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255
253화 메드상의 뮤 (3)
유선형으로 매끈하게 잘빠진 함선이 마나 홀 위에 다다랐다. 비행하고 있지만 날개 같은 것도 없이, 말 그대로 배 모양이다. 이 동네 기술력으로는 불가능할 거 같은데. 스킬을 쓴 걸까. 타인 적용 가능한 비행 스킬을 지닌 보조계 가드들이 모인다면 저런 광경을 만들어 낼 수 있겠지.
‘하지만 최소 수십 명은 필요할 텐데.’
무겁고 크잖아. 아, 혹시 무게를 줄이는 보조 스킬까지 적용한 걸까. 여러 보조계 스킬을 복합적으로 사용한다면 비교적 적은 수의 가드만으로도 거대한 물체를 비행시킬 수 있을 것이다.
– 키에엣!
포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몬스터가 함선을 향해 덤벼들었다. 하지만 공격 지점에 재빠르게 생겨난 방어 스킬이 몬스터를 막아내고 함선 옆에 붙은 작은 문이 열리며 나타난 총구가 튕겨나간 몬스터를 겨누었다. 요란한 총소리가 울리며 몬스터의 몸뚱이가 땅에 닿기도 전에 공중에서 박살 난다.
[메드상 제1 전함 플로르 호입니다. 아카테스 시 마나 홀 부근에서의 대피를 권유 드립니다.]방송이 흘러나왔다. 제1 전함이라면 저런 게 더 있다는 소린가. 전함의 포문이 전부 열리고 일제히 마나 홀을 향해 움직인다. 유현이와 문현아, 시그마를 비롯해 마나 홀 부근에서 전투 중이던 가드들이 뒤로 물러났다.
“…예상과는 좀, 많이 다른데요.”
내 말에 문현아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러게 나도 저런 게 나타날 줄은 몰랐지.”
우리가 마나 홀로부터 멀어지기가 무섭게 또다시 포격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함선에 마나 홀을 싣기라도 했는지 마나를 듬뿍 머금은 마력 탄이 끊임없이 퍼부어지고 S급 이하 몬스터들은 말 그대로 녹아내렸다.
SS급 몬스터, 그중에서도 강한 놈들은 상처만 입고 빠져나오기도 했다. 마나 홀 반경 100미터를 벗어난 SS급 몬스터를 향해서 함선에서 굵은 줄이 쏘아졌다. 말이 줄이지 굵기가 거의 전봇대 수준이었다.
특수 아이템으로 보이는 줄이 SS급 거대한 곰을 휘감은 직후, 몬스터가 풀썩 앞으로 쓰러졌다. 죽은 것은 아니었다. 함선 옆의 작은 문이 열리고 S급 가드들이 나타났다. 무슨 짓을 했는지 기절해 버린 SS급 몬스터 위로 가드들이 뛰어내렸다. 저항할 힘을 잃은 몬스터가 해체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말 장난 아니네.”
거들고 할 필요도 없겠다. 멍하니 구경이나 하는 사이 해가 떠올랐다. 새벽빛이 서서히 퍼져 나가고 마나 홀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의 수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완전히 날이 밝으며, 포성도 멈추었다.
소리도 없이 조용히, 함선의 선두가 우리 쪽을 향해 돌아섰다. 역시 기계가 아닌 스킬로 떠 있는 것이 맞는 모양이었다. 10여 미터 위쪽까지 내려왔음에도 별다른 소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그렇게 소리쳤다. 지금은 노아 씨라고 부르면 안 되겠지. 내 외침을 듣지 못한 건지 함선은 잠잠했다. 반응을 기다리는데 함선 앞쪽의 일부가 덜컹 열렸다. 제복 차림의 가드 몇의 모습이 보였다. 아쉽게도 그중에 익숙한 얼굴은 없었다.
이어 SS급 몬스터를 얽매었던 줄이 발사되었다. 우리를 향해.
“형!”
유현이가 나를 감쌌다. 금빛 사슬이 줄을 가로막았지만 줄과 사슬이 뒤얽히는 순간 사슬에서 빛이 사라졌다. 퇴색 된 수색자의 사슬이 힘없이 바닥으로 늘어졌다. 저 줄 설마, 마나를 흡수하는 아이템인 건가.
