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252
250화 진짜와 가짜 (4)
‘뭐야, 이게.’
[특별 메인퀘스트! 시그마를 지켜 주세요!!]내내 잠잠하던 성현제가 갑자기 퀘스트를 보내왔다. 아니, 메인퀘스트면 성현제가 보낸 게 아닌가? 신입인가?
‘그보다 지키긴 뭘 지켜. 도망쳐야 할 판에.’
은혜라도 있으면 모를까 C급이 SS급을 보호하겠답시고 나서 봐야 방해밖에 더 되냐. 그래도 일단 퀘스트 내용을 확인해 보려는데 솔렘니스의 S급 가드가 다가왔다.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소리친 사람인 모양이었다.
“보고해.”
시그마가 말하고 S급이 입을 열다가, 도로 다물었다. 나도 시그마도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완전히 방심하고 있었다. 정말로. S급은 한 발짝 더 시그마에게 가까이 붙으면서.
기이익─
귀에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바람이 일었다. 나를 복도 벽 쪽으로 밀어내는 손길이 느껴졌다. 피가 튀고 시그마가 자신을 공격한 S급을 강하게 걷어찼다. 복도 끝까지 밀려나가며 S급이 소리쳤다.
“이 괴물! 시그마 님을 어떻게 한 거냐!”
…뭐? 시그마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가슴팍이 길게 베여 피가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상처가 제법 깊었다.
“치료를─!”
“위험해.”
카강! 뻗어 나온 사슬이 S급의 공격을 막았다. 아니 저놈이 미쳤나 갑자기 왜 저래? 너네 상관이잖아.
“몬스터가 범인인 것 같으니까 일단 나가죠!”
갑자기 미쳐서 시그마보고 시그마를 어쨌냐고 외칠 리는 없으니까 정신계 스킬을 지닌 몬스터가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았다. 얼른 포션을 꺼내 시그마의 상처를 응급처치하고 복도를 따라 달려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시그마는 다른 쪽 길을 선택했다.
“이쪽이다.”
“예?”
그가 내 허리를 낚아채며 벽을 향해 사슬을 휘둘렀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벽이 와르르 무너지며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이편이 빠르기는 하겠지만 말이야. 남의 건물이라고 막 다루네. 시그마는 나를 들고서 망설임 없이 밖으로 뛰어내렸다.
– 키익, 키이이.
날카로운 괴성이 공중에서 들려왔다. 하늘을 뒤덮은 것은 회색 깃털의 거대한 새였다. 차르륵, 사슬이 주인보다 앞서 바닥에 비스듬히 내리꽂히며 팽팽히 당겨졌다. 그 위로 시그마가 내려섰다.
“형!”
유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푸른 버들잎이 하늘을 뒤덮고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마나 홀 바로 근처라서인지 아낌없이 스킬을 쓰고 있다. 버들잎이 원래의 쓰임대로 괴조의 시야를 방해하며 정신을 분산시켰다.
“이제 좀 놓죠?”
“왜? 내 건데.”
“그게 무슨 소리야, 형?”
버들잎을 밟고 우리 쪽으로 다가오던 유현이가 날카롭게 물었다. 자신만만하게 혼자 가 놓고서 계약 페널티 받게 되었단다, 하하하 하고 털어놓자니 살짝 쪽팔려졌다. 해주하면 될 일이긴 한데.
“어, 그게 말이다, 내가 계약 조건을 어겨 버려서…….”
“괜찮아, 죽이면 돼.”
유현이가 상큼하게 말했다. 아니 좀 참아 주렴, 동생아.
“그냥 해주 아이템, 윽!”
쾅! 시그마와 나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간 탄환이 바닥을 파헤쳤다. 흙과 바닥재 파편이 튀어 오른다. 유현이가 못마땅한 얼굴로 연이어 날아드는 마탄을 칼끝으로 쳐냈다.
“저 S급, 솔렘니스 소속 아니었나.”
“갑자기 얘더러 괴물이라며 공격해 오더라. 정신계나 환각 스킬에라도 걸린, 아 좀 놓아달라니까! 안 도망쳐, 지금은 못 도망쳐!”
