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234
232화 형 왔다 (1)
한유진을 완벽히 빼닮은 인형이 의자에 앉혀졌다. 눈을 감은 채로 축 늘어지는 모습이 마치 잠에 빠져든 것만 같았다. 가슴도 작게 오르내리고 있어 그냥 보면 진짜 인간 같았다. 하지만 숨소리도, 심장이 움직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시그마는 인형을 내려다보다가 손을 뻗었다. 건드리는 대로 흔들리는 것이 시시하다. 하지만 가짜 인형만이 이곳에 남았다는 사실은 전혀 시시하지 않았다.
“내가 너무 쉽게 본 모양이야.”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C급이 얌전히 있을 거라곤 기대치 않았다. 하지만 설마, 이렇게 깔끔히 도망쳐 버릴 줄은 몰랐다.
인벤토리 봉인 목걸이를 풀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은 확실하게 확인했다. 그럼에도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 A급 가드가 지켜선 가운데 목걸이를 풀고 더미 인형을 대신 놓아둔 채 도망쳤다.
몸수색을 철저히 하고 인벤토리를 쓸 수 없게 만들어 두었으니 아이템은 아니다. 그렇다고 스킬도 아니다. 외부의 협조가 있었던 것 또한 아니었다.
‘모르겠군.’
그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최소한 이 세계에 속한 존재의 능력으로는 탈출이 불가능하다. 그 사실에 가슴이 약간 뛰었다.
기껏해야 C급이. 어떻게.
“C급이 두고 간 것으로 추정되는 물건들입니다.”
S급 가드가 가지고 온 물건들을 테이블 위에 차례로 내려놓았다. A급 이하 아이템 몇 가지와 침낭. 그것을 본 시그마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런, 맨몸으로 노숙하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안 되는데.”
“…예?”
마치 도망친 C급을 걱정이라도 하는 듯한 시그마의 말에 S급 가드가 잠깐 당황해했다.
“음, S급 전용 장비실에서 사라진 아이템은 총 일곱 개입니다. S급 다섯, SS급 두 개로 확인되었습니다.”
순찰을 마치고 돌아온 S급 가드 중 하나가 장비 보충을 위해 장비실에 들어가서야 아이템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시그마는 C급이 훔쳐간 아이템 목록을 보고받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고작 며칠 사이에 야금야금 잘도 먹어치우고선 달아났다.
“다시 수배령을 내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사진도 있으니─”
“아니, 어차피 못 찾을 거다.”
처음도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수배령 따위 무용지물이다. 그리고 이미 솔렘니스 시를 벗어났을 가능성이 높았다.
시그마는 C급의 행적에 대한 보고서를 다시 한 번 훑었다.
수배령을 내린 직후 들어온 신고에서 C급은 화염 스킬을 가진 가드, 아카테스의 알파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고 하였다. 이어 방어벽의 감시탑에서도 아카테스 시에 대해 물었다. 솔렘니스 시에서 아카테스 시까지의 거리는 차로 이틀.
‘은신 스킬이 적용된 스쿠터, 이틀 치 식량.’
C급의 쇼핑 목록 중 일부였다. 그것들을 조합해 보았을 때 C급의 목적지를 추측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도시 밖으로 나갔겠군.”
“예? 하지만 스탯 C급에 공격 스킬도 없지 않습니까. 은신 스킬이 있다 하지만, 마나각인도 없는 C급의 마나통으로는 채 하루도 유지 못 할 겁니다.”
심지어 최소 S급으로 추정되는 은신 스킬이라 하였다. 등급이 높은 스킬일수록 마나 필요량도 많아지니 평범한 C급이라면 길어야 한나절이나 갈까.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는 S급 가드의 말에 시그마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보통이라면 그렇겠지.”
“…동행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그럼 대체…….”
S급 가드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C급 각성자가 혼자 방어벽을 넘어갔다면 찾을 필요도 없다. 밤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하였을 테니까. 하지만 시그마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그가 입을 열기 직전.
콰앙! 쾅!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이어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여기까지 진동이 전해져 왔다. 직후 문이 열리며 인이어를 한 가드가 뛰어들어 와 보고했다.