“유현아, 위험해!”
내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굵은 줄이 가닥가닥 풀어헤쳐졌다. 손목보다 약간 가는 굵기의 줄들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우리 주위를 둥글게 맴돌았다.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은 것은 다름 아닌 유현이었다.
“…윽.”
“유현아!”
급격한 마나 소진으로 무너져 내리는 동생의 몸을 얼른 받쳐 안았다. 의식까지 잃진 않았지만 내 팔을 붙잡은 손에 힘이 없다. 문현아와 시그마 또한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 둘은 유현이와 달리 마나 보호각인을 가지고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줄에 닿으면 위험할 것이었다.
“나는 노아 헌터와 잘 지냈던 거 같은데.”
문현아가 함선 쪽을 힐끗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 얼굴과 도련님 상대로 날 세우는 거야 이해 가지만. 참, 솔렘니스도 메드상과 사이좋은 편은 아니었지?”
“일방적으로 공격받을 정도는 아니야.”
“그럼 역시 성현제와 도련님 때문인가.”
아니 우리 유현이가 왜… 라고는 나도 차마 말 못 하겠다. 그래도 이렇게 나올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형…….”
“잠깐만, 마나 포션 바로 사서─”
“아니야, 괜찮아. 형에게 손대진 않을 테니까.”
유현이가 힘겨워하면서도 몸을 추슬러 일어섰다. 역시 빨리 각인을 수정해야 하는데.
[모든 무기를 인벤토리에 넣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위협적인 행동을 보일 시 발포하겠습니다.]그때 함선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무장을 해제하라는 말에 모두의 표정이 찌푸려졌지만 일단은 순순히 따랐다. 인벤토리의 무기야 언제든지 꺼낼 수 있으니까. 잠시 뒤, 메드상의 가드들이 아래로 내려왔다.
“다시 한 번 경고하겠습니다. 수상하다 생각될 시 즉각 대응하겠으니 행동에 신중을 기해 주십시오.”
“거참 까다롭네. 무슨 황제 폐하 알현이라도 하냐. 도시를 지키는 수장이라는 건 그쪽이나 나나 마찬가지다만.”
문현아가 투덜거렸다. 하긴 시그마는 버려졌고 아카테스는 도움받는 입장이지만 그녀, 람다는 다르지. 문현아가 불만을 표하거나 말거나 메드상의 가드들은 묵묵히 옆으로 비켜섰다. 양옆으로 열을 지은 그들 사이로, 인영들이 나타났다. 공간이동이었다.
점점 더 짙어져 가는 새벽빛 아래, 황금색 머리칼이 가볍게 흔들렸다. 원래의 머리색보다 더욱 강렬한 금빛이었다. 두 눈 또한 마찬가지였다. 연회색이 섞였지만 동시에 어둡게 진한,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머리칼과 눈 색을 제외하면 외모는 유현이나 문현아에 비해 훨씬 더 원래 노아의 것에 가까웠다. 변화가 거의 없이 약간 더 성숙해진 정도였다. 키도 좀 더 커진 몸을 새하얀 제복이 감싸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뮤가, 노아가 옅게 미소 띠며 말했다. 그의 옆으로 선 사람 또한 SS급 가드였다. 한 도시에 SS급 각성자가 두 명이나 있는 건가.
“어, 뮤 씨. 우선 이 줄 좀 치워 주면 안 됩니까. 공격할 생각은 당연히 없습니다.”
내 말에 노아가 아닌, 옆의 SS급 가드가 딱딱한 표정으로 나섰다.
“그 말을 어떻게 믿으라는 건가. 심지어 한 명은 정체도 알 수 없는 SS급 각성자이잖나.”
그러면서 시그마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도와달라는 의미로 노아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미소만 지을 뿐 나서지 않았다. 저기, 노아 씨……?
“한유진이 누구지.”
“…접니다만.”
SS급 가드의 물음에 손을 살짝 들었다.
“틈을 만들어 줄 테니 나와라. 다른 자들은 안 돼.”
