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264
262화 물의 정령 (1)
정리가 끝났을 때, 내 소지 포인트는 천만에 가까워져 있었다. 예림이 곁에서 주워 먹은 게 3분의 1 정도 되고, 나머지는 시그마 덕분이었다. 시그마가 잡은 몬스터들 중 폭탄에 생채기라도 입었다면 포인트를 고스란히 내가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야 당연히 1억 넘겼죠!”
예림이가 뿌듯해하며 말했다. 포인트 두 배 적용 받아서 SS급 몬스터 한 마리당 백만 포인트 넘게 받았으니 1억 찍는 것도 어렵진 않았을 것이다. S급 몬스터의 포인트는 십만 안팎이었지만 그것도 백 마리면 천만이고, 수백 마리쯤 줄줄이 나타났으니까.
바닷속에 몬스터가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우리 동네도 살짝 걱정되네.
물 밖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무엇보다도 마나 보충은 물론 보조에 치유에 순간이동 스킬까지 활용 가능한 노아가 뒤에 버티고 있었던 것이 컸다. 내가 바다 깊이 들어가는 바람에 선생님 스킬이 범위를 벗어나 풀리긴 했지만 SS급 이하 몬스터들만 남았기에 단독 전투로도 충분했다. 협력 가능했으면 더 수월했겠지만.
“그래서 어떻게 된 거예요?”
예림이의 물음에 반사적으로 시그마를 바라보았다. 시그마가 듣는 앞에선 다 털어놓긴 어렵다는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문현이가 나섰다.
“나는 우리 달이랑 주위를 살펴볼게. 그 떡밥 범위 넓다며. 아직 도착 못 한 몬스터들이 있을지도 몰라.”
누나 따라올 거지, 달아. 하며 문현아가 팔로 시그마의 목을 휘감았다. 피할 수도 있었을 텐데 질질 끌려가는 게 싫진 않은 건가. 하긴 쟤가 저런 취급 언제 또 받아 봤겠어. 나름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예림아, 나는 진짜 내 몸으로 여기 들어왔어.”
“…네?”
예림이가 깜짝 놀라며 나를 살펴보았다.
“분명 등급은 더 높은 거 같은데요? 진짜 원래 아저씨 몸이라고요?”
“응, 은혜는 여기 못 가지고 오는 대신 등급이-”
“아저씨!”
화난 듯 버럭 소리치는 것에 무심코 움츠러들고 말았다.
“지금 내 공포 저항 S급이야, 예림아.”
“그럼 은혜도 없이 진짜 몸으로, 어, 이 위험한 곳에 괜찮다면서!”
“대신 목숨도 다섯 개야. 그리고 따로 떨어져 있는 것보다 전쟁터라도 너희들 옆에 붙어 있는 게 훨씬 안전하지.”
내 말에 예림이가 눈썹을 찌푸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당연히 그렇지만요. 그래도 한유현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아저씨를 위험하게 만들었을 리 없으니까.”
“어, 응. 그랬지.”
아카테스 시에서의 일은 역시 말 안 하는 게 낫겠다. 유현이 녀석 안 그래도 힘들었는데 그때 일 또다시 꺼내기도 뭣하고, 예림이가 괜히 걱정할 수도 있고. …목숨 세 개 남은 건 어떻게 설명하지. 그냥 다섯 개가 아니라 세 개라고 말할 걸 그랬나.
“시그마는 이세계 사람인데, 진짜 몸으로 들어온 내가 시그마를 진짜라고 인정했더니 시스템적으로 오류 같은 게 생긴 모양이더라.”
자세히는 잘 모르겠다며 아는 대로 설명을 해 주었다. 성현제가 시스템 쪽에 가 있다는 말도 함께.
“설치해야 하는 원반은 두 개 남았고, 아저씨 목숨은 다섯 개 남았다 이거죠?”
“그-”
“세 개야.”
유현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세 개라니, 무슨 소리야?”
“유현아.”
