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25
25화 OFF (1)
“설치 끝났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드디어 피스를 위한 우리가 완성되었다. 나는 괜히 뿌듯한 심정으로 피스의 새 집을 바라보았다.
깨끗한 유리벽에 공기정화 및 냉온방 시설과 원목 쉼터까지 깔끔하게 들어가 있어, 짐승 우리라기보다는 고급스런 흡연실처럼 보였다. 거실을 절반 가까이 차지한 덕에 넓기도 넓었다. 저 정도면 혼자 있을 때도 답답하진 않겠지.
우리만이 아니라 현관의 중문 또한 튼튼한 것으로 바꾸었다. 거실의 통유리는 애초에 던전 부산물을 써 특수 제작한 유리라 괜찮을 거라고 했고.
준비가 끝나자마자 곧장 유현이네 온실로 가 피스를 데리고 왔다. 거실에 내려놓으니 낯선 환경에 어색해하던 것도 잠시, 이내 코끝을 움찔대며 탐색을 시작한다.
“전기선은 물어뜯으면 안 돼.”
배선이 워낙 깔끔해서 드러난 건 거의 없긴 하지만.
“이따가 아저씨 한 명 올 건데, 물지 말고.”
유명우는 짐을 챙겨 오기 위해 자기 집에 갔다. 크기는 고양이만 하지만 피스는 스탯 C급 수준이고 명우는 F급이니 둘이 싸웠다간 유명우가 바로 KO 패 당하겠지. 한 공간에 둘만 남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 그르릉!
거실에 이어 주방까지 살펴본 피스가 만족한 듯 내 발치로 와 발라당 뒤집어졌다. 가릉거리는 것을 안아들자 기다렸다는 듯 답삭 달라붙는다.
“우리 피스, 뭘 믿고 이렇게 귀여워.”
나중에 얘를 어떻게 굶기냐. 그렇다고 성장을 안 시킬 수는 없고. …한국어를 가르쳐 볼까.
피스를 안아 든 채 소파로 가 앉아 TV를 켰다. 큼직한 벽걸이 TV에 빛이 들어오며 특별 방송이 흘러나온다. 배경은 다름 아닌 헌터협회였다.
한국의 새로운 S급 각성자가 곧 나타날 거라며 리포터가 시끄럽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
“예림이 녀석, 각성자 등록하러 갔나 보네.”
이제 겨우 정오인데 일찍 갔군. 얼마 지나지 않아 카메라가 협회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자동차를 줌인해 잡았다. 차가 멈추고 해연 길드의 A급 헌터 김지연이 운전석에서 내린다. 이어 박예림의 모습도 카메라를 통해 나타났다.
“나 안 따라간다고 시무룩하더니 얼굴 좋네, 뭐.”
아님 화면빨을 잘 받는 건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 무척이나 보기 좋았다.
협회 건물 안으로 들어가 상급 측정실로 향하는 내내 카메라가 그녀의 뒤를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등급 측정 전 인터뷰를 하는 예림이의 태도는 자연스럽다 못해 능숙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잘하네.
“피스야, 저것 봐라. 예림이 누나다. 앞으로 저 누나도 자주 보게 될 거야.”
피스의 두 앞발을 잡고 흔들며 말했다. 친하게 지내야 할 누나… 잠깐, 누나 맞나?
‘…피스 성별이 뭐였지.’
암컷인지 수컷인지 확인해 보지 않았다. 유현이로부터 들은 적도 없었다. 피스의 얼굴을 내려다보니 금빛 동글동글한 두 눈이 마주 바라봐 왔다. 귀여워.
생긴 걸론 모르겠군.
“음… 잠깐만 확인해 볼까?”
뒤집어 보면 알 수 있겠지.
“피스야, 착하지~ 잠깐만 눕자.”
소파에 내려놓고 슬쩍 뒤집어 보았다. 피스는 장난치는 줄 아는 건지 별 반항 없이 꼬리를 흔들어 댔다. 보자, 이건 항문이고… 음… 어…….
“…없네.”
둘 다 없다. 뭐지. 수납형인가. 포유류도 수납형이 있었던가. 물론 몬스터니까 일반적인 상식에 기댈 수는 없겠지만.
“뭐, 아무렴 어때.”