“뭐라는 거야. 동생 두고는 못 가.”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나만 나오라니. 내가 메드상 시 출신이라서인가. 애초에 날 도와주기 위해 온다고는 했지만, 애들을 버려두라고? 미쳤냐. 내 말에 SS급 가드 또한 표정이 험해졌다.
“뮤께서 일부러 여기까지 와주셨건만 태도가 불손하다.”
“도움 요청한 건 맞는데, 마나 홀에 이상 생긴 거 해결 못 하면 메드상이라고 무사할 줄 아나? 세상 혼자 지키고 살아남을 거 아니면 협력해 주셔야, 읏.”
SS급 가드로부터 압박감이 확 느껴졌다. 등급 더럽게 높은 주제에 연약한 C급을 핍박하고 지랄이네. 내 공포 저항이 비록 S급이라지만 SS급 한둘 겪는 것도 아니고, 그래 잔뜩 쏘아 봐라. 기죽을 줄 아냐.
“한유진 씨.”
메드상 SS급 가드와 눈싸움하고 있는데 노아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먼저 나오시죠.”
“하지만.”
“SS급 각성자들을 무방비하게 선내에 들일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 쪽보다 수도 더 많지 않습니까. 적절한 안전조치 후 선내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휴식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셋 다 쉬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낮이라고 해도 몬스터는 수만 줄었을 뿐 계속 나올 것이다. 방어를 메드상에 맡긴 채 쉴 수 있다면 좋긴 하겠지.
“…알겠습니다.”
노아의 저런 태도가 약간 섭섭하긴 했지만 맞는 말이었다. 타 도시 소속 SS급 각성자 셋을 그냥 들일 순 없겠지. 인벤토리 봉인이라도 하려나.
“현아 씨, 동생 좀 부탁할게요.”
문현아에게 유현이를 맡기고 앞으로 나섰다. 마나를 흡수하는 줄 가까이 다가가자 미미하게 마나가 흘러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각인이 없어서인가, 이 동네와는 다른 세상 몸뚱이라서인가 내게는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줄이 스르륵 움직여 틈을 만들어 냈다. 내가 빠져나가자마자 도로 닫혀 버린다.
“무사해 보여서 다행이네요.”
노아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노, 뮤 씨도요.”
“그냥 노아라고 불러도 돼요. 제 이름이니까.”
노아가 본명이라고 말해 놓은 것일까. 그렇게 말해 주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메드상의 뮤가 아니라 노아라고 확실히 인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혹시라도 노아가 아닌 뮤가 우선시되면 어쩌나 싶었는데.
“도와주러 와주신 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천만에요. 유진 씨가 있는데 당연한 일이죠. 제압해.”
마지막 말은 곧장 이해하지 못했다. 노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기엔 너무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였다. 제압이라니.
“잠깐만요, 노아 씨!”
당황하며 돌아서자마자 완전히 의식을 잃은 유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동생을 부축하고 있는 문현아 또한 창을 지팡이 삼아 겨우 버티고 선 채였다. 시그마 또한 비슷했다.
“뭐 하는 짓이야!”
“괜찮아요, 유진 씨.”
뛰쳐나가려는 나를 노아가 붙잡았다. 보조계라고 해도 SS급, 당연히 그의 손을 벗어날 수 없었다.
“다들 다치게 하진 않을 테니까 걱정 마세요.”
“저렇게까지 안 해도!”
순간 전신이 꽉 움켜쥐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직후, 주위의 풍경이 바뀌었다. 실내였다. 너른 방의 중앙에는 둥글게 구멍 같은 것이 뚫려 있었고, 그 너머로 푸른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마나 홀의 빛이었다.
“메드상의 마나 홀입니다.”
노아가 말했다.
“공간을 연결해서 어디에서든 마나 홀의 마나를 직접적으로 받을 수가 있지요.”
즉, 메드상의 뮤가 함께한다면 메드상 소속 가드들에게 마나 고갈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몬스터들을 향해 비처럼 쏟아져 내리던 마력포들이 떠올랐다. 마나가 계속해서 보충되니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던 거구나.
“뿐만 아니라 일정 거리 내 메드상 가드들은 각인을 통해 저로부터 마나를 전해 받을 수도 있습니다. 마나 홀 바로 근처가 아니라 해도 무제한적으로 스킬을 사용 가능하지요.”