아님 제대로 안아들기라도 해라. 자꾸 흔들리니 어지럽잖아. 시그마가 날 들고 있는 탓에 대신 총격을 막아 내던 유현이가 불길을 화악 일으켰다. 이어 솔렘니스 S급이 있는 곳을 향해 사정없이 검푸른 화염을 쏘아 보낸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건물의 일부가 박살 나고 뜨겁게 불타올랐다.
이러다 방위청 남은 건물도 죄다 무너지게 생겼네.
“내놔.”
유현이가 차갑게 말하고.
“싫다.”
시그마도 냉랭하게 대꾸했다.
“너네 뭐 하냐.”
어느새 나타난 문현아가 구경꾼의 자세를 취한 채 물었다. 머리 위에서는 몬스터가 키익거리고 있었다. 일단 몬스터부터 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저거 SS급인데. 이봐요들.
“이거 좀 놓자, 응? 시그마 씨. 어차피 지금은 해주도 못 해요.”
“내 형이다. 당장 손 떼.”
“C급은 내 소유다. 네놈이야말로 포기해라.”
“형님 인기 많네~ 싸워라, 싸워라!”
…말려 주지는 못할망정 부채질하고 있습니까. 술 꺼내지 마. 안주는 또 어디서 튀어나오는 거야.
“둘 다 진정하고 몬스터부터 잡자, 응?”
“형부터 풀어주면.”
“여긴 아카테스니 저놈이 해야 할 일이다.”
“야, 너네 둘이 붙으면 저건 내가 해결해 주마.”
아, 젠장. 설마 퀘스트의 지켜라가 내 동생으로부터 시그마를 보호하라는 뜻은 아니겠지. 서브퀘스트면 그냥 보상 안 받고 말겠는데 하필 메인퀘스트라. 일단 미처 확인 못 한 퀘스트 내용을 열어 보았다.
[특별 메인 퀘스트! 시그마를 지켜 주세요!!당신에게 있어서 시그마는 진짜입니다. 이 세계의 유일한 진짜로부터 인정을 받아 가짜들로부터 배척받게 된 시그마를 책임지고 보호하는 것이 어른의 의무! 최소한 목숨은 붙여 주세요~^▽^
보상: 던전 공략을 위한 열쇠]
…퀘스트 내용을 곧장 이해하지 못하고 재차 들여다보았다. 진짜가… 뭐? 유일한 진짜면, 나인가? 원래 몸으로 여기 들어온 건 나뿐이니까. 그러니까, 내가 인정해 줘서 시그마가 진짜가 되었다는 건가? 그게 말이 돼? 당신에게 있어서, 라니까 완벽한 진짜는 아닌 것도 같지만.
‘가짜들이 배척한다고?’
그래서 솔렘니스 S급 가드가 괴물이라면서 시그마를 공격한 건가. 보상이 던전 공략템이라니, 퀘스트를 안 할 수는 없는데.
‘…왜 정확한 조건이 없냐.’
언제까지 지키라고. 성현제인지 신입인진 모르겠지만 제대로 적어 줘! 원반 설치 다 할 때까진가? 아무튼 목숨만 붙여 놓으면 된다니 난이도는 낮긴 하지만. SS급 가드를 일부러 죽이기도 힘들겠다.
“유현아! 시그마 죽이면 안 돼!”
나부터 빼내기 위해 시그마의 팔을 노리고 있던 유현이가 인상을 확 찌푸렸다.
“왜?”
“던전 공략하려면 얘가 살아 있어야 한다더라.”
“살아만 있으면 돼?”
“어, 음, 최대한 멀쩡해야지.”
“알았어. 일단 팔만 자를게.”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얇은 연검이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햇살을 반짝 반사시키며 예측하기 힘든 궤도로 휘어져 오는 칼날을 시그마의 사슬이 가로막았다. 아니, 팔이 잘리면 멀쩡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만.
“유현아, 진정, 윽, 현아 씨! 현아 씨이!”