“B-2 건물에서 폭탄이 터졌다고 합니다! 약 열 개의 연속된 폭음이 들렸으며… 한 층에 화력이 집중된 탓에, 지금 건물이…….”
무너지고 있다. 그렇게 말하려던 가드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시그마가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콘크리트 덩어리가 떨어지는 굉음 사이로 나직한 웃음소리가 퍼져나갔다.
“앙갚음 한번 제대로 하는군. 꽤나 따끔한데.”
S급, 하다못해 A급만 되었어도 이 정도로 즐거움을 느끼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C급, 사실상 가드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녀석이 실컷 활개를 치고서 무사히 달아나기까지 했다.
“아카테스 시에 연락해. 알파의 제압 요청을 받아들이겠다.”
“예? 그럼 아카테스 시로 직접 가시는 겁니까?”
“그래. 준비해.”
마음 같아서는 곧장 출발하고 싶었지만, 소속 도시를 떠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각인으로의 마나 보충은 해당 마나 홀에서만 가능했다. 마나 자체야 어느 마나 홀의 것이든 동일하기에 타 소속 연료통은 얼마든지 쓸 수 있었지만, 연료통 제공을 거부할 수도 있다는 게 문제였다.
그러니 이쪽의 연료통을 넉넉히 준비하고 전력 또한 제대로 갖추어야 했다. 특히 아카테스 시는 가드들에겐 달갑지 않은 곳이니 더더욱 주의가 필요했다.
“오랜만에 자리를 비우시는군요. 골드버그 공원에서와 같은 이상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 한 일주일 정도의 여유 시간이 있습니다.”
“란체아의 람다에게 지원 요청을 해놓도록. 내가 직접 아카테스로 간다고 전해 두고.”
“…솔직히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만.”
S급 가드는 의아해하면서도 명령에 따랐다. 두 가드가 모두 방을 빠져나갔다. 그사이 건물이 완전히 무너졌는지 사위가 고요했다. 침묵 속에서 시그마의 시선이 의자에 앉아 있는 인형을 향하였다. 바랜 듯 가라앉아 있던 눈에 빛이 감돌았다.
* * *
– 삐이익!
새소리가 들려왔다. 새벽빛이 스며드는 숲 위로 한 무리의 새가 퍼드득 날아오른다.
‘지금쯤 터졌으려나.’
개당 2만 포인트나 하는 시한폭탄 10개. 구석구석 잘 숨겨서 설치해 주었다. 해 뜰 즈음에 터지도록 설정해 놓았는데 작동 잘 했겠지? 하나하나의 위력이 엄청난 건 아니지만 건물 한 층에 몰아넣었으니 잘하면 폭삭 주저앉는 꼴을 볼 수 있을지도.
그거 수습하느라 추격이 늦어졌으면 좋겠다.
배낭 속에서 캔식량을 꺼내어 땄다. 미트볼 비슷한 것을 옆에 붙은 포크로 집어 먹었다. 이 동네 고기 맛은 확실히 괜찮단 말이야. 데우지도 않았는데도 먹을 만하네.
‘확실히 밤보다 낮이 더 안전하겠군.’
목숨 두엇 걸 각오한 것과 달리 방어벽 밖은 의외로 안전했다. 아이템 버프로 S급 수준이 된 은신 스킬 덕에 몬스터들이 나를 찾아내지도 못했거니와 상급 몬스터들은 중하급 몬스터들을 사냥하느라 바빴다.
스쿠터에 적용된 은신 등급은 B급이고 내 스킬과 호환된다 하더라도 A급 정도로 걱정되었었는데 조그만 스쿠터를 신경 쓰는 몬스터는 거의 없었다. S급 몬스터의 눈길을 두어 번 받긴 했으나 이내 하급 몬스터를 뒤쫓아 가 버렸다.
SS급 몬스터는 다행히 마주치지 않았고.
‘낮에는 하급 몬스터들은 사라지고 상급 몬스터들은 배를 채웠으니 쉬거나 잠들겠지. 나름 생태계가 자리 잡은 걸까.’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빈 캔과 음료병을 길가에 던졌다. 무단 쓰레기 투기는 안 될 일이지만 이 세계는 가짜니까.