“박예림은 들을 자격이 있어.”
그렇게 말하고 유현이가 예림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나를 구하려다가 한 번, 형이 죽었다.”
“아저씨가?”
“아니, 솔직히 내가 방심해서 그런 거고 유현이는-”
“아저씨는 우리 일이면 뭐든 자기 탓이잖아요.”
“이번에는 진짜야!”
호소해 보았지만 예림이는 나를 믿어 주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부분만큼은 못 믿겠다며 유현이에게 설명을 재촉했다. 유현이가 아카테스에서의 일을 간략하게 예림이에게 말해 주었다.
알파의 기억 탓에 폭주해 감금되었고, 그런 자신을 내가 구하러 와 주었다고. 그리고 자신을 구한 내가 총에 맞고 말았다고.
“나는 형을 지켜 주지 못했어.”
유현이는 담담했고, 되레 내가 예림이의 눈치를 살폈다. 유현이를 탓하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둘 다 나를 보호하는 일에 약간 경쟁적으로 구니까… 쓴소리 한두 마디는 나올 듯했다. 유현이를 빤히 쳐다보던 예림이가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아, 진짜.”
기분 상한 티가 확 나는 목소리였다.
“저기, 예림아.”
“이번에는 진짜네요.”
“…응?”
“진짜 아저씨가 잘못한 거 맞다고요.”
“그, 그렇… 지?”
“형은 잘못한 거 없어.”
“없긴 뭐가 없어! 왜 거길 혼자 가세요? 바로 옆 도시가 현아 언니네 아니었어요? 노아 오빠도 연락 받으면 도와줬을 거 아니에요! 그쵸?”
“물론이죠.”
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림이가 나도 그렇고요! 하며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응,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없다.
“…미안.”
“제가 아니라 한유현한테 미안하다고 해야지요.”
“미안해, 유현아.”
“아니야, 형. 형은 이미 나한테 사과했었어, 박예림.”
“야, 한유현.”
예림이가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힘들었겠다.”
“…….”
“엄청 아팠을 거고.”
“…아팠, 지.”
“나도 그런 기분 좀 아는데, 숨이 콱 막히더라.”
잠깐 머뭇거리던 유현이가 입을 열었다.
“나도…….”
“아저씨, 귀 막아 줄까?”
“…숨이 안 쉬어졌어. 죽을 거 같았어.”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겠는데 다 아프고, 머릿속도 멍하고. 그렇잖아.”
유현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예림이가 미소 지었다.
“고생했다, 한유현. 안아 줄게.”
와, 우리 예림이가 유현이한테…….
“뭐해요, 아저씨. 동생 안 안아 주고.”
“어? 내가?”
“당연하죠. 내가 안으면 그게 위로예요? 벌칙게임이지. 그것도 우리 둘 다한테.”
그 정도냐. 유현이는 물론이고 노아까지 동의한다는 표정이었다. 방금 분위기 좋았잖아. 딱 둘이 포옹할 타이밍이었는데.
“그래, 유현아. 이리 와.”
그렇다고 못 안아 줄 거야 당연히 없긴 하지만. 동생을 안아서 토닥여 준 뒤 예림이에게도 손짓했다.
“예림이 너도 이리 와.”
예림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성큼 다가왔다. 진짜는 아니라지만 정말 많이 컸네. 몇 년 후면 실제로도 이만큼 자라겠지.
“우리 예림이도 고생 많았어.”
“전 잘 지냈는데요.”
도시 구경시켜 주겠다면서 웃는다. 이번에는 약간 떨어져 서 있는 노아를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슬쩍 시선을 피한다.
“노아 씨.”
“네.”
“빨리 와요.”
혼자 빠지면 쓰나. 우리 노아 씨도 고생 많았지. 수고도 많이 했고. 때마침 문현아와 시그마가 돌아왔다. 전투가 있었던지 새롭게 튄 몬스터의 피가 옷자락에 묻은 것이 보였다.