구경만 하지 말고 말려 줘! 그래도 제일 연장자잖아! 람다 나이는 모르지만 아무튼 도와주세요! 그나마 둘 다 날 생각해서인지 스킬은 쓰지 않았지만 사슬과 연검의 부딪침만으로도 귀가 아프고 튀어오는 열기에 눈이 시려왔다.
내 부름에 문현아가 껄껄껄 웃었다. 도와줄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였다. 그때 어째서인지 떠나지 않고 하늘을 배회하기만 하던 괴조가 날개를 크게 퍼덕이더니,
– 키이익!
괴성과 함께 그대로 급하강했다. 정확히 시그마를 향해. 괴조를 힐끗 쳐다본 시그마가 크게 뒤로 뛰어 공격을 피했다. 콰가각, 부리가 땅을 꿰뚫고 발톱이 사방을 긁으며 흙먼지를 일으킨다. 괴조에 의해 앞이 가로막힌 유현이가 위로 솟구치며 흩날리는 버들잎을 디뎠다.
“귀찮게.”
희미하게 짜증이 어린 목소리와 함께 유현이의 손끝에서 와이어가 던져졌다. 검은 광택이 도는, 내 것보다 등급 높아 보이는 강삭이 괴조의 목을 죄었다. 괴조의 등을 짓밟으며 내려선 한유현이 와이어를 강하게 당겼다. 소매 사이로 드러난 손목에 힘줄이 도드라지며 괴조가 부리를 크게 벌렸다.
– 키엑, 키이!
제 몸이 억지로 접히는 것에 괴조가 날아오르려는 듯 날개를 크게 펼쳤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팽팽히 끌어당겨진 목을 검이 찔러 들어갔다. 콰득, 부드러운 연검이 마치 창처럼 몬스터를 꿰뚫고 이어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목의 절반 이상이 터져 나간 괴조가 버둥거림을 멈추었다.
나한테 피해가 갈까 봐서인지 최대한 주위 영향이 없도록 몬스터를 처리한 유현이가 다시 시그마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시그마 또한 지지 않고 눈을 마주쳤다.
포인트 상점에 사이 나쁜 놈들 친하게 지내게 해주는 아이템 같은 거 없나. 술이라도 같이 마시게 해?
“저기야! 저놈이다!”
그때 솔렘니스 소속 가드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하나같이 무기를 든 채 시그마를 노려보고 있었다. 주위에 다른 시 가드들도 있었건만 유독 솔렘니스 쪽의 적의가 강했다. 시그마를 시그마가, 그러니까 저들 눈에 비치는 괴물이 해쳤다고 생각하는 건가.
“몬스터는 죽었는데.”
시그마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에 옅게 당혹감이 어린 듯도 했다. 자신의 권속들이 갑작스럽게 공격해 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도 당황스러운 일인 모양이었다.
“일단은 피하죠. 현아 씨, 죄송하지만 막아 주실 수 있을까요?”
솔렘니스 가드들을 해치는 건 역시 내키지 않았다. 문현아가 고개를 끄덕이곤 거창을 꺼내 크게 휘둘렀다. 돌풍이 휘몰아치며 흙과 건물 파편을 끌어들이며 솔렘니스 가드들 앞을 막았다.
“유현아, 설명해 줄 테니까 따라와 줘.”
동생이 불만스런 표정으로 끄덕였다. 문현아가 일으킨 흙먼지가 가라앉기 전에 시그마가 빠르게 움직였다.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그의 뒤를 유현이가 바싹 따라붙었다.
“알파 님! 그, 앞에 있는 놈은!”
사람들을 피신시키던 아카테스 가드가 놀라 외쳤다. 다른 도시 사람들에게도 시그마가 평범하게 보이진 않는 모양이었다. 솔렘니스 측처럼 바로 덤벼들지는 않았지만 불안한 눈초리를 향해온다.
“내가 처리할 테니 건물을 전부 비우도록. 도시에 대피령도 내려.”
“아, 예!”
유현이의 말에 아카테스 가드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그 뒤로도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시그마를 몬스터라도 마주친 듯 깜짝깜짝 놀라며 쳐다보았다. 마치 불길한 무언가를 본 듯한 눈치였다.
‘설명 좀 제대로 해줄 것이지.’
