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257
255화 메드상의 뮤(5)
“노아 씨는 저한테 있어 언제나 진짜입니다. 인정이고 뭐고 애초에 가짜라는 생각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그 전에 내가 아, 저 사람 가짜네요 하면 정말로 가짜가 될 리가 있겠냐. 시그마는… 그, 좀 애매하긴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고.
“게다가 노아 씨가…….”
여기 남고 싶어 할 리가 있겠냐는 말을 하려다가 삼키고 말았다. 만약에 여기가 멸망해 버린 세계가 아니었다면. 그럼 노아와 뮤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내가 입을 댈 부분이 아니기는 했지만, 노아 씨는 분명 부럽다고 말했었다.
노아를 향해 돌아보았다. 노아는 약간 굳은 표정으로 시그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 남게 될지도 모른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 말 그대로다. 남의 자리가 탐난다면 차지하면 그만 아닌가. 이미 지금의 뮤는 네 녀석이고.”
시도해 봐서 나쁠 건 없지 않느냐는 말에 노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나는 진짜 뮤가 아니야.”
“그게 어쨌다는 거지. 불가능한 일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주제에. 어리광이 심하군.”
대놓고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는 시그마의 태도에 노아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 이거, 좀 위험하지 않을까. 방금 시그마의 행동은 누군가가 생각나는 것이었는데. 그러니까, 리에트라거나.
“정말 얼굴만 닮았네요, 유진 씨. 차라리 세성 길드장이 더 나아요.”
“또 그놈의 성현제인가. 나와 비슷한 인간이라면 네 칭찬이 오히려 불쾌하겠지. 안됐어.”
“적당히 해, 시그마!”
아주 대놓고 싸움을 걸어라. 노아한테 왜 저래? 강제로 붙잡혀 끌려온 것 때문에 기분이 상한 건가. …그럴 만하긴 하다만. 저 녀석도 뒤끝이 긴가 보다.
“세성 길드장도 아니면, 여기 둘 필요도 없겠죠?”
노아가 차갑게 말했다. 잠깐만.
“여기 환자 있어요!”
설마 여기서 싸울 생각은 아니겠지. 노아가 걱정 말라면서 한쪽 손끝을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시그마가 사슬을 꺼냈다.
콰득!
금빛 사슬이 병실 양쪽 벽에 박혔다. 시그마의 손이 팽팽하게 당겨진 사슬을 잡은 직후, 그의 발 아래로 둥그런 원이 나타났다. 원 너머로 어딘지 모를 수면이 흔들리고 있었다. 공간 이동 포탈이었다. 비행 스킬이 없는 시그마라 전투 예지를 쓰지 않았더라면, 꼼짝없이 다른 곳으로 떨어뜨려졌을 것이다.
“상대를 손대지 않고 직접 이동시키지는 못하는 모양이로군.”
시그마가 체조 선수처럼 가볍게 반동을 주어 사슬 위로 올라서며 말했다. 포탈을 지워 내며 노아가 눈썹 끝을 올렸다.
“몸 성히 보내 주려 했더니. 어차피 이 선내에서 당신은 전투 스킬을 쓸 수 없습니다. 언행을 조심해 주십시오.”
“확실히 지금의 나는 너보다 약하지. 그러니까 C급.”
차그랑, 사슬이 거두어지며 시그마가 아래로 내려섰다. 그리고 앉아 있는 내 옆으로 바싹 다가온다. 금색 눈이 가늘어지며 웃음기를 띠었다.
“나를 지켜 줘.”
…얼씨구.
“유진 씨에게 무슨 헛소립니까!”
“헛소리라니, C급이 먼저 날 보호해 주겠다고 했어.”
시그마의 말에 노아의 표정이 잔뜩 흐트러졌다.
“저 거짓말 정말이에요? 아니죠?”
“어, 일단 맞기는 한데요…….”
내가 보호하게 해 달라고 말하긴 했었지. 그래도 진짜 지켜 달라고 할 줄은 몰랐다. 공격 스킬을 봉인 당했다고 해도 스탯은 SS급일 거 아니냐.
“그리고 C급은 내 소유지. 그렇게 계약했다.”
“유, 유진 씨?”
“…그것도 일단 맞는 말이긴 하지만요. 아까 던전 공략에 대해선 자세히 말을 못 했는데, 시그마 씨가 무사해야 한다더라고요. 그냥 그것뿐이에요. 우리가 나가려면 필요하니깐 보호도 하고.”
“책임지겠다더니. 벌써 말을 바꾸는 건가.”
“아니, 그게. 떨어져 봐, 좀!”
시그마를 옆으로 밀어냈다. 힘은 당연히 내가 훨씬 약할 것인데도 순순히 물러나더니 나를 빤히 쳐다본다. 노아도 뭔가 억울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무사하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목숨만 붙어 있으면 됩니다.”
대답한 건 내가 아니었다. 유현이의 목소리였다. 어느새 깨어난 동생이 내 어깨에 턱을 얹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유현아, 괜찮아? 일부러 재워 뒀다고 했는데.”
“이린이 깨워 줬어. …이건 뭐야.”
