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28
28화 완벽한 양육자
“…저 삼십, 아니 이십대인데요.”
멍하게 말했다. 할아버지… 그것도 나보다 연상에게 할아버지 소리를 듣게 될 줄이야. 내 머리칼 아직 까만데. 피부도 주름 하나 없이 탱탱한데. 대체 내 모습 어디에서 조부님이 떠오른다는 거냐.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제 술 취하신 모습에서 제 조부님을 보았습니다. 할아버지께서도 취하시면 사랑한다는 말씀을 곧잘 하셨거든요.]“아 그래서…….”
라고 해도 역시 이상하잖아! 아니 그럼 썸타던 여자가 취해서 사랑해요, 하면 그때도 할아버지! 할 건가? 아님 할머니?
“그래도 이제는 취하지도 않았고 취할 일도 없을 테니 조부님을 떠올리실 일도 없지 않을까요.”
특히나 사랑한다는 미친 소리는 두 번 다신 할 생각 없었다. …평생 치 다 한 기분이라고, 젠장.
[…그게, 맞는 것이겠지요.]김성한의 목소리에는 답지 않게 미련이 가득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유진 씨가 조부님처럼 느껴집니다.]“아니, 그렇게 말씀하셔도…….”
[안 됩니까?]“…예?”
[다른 사람 앞에서까지 허튼소리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저 안부 전화나 나누고 이따금 찾아뵙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어차피 같은 길드 내에 있으니 번거롭지도 않으실 테고요.]…나보고 할아버지 역할을 대신 해 달라는 소린가. 아니 진짜 이해가 안 가네. 어제 마신 술이 잘못되기라도 했나. 대체 머릿속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기에 술 취한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소리 듣고 자기를 키워 준 할아버지를 떠올… 어…….
‘…잠깐만. 키워 준 할아버지라면.’
양육자였다.
나는 술에 취해 김성한에게 사랑한다는 키워드를 말했다.
김성한은 키워드를 듣고 조부를 떠올렸다.
부모나 친구, 연인도 아닌 자신을 양육해 준 사람을.
그리고 그 양육자를 나에게 겹쳐 보았다.
조각나 있던 퍼즐이 하나씩 맞춰져 간다.
이상하리만치 내게 친근감을 보이던 예림이가 떠올랐다. 자꾸만 달라붙던 유명우도 생각났다.
그리고 스킬이 적용된 순간부터, 나를 과하게 보호하려 들었던 동생의 태도도…….
‘…미친, 이게 뭐야.’
퍼즐은 맞춰졌지만 머릿속은 더더욱 어지러워졌다.
말도 안 된다고 부정하기에는 아귀가 너무 딱 맞아떨어졌다. 유현이부터 김성한까지 이상하게 바뀌어 버린 태도가 전부 설명되는 것이었다.
완벽한 양육자 칭호의, 혹은 내 새끼 스킬의 숨겨진 효과가. 감화된 상대가 나를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훌륭한 양육자로 여기게 만든다, 라는 미친 것이라면.
[한유진 씨? 혹시 싫으시다면…….]“아, 아뇨. 괜찮습니다.”
열이 오른 머리를 부여잡고 대충 얼버무렸다.
“제가 아직 숙취가 남아서… 세수 좀 하러 가야겠습니다.”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십니까? 수액이라도 맞으러 가시지요.]“아뇨, 괜찮아요. 그냥 찬물만 뒤집어쓰면 됩니다.”
[날이 덥기는 하지만 그래도 찬물은—]“괜찮습니다. 정말로 괜찮아요. 저 아직 이십댑니다.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일흔 넘은 노인 대하듯 자꾸 걱정을 해대는 김성한과의 통화를 억지로 끊었다.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나는 연신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일단… 정리를 해 보자.
정리를… 정리…….
‘…시스템 만든 새끼는 대체 뭐 하는 미친놈이야?!’
이게 진짜 게임이었으면 젠장, 모든 플랫폼과 커뮤니티에 모조리 별점 한 개 남기고 A4 스무 장 분량의 악평을 써 줬을 거다.