내가 시그마를 진짜로 받아들였다고 해서 갑자기 이렇게 될 수가 있나. 이해가 잘 가질 않았다. 설사 가짜가 진짜가 되었다고 해도 저런 반응들은 또 뭐야.
건물을 빠르게 올라간 시그마가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자신의 객실이었다. 솔렘니스 사람들이 이곳은 도리어 오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것일까. 안으로 들어간 시그마가 겨우 나를 내려 주었다. 으, 허리야.
“해주 아이템부터 써.”
따라 들어온 유현이가 문을 닫으며 말했다.
“지금은 사용 못 해.”
유현이가 못마땅한 얼굴을 했지만 눈치 빠르게 더 묻지는 않았다. 포인트에 대한 정보가 새면 시그마가 방해하려 들 수도 있으니까. 주위를 살피며 내 쪽으로 다가오던 동생이 우뚝 멈춰 섰다. 붉은색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저게, 뭐야?”
유현이의 목소리 끝이 살짝 떨렸다. 대체 뭘 본… 아. 내 도플갱어 인형이 너른 거실의 창 옆 의자에 얌전히 앉혀 있었다. 저거 좀 없애라, 제발.
“한유진이다. 네게 주지.”
시그마가 말하고.
“…형, 역시 죽이는 게 좋을 거 같아.”
유현이가 이를 갈았다. 하하, 나는 받지 않고 두었던 보상인 메드상 21주년 기념 샴페인을 받았다. 금빛 도는 샴페인 병이 내 손에 들렸다.
“일단 둘 다 앉아. 설명은 듣고 계속 싸우든 말든 해.”
시그마는 소파에 앉았지만 유현이는 눈을 조금 찌푸린 채 인형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다가갔다. 머뭇거림이 담긴 손끝이 인형을 건드릴 듯 말 듯 다가가다가 도로 거두어졌다.
“도플갱어 인형이야. 우리 세계에도 있어.”
“…듣기는 했는데. 만져 봐도 돼?”
그걸 왜 나한테 묻냐. 원래 내거긴 했다만. 고개를 끄덕이자 유현이가 인형을 툭 건드리곤 인상을 썼다. 그리곤 다시 슬쩍 매만져 본다. 신기한 건가.
“일단… 제가 시그마 씨를 진짜로 인정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모양입니다.”
잔을 가져와 샴페인을 따르며 말했다. 향 좋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 세계의 사람들이 시그마 씨에게 거부감 같은 걸 느끼게 되는 듯합니다. 솔렘니스 가드들은 아예 당신이 당신을 해쳤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고요.”
샴페인과 같은 빛을 띤 눈이 느리게 깜박였다.
“내가 C급, 네 세계의 존재로 뒤바뀌기라도 했다는 건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영향인 듯하니, 우선 죄송합니다.”
“형이 왜 미안해해? 어차피 던전 속에 임시로 만들어진 세상이잖아. 우리가 나가면 사라지든가 리셋되겠지.”
유현이가 냉랭하게 말했다.
“그야 그렇지만 일단은 멀쩡히 살아서 움직이고 생각도 하고 감정도 있는 사람들이잖냐. 현아 씨도 진짜라고 생각하고 대한다고 하더라. 그보다 유현이 너 뭐 하냐.”
“얼마나 똑같은지 궁금해서.”
음, 그래. 다시 시그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 우선 솔렘니스 가드들은 돌려보내는 게 좋을 듯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시그마를 살해한 괴물은 알파가 처리했다, 라고 발표해도 될까요?”
“…좋을 대로.”
시그마가 나직이 대답했다. 표정은 차분했지만 역시 마음이 편치는 않겠지. 어쩌냐, 진짜. 유현이 말대로 리셋되거나 사라질 세상이라고 해도 영 찝찝했다. 여기 있는 동안은 내가 책임지긴 해야겠지.
“그럼 시그마 씨. …솔렘니스를 떠나게 되면 시그마라고 하기도 그러려나요. 진짜 이름이 뭔지 물어봐도 됩니까?”
“기억 안 나. 하지만.”
그가 잠깐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작은 달. 그렇게 불렸던 것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