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222
외전 1화
‘수영장이라니, 대체 얼마 만이냐.’
홍콩에서는 삐약이만 물에 들어갔으니까. 회귀 전 수영 배우러 갔을 때 이후로 처음이다. 그 밖엔 어릴 때 단체로 물놀이 간 적 있긴 했지. 개인적으로는 갈 여유가 없었고. 시간적으로든 금전적으로든 좀 더 넉넉했더라면, 어릴 때 동생이랑 이것저것 많이 해볼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새삼스럽게 아쉬웠다.
“아저씨! 준비 다 됐어요?”
문밖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급하기도 하지.
“잠시만 기다려!”
수영장에도 탈의실이 있지만 방에서 갈아입고 가도 된다고 했다. 탈의실보다야 객실이 편하지. 캐리어에서 새로 산 수영복을 꺼내들었다.
‘완전 평범한 옷이네.’
마음에 든다. 래쉬가드는 딱 달라붙는 것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다양했다. 그중에서도 제일 흡족한 것은 헐렁한 티 같은 수영복이었다. 안 달라붙으니 편하기도 하고 몸도 가려 주고.
‘흉터는 감추는 게 낫지.’
유현이에겐 이미 들켰고 다른 사람들에겐 어릴 적에 난 흉터라고 하면 되지만, 괜히 걱정 끼칠 필요 있겠냐. 흉터 제거하려 들면 어떡해. 게다가 상처 위치도 애매하고.
“형, 그거 입게?”
상의부터 벗는데 어느새 다가온 동생이 섭섭한 티를 내며 말했다.
“어… 다른 거 입을까?”
“응. 이게 더 어울려.”
유현이가 집업 스타일 래쉬가드를 꺼내들며 말했다. 툭하면 형이랑 같은 거, 라고 말하는 동생 녀석은 수영복 사러 갔을 때도 똑같은 소리를 했다. 하지만 그 매장에는 헐렁한 티 수영복은 유현이에게 맞는 것이 없었다.
몸통이야 괜찮았지만 어깨가 짧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신 산 것이 집업 래쉬가드였다. 티보단 못해도 이것도 꽤 널널하고 무엇보다 지퍼가 있어 입기 편했으니까. 옷은 편한 게 최고다.
“그래, 뭐.”
유현이가 꺼내 든 후드집업 래쉬가드를 받아 들었다.
“너도 빨리 갈아입어. 예림이가 문 부술라.”
하의는 무릎 약간 위에 오는 길이였다. 긴 건 갑갑하고 입고 벗기도 불편하니까. 그냥 후드집업에 반바지로 보이는 게 역시 마음에 든다. 수영복 안 같군.
“얘들아, 이리 와.”
벨라레가 내 팔에 감기고 삐약이도 안겨왔다. 하지만 피스는 따라는 왔지만 평소와 달리 안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수영장 가는 걸 눈치챈 건가.
“내가 널 물에 빠뜨리겠냐.”
– 끄앙.
“같이 수영하면 좋긴 하겠지만.”
눈치 빠른 녀석. 하지만 피스가 수영하고 삐약이와 벨라레가 타고 있는 모습 찍고 싶었는데. 휴대폰 방수 케이스도 준비해 왔다고.
“방수 케이스 어디 넣어 놨더라.”
“여기.”
유현이가 휴대폰 방수 케이스를 내밀었다. 한쪽 팔로 삐약이를 안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는 내 폰을 케이스에 넣어 준다. 케이스에 달린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넌 갑갑하긴 하겠다.”
동생도 나와 같은 집업 래쉬가드였지만 나와는 달리 지퍼를 올리지 않았다. 사이즈 맞는 걸로 사긴 했는데, 좀 조일 거 같아 보였다. 그러게 그냥 하의만 입지.
‘내가 안고 다닐 때도 있었는데.’
저렇게 큰 거 보니 가끔 기분이 묘해진다. 애가 쑥쑥 잘 커봤자 그래도 애니까 옛날엔 나보다 더 커질 거라곤 상상하기 힘들었지. 초등학생 때만 해도 이렇게 클 줄은 몰랐는데.
중학생 땐 발육이 꽤 좋긴 했었다. 고1 들어가고도 여전히 키가 빠르게 자라고 있었으니 각성 안 했어도 180은 넘겼을 거 같고.
챙겨 먹인 거 생각하니 뿌듯하긴 하네. 잘 컸어.
“아~ 저~ 씨~”
“지금 나간다, 나가.”
노래를 불러라, 노래를.