이게 스킬 효과인지 칭호 효과인지도 모르겠다. 키워드 적용인거 보면 스킬 같은데 효과는 딱 완벽한 양육자라는 칭호에 걸맞고.
아, 몰라. 아무려면 어때.
한숨 몇 번 내쉬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일단… 키워드가 적용되면 나를 자신의 양육자였던 사람처럼 생각하게 되는 건… 맞는 거 같지?’
김성한은 방금 들은 것처럼 그를 키워 준 할아버지를 나한테서 떠올리고 있었다.
유현이의 경우는 원래부터 내가 양육자였기 때문에 나에 대한 녀석의 감정이 더 격해진 모양이었다. 걱정과 불안이 배가 되었다고 치면 다짜고짜 감금하려 들 만도 하지.
아니, 두 배라기에는 너무 얌전한 반응이었다. 지금은 풀어 주기도 했고. 같은 사람이라 배까진 아니고 한 쩜오배쯤 더해진 건가?
‘애가 갑자기 이상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내 스킬인지 칭호인지 때문이었구나. 오해해서 미안하다, 유현아.
유명우는… 허물없이 달라붙는 게 형 같은 건가. 태도가 부모를 대하는 건 확실히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박예림은.
‘…아빠인가.’
아빠일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높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보통 애들은… 특히 여자애라면…….
아냐, 아빠랑 친한 딸도 있잖아. 예림이 아버님께서 유독 가정적이셨을 수도 있지. 어머님이 외벌이 가장이라 아빠 손에 자랐을지도 모른다. 그랬을 거다. 그랬어야 한다.
‘별로… 엄마 대하는 느낌은 아니었잖아?’
그래, 엄마라고 생각했으면 유명우가 달라붙었을 때 징그러워로 끝나지 않고 경찰에 신고 넣었겠지. 아빠니까 징그럽다로 끝난 것일 터였다. 분명하다.
한숨 한번 크게 내쉬고 내 새끼가 최고다 스킬창을 켰다.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 대상이 키워드의 효과를 인지하고 있을 시 적용 불가]걸리는 것은 이 문구였다.
전에는 별생각 없이 넘어갔었는데 새로운 효과를 알고 나니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키워드의 효과를 인지, 라는 것이 상대가 나를 자신의 양육자로 느끼게 된 이유를 알아챈다, 라는 뜻이었나.’
나를 부모쯤으로 여기고 있는 사람에게 사실 네 감정은 스킬에 의한 세뇌란다~ 라고 고백하면 당연히 배신감 느끼겠지. 신뢰를 잃으면 완벽한 양육자의 자격도 없어진다, 뭐 그런 걸까.
‘유현이야 들켜도 괜찮을 거고 유명우도 내가 해 준 거 생각하면 적당히 넘어갈 수 있을 거 같은데.’
박예림과 김성한이 문제로군.
물론 안 들키면 그만이었다. 무려 L급 칭호에 L급 스킬이다. 이상함을 느끼려면 정신력 스탯이 SSS급쯤은 되어야 하겠지. 그러니 내 입만 조심하면 감화 대상자가 키워드의 효과를 인지해 버릴 가능성은 전무했다.
…술 취할 일이야 당연히, 절대로 없을 거고. 잘 때 재갈이라도 물까. 잠꼬대 못 하게.
‘진짜 사람 말고 몬스터한테만 쓰든가 해야지 원. 말이 안 통하면 안전할 거 아니냐.’
사랑한다는 소리 하기도 무섭다. 앞으론 고백도 못 할… 어?
자, 잠깐만. 만약 진짜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면 어떻게 되는 건데.
‘고백하는 순간 오빠가 아빠 되나……?’
심지어 엄마가 될 수도 있었다.
진지하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했더니 상대가 뺨 붉히며 응, 나도 엄마를 사랑해~ 하는 미친미친미친진짜시발미친 이게 뭐야!!!
‘괘, 괜찮아. 사랑한다는 말만 안 하면 돼.’
평생을. 실수로라도, 잠결에도, 무심코도 안 된다.
