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237
235화 낚시 (1)
“이제 신경 좀 덜 써도 되려나.”
남자가 길게 하품하며 말했다. 나란히 걷고 있던 여자가 태블릿 PC 같은 것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시그마 님이 곧 도착 예정이고 새로 온 가드도 있으니까. 믿을 만할지는 모르겠지만.”
“C급인 건 확실하다며. 그 스탯이면 믿고 말고 할 것도 없지 않나. 메드상 출신이기도 하고.”
“스킬 등급 높고 돈도 많은 메드상 가드가 굳이 타 도시로 옮겨올 리가 없잖아. 뒤가 구릴 거라고 하던데.”
“대접받고 싶었나 보지. 메드상이 살기는 좋다지만 과하게 평등주의란 말도 있으니까. 사회주의던가? 아무튼 뒤가 구린 거면 약점 잡기 좋으니 오히려 더 환영이고.”
“그건 그래.”
갈림길이 나오고 여자 쪽이 멈춰 섰다. 태블릿 PC에 표시된 시간을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일출까지 네 시간쯤 남았네. 난 먼저 숙소로 퇴근할 건데, 어쩔래?”
“한 시간 뒤에 알파 감시 교대해야 해. 보너스는 빵빵하지만 피곤하다. 나가서 한 대 피우고 와야지.”
“그러다 몬스터 꼬인다.”
상급 가드들로 가득한 방위청인데 무슨 문제냐며 남자가 일행과 갈라져 혼자 걸음을 옮겨갔다. 길게 뻗은 복도는 조용했다. 바깥쪽이라 감시도 적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남자는 인벤토리에서 식물형 몬스터로 만든 담배를 꺼내었다. 그것을 입에 물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어째 기분이 묘하네.”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당연하게도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조용한 가운데 감시카메라만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나는 가만히 투명한 끈을 늘어뜨려 쥐었다.
복도의 중간 즈음, 감시카메라가 왼쪽으로 움직이며 사각지대가 생기는 그 순간.
스윽, 올가미처럼 끈을 내렸다. 투명한 끈이 순식간에 남자의 목을 휘감으며 당겨지고, 버둥댈 틈도 없이 천장으로 끌어올려졌다.
“컥.”
끈적거리는 몬스터의 거미줄이 남자의 사지를 천장에 붙였다. 감시카메라는 아래쪽을 비스듬히 향하고 있었기에 천장까지는 눈이 닿지 못했다. 남자의 입을 틀어막은 채 목을 조이는 끈을 조금 느슨히 해주며 작게 속삭였다.
“소리치면 죽는다.”
남자가 나를 찾듯이 눈알을 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D급짜리가 은신 스킬을 꿰뚫는 건 불가능하니 헛수고였지만. 입을 막은 손을 떼며 재차 경고했다.
“내 정체를 들키지 않았으니 굳이 널 죽일 필요는 없어. 그러니 현명하게 행동하도록.”
“…예, 예.”
“우선 인벤토리에 들어 있는 열쇠류는 다 내놔. 속일 생각 하지 말고. 네놈 등급과 위치면 어떤 키를 가지고 있는지 다 확인했으니까.”
“하, 하지만, 키를 타인에게 넘기려는 즉시 손이 잘려 나가는 계약이 걸려있습니다.”
“계약 등급은?”
“A급, 입니다.”
다행히 A급이면 S급으로 떨어진 내 저주 저항으로도 해주 가능했다. 손에 걸린 계약이면 S급이라 좁아진 범위로도 충분할 거고.
“S급 저주 저항 아이템을 손에 대주겠다.”
카페라떼 빨대를 반으로 잘라 놈의 양손에 대고 내 손으로 감싸듯 잡았다.
“정말로…….”
“죽는 것보다는 손이 잘리는 게 나을 텐데. 잘린 손 들고 등급 높은 힐러 찾아가면 붙일 수도 있겠지.”
남자가 불안해하면서도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곤 두 눈을 질끈 감는다. 잠시 후 그의 손끝에 카드키 하나가 들렸다.
“괘, 괜찮은 거 같네요. 여기 있습니다. 일단 방위청 본관 출입키입니다.”