“날씨도 좋네요!”
예림이가 신나 하며 두 팔을 기지개 켜듯 쭉 올렸다. 예림이도 래쉬가드를 입고 있었다. 요샌 예전 수영복 같은 건 잘 안 입나? 활달해 보이는 반팔 티와 짧은 바지 세트였다. 그대로 달려가더니,
첨벙.
물속으로 들어간다. 흔들리는 수면 아래의 형체가 인어처럼 부드럽게 움직이다가 물 위로 솟구쳤다. 물도 같이 솟구쳐서는.
“아, 기분 좋아.”
예림이를 휘감아 받쳐 올렸다. 주위의 물방울들이 햇살을 반사시키며 눈부시게 춤춘다.
“형님, 왜 그렇게 꽁꽁 싸맸어?”
문현아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리자 브라탑 래쉬가드에 역시나 짧은 바지를 입고 있는 문현아가 보였다. 와, 근육 좀 봐. 예림이처럼 티 입기엔 갑갑하겠구나. 특히 어깨와 팔이 장난이 아니었다. 거창 쓰는 거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좀 부럽다.
“언니, 시합해요!”
“오냐!”
문현아가 웃으며 수영장에 첨벙 뛰어들었다.
수영장은 중앙의 커다란 풀과 테두리를 둥글게 잇는 긴 풀로 구성되어 있었다. 수영장 자체가 넓은 만큼 테두리의 풀의 길이가 상당했다. 예림이와 문현아가 긴 풀의 끝으로 갔다.
“아저씨, 신호 주세요.”
“응. 스킬 쓰면 반칙이다.”
자칫하면 수영장 터져 나갈 수도 있고. 조심해야지. 신호와 함께 두 사람이 출발했다. 예림이도 빠르긴 했지만 역시 스킬 없이는 문현아를 이기기 힘들었다. 키에 근육 차이도 크니까. 그래도 거리가 많이 벌어지진 않고 잘 따라붙었다.
“유진 씨!”
“유진아.”
수영 시합을 구경하는 사이 노아와 명우도 수영장으로 내려왔다. 둘은 수영 팬츠만 입고 있었다. 명우야 두말할 것도 없었고 노아도 보조계 S급도 S급이라 뭐… 역시 싸매길 잘했다.
“푹 쉬어서 그런 가 얼굴 좋아 보인다.”
“역시 휴식도 필요하다 싶더라. 이스무아르는 조금 불만스러운 듯했지만.”
명우가 웃으며 말했다. 휴가인 만큼 한국에 돌아가기 전까지는 일 안하기로 했다. 여기 사우나 물 좋았다면서 성큼 수영장으로 들어간다. 명우도 수영 잘하네.
“자, 삐약아, 벨라레. 너무 깊으려나?”
걱정되었지만 삐약이가 먼저 물에 뛰어내렸다. 비행 아이템 있으니 괜찮겠지. 동동 물에 뜬 삐약이 옆으로 벨라레도 헤엄치기 시작했다. 원래도 물을 좋아해서인지 부드럽게 잘도 수영한다.
그 모습을 얼른 촬영하고 동영상도 찍었다. 귀엽기도 하지.
“피스… 는 역시 싫구나.”
– 끼양.
어느새 썬베드에 올라앉은 피스가 평소보다 더 가늘게 울었다. 그래, 싫다니 어쩌겠냐. 볕이나 쬐렴.
“유현이 넌 물에 안 들어가?”
내 옆에 서 있는 동생에게 물었다. 왜 구경만 하고 있냐.
“수영할 줄 몰라.”
“그래? 바다에선 잘 떠 있기에 할 줄 아는 줄 알았는데.”
“뜨는 거야 쉬우니까.”
그런가. 하긴 나도 뜰 줄이나 알지. 일단 내가 먼저 물에 들어갔다. 뒤쪽 바깥으로 갈수록 깊어져서 앞쪽은 허리 조금 위까지 오는 정도였다.
“뜰 줄 알면 금방 배운다더라. 들어와, 어서. 손잡아 줄게.”
“응, 고마워.”
유현이가 방긋 웃으며 물에 들어오는데 근처에 서 있던 노아가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저, 저도 수영할 줄… 몰라요.”
“노아 씨도요? 뜰 줄은 아세요?”
“어, 안 해봐서 잘 모르겠어요.”
저런, 수영장 한 번도 안 가봤구나.
“잠시만요. 유현이 먼저 도와주고요.”
