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229
227화 낮의 도시 (3)
“벽 밖에는 몬스터가 많나요?”
외진 곳에서 일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시네요, 가드님께서 벽을 지키고 계신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든든합니다. 등등 칭찬과 감탄을 섞으며 질문을 던졌다.
“당연히 많지요. 도시 내부에서 발생하거나 방어벽을 넘어오는 몬스터가 아니고서야 처리하지 않으니까요. 아주 가끔 몬스터 부산물이, 특히 고기가 부족하면 사냥을 나가기도 하지만요.”
고기… 잠깐만. 설마 샌드위치와 식당 요리 속의 고기가 몬스터 고기였냐? 우리 동네에서도 식용 가능한 몬스터 고기를 특별한 음식 취급하긴 했지만.
‘여긴 주요 식량 자체가 몬스터 고기인 게 아닐까.’
밖은 황무지고 도시가 크긴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길에 농장 같은 건 본 적 없었다. 고기용 가축을 사육하는 데는 너른 땅도 필요하지만 먹이기 위한 사료의 소모 또한 크다. 그걸 알아서 다 성장해 튀어나오는 몬스터 고기로 대체한다면 도시를 유지하기 위한 시설 상당 부분을 감소시킬 수 있을 터였다.
‘샌드위치도 고기 질에 비해 채소가 빈약했지.’
농경지가 얼마 없어 신선한 채소는 비싸고 몬스터 고기는 저렴하고. 에너지는 마석이나 그 비슷한 것으로부터 얻지 싶으니 발전시설도 소규모일 것이다.
즉, 실질적으로 이 도시는 자급자족 가능한 작은 국가다.
‘결국 타 도시로 가는 건 타국으로 가는 것과 비슷한 건가.’
바깥 꼴을 보아하니 교류가 잦지도 않을 듯하고. 여러 개의 도시국가로 이루어진 세계라. 이곳 솔렘니스는 비교적 평화로워 보이지만 유현이가 있을 아카테스 시는 어떤 꼴일지 알 수 없다 이거구만.
“무기 멋지네요! 이것도 마력으로 작동하는 건가요?”
대구경 포처럼 생긴 무기를 바라보며 물었다. 가드가 마나가 무척이나 많이 들어간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직격하면 S급 몬스터까지도 데미지를 줄 수 있습니다.”
“우와. 여기 S급 몬스터가 자주 나타나나요?”
“그리 잦지는 않습니다. 보통 B~A급이지요.”
“C급 이하는요?”
“C급 이하야 밤에는 B급 이상 몬스터들에게 잡아먹히고 해가 뜨면 타 버리니 보기 드문 편입니다.”
무심코 타 버려요? 하고 되물을 뻔했다. 이 동네 C급 이하 몬스터는 햇빛을 버티지 못하는구나. 그 사실을 알고 나니 B급 이상만 가드 취급할 만하지 싶었다. 인력 낭비라고 생각했는데 C급 이하 몬스터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면 마력 충전용으로 쓰는 게 효율적… 으음, 그래도 역시 기분은 나쁘구만.
적어도 같은 사람 취급은 좀 해 줘라. 호칭부터가 연료통이 뭐냐.
그 밖의 방어벽 경비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보았다. 벽은 단순한 벽이냐, 혹시 벽을 타고 오르는 몬스터를 대비한 장치가 있느냐, 벽 아래 숨겨진 해자 같은 건 없느냐 등등. 친절한 가드는 신입 가드에게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고맙기도 하지.
“대단하네요. 아, 혹시 아카테스 시에 대해서도 아시나요? 여기서 비교적 가까운 편이라고 들었는데.”
“란체아 다음으로 가깝지요. 그렇다고 해도 차로 이틀은 달려야 하는 거리입니다. 타 도시의 소식은 거의 들어오질 않아서 잘은 모릅니다만 아카테스 시는 가드 대우가 그리 좋지 못하다더군요.”
“정말이요? 이곳과는 다른 모양이지요?”