이어 각종 열쇠가 인벤토리에서 꺼내졌다. 방위청 키는 물론이고 자기 집 열쇠며 차키까지 순순히 건네 왔다.
“이 카드 키는.”
“알파를 수감 중인 마나 흡수실 키입니다. 그건 매일 바뀌기에 내일 밤이면 소용없어지겠지만요.”
귀찮게 되었네. 마나 홀이 있는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키 또한 일주일에 한 번씩 교체된다고 하였다. 보안이 생각 이상으로 철저했다. 그래도 은신 스킬이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을 얌전히 기다리기만 하면 통과 가능하겠지만.
“절대 아무 말 하지 않겠습니다. 뭐든 대답해 드릴 테니 물어보세요.”
두 손이 무사해서인지 남자가 한결 편해진 얼굴로 떠들어댔다. 열쇠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키 반납 못 하면 감봉에 승진도 포기해야겠지만 목숨보다 중요하겠습니까. 알파 관리담당직도 유지 못 하지 싶지만, 안 그래도 꺼림칙했거든요. 아니 왜 멀쩡한 사람에게 괴물을 맡기고 그러는 건지. 저 제 목숨 무척이나 소중합니다.”
“그렇다니 안됐네.”
“…예?”
“넌 이미 죽은 사람이거든.”
오래전에. 어쩌면 수백 년도 더 전에. 무슨 소린지 몰라 멍해진 얼굴로부터 시선을 돌리며 느슨해져 있던 끈을 가차 없이 당겼다. 소리도 거의 내지 못하고 남자가 기절했다. 끈을 인벤토리에 넣은 뒤 남은 거미줄을 놈의 얼굴과 몸 위로 덮어씌웠다. 거미형 몬스터가 먹이를 질식시켜 저장해 놓은 것처럼.
곧 질식사할 남자를 두고 아래로 내려섰다. 유현이와 각인이 연결된 사람들 중 가장 만만한 D급이 제거되었다. 이제 S급 둘과 C급 둘이 남았다.
‘C급까지 하나 더 처리할까.’
아니면 D급의 시체가 발견한 후의 반응을 살펴볼까. 인벤토리에 들어찬 카드들을 살펴보았다. 천장에 붙여 놓은 D급이 발견되기까진 시간이 제법 걸릴 것이다. 실내에서, 그것도 복도에서 천장을 쳐다보는 사람은 드무니까.
‘시간제한이 있는 키가 많다고 하니.’
고민하는 그때 메시지가 들어왔다. 서브 퀘스트였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아카테스 시 방위청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방위청 주요 건물을 3분의 1이상 확인하면 남은 부분은 보너스!
보상: 아카테스 방위청 상세 지도]
이미 느끼고는 있었지만 역시 신입이 지금의 내 상태를 살펴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상세 지도라니, 고맙군. 그런데 신입치고는 센스가 좋은 거 같기도 하고.
지도를 받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슬슬 천장의 남자가 죽었지 싶었지만 급습해 바로 살해한 것이 아니라서인지 살인 페널티 창은 뜨지 않았다.
잔뜩 취한 민디바는 쉽게 깨어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일출 전에 돌아가는 편이 안전할 터였다. 다른 통행인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 감시가 있는 문에 그냥 카드키를 가져다 대었다.
“…뭐지?”
자동으로 열리는 문에 A급 가드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다행히 블루 홀이 있는 중앙 건물이 아니고서는 카드키에 식별 표시까지는 들어가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니 투명 시체가 돌아다닌 게 아닌 그냥 기계 오류로 처리되겠지.
감시가 까다로운 중앙을 피해 열심히 돌아다니자 얼마 지나지 않아 퀘스트 완료 표시가 떴다.
[아카테스 방위청 상세 지도]보상은 종이로 된 지도가 아니라 사각형 큐브였다. 큐브를 사용하자 각 건물 명칭 목록이 떴다. 그중 중앙 건물을 선택하자 입체적인 화면이 나타났다. 각 구역을 상세히 확대하는 건 물론이요, 최단 거리와 검문 표시, 교대 시간 등까지 알아볼 수 있었다.