유현이의 손을 잡는데 갑자기 옆에서 물이 튀어 올랐다. 물보라와 함께 등장한 예림이가 소리쳤다.
“아저씨, 속지 마요! S급이 수영 못한단 소릴 하다니.”
“맞아, 형님. S급이 아니라 스탯 B급만 돼도 물에 던져 놓고 3분 이내에 술술 헤엄친다니까.”
문현아까지 같이 나타나 거들었다.
“이제 보니 도련님 완전 불여우네. 형님 앞에서 내숭이 장난이 아니야~”
“맞아요, 언니! 보고 있으면 진짜 웃기지도 않는다니까요. 야, 불여우! 여우짓 그만하고 시합이나 하자!”
여우라니. 예림이의 시비에도 유현이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귀 막은 듯 태연했다. 얼굴이 붉어진 것은 엉뚱하게도 노아였다.
“저, 저기, 전, 그냥…….”
귀까지 새빨개진 노아가 말도 제대로 못하고 우물거리다가 물속으로 들어갔다. 헤엄이 아니라 그대로 스르륵, 가라앉듯 깊은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S급 헌터니 빠질 일은 없지만.
‘모를 수도 있지, 괜찮은데.’
뭘 창피해하고 그러냐. 근데 역시 내가 손잡아 주는 것보단 바로 시도해 보라고 하는 게 빠르려나.
“유현아.”
“응, 형.”
동생이 나만 믿는다는 듯 해맑게 바라봐 왔다. 그래, 천천히 배워도 되지. 당장 수영대회 같은 걸 나갈 것도 아니고. 그때였다.
촤아악, 물소리와 함께 내 몸을 물이 휘감았다. 그리곤 순식간에 뒤로 당겨졌다.
“어, 어?”
“박예림!”
내가 다칠세라 손을 잡아당기지 못하고 놓아준 유현이가 사납게 소리쳤다. 나를 감싼 채 뒤로 한참 물러난 물이 의자처럼 변했다. 보통의 물이라면 그대로 빠지겠지만 어떻게 조정했는지 물컹하게 내 몸을 받쳐 주었다. 안에 물 집어넣은 튜브 같네.
“덤벼라, 불여우!”
예림이가 내 앞에 서서, 가 아니라 물에 둥둥 떠서 당당하게 외쳤다.
“수영 못하는 거 거짓말이지? 다 알아!”
“…….”
유현이가 머뭇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대답했다.
“못해.”
“와, 역시 한유현! 하지만 아저씨를 되찾기 위해서는 헤엄쳐야만 할 거다!”
거 웃지만 말고 애들 좀 말리시죠, 현아 씨.
“여기서 싸우진 마라.”
라고 말해 봤지만 둘 다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평화롭게, 음, 비치발리볼… 도 평화와는 거리가 멀 듯한데. 누가 모래 좀 퍼다 줘라. 모래성 쌓기 대결이나 시키게.
“유진이 너도 고생이다.”
내 옆쪽으로 다가온 명우가 말했다.
“그래도 귀엽긴 하잖아. 혹시 휘말릴지 모르니 삐약이와 벨라레 좀 데려다줄래?”
명우가 동동 떠다니고 있던 삐약이와 벨라레를 데려다주고 잠수했던 노아도 다가왔다. 수영장 밖에 선 노아가 내게 물었다.
“음료수 가져다 드릴까요?”
“아, 네. 그럼 카페라떼로 부탁해요.”
“명우 형은요?”
“난 자몽에이드.”
명우가 대답하자마자 예림이도 번쩍 손을 들었다.
“전 자바칩프라푸치노 자바칩 추가, 휘핑도 추가요! 없으면 파르페나, 없으면 카라멜마끼아또에 에스프레소 휘핑이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부탁합니다.”
“맥주에 안주! 이왕이면 기름진 걸로!”
노아가 움찔 굳었다. 주문이 너무 많은 거 아니냐. 특히 예림이 넌 다 기억도 못 하겠다. 당황하는 노아를 본 명우가 수영장 밖으로 나갔다. 사다리도 없는 곳을 가볍게 팔 힘으로 올라선다. 역시 스탯이 높아지니 좋구나. 부럽다.
“같이 가줄게.”
친절하다니까. 명우도 가만 보면 사람 돌보기 좋아하는 듯했다. 대장간 사람들도 자기 시간 줄여 가며 신경 써서 가르쳐 주고. 갑자기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르네. 정말 많이 변했지. 좋은 쪽으로, 많이.