그때 메시지창이 떴다.
[☆★히든 퀘스트 달성!!☆★]뭐야, 또냐. 솔렘니스 방위청 탈출과 장비실 털어먹은 것도 히든 퀘 달성했다고 뜨더니. 이번엔 폭탄 터뜨린 걸 히든 퀘스트로 넣은 건가.
‘…신입 녀석, 내 행동에 맞춰서 퀘스트 만들어 넣고 있기라도 한 거냐.’
의심스러웠다. 스킬명과 설명창도 후작성이라며. 아무래도 히든 퀘스트도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살쾡이 신발 세트 맞춰서 준 것도 그렇고.
뭐, 아무것도 안 해주는 것보다는 낫지만. 신입의 노력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퀘스트 달성 창을 열었다.
[과감한 폭파범!상급 가드들이 득시글거리는 솔렘니스 방위청의 건물 하나를 폭탄으로 무너뜨렸습니다. 간을 배밖에 내어놓은 듯한 대담함이로군요!
보상: 100,000P, 용의 숨결 폭탄(SS) 3개]
용의 숨결 폭탄? 무려 SS급짜리 아이템이었다. 폭탄이니 1회용이겠지만 3개나 주다니, 내가 또 뭘 터뜨리길 바라는 거냐. 아무리 진짜 세상이 아니라지만 여기 들어와서 나 너무 막사는 거 같은데 부채질을 해대네.
최상급 드래곤 브레스의 위력을 구현한 폭탄. 타이머 및 원격 조종 가능.
1회용]
쓰기 아깝다. 별일 없으면 가지고 나가야지. 게임 아이템이라고 못 가지고 나가게 하면 울 테다.
폭탄을 인벤토리에 잘 넣어놓고 다시 스쿠터를 출발시켰다. 밤을 새웠더니 하품이 살짝 나왔다. 밤이든 낮이든 마음 편히 쉬는 건 무리고, 그냥 이틀 꼬박 새워서 달리는 수밖에. 스탯이 C급이라 다행이다.
이전 그대로 F급이었으면 졸음운전하다 사고 날까 봐 무서워서라도 어떻게든 잠깐 눈을 붙여야 했겠지. 도로가 험하다 보니 스쿠터 모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꽤 소모되었다. 아카테스 시 도착하자마자 유현이가 반겨 주면서 푹 쉬어 형, 했으면 좋겠다.
‘애들 보고 싶다. 진짜 많이 보고 싶다.’
이렇게 오래 혼자 지내는 건 오랜만이었다. 회귀 후에는 거의 항상 누군가 곁에 있었으니까. 그나마 나 말고는 진짜 몸이 아니라서 죽을 일 없으니 마음 편한 거지. 아니었으면 공포 저항 등급도 낮아졌겠다, 불안해하고 있었을지도.
…역시 우리 세상도 가상현실로 적용이 되었더라면. 그런 생각이 들어, 무심코 이를 악물었다. 가상현실도 위험한 점이 있다고 해도, 그래도, 많은 것이 달라졌을 텐데. 단순히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지금은 여기서 최대한 뜯어갈 거나 생각하자.’
유현이랑 합류하고 다른 사람들도 찾고 포인트 팍팍 모아서. 유현이랑 예림이 새 무기 하나씩은 마련하고 나가야지. 스킬도 좋고.
아, 애들 보고 싶다. 현아 씨는 물론이고 성현제까지 그리워질 거 같다. 쓸쓸해.
솔렘니스의 것과 비슷한, 높다랗게 세워진 방어벽이 눈앞에 나타났다. 벽의 높이는 물론 일정 간격을 두고 세워진 감시탑의 형태도 흡사했다. 다른 도시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것일까. 은신 스킬을 풀지 않은 채 아침 햇살 아래의 방어벽을 바라보았다.