되게 좋네. 털라는 건가.
‘…신입 취향이 원래 이랬나.’
어째 열심히 털어먹고 다 터뜨리세요! 하며 밀어주는 느낌이었다. 비교적 얌전했던 거 같았는데. 도움이 되니 아무래도 좋긴 하다만.
일출까지 시간은 꽤 남았다. 해가 뜰 때가 다가오자 방위청 분위기도 점차 느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미리 준비해 놓은 마스크를 끼고 가짜 신분증을 꺼내들었다. 저만치서 걸어오는 A급에게로 바싹 접근해 그의 눈앞에 가짜 신분증을 들이밀었다.
“알파 담당인 누라운입니다.”
“아… 예.”
A급이 눈을 깜박이며 신분증을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별다른 의문은 표하지 않았다. 스탯 A에 특수 스킬도 없는지 신분증을 완전히 믿어 버린 듯했다.
“혹시 저희 소속 모아스 씨와 하지분 씨가 어디쯤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통신기를 놓고 와서요.”
“네,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A급이 어디론가 연락을 취했다. 우리 동네라면 C급에게 이렇게나 공손한 A급 보기 힘들 텐데, 여기는 등급보다는 직급이 우선이었다. 알파 담당이면 전투계 A급보다 더 높은 위치였다.
“모아스 님은 마나 흡수실에, 하지분 님은 제2식당으로 가셨다고 합니다.”
제2식당이라.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더라. 정보일 뿐인데도 귀신이 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감사를 표하곤 코너를 돌아서자마자 다시 은신 스킬을 사용했다. 식당에 들어서자 마침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이 보였다. 얼굴은 모르지만 머리 위로 C급 하지분이라는 이름이 동동 떠 있었다. 편하긴 편하단 말이야.
두 번째 역시 처리하기 쉬웠다. D급 때와 마찬가지로 거미 몬스터의 거미줄 아이템을 포인트 상점에서 구매, 몬스터에게 당한 것처럼 처리해 천장 구석에 붙여 놓았다.
‘이걸로 두 명.’
남은 건 셋이다. 하나 남은 C급은 살려 둘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만 S급들을 쉽게 밖으로 끌어낼 수 있을 테니까.
목표는 모두 제거했지만 이걸로 끝냈다가는 의심을 받을 확률이 높았다. 정확히 알파 담당, 그것도 각인과 연결된 사람들만 죽었으니까.
알파와 관련 있는 사람 위주로 몇 명을 더, 역시나 같은 방식으로 처리했다. 숙소로 돌아오자 민디바는 여전히 곯아떨어져 있었다. 누군가 들어온 흔적도 없고.
“민디바 씨, 침대로 가서 주무시죠.”
상냥하게 그를 부축해 침대에 대충 던져 놓았다. 잠은 오지 않았기에 소파에 앉아 TV를 틀었다. 비스듬히 누워 반쯤 눈을 감고 조는 듯 TV를 보기를 서너 시간쯤 뒤. 민디바의 통신기가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벨을 눌렀다.
“잠시만요.”
하품을 길게 하며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신데요?”
“민디바 님께선─”
“아직 주무시고 계세요. 어제 좀 과음하셨거든요.”
방위청 직원의 표정에 안도감이 살짝 서렸다. 시체가 발견된 모양이로구만.
“그게… 음.”
“급한 일인 것 같은데 들어오세요.”
방위청 직원이 아직 잠들어 있는 민디바를 흔들어 깨웠다. 민디바가 멍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 무슨…….”
“어제 너무 취하셨던 거 같은데, 저랑 같이 술 마신 거 기억나세요?”
“아, 예. 그랬던 거 같긴 한데. 제가 좀 과했던 모양입니다.”
“반병 넘게 비우셨죠.”
“이런, 죄송합니다.”
비싼 와인을 거의 다 마셨다는 것에 민디바가 사과했다. 내가 괜찮다고 말하자 직원이 끼어들었다.
“어젯밤 방위청에, 음…….”
“말해. 괜찮아.”
와인 효과가 좋구만. 직원이 조금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거미형 몬스터가 침입해 왔습니다.”