“도시야 다들 다르죠. 풍문으로 듣기에 메드상 시의 뮤는 신처럼 모셔진다고도 하더군요.”
메드상은 뮤로군. 그보다 아카테스 시는 가드 대접이 별로라니, 알파가 진짜 유현이 맞다면 괜찮은 걸까. 아무리 그래도 SS급한테는 잘해 주겠지.
…내 동생한테 허튼짓했다간 봐라. 확 엎어 버릴 테다.
‘예림이와 노아 씨도 걱정되네. 빨리 찾아내야 할 텐데.’
진짜 몸이 아니라고 해도 실제나 다름없이 느껴지니 나쁜 일 겪어서 좋을 건 없다.
방어벽 견학을 끝내고 B급 가드가 직접 차를 태우고 도시 안쪽으로 데려다주었다. 다들 너무 친절해서 미안해질 정도였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솔렘니스 역사 기록관이었다. 기록관 건물로 들어가자 로비에 견학 온 아이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예닐곱 살 즈음의, 한국으로 치자면 유치원생 정도의 아이들이었다.
“어! TV에서 말한 C급 가드 아저씨! 맞죠?”
여자아이가 소리치고 이어 남자아이도 손뼉을 쳤다.
“맞아! 검은 머리랑 검은 눈이랑 귀에 빨간 거!”
진짜다, 진짜다 하며 아이들이 우르르 내 앞으로 몰려들었다. TV에 직접 나온 것도 아니고 언급만 되었을 뿐인데도 신기한 건가. 시그마 효과인가.
“얘들아, 그러면 안 돼요.”
“선생님 말 들어야지.”
인솔자들이 아이들을 말렸다. 특이하게도 셋 중 둘은 각성자에, 한 명은 B급이었다. D급은 마나 크기를 보니 연료통… 이고.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드를 붙인 건가.
‘밤에 처리 못 한 몬스터가 남았을 수도 있으니.’
C급 이하도 햇빛만 잘 피하면 살아남으려나? 그래서 더욱 밤에 건물 문이며 창문을 단단히 막아 놓은 것인지도.
호기심 어린 눈빛들이 여기저기서 반짝거렸다. 평범하게 나들이를 나온 아이들이다. 겁먹거나 두려운 기색은 조금도 없이 동그랗고 통통한 볼들에 생기가 넘쳐났다.
이미 멸망한 세상에서.
단순한 과거의 정보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기분이 이상해졌다. 너무 현실감 넘치잖아. 이 세계가 얼마나 더 오래 버텼는지는 알 수 없다. 체계가 잘 잡혀 있고 평화로운 낮의 도시를 보아선 의외로 오랜 기간 멸망을 피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진짜는 아니잖아.’
내가 신경 쓸 필요 없다. 이내 곧 떠날 가짜 세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웃는 얼굴들이 괜스레 가슴을 쿡쿡 찔렀다.
…게임 같은 건 그냥 모니터 너머가 낫겠다. 가상현실이란 거 자칫하면 정신적 문제 대량으로 발생시켜 버리겠는걸.
“아저씨, 아저씨는 시그마님 실제로 봤어요?”
아이 하나가 내 옷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다른 아이들도 궁금하다는 투였다.
“당연히 봤지! 첫 만남이 아직도 생생한걸. 시그마님께서 그냥 지나가려는 내게 먼저 다가와 이런 시간에 혼자 다니면 위험하다고 걱정해 주시기에 정말 신사적이시네요, 하고 팔에 묻은 먼지를 털어드렸단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 만났고 보상금과 쇼핑과 흩날리는 청구서 사이의 끈끈한 뭐어.
“전 한 번도 못 봤어요!”
“저도요!”
“밤에 주로 나오시니까. 착한 아기들은 곤히 잠들 시간이지.”
“아기 아니에요, 일곱 살이나 됐는데.”
“맞아, 이제 일곱 살이라서 일찍 안 자요. 동생은 아기라서 많이 자지만.”
