 건 그리 쉽지 않을 텐데. 열기로 제 주위 정도는 막을 수 있다 보니 붙잡아 두기가 힘들 듯했다.
마지막에 그림자 없는 낮을 쓰려나. 속성에 마력 버프 추가하면 냉기 저항 있어도 S급쯤 되지 않고서야 얼어붙겠지.
“후우, 훅!”
땅에 박히며 부러진 얼음 기둥을 뛰어넘으며 가쿠토가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계속 피하고 공격을 막느라 지친 모양이었다. 그래도 아직 속도는 줄지 않았다. 쌓여 있는 물을 다루기만 하고 간간이 얼리는 정도인 예림이에 비해 마력 소모도 더 클 텐데도 제법 잘 버틴다.
그래도 포션으로 보충도 못 하니 오래 못 가지 싶은 그때.
“몇 분 남았어요?”
예림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19분!”
한국 방송 상단에 뜬 타이머를 보고 얼른 외쳐 주었다. 예림이가 고맙다며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들었지? 아직 시간 쫌 남아 있긴 한데, 실컷 놀았으니까 끝내자!”
“누구 마음대로! 잡을 수 있다면 잡아 봐라!”
19분 정도야 버틸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는지 가쿠토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저놈, 안 그런 척 여력을 남겨 두고 있었던 건가.
탓탓탓, 거리를 확실히 벌리기 위해 가쿠토가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이 순식간에 멀어져 간다. 그것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예림이가 손가락 끝을 움직였다. 가쿠토가 향한 쪽의 바다가 일렁이고.
휙, 순식간에 예림이의 모습이 사라졌다가 가쿠토의 바로 위쪽에서 나타났다. 기다렸다는 듯이 가쿠토가 칼을 휘둘렀다. 촤아악, 물덩이와 검격이 맞부딪치고 물방울이 비산한다. 가쿠토가 다시금 거리를 벌리려는 그때 바다에서 거대한 물 덩어리가 솟아올랐다.
마치 고래가 육지로 뛰어오른 듯했다. 작은 동산과도 같은 엄청난 크기의 물이 가쿠토의 앞을 가로막았다. 경기장을 벗어나도 좋다고 하였으나 바닷가에 한정되어 있었기에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뚫거나 뛰어넘기엔 적진에 몸을 던지는 것과 다름없었다.
저 어마어마한 물이 어떻게 공격해 올지 알 수 없으니까.
거의 동시에 반대쪽에서도 비슷한 크기의 물 덩어리가 길을 막았다. 이번만큼은 예림이도 힘겨웠던지 작게 숨을 몰아 내쉬었다.
물로 이루어진 두 개의 동산이 햇빛 아래 일렁거린다.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일본은 물론 한국 방송도 잠시간 조용해졌다.
“항복?”
“다, 단순히 길이 막혔을 뿐이다!”
가쿠토가 당황하면서도 끈질기게 소리쳤다. 솔직히 답이 없어 보이는데. 단순한 열기보다 훨씬 더 고온의 불길을 다루는 유현이도 저만한 양이라면 어떻게 못 한다. 물론 유현이는 버들잎 스킬로 빠져나가면 되지만.
하지만 저놈에게는 비행 스킬 비슷한 것도 없다.
큰소리는 쳤지만 오도 가도 못 하게 된 가쿠토를 내려다보며 박예림이 미소 지었다.
“알았어, 그럼.”
물덩이의 일부가 움직였다.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로 가쿠토를 향해 덮쳐든다. 다시 열기가 이글거리고 수증기가 뿌옇게 흘러넘쳤다. 철벅철벅 물을 밀어내는 검격도 쏟아졌지만 그야말로 칼로 물 베기였다.
얼음도 아닌 물 그 자체를 대체 어떻게 상대할 수 있을까. 제아무리 힘이 세다고 해도 단순한 물리력으론 아주 잠깐 밀쳐낼 뿐이었다. 그것도 물의 일부만을.
호수도 아닌 바다를 바로 옆에 끼고 있다. S급이 아니라 SS급 헌터쯤 된다 하더라도 바다를 말려 버리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크억!”
결국 물덩이가 가쿠토를 삼켰다. 물의 산 또한 가쿠토를 중심으로 합쳐지며 거대한 구를 이루었다. 그렇다고 해도 단순한 물이다, 헤엄쳐서 빠져나올 수 있겠지만.
쩌저적.
덩어리의 안쪽 일부가 얼어붙었다. 가쿠토를 가운데 두고 그 주위만 일부 겹을 이루며 얼음의 구체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외벽의 대부분은 여전히 물이었다.
터엉, 물 덩어리 안에서 얼음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하지만 얼음이 부서지면 이내 다시 물이 그 자리를 메우며 얼어붙었다. 빠져나올 틈 없이 빠른 속도로.
녹고 부서지고 다시 얼어붙고. 단순한 돌이나 철벽이면 부순 순간 끝이다. 다시 빠르게 복구시키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물과 얼음은 끊임없이 반복할 수 있었다. 쉴 새 없이, 계속해서.
가쿠토의 움직임이 점차 둔해져 갔다. 물은 공기 또한 차단하고 있었다. 장소가 경기장으로 한정되어 얼마든지 증발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수중 활동용 장비는 갖추지 않은 모양이었다.
제아무리 신체 능력이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S급 헌터라 해도 산소 없이 오래 버틸 순 없다. 결국 가쿠토가 정신을 잃고, 박예림 헌터의 승리라는 방송이 급히 나간 직후 물 덩어리가 터져 나갔다.
촤아악!
물이 빠져나간 가운데 가쿠토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앉았다. 콜록거리는 그의 앞으로 박예림이 내려섰다.
“수고하셨습니다. 재밌었어요. 진짜 실컷 다 휘둘러 봐서.”
두통 오는 게 마나 바닥나기 직전인 거 같다며 예림이가 포션을 꺼내 마셨다. 가쿠토의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순순히 머리를 숙였다.
“패배를 인정하겠다, 박예림 헌터. 그대의 힘을 모두 끌어낸 것에 만족하며 향후 당당한 승부를 위해 더욱 실력을 갈고닦겠다.”
…모두라기에는 그림자 없는 낮을 안 썼는데. 속성, 스탯 버프에 상대 발까지 묶고 추가 버프 들어가는 SS급 스킬 빼놓은 거라 사실상 예림이 본 실력의 3분의 2 정도였다. 가쿠토 저놈, 조금 불쌍해질 정도네.
가쿠토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 한 번 예림이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물의 여신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여신은 무슨 여신이야.”
예림이가 가까이 접근하는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물의 지배자! 그거 말곤 안 받아요!”
물의 지배자 스킬 보석이 박혀 있는 창을 흔들며 예림이가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