“현아 씨도 안아 줄까요?”
“응? 프리허그 같은 거 하냐? 자, 한 소장님!”
문현아가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새삼 정말 키가 크시군요.
“현아 씨도 수고 많으셨어요.”
“앞으로도 수고 많이 해야지. 나야 할 수 있는 게 많은 편이 좋은걸.”
수고랄 것도 없다면서 그녀가 미소 지었다. 이어 시그마를 바라보았다. 나와 문현아가 동시에 웃으며 팔을 뻗었다.
“우리 달님.”
“달아, 이리 온.”
“…왜 갑자기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만.”
“시그마 씨도 고생 많이 했잖아요.”
“어떤 능구렁이보다 귀여우니까! 비교대상이 성현제 놈이라 정말 귀엽지 않냐, 쟤.”
확실히 성현제랑 비교하다 보니까 유독 어리게 느껴졌다. 납득하지 못한 표정의 시그마를 끌어안아 주었다.
“참, 아저씨 원래 몸으로 들어온 거면, 그럼 지금 스물다섯 살이겠네요?”
예림이가 기대 어린 표정으로 유현이를 돌아보았다.
“한유현, 몇 살?”
“그러는 박예림 너는.”
“나? 나는 아저씨보다 무려 한 살 더 많아!”
스물여섯 살이구나. 어떠냐는 표정으로 예림이가 입꼬리를 올렸다.
“아저씨보다 누나, 즉 한유현 너보다 누나다!”
“나도 스물여섯 살이다.”
“뭐? 아, 왜 하필 동갑이야! 그래도 내가 너보다 생일 빠르잖아. 난 4월 11일, 넌 12월 25일, 반년 넘게 차이나니 내가 누나지!”
누나라고 불러라 한유현, 하고 외치는 예림이를 유현이가 깨끗이 무시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나를 향해 화살이 겨누어졌다.
“아저씨, 지금은 제가 누나예요.”
“예림아, 난 유현이 형이야. 그러니 따지고 보면 내 동생보다 다섯 살 많은 서른한-”
“그런 게 어딨어요, 스물다섯 살이지. 지금은 아저씨가 한유현 동생이에요.”
“맞아, 한 소장님 계산 이상하게 하네. 몸뚱이 그대로니까 당연히 스물다섯 살 아니냐.”
“현아 씨 저번에는 제 편 들어줘 놓고는!”
“그땐 그게 재밌으니까 입 다문 거지 편든 적은 없다?”
한 소장이 막내네! 하고 웃는 문현아 너머로 시그마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속인 거였구나, C급.”
“아니, 그게. 그보다 노아 씨도 있는데 왜 제가 막냅니까!”
노아 씨도 어려 보이잖아. 원래 몸처럼 십 대까진 아니어도 나랑 별 차이 없을 거 같은데. 갑자기 몰려드는 시선에 노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말했다.
“저는, 뮤는 서른다섯 살이에요, 유진 씨.”
…세상에나. 성현제 뺨치는 동안이었다.
* * *
시그마가 도시에 들어서면 또 아카테스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예림이가 괜찮다며 장담했다. 무엇보다 드로시아의 마나 홀은 바닷속에 있었다. 어차피 몬스터가 나온다면 바닷속에서 나오는 게 상대하기 편하다는 예림이의 말에 우리는 드로시아 시로 향했다.
“도시 안은 따뜻해요. 정령들이 온도를 유지하게 도와주거든요.”
그 말대로 방어벽을 넘어서자 공기가 확 달라졌다. 온도도 습도도 딱 생활하기 편한 정도였다. 정령이 많이 보이면 이런 것도 할 수가 있구나.
-린이도 더 크면 할 수 있어요!
유현이의 소맷자락 아래로 몸을 반쯤 숨긴 채 이린이 말했다.
“불의 정령이니까 온도는 올리는 것만 가능한 거 아냐?”
-형, 린이가 크면 열기 자체를 조절 가능하다고요. 주위의 열기를 빼앗으면 춥게도 만들 수 있죠!