아기는 정말 귀엽다면서 손도 요만해요, 하고 작은 손을 꼼질거린다. 아, 귀여워.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내가 저만했을 때도 동생은 정말 작고 귀엽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아기니까 내가 돌봐 줘야지, 싶었었는데.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서도 조그맣던 손은 생생했다. 애기들 손발은 진짜 작고 예쁘고 신기하다니까. 특히 손은 그렇게나 작은데도 움직이고 움켜잡기도 하고. 그게 어떻게 내 손보다 더 커졌지. 유현이 보고 싶다.
와글와글 떠드는 말들을 들어 보니 시그마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모양이었다. TV에 나온 것도 무척이나 오랜만이라고 하였다. 쉘터는 각 가정마다 개인실이 주어지지만, 침대만으로 꽉 찰 크기라 심심하고 갑갑하다고 했다.
내가 묻지 않아도 아이들은 자기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자세하게, 열심히 알려 주었다. 긴긴밤 동안 쉘터에 갇히다시피 지내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생각 이상으로 풍족한 듯했다.
“안녕, 아저씨!”
“안녕!”
아이들과 헤어지고 기록관 전시물이 있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관람료는 무료였다. 가장 앞쪽에는 도시의 전경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한쪽이 일그러져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사각형에 가까웠다. 도시 동쪽으로는 농경지가 제법 너르게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솔렘니스 시. 올해로 27년, 인가.’
전시물을 구경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겨갔다. 너른 전시 공간 중앙에 커다란 모형이 세워져 있었다. 움푹 파인 땅속에 푸른색 거대한 구체가 자리 잡고 있는 모형이었다. 반짝거리는 빛이 연신 퍼져 나온다.
[마나 홀]모형 앞에 세워진 터치스크린을 건드리자 설명이 흘러나왔다.
[마나 홀은 지금으로부터 31년 전에 처음 발견되었습니다. 몬스터로 칭해지는 사나운 짐승들이 발생하기 시작하고 2년 후, 옛 인시데마 국경선 근처에서 나타난 마나 홀이 그 첫 번째입니다.]자료 사진 또한 화면 위로 나타났다. 초기의 몬스터는 D급 이하로 무장 병력이 나서면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점차 수가 늘어나면서 위기가 닥쳐오고.
[B급 이하 각성자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각성자들은 몬스터를 쉽고 빠르게 사냥하였으나 곧잘 마나 부족 상태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이곳의 각성자들은 자체 마나 회복력이 아주 낮다고 목소리가 말했다. 마력 스탯이 높은 상급 각성자라 해도 하급 각성자와 큰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 정도면 자체 회복력이 거의 없는 수준 아닌가?’
우리 동네는 마력 스탯 S급쯤 되면 A급 던전까지는 마나 포션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공략 가능한데. 스킬을 낭비하지 않으면 말이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마력 스탯은 마나와 큰 관련이 없는 모양이었다.
‘…이거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는지 모르겠네.’
애들 모르고 평소처럼 마나 펑펑 쓰다가 곤란해지는 거 아니냐. 특히 유현이와 예림이는 마력 스탯이 높아서 불도 물도 마음껏 휘두르는 타입인데.
다행히 마나 홀로부터 마나를 보충할 수 있으며 동시에 전기와 같은 일상 에너지로도 변환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각 지역의 마나 홀을 중심으로 새로운 도시가 세워지게 되었다고 했다. 몬스터를 막기 위한 장벽을 높게 세우고서.
[마나 홀의 연구 결과로 각성자들의 평균 등급 또한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마나 홀을 이용한 각성이 주가 되면서 매년 배출하는 각성자 수에 제한이 생겨났습니다. 각성 대상의 절반은 자질을 우선으로 하며, 나머지 절반은 추첨입니다.특히 뛰어난 자질을 지닌 예비 각성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특별 세례’에서는 처음부터 SS 등급을 지닌 각성자가 탄생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특별 세례는 1년에 한두 차례 적용 가능하며, 기본 S급의 각성자가 탄생한다고 하였다. 그럼 지금 있는 SS급 각성자들 중에선 원래 S급인데 마나 홀의 힘을 빌려 SS급이 된 사람도 있겠군.