링거 바늘을 빼내려는 동생을 얼른 말렸다. 중화제라는 설명에 거슬려 하면서도 뽑지는 않았다.
“그러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공격해도 됩니다.”
동생 녀석이 싸움을 부추겼다. 내가 끼어들지 못하게 팔로 감싸듯 붙잡기까지 하고서. 아니, 여기서 싸우게 둬서 어쩌려고. 게다가 지금은 손 하나라도 더 있어야 할 때가 아닌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SS급을 잃는 건 큰 손해다.
“…공격할 생각은 없습니다. 조금 전에도 내보내려고 했을 뿐이에요.”
“노아 씨, 정말 죄송하지만 시그마를 곁에 두기는 해야 할 듯해요.”
“유진 씨가 왜 죄송해요. 그리고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죠. 이미 제가 차지한 자리조차 제대로 쥐지 못한 채 불안해하고 있고.”
“네? 아뇨, 저 녀석 말 듣지 마세요! 원래 뮤는 다른 사람이니까 껄끄러워 하는 게 당연하죠. 노아 씨가 보통입니다.”
시그마가 뻔뻔한 거지. 노아가 쓰게 웃으며 시그마를 그리고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한유현 헌터가 깨어났으니 우선 식사부터 하세요. 어제오늘 식사도 제대로 못하셨다고 하던데. 아카테스와 란체아의 전투 인원도 모두 선내에 있습니다. 부상자는 치료 중이고요.”
다른 사람들도 다 챙겨 줬구나. 자리에서 일어나 앞서 병실을 빠져나가려는 노아에게로 다가갔다.
“노아 씨. 전 절대로 노아 씨가 잘못 되었다곤 생각하지 않아요. 노아 씨는 정말로 좋은 사람입니다. 최소한 저한테는 틀림없이 그래요. 명우나 연구실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고요.”
“…고마워요.”
노아가 작게 말했다. 미소 띠고 있었지만 결코 밝다고는 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전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닌걸요. 유진 씨야말로 좋은 사람이라서, 그래서 절 그렇게 생각해 주시는 거죠. 제 어리광도 받아 주시고.”
“아니죠, 그건! 노아 씨가 저한테 얼마나 잘해 줬는데요. 어떻게 사람이 일방적으로 받아만 주겠어요. 잠깐이면 모를까, 그런 건 오래 못 가기도 하고 금방 지치고 힘들어진다고요. 노아 씨도 좋은 사람이니까, 저도.”
“한유현 헌터를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요.”
노아의 말에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침대에서 내려선 유현이가 걸려 있는 링거액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거 그냥 빼서, 이동식 링거대 없나?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었는지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함께 오세요. 식당은 이쪽입니다.”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노아가 병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노아가 걱정되었지만, 어쩔 수 없이 유현이에게로 몸을 돌렸다. 구석에 있던 링거대를 찾아다 옮겨 주고 같이 밖으로 나왔다. 시그마도 얌전히 우리를 따라왔다.
“둘 다 일어났네!”
식당에는 문현아가 먼저 와 있었다. 식당이라고 해도 선내 공용 시설이라기 보단 작은 고급 레스토랑에 더 가까워보였다. 긴 식탁 하나와 개별 테이블이 둘 있었고, 주방에 요리사가 대기 중이었다. 주위 장식들 또한 고급스러워 보였다.
“여기 밥 맛있더라.”
느긋한 손놀림으로 와인을 잔에 따르며 문현아가 말했다. 잡혀 온 게 아니라 손님으로 초대받기라도 한 듯한 분위기다. 그 여유로움이 부러울 정도였다.
“유현아, 앉아. 뭐 먹을래? 먹을 수 있겠어?”
주방이 오픈되어 있으니 뭔가 만들어 줄까, 하는 물음에 동생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형도 피곤할 텐데. 그냥 먹을게.”
나한테 독 저항이 있으니 먹여라도 줄까. 노아 씨가 그런 짓을 하리라 생각진 않지만, 동생이 불안해할 수도 있으니까. 노아와 시그마도 자리에 앉았다. 주방장이 직접 나와 주문을 받아 갔다.
“급한 불은 꺼 놓았는데, 이젠 어떻게 하지? 이대로 마나 홀 지키기만 할 수는 없지 않냐.”
식당의 사람들을 물린 뒤 문현이가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여기서 계속 붙어 있을 수는 없었다.
“예림이와 피스를 찾고 원반을 마저 설치해야지요.”
원반에 대해 노아에게도 설명해 주었다. 아마 각자가 머물던 도시가 설치 장소일 거라는 말까지.
“메드상은 이곳에서 상당히 멀어요. 하루 만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그건 중간중간 공간 이동을 했기 때문이죠. 게다가 제 공간 이동 스킬 등급이 높긴 하지만, 마나 홀과 연결한 채로는 초장거리 이동이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마나 홀과의 연결을 끊으면 마나 소모가 너무 크다고 노아가 말했다.
“메드상 마나 홀과 연결 되어 있다고 했잖아요. 그곳으로 들어가면 안 될까요?”