수컷이든 암컷이든 튼튼하게 잘 자라 주면 그만이지. 조그만 앞발이 내 손을 붙잡고 앙앙 아프지 않게 물어 댄다. 맞받아 갈기털 폭신한 목덜미를 긁어 주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내 노후 자금 마련할 준비를 해야지.
– 끼앙
방으로 걸음을 옮기자 피스가 낑낑대며 얼른 쫓아왔다. 하는 수 없이 녀석을 안아들고 컴퓨터를 켰다.
아침에 은행에 들러 통장도 싹 정리하고 주식용 계좌도 새로 개설했다. 한동안 쓸 돈 천만 원 정도만 남기고 투자해 두면 되겠지. 두 달 뒤에 대박 터지는 제약주 먼저 사고 불린 돈으로 확실하게 터질 곳만 골라 여기저기 뿌려 둘 생각이었다.
미래가 백 퍼센트 똑같으리란 법은 없으니 나눠서 넣어야지.
‘탈모약은 제대로 개발되겠지?’
고작 두 달 후인데 설마 바뀌겠어.
돈 털어 넣고 나서 포털 사이트를 뒤적여 보았다. 새로운 S급의 등장에 여기저기서 난리였다. 개중에는 예림이의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해 소설 써 대는 기레기도 있었다. 이런 미친 새끼가. 당장 PDF 따서 해연 길드 홍보팀에 신고 넣었다.
– 끄르르.
한참을 마우스질만 해댔더니 피스가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알았다며 마우스에서 손을 떼기가 무섭게,
파직!
작은 앞발이 바퀴벌레 잡듯 마우스를 납작하게 짓눌러 버리고 말았다. …우리 피스, 많이 지루했구나.
“심심해도 이렇게 물건 부수고 하면 안 돼. 아빠 한동안은 가난하다.”
생활비 제로에 월 삼백이면 적은 돈은 아니지만 혹 모르니까 아껴야 했다. 던전이라도 한번 갈려면 반토막 나는 금액이니까. 그것도 하급 던전에나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돈 쓸 일이야 얼마든지 생길 수 있고.
“마우스야 얼마 안 하지만 컴퓨터와 휴대폰은 절대 안 된다. 쓸 만한 거 새로 사려면 비싸다고.”
– 갸르릉.
탓하는 투의 말에 피스가 눈치 빠르게 애교를 부렸다. 내 손을 할짝거리며 꼬리를 까딱까딱 장난스럽게 흔든다. 이런 거 보면 사랑한다는 말도 금방 알아듣지 않을까 싶은데. 애 불쌍하게 굶기지 않고 키워드 적용 성공했으면 좋겠다.
주방으로 가 피스에게 밥을 주고 나도 점심을 챙겨 먹었다. 유명우는 요리를 해본 적 없는 것치곤 제법 그럴듯하게 반찬을 만들어 놓았다. 기본 손재주 덕분인가. 한두 달쯤 지나면 의외로 수준급이 될지도.
[박예림 양의 초기 스킬은 총 세 가지로, 그중 하나는 무려 SS급이라고 합니다.]주방에 있는 작은 TV에서도 연신 예림이에 대한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새 등급 측정이 끝났는지 자막으로 커다랗게 ‘8번째 S급 전투 헌터 탄생’이라고 박혀 있다. 이로서 중국을 바싹 따라잡았으며 면적 대비 세계 최고이며 국민들의 안전이 어쩌고저쩌고 열심히 설명을 해댄다.
이즈음의 중국은 아홉 명의 S급을 데리고 있었고 일본은 다섯 명이었다. 다만 중국은 등록하지 않고 정체를 감춘 S급의 수가 많았다. 가족을 인질로 잡혀 정부에 묶이는 것을 대체 누가 바라겠는가.
결국 S급은 물론이요 A급 이하 헌터들까지 하나둘씩 해외로 탈주하고, 그 결과로 4년 뒤의 중국은 상급 던전의 관리 능력을 잃게 되고 말았다.
‘가만, 어차피 해외로 튈 사람들인데 중국에서 헌터 좀 빼 올까?’