그러니 걱정할 거 없다는 노아의 말을 흘려 넘기며 커다랗게 붙어 있는 창가로 향했다. 젠장, 반대쪽이야. 방을 가로질러 다시 창에 달라붙자 바깥 풍경이 보였다.
문현아와 시그마까지 정신을 잃은 듯 쓰러졌다. 줄이 거두어지고 메드상 가드들이 쓰러진 셋에게로 접근하는 것이 보였다. 단순히 구속만 할 거라지만 목 뒤가 쭈뼛거렸다. 누군가의 손이 유현이를 붙잡았다. 기분 나쁘다. 무심코 이가 갈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현이를 저렇게 대할 것까진 없잖습니까.”
“화났어요?”
“기분 좋다고는 말 못 하겠네요.”
고개를 돌렸다. 노아는 약간 곤란한 듯 웃고 있었다. 다른 두 사람보다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오히려 더 낯설게 느껴졌다. 유현이도 문현아도 보자마자 내가 아는 사람이구나, 싶었는데.
“노아 씨, 좀… 변하신 것 같네요.”
“사람이야 항상 변하죠. 하지만 전 그대로인걸요. 단지 새로운 사실을 알아 버린 것뿐이에요.”
“알아 버렸다고요?”
“네. 보조계 각성자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를요.”
노아가 빙그르 몸을 돌렸다. 하얀 제복 자락이 가볍게 흔들렸다. 앞으로 걸어 나가며 보란 듯이 한쪽 손을 펼쳐 보였다.
“메드상에서는 보조계 각성자 위주로 팀이 만들어집니다. 물론 전투계도 필요하기는 해요. 하지만 다양한 보조 스킬을 적절하게 조합하면, 전투계 각성자가 자신의 등급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있지요. 한 단계 이상까지도요.”
노아가 자신 있게 말을 이었다.
“조금 전에도 직접 보셨잖아요. SS급 몬스터와 가드들을 쉽게 제압하는 모습을.”
“…하지만 그건 이곳에선 마나 보충이 힘들기 때문이잖아요. 돌아가서는 적용할 수 없습니다.”
“네. 그렇지만 마나 보충이 쉽다는 건 반대로 이점이 되기도 하죠. 이쪽에서는 저 없이는 마음껏 스킬을 쓸 수 없으니까요.”
“동시에 던전 출입인원 제한도 있죠. 다양한 보조계 헌터를 제한 없이 데리고 들어가는 건 불가능해요.”
물론 보조계 헌터 조합이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던전 안이라는 공간의 제약 때문에 헌터 팀에서 보조계가 중심이 되기는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수익을 나눠야 하는 머릿수가 늘어난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전투계 중심으로 인원을 줄일수록 개개인의 수익이 늘어나니까.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유진 씨. 많이 봐오고, 직접 겪기도 했으니까요. 저는 치유 스킬도 있어서 상대적으로 덜하기는 했지만요.”
노아가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조금 부끄러워졌다. 평소에 수줍고 여린 모습을 많이 보이긴 했지만 노아도 전 길드장이다. 헌터계의 현실을 모를 리 없었다.
“아, 우선 쉬시는 편이 좋겠어요. 피곤하실 텐데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네요. 다른 사람들은 걱정하지 마세요.”
“…네.”
괜찮겠지. 그래도 노아 씨가 맞으니까. 노아가 사람을 부르고 나를 방으로 안내하게끔 명령했다.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이 버튼을 눌러 요청하시면 됩니다.”
방으로 안내해 준 사람이 나가고 혼자 남게 되었다.
‘…보조계라.’
노아가 원하는 대로 보조계 헌터들이 조명을 받으려면 특수각성센터가 반드시 필요했다. 회귀 전의 일반적인 각성센터는 대부분이 전투계나 방어계로 각성하게 되는 구조였으니까.
…그보다 유현이는 괜찮을까. 얌전히 굴 테니까 옆에 있게 해달라고 부탁해 볼까.
– 형!
그때 내 옷 아래에서 불쑥, 이린이 튀어나왔다. 깜짝이야. 네가 왜 나한테 와 있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