혀 한 번 잘못 놀려 알콩달콩 살 붙이고 살던 아내가 하루아침에 엄마, 미안해. 하지만 엄마는 엄마잖아요, 하고 집 나가서 새 남자 만나는 무시무시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예비 신랑과 함께 나한테 인사하러 오는 건가. 예식장에서 혼주석에 앉아 달라고 하고? 초에 불도 켜고? 내 아내였던 여자의 남편이 사위랍시고 막 절하고? 어?
뭐지, 이 막장드라마에도 안 나올 스토리는.
식은땀이 흐르다 못해 눈에서까지 나올 것만 같았다.
‘진짜 평생 함께하고 싶은 상대 만나서 이루어지면 그냥 혀 자르자.’
화끈하게 자르고 만다, 망할. 던전 들어갔다가 사고 났다고 하지 뭐. …유현이 놈이 힐러 붙여 주면 어쩌지. 혀 재생 정도야 A급도 할 수 있잖아. 치료 거부하는 미친놈이 되어야 하는 건가.
…아 몰라, 진짜 몰라. 어차피 앞으로 5년간 연애운 제로니까 생각하지 말자.
‘등급 낮은 스킬은 이렇게까지 뭐가 많이 붙어 있진 않았는데…….’
하긴 A급만 되어도 설명에 없는 효과가 두엇은 붙었으니 L급이면 더하겠지. 그래도 무슨 지뢰 찾기도 아니고. 스킬 쓰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이런 중요한 효과는 설명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딱 한 줄만 더 붙여 주면 되잖아. 상대가 스킬 시전자를 양육자로 여기게 됩니다, 처럼 간략하게라도.’
완벽한 양육자, 내 새끼, 성장 버프, 사랑한다, 감화. 나름 힌트는 있었다만 이딴 것으로 어떻게 추리해 내라고. 무슨 셜록 홈즈도 아니고.
당신의 파란 넥타이를 보니 오늘 아침에는 콩수프를 먹었고 최근에 애인과 헤어졌으며 금연을 시작한 왼손잡이로군요 와우!
역시 마수나 키워야지. 안전하고 평화롭게.
생각을 정리하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잠깐, 뭔가 잊어버린 거 같은데.
‘아, 참.’
김성한에게 던전 들어가기 직전에 한 번 찾아와 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스킬 적용되어 버렸으니 성장이나 시켜 줘야지. 그리고… 그 외엔 없지?
숙취도 사라졌건만 골이 띵하게 아파왔다. 신인 헌터 교육도 받아야 하니 슬슬 씻고 나가 봐야겠다. 몇 시였더라. 분명 오전 열 시… 악, 늦었어!
“오후 2시로 바뀌었어.”
허둥지둥 방문을 박차고 나가자 유명우가 주방에서 고개를 빼며 말했다.
“그보다 저 고양이 어젯밤부터 계속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고양이? 피스가?”
“집에 들어올 때 인사불성이라 업혀 왔거든. 그래서 놀란 거 같더라.”
아이고 이런. 하긴 말이 안 통하니까 술 취해서 잠깐 맛 간 거야, 하고 설명해 줄 수도 없었겠지.
얼른 거실로 뛰어갔다. 편안한 제 잠자리가 아닌, 유리문 앞에 몸을 딱 붙이고 웅크린 작은 짐승의 모습이 보였다.
“피스야!”
– 꾸으응, 끄응! 끼앙!
나를 보자마자 피스가 유리를 박박 긁으며 애절하게 낑낑댔다. 그래, 그래. 우리 애기. 걱정 많이 했구나.
얼른 문을 열어 달라붙는 피스를 마주 끌어안아 주었다.
“많이 놀랐지? 괜찮아, 미안해. 앞으로는 그럴 일 없을 거야.”
– 갸르릉
“그래, 그래. 우리 피스.”
내가 또 만취하면 개다, 개.
“자.”
유명우가 컵이 놓인 쟁반을 들고 내게로 다가왔다. 근데 왜 컵이 네 개나 되냐. 담긴 음료 색도 조금씩 다르다.
“뭐냐, 그게.”
“숙취해소 음료. 맨 왼쪽부터 네 동생, 김성한 씨, 박예림 양, 그리고 내가 사 온 거지.”