명우와 노아가 바 쪽으로 가고 유현이와 예림이가 또다시 서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맥주 오거든 시작해라.”
문현아가 말릴 생각은 조금도 없이 낄낄대며 말했다.
“내가 특별히 속아 준다! 5분 줄 테니 수영 배워.”
“형이 가르쳐 주기로 했으니 돌려줘.”
“아저씨도 뜰 줄만 아신 대잖아. 양심 챙기시지, 길드장님아.”
“즐거워 보이는군.”
목소리 하나가 더 끼어들었다. 성현제였다. 어느새 나타난 그가 풀 쪽으로 다가왔다. 뭐야, 저 비치로브 가디건은. 몸 가리기 좋아 보여서 나도 살까 고민했던 거긴 하지만. 다만 성현제는 걸치기만 했다.
아무튼, 음… 몸 좋구나. 저쯤 되면 딴 세상이라 질투도 안 난다. …솔직히 부럽기는 했다. 좋겠네, 정말. 내가 왜 수영장엘 와서. 그나마 송 실장님이나 김성한 씨는 없어서 다행인가.
유현이와 예림이는 성현제가 나타나든 말든 눈길 한 번 안 주고 자기들끼리 신경전에 빠져 있었다. 문현아도 같이 구경하자는 한 마디만 던지고 말았다. 그것을 본 성현제가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미소 짓는 게 살짝 불길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성현제가 자신의 손끝을 들어 보였다. 파직, 아주 작게 빛이 튀었다. 설마.
“잠깐, 야!”
얼른 삐약이와 벨라레를 품안 바싹 안으며 은혜를 사용했다. 내 행동을 확인하자마자 곧장.
파지지직!
전기가 튀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을 발하며, 풀 전체에. 아, 저 망할 인간이 진짜!
“아야!”
“읏!”
“저 개새끼가!”
요란하게 전기가 흘렀지만 S급 헌터들에겐 그냥 아프고 마는 수준인 모양이었다. 하하 웃는 성현제를 유현이와 예림이가 노려보기 시작했다. 문현아 또한 으르렁거렸다.
“한유현, 잠깐 휴전이다.”
“받아들이지.”
그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얘들아 잠깐만. 여기 깊잖아. 뜰 수는 있었는데, 갑자기 빠져선 가. 예림아, 너 스킬 전기 맞고 풀렸다. 삐약이와 벨라레는 상황을 모르는 거 같고.
“저런, 한유진 군이 더 급할 듯한데.”
“뭐, 악! 아저씨!”
“형!”
– 컁!
가라앉아 가고 있던 몸이 위로 훅 들려졌다. 원래 가만히 있으면 뜨는 거였는데 왜 가라앉은 거지. 유현이와 예림이가 나를 얕은 곳으로 끌어냈다.
“형, 괜찮아?”
“왜 소리도 안 쳐요?”
“아니, 쿨럭. 보통은 힘 빼면 뜨니까. 물속에서 소리치면 물 먹고 더 못 떠.”
그래도 너무 얌전했나. 공포 저항 영향도 있었던 모양이다. 완전히 가라앉으면 바닥을 박차고 잠깐이나마 올라올 수도 있고.
– 끄앙.
“그래, 피스야. 물에 들어오는 거 싫어하더니.”
다 젖어 버렸네. 내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피스가 얼른 물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곤 내 눈치를 살피며 화단 뒤로 스윽 숨어들어 갔다가 보송해져서는 다시 썬베드에 올라앉았다. 정말로 직접 말릴 수 있었구나.
“역시 수영을 제대로 배워 두는 편이 좋지 않겠나.”
원흉이 다가와서 태연히 지껄였다. 댁 아니었으면 빠지지도 않았다고. 내 파트너의 안전을 위해 어쩌구 하며 가르쳐 주겠다는 소리에 됐다고 거절하려는데 예림이가 끼어들었다.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 저 수영 잘해요.”
그러면서 보란 듯이 유현이를 향해 입꼬리를 올린다. 유현이가 미간을 확 좁혔다.
“방금도 스킬 제어 못 해서 형을 물에 빠뜨리지 않았나. 형, 나랑 같이 천천히 배우자.”
“아니면 내가 가르쳐 줄까, 형님?”
…그냥 튜브 타고 놀고 싶다. 던전 부산물로 구명조끼 못 만드나. 항상 가지고 다니면 되잖아.
“일단 좀 쉬었다가.”
물 밖으로 나가 벤치에 앉았다. 바 쪽에서 명우와 노아가 주문받은 음료를 들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