“뭐?!”
나도 덩달아 놀라고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그런 일이.
“심지어 알파를 주로 맡았던 사람들 위주로 공격당했습니다. 아무래도 SS급 각성자의 낌새를 느끼고 냄새가 묻어는 있지만 약한 상대를 집중적으로 사냥한 모양입니다. 머리 좋은 놈들은 전투 팀의 약한 가드부터 공격하니까요. 알파의 팀으로 여긴 거겠지요.”
“그런……. 몬스터는 잡았나?”
“아직입니다. 이미 해가 떴으니 타버렸을 수도 있고요.”
“방위청에 침입할 정도라면 최소 A급은 될 텐데 타버렸을 리가!”
직원이 한동안 절대 혼자 다니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면서, A급 이상 가드들이 방위청을 철저히 수색 중이라고 말했다. S급 가드들도 모두 동원되었으니 해가 지기 전까지는 찾아낼 수 있을 거라는 말에 민디바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 드리게 되었군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이런 사고야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지요. 대처가 빨라서 오히려 좋네요.”
민디바가 경호를 붙여 주겠다고 해서 정중히 거절했다. 그 거미가 접니다.
“아, 그리고 솔렘니스의 시그마 님께서 오늘 오후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뭐? 너무 빠르잖아. 속으로 덜컥한 나와 달리 민디바가 반색했다.
“마침 잘되었군. 소속 상급 가드들도 동행할 테니 방위청 안전에 문제없겠어.”
나는 문제가 많다. 오늘까지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계획이 틀어졌다.
‘일단 시그마를 만나서 설득해야 하나.’
젠장, 두 번 다시는 마주치지 않았으면 했는데. 내가 아이템 들고 튄 거 눈치챘겠지. 폭탄 터트린 것도 나라는 거 짐작하고 있을까. …솔직히 내가 시그마였으면 마주치자마자 멱살부터 잡고 보겠다.
그래도 성현제 짝퉁답게 제 흥미만 잘 끌면 관대해지는 듯하니까.
“그럼 전 숙소에서 얌전히 머물러 있겠습니다. 방에서 나가지만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네. 튼튼하게 만들어진 데다가 문이나 벽을 강제로 부수려 들면 바로 비상벨이 울리고 가드들이 달려올 테니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편히 쉬시고 필요한 건 전화의 0번 버튼을 눌러 주문하십시오.”
민디바가 실례하겠다며 직원과 함께 나가고 곧이어 나타난 다른 방위청 직원과 A급 가드가 나를 새로운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방위청 직원에게 시그마가 정확히 언제쯤 도착 예정인지, 어디로 오는지 물어보았다.
“수송헬기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자정 전에 이륙했다고 하니 거리상 별일 없다면… 오후 서너 시쯤 방위청 옥상 헬기장에 도착하겠지요. 몬스터가 덤벼든다 해도 시그마 님께서 계시니 별문제 없을 겁니다.”
보통은 소음이 크고 은신 적용이 힘든 헬기는 위험해서 쓰지 못한다며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이 동네도 헬기가 있구나. 직선으로 곧장 날아서, 비포장도로의 차보다 배 이상 빠른 속력을 낼 테니 하루도 채 안 걸린다는 건가.
직원과 가드가 나가고 혼자 방에 남았다. 원래라면 밖으로 나가 S급 가드들을 꼬여 낼 준비를 할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시그마가 우선이다. 그놈이 방해한다면 죽도 밥도 안 되니.
‘…제발 나한테 더 관심을 가져야 할 텐데.’
그놈이 동생에게 관심을 보였다간 더럽게 귀찮아지겠지만, 갑자기 폭주한 SS급 알파가 흥미롭지 않을 리가 없다. 알파를 진정시키는 스킬을 가진 가드에 대해서도 보고가 들어갔을까. 이 사실도 이용하고, 그리고 또.
이것저것 가진 것들을 정리해 보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겠다고 알려 둔 뒤 은신 스킬을 쓴 채 옥상으로 올라갔다.
얼마쯤 지났을까. 저 멀리서 육중한 군용 수송헬기의 모습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