“그게, 마나와 질량을 지닌 생명체는 달라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마나 홀과 연결된 통로는 제가 만든 게 아니거든요.”
원래의 뮤가 만들어 놓은 걸 쓰고 있다면서 노아가 작게 말했다. 아직 공간 이동 스킬이 서툴다는 것도.
“제대로 익힌다면 쓸모가 많을 겁니다.”
내가 썰어 준 스테이크를 먹고 있던 유현이가 노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 가지로 응용하기도 좋을 거고요. 특히 노아 헌터는 독을 쓸 수 있으니 상대의 몸에 직접적으로 독을 주입하는 것도 가능하겠지요.”
유현이 녀석 좀 부러워하는 느낌인데. 하지만 동생의 말대로 공간 이동 스킬은 정말 쓸모가 많았다. 단순 보조로도 좋겠지만 전투 스킬과 결합하면 장난 아니겠지. 유현이의 말에 노아가 시선을 테이블로 떨구었다.
“그건 솔직히 힘들 겁니다. 너무 어려워요. 뮤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고요.”
“특성이요?”
“네.”
내 물음에 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으로는 뮤의 조상 중에 정령이 있었다나 봐요.”
-맞아, 정령!
이린이 불쑥 튀어나와 소리쳤다.
-린이도 느꼈어요. 이 세계에 린이랑 다른 정령이 있어!
“정말? 무슨 정령인데?”
-아마도 물이요. 불은 없는 거 같아요. 마나 홀도 물의 기운이 강했거든요. 그래도 정령에게 친화적이라 린이에게도 도움이 되었고요!
물의 정령이라니. 예림이가 절로 떠올랐다. 여기서 정령 하나 데리고 갈 수는 없을까. 린이만 봐도 무척이나 도움이 되는데 예림이에게도 마찬가지겠지.
“그래서 원래 세계로 간다면 공간이동은… 쓰지 못할 거 같습니다.”
유독 자신 없는 목소리가 가슴 쓰라렸다. 그런 노아의 모습에 유현이가 한마디 하려는 걸 얼른 막았다. 노아 씨에게 채찍은 충분하다 못해 너무 과하다. 마음 같아서는 뮤로 있는 동안에라도 편히 대우받았으면 싶은데, 진짜 자신이 아니라며 선을 긋는 그가 안타까웠다.
지금보다 훨씬 더 자신감을 가져도 될 텐데. 그럴 자격도, 능력도 있는 사람인데.
“그럼 우선 형님이 원반을 설치하러 가는 게 낫겠지? 여긴 우리한테 맡기고 말이야.”
문현아가 잔을 마저 비우며 말했다.
“란체아까지는 금방이야.”
헬기로 몇 시간 걸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문제는 메드상과 남은 두 곳이었다. 떨구었던 시선을 다시 올리며 노아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역시 아카테스는 포기하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상태로는 어차피 도시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 안타깝긴 하지만 아카테스 시민들은 우선 란체아로 옮기게 하자고. 마나 홀의 이상 현상을 당장 어떻게 할 수도 없으니. 다행히 란체아에 난민을 받을 여력이 있거든.”
그렇게 말하며 문현아가 시그마를 힐끗 쳐다보았다. 나 역시 그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마나 홀에서 몬스터들이 튀어나오는 거, 역시 시그마와 관련이 있겠지. 노리는 상대도 시그마였고.
구운 호박 비슷한 채소의 껍질을 나이프로 섬세하게 도려내고 있던 시그마가 뭐냐는 듯 우리를 마주 봐 왔다. 저 녀석도 식빵 테두리 떼고 먹는 거 아닐까. 먹여 보고 싶다.
“어떻게 생각해, 형님. 쟤 데리고 란체아에 가면 란체아 마나 홀에서도 몬스터가 튀어나올까, 아닐까.”
“굳이 실험해 보고 싶지는 않네요. 아카테스로 충분해요.”
란체아까지 뒤집어지면 엄한 시민들은 어쩌라고. 아무리 진짜가 아니라지만 그 난리 통을 보고 싶진 않다.
“노아 헌터, 쟤 도시 밖 멀리 잠깐 내다 버릴 수 있을까?”
문현아의 말에 시그마가 살짝 뚱해진 표정으로 채소를 입에 넣었다. 골고루 잘 먹네. 유현이도 채소 챙겨 먹여야지. 과일은 없나.
“여기서 반나절 거리까지 가능합니다. 지금 버릴까요?”
“밥은 먹이고 보내요. 이건 단순 실험이니까, 계약을 어기는 건 아니야. 알지?”
“…뮤를 믿을 수 있는 건가.”
“시그마 씨보다는 당연히 믿거든요. 그리고 노아 씨.”
“네.”
“유현이 각인 수정하면서 저도 각인을 받을 수 있을까요.”
“받으실 수야 있지만 유진 씨는 진짜 몸이라고 하셨잖아요. 돌아가서는 수정도 삭제도 못 할 텐데요. 마나 홀은 물론 그럴 기술도 당장은 없으니까요.”
“지울 생각 없습니다.”
유현이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주요 마나 통로인 척추 전체에 새기는 각인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시술 받았으면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