알파가 이 케이스인가? 4년 만에 SS급으로 성장하긴 힘들 테니까.
마나 홀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이 끝나고 상세 목차가 화면에 떠올랐다. 그중 각인 항목을 손가락 끝으로 눌렀다.
[마나각인] [보호각인]우선 마나각인부터 확인했다.
[변환된 에너지가 아닌 순수한 마나는 무생물에 저장이 불가능합니다. 시스템의 보상으로 드물게 나오는 마나포션 외에는 마나를 개인 휴대할 방법이 현재로서는 전무합니다.상급 몬스터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마나 보충 문제가 대두하게 되었습니다. 전투 도중 마나 보충의 필요성이 커지고, 이때부터 생물을 마나 연료통으로 사용하는 방법의 연구가 활발해졌습니다.]
처음에는 가축을 대상으로 하였지만, 제아무리 잘 길들여진 동물이라 해도 상급 몬스터 앞에서는 겁먹고 도망치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의식 없는 동물을 짐짝처럼 들고 다니기도 힘들었다. 인간 각성자가 아닌 평범한 짐승은 마나 저장 능력이 낮아 효율 또한 극히 낮았다.
[그리하여 사실상 가드로서의 역할을 하기 힘든 C급 이하 각성자들에게 마나각인이 시술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인체의 마나 흐름 경로는 다양하지만 가장 크고 주된 경로는 척추입니다.]척추뼈의 이미지가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뒷목 부분에 둥글게 빛이 들어왔다.
[마나를 뽑아내기 쉬운 부분에 각인이 새겨지면 연료통은 가까운 거리의 각성자에게 자신의 마나를 전달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마나각인은 공용과 팀, 또는 개인용 설정이 가능합니다.]마나각인을 받는다 해도 마나통이 커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하였다. 이 경우엔 일반 시민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마나의 전달은 기본적으로 상호동의지만 가드가 일방적으로 뽑아낼 수도 있으며, 연료통에게 무리가 가는 행위이기에 긴급 시가 아니라면 불법이었다. 솔직히 불법이라고 해 봤자 상급 가드 대상이면 벌금이나 좀 물고 말 거 같은데.
보호각인 또한 확인해 보았다.
[보호각인은 마나의 유출을 막기 위한 것으로, 마나각인과 같은 위치에 새겨집니다.]마나각인이 없다 해도 뒷목은 약점이며 특수 스킬을 가진 몬스터나 각성자라면 마나를 훔쳐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마나가 바닥나면 상급 가드라 해도 무방비해지기에 마나 유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안전장치로 가드라면 기본적으로 새기는 것이었다.
이것도 여러 종류가 있으며 보호각인과 마나각인을 뒤섞은 효과도 있는 모양이었다.
[상급 가드들은 보호각인에 상호적용 마나각인을 넣어 서로 마나를 보충해 주기도 합니다.]믿을 수 있는 팀이라면 급할 때 쓰기 좋겠지. 상급 몬스터를 상대하면서 C급 이하인 연료통을 가까이 두긴 힘들 테니까.
아무튼 가드라면 각인이 없는 경우가 드문 모양이었다. 나 정말 수상하게 보이겠구나. 각인 받아 둬야 하려나. 근데 난 내 몸뚱이로 들어온 건데 던전 나가서도 그대로 남아 있는 거 아니냐. 지울 수 있나?
그 밖의 도시 정보들을 대충 살펴보았다. 도시는 시장과 시의원들이 다스리며 5년에 한 번 투표로 선출하고 연임은 1회 가능한 등등. 가드들은 도시의 안전을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특례도 많고 존경받는 위치인 듯하고.
그리고 시그마는.
‘개인 정보는 대부분 비공개네.’
보호를 위해서인가. 5년 전 원래의 시그마가 사망하고 지금의 시그마로 바뀌었다는 정도의 내용밖에 없었다. 본명은 뭐지. 성현제는 아닐 테고.