솔렘니스에서 아카테스까지 차로 이틀 걸린다고 했었는데 스쿠터는 성능이 좋다 해도 역시 차보다는 느린 모양이었다. 이틀 하고 한나절 정도 더 걸렸지만, 밤에 출발했던 탓에 결국 삼 일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눈꺼풀이 무겁고 한숨이 연신 흘러나왔다.
‘담을 넘을까, 정문으로 들어갈까.’
솔렘니스 방어벽의 감시원은 낮에는 B급 가드 위주로 구성된다고 하였다. 새로운 몬스터가 다수 발생하는 밤에는 A급 가드로 교체되고. 몬스터 발생 패턴이야 동일하니 아카테스도 똑같지 않을까.
‘B급 상대면 도망치기 어렵지 않지.’
잘 간직해 두었던 신분증을 꺼내들며 나무 뒤쪽에 숨어서 은신 스킬을 풀었다. 각인이 없다는 걸 감추기 위해 배낭에서 스카프도 꺼내어 목에 묶었다.
어쩌면 유현이가 도시 출입구를 지키는 가드들에게 미리 말을 전해 놓았을지도 모른다. 한유진이라는 사람이 찾아오면 환대해서 데리고 오라고. 자기가 직접 마중 나갈 테니 알려 달라고 명령해 뒀을지도 모르지.
유현아, 형 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방어벽에 비해 조그맣게 나 있는 문으로 다가갔다. 문은 딱 차량이 간신히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실례합니다, 문 좀 열어 주세요!”
감시탑을 향해 손을 흔들며 소리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무장한 B급 가드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메드상 시 출신 한유진입니다. 여기 신분증과 통행증이요.”
“아, 메드상에서 오셨군요.”
내 말에 B급 가드의 표정이 눈에 띄게 느슨해졌다. 메드상에는 힐러와 보조계 가드가 많은 듯하던데, 그래서 다른 도시에서 쉽게 받아들이는 걸까. 신입이 신경 써서 신분증 마련해 준 모양이었다.
기계로 신분증과 통행증을 확인한 가드가 환영한다면서 안으로 비켜섰다. 유현이가… 말 안 해놓은 모양이네. 하긴 내 안전을 생각해서 알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SS급 가드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인질로 납치될 수도 있으니까.
“먼 길 오느라 고생했는데 이렇게 반겨 주시니 정말 감사하고 기쁘네요. 도시를 지키느라 수고 많으십니다.”
붙임성 좋게 웃으며 배낭에서 음료수 하나를 꺼내어 내밀었다. 가드가 고맙다며 음료수를 받았다.
“C급 보조계로 등록되어 있으시던데 도심까지 바래다드리겠습니다. 도시 외곽 빈민가는 아무래도 위험하거든요. 차도 아닌 스쿠터니 약탈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염치없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침 교대할 시간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친절하네. 가드가 뒤쪽이 짐칸으로 되어 있는 군용 지프차를 끌고 왔다. 스쿠터를 짐칸에 올리고 운전석 옆자리에 탔다.
“여기까지 혼자 무사히 오신 걸 보니 은신 스킬 등급이 높은 스쿠터인 모양입니다.”
“네, 비싸게 주고 샀죠. 은신 스킬 없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겠어요.”
아무래도 친절의 이유가 돈 냄새인 모양이다. 안내만 잘해 주면 팁 톡톡히 치러 줄 수도 있지. 돈은 없지만 아이템은 많다. A급 장비 하나만 팔아도 얼마냐. 그리고 내 동생은 나보다 더 부자겠지. 저한테 잘 대해 주면 잘 말해 주겠습니다.
“아카테스의 알파 님 말인데요.”
이런저런 잡담을 하다가 가장 궁금한 주제를 꺼내 들었다. 알파. 그 단어가 나오기 무섭게 가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미 소식을 들으신 모양이로군요.”
소식? 들은 거 없지만 맞장구를 쳤다.
“아, 네. 당연히 들었지요. 외부인이라 자세한 내용까지는 모르지만요.”
“워낙 큰 사고였으니 밖으로 새어 나갔을 만합니다. 그래도 폭주한 알파는 무사히 제압되었고 방위청에서 잘 관리되고 있다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폭주에 제압이라니, 이게 무슨 개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