반년 내로 각성센터가 생기니 내가 일일이 각성시켜 줄 필요도 없었다. 전투 헌터라면 떡잎 스킬을 쓰지 않고 센터 각성을 한다 해도 그럭저럭 최적화에 가까울 테니까. 미래의 A~S급 전투 헌터들을 가족이랑 같이 국내에 들이기만 하면 내 일은 끝난다.
‘반년 후면 사람 몇 빼돌릴 수 있을 만큼 주머니도 넉넉해졌을 테고, 기타 수속은 A급 이상 각성만 하면 나라나 길드에서 알아서 해주겠지.’
분명 A급 힐러도 하나 있었지. 걔 해연에 넣으면 딱이겠네. 나머지는 정부랑 길드들이 협의해서 나누라 하고.
‘스킬 쓰는 것도 아니고 개고생할 사람들 도와주는 셈이니까, 뭐.’
내가 직접 나설 것도 없이 브로커만 몇 고용하면 된다. 다른 나라들도 그런 식으로 중국 헌터들을 빼돌리곤 했었다. 나중에는 감시가 심해져서 비유가 아닌 진짜로 피가 튀겼지만.
‘역시 살벌한 동네라니까.’
애초에 목숨 걸고 던전 들어가는 게 기본이니 당연한 거라면 당연한 거겠지만. 그래도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하려면 아직 삼 년쯤 남았다. 던전 수 늘어나고 라우치타스 같은 처리 불가 몬스터 툭툭 튀어나오고 상급 헌터 모자라서 S급 던전 터져 나가기 시작하면 진짜 살벌해지지.
그나마 한국은 타국에 비해 평화로운 편이었지만.
하나 만약에 내가 전 세계 열심히 뒤지고 다니면서 한 달에 한 명 꼬박꼬박 S급짜리 발굴해 내면, 최적화 각성 못 한 A~B급들 거두어다 키워 준다면.
그러면 미래가 상당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어 가겠지만.
‘…에이, 남의 나라 걱정까지 해줄 필요 있겠냐. 한국에나 몇 명 추가하고 끝내자.’
내 주제에 무슨. 잘나고 높으신 분들이 알아서 잘들 하시겠지. 5년 후에도 살기 좀 팍팍해졌달 뿐이지 망한 수준은 아니었으니까.
피스를 어깨에 걸쳐 놓고 식탁을 치웠다. 이제 딱히 할 일도 없고, 월요일인데 주말 같구만. 앞으로도 계속 이랬으면 좋겠다.
그때 휴대폰에 문자 알림이 들어왔다. 김성한이었다.
[내일부터는 신인 헌터 교육이 시작되니 괜찮으시다면 오늘 술 사겠습니다.]하긴 첫날은 이론 수업이지만 둘째 날부턴 실기도 겸하니 전날 술 마시긴 좀 그렇겠지. 나야 5년이나 현장 뛴 경력자긴 하지만 그걸 밝힐 순 없으니까.
‘키워드를 말할까 말까.’
살짝 취해 보고 결정하자. 해볼 만하면 내뱉고 아님 말고.
[네. 저녁에 연락 주세요. 이왕이면 소탈한 분위기의 가게였으면 좋겠습니다.]알아보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테니 김성한으로서는 귀찮겠지만 넥타이 매고 들어가야 하는 곳은 답답해서 싫었다. 키워드 말할 분위기도 아닐 테고.
주거니 받거니 떠들썩한 곳이면 사랑한다는 헛소리도 금방 묻히겠지.
[알겠습니다.]이내 답장이 왔다. 그러고 보니 헌톡 아직 안 생겼나. 원래 이름은 H-토크지만 다들 헌톡이라고 부르는 헌터 전용 메신저였다. 고정 파티 없는 하급 헌터들은 그걸로 파티 모아 던전 돌곤 했었는데. 나야 이젠 쓸 일 없겠지만.
헌톡도 주식이나 사 둬야겠다. 어디서 만들었더라.
유명우가 돌아오고 잠깐의 소란이 있었지만, 똑똑한 우리 피스는 먹을 것과 먹으면 안 되는 것을 금방 구분해 냈다. 유명우에게 잇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서 말이다.
…사실 딱 하나 남겼다. 그래도 피까진 안 보고 자국만 살짝 났으니까 그만하면 훌륭하지.