마음은 고맙지만 필요 없는데.
“보다시피 멀쩡해서 안 마셔도 돼.”
“마신 거 확인할 거라던데.”
“누가?”
“셋 다.”
아니 뭐 이런 걸 확인까지……. 그래, 잘 알지도 못한 채 스킬 쓴 내 잘못이다.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냥 마시기만 하면 되니까, 하고 손을 뻗으려다가 멈췄다.
“어느 거 먼저 마셨는지는 말 안 할 거지?”
“물어보면 대답해 주긴 해야 하는데…….”
유명우가 자신 없이 대답했다. 하긴 니가 뭔 힘이 있어서 거절하겠냐.
보자, 일단 김성한은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동생 놈과 예림이가 문제였다. 이미 한바탕 하기도 했고.
설마 이거 가지고 또 싸울까 싶긴 하지만 혹 모르니까.
짧은 고민 끝에 유현이가 보낸 음료잔부터 들었다. 이럴 땐 역시 제일 센 놈 편드는 게 최고지.
“그런데 너 말이야, 친하게 지낸 형 같은 거 있냐.”
마지막 잔을 비우며 물었다. 스킬 효과에 대한 건 아직 반쯤은 추측이니까 확실하게 확인을 해 둬야 했다.
“형? 없는데? 나이 차 많이 나는 누나들뿐이야.”
…설마 누나인가. 치대는 거 보면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엄마보단 낫지만 누나도 싫어.
“누나들과… 사이좋았어?”
“아니, 전혀.”
휴, 다행이다.
“그럼 부모님과는?”
유명우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잘 지냈으면 내가 노예계약서에 도장 찍을 일까진 없었겠지. 어릴 때 용돈은 많이 받긴 했어. 그땐 집안 사정도 좋았으니까. 그래도 맞벌이라 부모님 얼굴 보기도 힘들었고 누나들은 날 따돌리다가 나중엔 머슴 취급하더라. 지금은 다 시집간 지 오래라 연락도 안 해.”
가족이 아니면 대체 날 누구로 생각하고 있는 거지. 친척? 선생님? 기타 동네 어른?
“음, 혹시 날 보면 떠오르는 사람 없냐?”
그냥 대놓고 물었다. 명우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없는데?”
없다고? 뭐지, 설마 헛짚은 건가.
“혹시 네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거나 유독 의지된다거나 하는 사람은? 한 명쯤은 있을 거 같은데.”
“물론 있지.”
유명우가 조금 쑥스러워하며 말을 이었다.
“유진이 너잖아.”
“…나?”
“그래. 당연히 너지. 너 말고 또 누가 있겠어. 협회에서의 일은 그렇다 쳐도, 조폭들 모여 있는 곳에 구하러 오는 건 혈육이라 해도 망설여질걸? 우리 가족이야 당연히 모른 척했을 테고.”
듣고 보니 맞는 말이긴 했다.
하지만 유명우를 구해 준 것은 키워드 적용 후고 그전에는 몇 마디 말로 달래 준 것뿐이었다. 당연히 양육자 취급받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혹시 적당한 양육자가 없었다면, 효과 적용도 안 되는 건가?
‘생각해 보면 나도 양육자라 할 만한 사람은 없지.’
물론 돌봐 준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유현이나 김성한처럼 애정을 담아 떠올리고 고마워할 만한 상대는 없었다.
아무리 대단한 L급 스킬, 칭호라 해도 없는 걸 억지로 만들어 내서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하겠지. 그럼 유명우는 순수하게 나를 좋아해서 달라붙…….
“갑자기 왜 뒷걸음을 쳐? 아직 숙취가 남은 거야?”
“어? 어, 약간…….”
프라이버시와 정신 건강을 위해 적정거리 유지를 원합니다.
‘그럼 결국 예림이 하나 남은 건가.’
유현이야 정도가 심해졌달 뿐이지 나를 여전히 형으로 여기고 있으니 확인 불가능하고, 예림이만 남았다.
…아빠. 제발 아빠. 믿는다, 예림아. 믿습니다, 가정적이셨을 게 분명한 예림이 아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