그게 그렇게 되나. 하긴 이곳의 물과 얼음의 정령들도 밖에서 전해져 오는 냉기를 흡수해서 내부 온도를 올리는 거라고 하니까.
-진짜 불의 정령이다!
-꺼내 봐, 꺼내 봐.
-아까 커다랗게 변하는 것도 봤어!
-나도 보고 싶은데!
물과 얼음의 정령들이 주위를 맴돌며 떠들어 대자 린이가 유현이의 옷 속으로 숨어들어 가 버렸다. 예림이가 모여 든 정령들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괴롭히지 말고 저리 가.”
-안 괴롭혀요!
-신기해서 그래요.
-우리도 계약하고 싶어!
이번에는 불의 정령이 부럽다면서 떠들썩했다. 예림이가 정령과 계약해서 밖으로 데리고 갈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모자에 목도리, 장갑, 가디건까지 모두 벗어 인벤토리에 넣었다. 다른 사람들도 외투를 벗었다. 유현이야 더위를 느끼지 않겠지만 봄날 차림의 사람들 속에 겨울옷 입긴 뭣하니까.
드로시아 시의 풍경은 마치 남쪽 휴양지 같았다. 밖에는 한파가 몰아치는 얼어붙은 땅이 펼쳐져 있건만 도시는 알록달록 화사했다. 큰 강이 가로지르는 양쪽으로 선명한 푸른 지붕의 예쁜 집들이 줄을 짓고 꽃들이 만개했다.
“여긴 몬스터들이 적게 나타나거든요.”
바다 쪽에서 더 많이 나타나다 보니 다른 도시에 비해 조경에 신경을 쓰는 편이라고 하였다. 밤마다 피해를 입어서야 집과 주변을 정성들여 꾸밀 마음이 들지도 않을 터였다.
차를 타고 대로를 따라 달려가길 얼마쯤, 드디어 드로시아 방위청이 나타났다.
“…호수네.”
“폭포 멋지구만.”
저걸 폭포라고 할 수 있을까. 커다란 호수 가운데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공중에서. 정령들이 허공에서부터 쏟아져 내리는 폭포에서 미끄럼을 타고, 그 뒤쪽으로 방위청 건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른 곳과 달리 창문도 많고 여기저기 훤히 트인 자연친화적인 모습이었다.
-다리!
-다리!
정령들이 소리치더니 호수를 가로질러 방위청 입구까지 얼음으로 된 다리가 생겨났다. 저쪽에 평범한 다리도 있는데. 얼음 다리를 건너가자 드로시아 가드들과 먼저 와 있었던 메드상, 란체아 가드들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잘 먹고 푹 쉬고,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피스야!”
-끼앙!
하늘 저편에서 피스가 날아왔다. 아이고 내 새끼, 어떻게 찾나 했더니 이렇게 알아서 와 주고. 기특하기도 하지! 날개와 꼬리를 힘차게 파득거리며 피스가 내 품에 폭 안겨들었다.
“우리 피스, 날개도 생겼네! 날개 있는 몬스터에게 들어간 거야? 다친 곳은 없고?”
-끄아웅! 꺄앙!
“그래, 그래. 고생했어. 아빠가 못 찾아가서 미안해.”
이걸로 일행을 모두 찾았다, 라고 하기엔 한 명이 아직 남아 있었다. 소식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실제로 만나지는 못했다. 여태껏 한 번도.
‘세성 길드장은 계속 시스템 쪽에 있어야 하는 건가.’
게다가 어제부터는 퀘스트도 오질 않았다. 괜찮은 거겠지. 피스를 쓰다듬어 주며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원반을 마저 설치하러 가죠.”
남은 건 두 개, 이걸 마저 설치하면 신입으로부터든 성현제로부터든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때 예림이가 고민스런 얼굴로 손을 들었다.
“아저씨, 저는 따라가기가 좀 힘들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