아무래도 우리 애 천재인가 봐.
이어 오후 늦게 돌아온 예림이와도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다. ‘고양이 엄청 귀여워!’가 서른 번쯤 울려 퍼지고 피스는 신경질을 내며 내 어깨를 긁어댔다. 불쌍한 우리 피스.
예림이를 자기 집으로 쫓아 보내고 스트레스 받은 피스에게 푹신한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 나자 김성한에게 연락이 왔다.
“나갔다 올 테니까 피스 우리 절대 열지 말고 예림이 못 들어오게 막아 줘.”
내 말에 유명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내, 내가……?”
“걔도 말 통하는 사람이야. 너무 겁내지 마.”
앞으로 S급들 잔뜩 상대해야 할 텐데, 이참에 익숙해져라. 심지어 니가 갑 될 거야, 인마. 쫄지 마.
나는 축 처진 유명우의 어깨를 두들겨 주곤 김성한이 기다리고 있을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해연 길드에서 그리 멀지 않은 번화한 거리였다.
“…여기요?”
나는 조금 당황한 채 김성한이 안내해 간 술집을, 반짝거리는 간판을 바라보았다. 여긴 너무, 그러니까… 너무 어린애들… 20대, 그것도 초중반 타깃 아니냐. 대학생으로 보이는 애들이 드나들고 있잖아. 대체 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생각하긴 20대 중반이었지 참. 자꾸 나이를 깜박한다.
하지만 난 20대 초반에도 공장 아저씨들이랑 같이 삼겹살에 소주 땄는데. 이런 경쾌활달싱그러운 곳은 처음이었다. 와 씨, 조명 봐. 컬러풀해. 현수막에 써져 있는 헌팅은 또 뭔데. 클럽이냐? 새어 나오는 음악 소리가 좀 그런 필인 거 같기도 하고…….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다. 이 분위기는 아니야.
“이런 곳은 잘 몰라서 다른 헌터에게 추천받았습니다.”
김성한이 말했다. 추천… 추천이요… 인기 많아 보이는 거 같긴 한데.
“…누구 추천인데요?”
“B급 헌터인 김민의입니다. 한유진 씨보다 세 살 어린 대학생이죠. 이 근처에서는 여기가 적당히 핫하고 소탈하다더군요.”
아니, 그 소탈이 학생 기준 소탈이 아니고…….
“민의 학생… 공부에 헌터 일까지 하려면 바쁠 텐데 요즘 핫한 곳까지 꿰고 다니는 모양이군요.”
“헌터가 아니었으면 제적당했을 겁니다.”
김민의 군, 정말 열심히 놀았구나. 길드 소속 B급 헌터면 이미 취직한 걸로 쳐주고 많이 봐줬을 텐데도 제적 위기라니, 학교를 아예 안 갔나.
그러고 보니 유현이도 특별전형 입학은 해 놓고 출석률 제로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예림이도 이제 학교 갈 일 없어졌고.
C급 이상 미성년자 각성자는 안전을 위해 각성자 전문학교로 옮기거나 가정교육을 받는다. 교사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질풍노도의 슈퍼청소년을 연약한 또래와 함께 둔다는 건 여러모로 위험하니까.
“들어가시죠.”
김성한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나는 그래도 20대 얼굴이지만 댁은 30대인데? 그것도 딱딱한 인상과 묵직한 풍채가 액면가를 대여섯 살은 더 높여 주고 있건만 안 껄끄럽나. 암만 봐도 손님이 아니라 발랑 까진 조카 찾으러 온 삼촌 같구만.
심지어 얼굴 가린다고 시간대 안 맞는 선글라스까지 쓰고 있어서 수금하러 온 조폭 같기도 하고……. 저것 봐, 옆을 지나치는 애들이 긴장하며 힐끔거리잖아.
“안 들어오십니까?”
그가 머뭇거리는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쩌지. 아니, 사실 나는 문제없긴 한데. 어색해서 그렇지 이십대잖아. 평범하게 대학 갔으면 이런 데 드나들고 있었을 거라고.
“…갑니다.”
마른침을 삼키고 걸음을 옮겼다. 이런데 한번 와 보고 하면 좋지 뭐. 회귀 한 김에 청춘도 좀 즐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