‘뭐, 어차피 오늘 이후론 안 볼 사람이잖아.’
깊게 생각할 필요 있냐. 이 정도면 이쪽 동네 몬스터와 가드에 대해 알 거 다 알았으니.
‘해 지기 전에 밥이나 먹자.’
잘 먹고 쉬다가 떠날 준비 해야지.
* * *
도시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건물들이 흩뿌리는 빛의 야경 따위는 없었다. 가로등만 외로이 서 있을 뿐, 사방이 고요해졌다. 인적이라곤 하나 없는 거리로 짐승의 울부짖음이 길게 퍼져 나갔다.
콰득, D급 몬스터의 머리에 검을 찔러넣고 몸뚱이를 발로 누르며 다시 뽑아냈다. 포인트를 수거한 뒤 부서진 벤치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공원 잘 꾸며 놨네. 침묵이 내려앉자 멈추었던 벌레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다른 동물들도 있으려나.’
야생동물은 살아남기 힘든 환경일 거 같지만. 도시에 쥐나 길고양이가 있을까? 몬스터에게 다 잡아먹혔을지도. 역시 가축은 못 키울 세상이다. 애완동물이 있다면 상위층의 전유물쯤 되겠지. 개나 고양이 데리고 쉘터 들어가는 건 특권일 테니까.
분수대는 작동을 멈춘 상태였다. 잔잔히 고여 있는 물 위로 달빛이 비치었다.
골드버그 공원 분수대. 퀘스트창이 바로 여기예요! 라고 말하듯 반짝거렸다. 기다려라, 기다려. 아직은 아니야.
‘손님이 와야 개시를 하지.’
준비는 다 끝났다. 옷도 갈아입었고. 귀한 S급 장비들은 차곡차곡 인벤토리에 보관해 두었다. 혹시 모르니 이어링 정도나 한 상태였다.
분수대 위로 올라가 테두리를 따라 걸으며 소시지바 비슷한 것의 포장을 뜯어 입에 물었다. 아카테스 시까지 차로 이틀. 벌써부터 서글퍼진다. 오늘 하루 참 잘 먹고 잘 쉬었는데. 치즈 같은 게 들었네. 맛있다.
“하나 줄까요?”
포장도 안 뜯은 거 하나 더 있는데. 어둠 속에서 나타난 남자를 향해 소시지바를 흔들어 보였다. 댁 주머니 돈으로 산 거긴 하지만.
“안녕하세요, 시그마 씨.”
“안녕, C급.”
“거기서 더 접근하지는 마시고.”
혼자는 아니었다. 오, S급짜리네. 소시지바와 함께 내 캐쉬카드를 던졌다. 시그마의 손이 가볍게 그것들을 받아 쥐었다.
“1억 L부터 먼저 넣어 주시죠.”
“오늘 내 앞으로 들어온 청구 금액이 3억 2천만 L이었다만.”
한국 돈으로 40억쯤 되겠네.
“쪼잔하게 그걸 다 계산해 봤습니까? 그 정도 돈도 없으시다면 실망인데.”
아무래도 취직 자리 잘못 선택한 거 같다는 내 말에 그가 미소 지으며 내 카드를 옆에 선 S급에게 건네주었다. 기계로 무언가 조작을 하더니 S급이 나를 바라보았다.
“지급 처리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연약한 C급이니 살며시 던져 주세요.”
캐쉬카드가 다시 내 손으로 돌아왔다. 카드를 주머니 속에 고이 넣고 원반을 꺼내 들었다. 옅게 호기심 어린 시선이 원반을 향한다. 내가 뭘 하려는 건지 일단은 지켜볼 모양이었다. 위협도 안 되는 C급이니 말이야.
“이건 제 선물입니다.”
상냥하게 웃어 보이며 원반의 중간 버튼을 꾹 눌렀다. 직후, 공간이 일그러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금안 또한 살짝 일그러진다.
“진심을 담아, 쇼핑은 고마웠어요.”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 크르르.
내 뒤쪽으로 무시무시한 기세를 담은 으르렁거림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