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282
280화. 나가 보니 (2)
‘…졸리다.’
하품이 슬쩍 나왔다. 계속 깜박깜박 졸기만 했더니 오히려 더 노곤해지는 느낌이었다. 나가면 바로 호텔로 이동해서 푹 자야지. 시간이 많이 지나진 않았겠지.
‘신입은 어째 연락이 없네.’
뒷수습하느라 바쁜가. 아무튼 자고 싶다. 이것저것 생각할 거리가 많긴 했지만 지금은 머리가 잘 돌아가질 않았다. 재차 하품을 하며 피스의 등에서 내려섰다. 피스가 덩치를 줄였지만 내가 피곤하다는 걸 눈치챘는지 안아 달라 조르지 않고 몸만 살짝 비벼 왔다.
“저어어기, 아저씨.”
예림이가 다가와 내 안색을 살폈다. 너무 걱정하게 만든 것 같아 미안해졌다. 지금은 좀 졸리기만 할 뿐이라고 말하려다가, 예림이가 머뭇거리고 있다는 걸 뒤늦게 눈치챘다. 뭔가 할 말이… 아.
“정령의 알은 무사히 받았어?”
“네!”
예림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가, 다시 목소리를 낮추었다. 내 상태가 안 좋은데 자기가 기뻐하기 미안하다는 기색이 폴폴 났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역시 현아 씨가 막아 준 게 다행이다 싶어졌다.
예림이를 빼놓고 싶진 않지만, 동시에 그런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도 않았다. 아직 어리니까. 어른들의, 그것도 보호자의 불안정한 모습을 애들이 봐서 좋을 건 없지. 그나마 예림이는 S급 헌터지만 평범한 어린애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더더욱 불안에 떨게 된다.
눈치를 살피며 두려움을 삼키는 어린 경험은 없는 편이 훨씬 낫다.
빼놓지도 않고 불안하게 만들지도 않으려면 역시 내가 잘해야겠지. 그래도 이제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도 졌고.
“다행이다, 한번 보자. 여기서도 똑같이 생겼나?”
던전 밖으로 나가면 보는 눈이 많아서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또 기다려야 하니 조급해진 거겠지. 궁금해하며 묻자 예림이가 다시 신나 하며 인벤토리에서 알을 꺼내 들었다. 타원형 작은 알이 예림이의 두 손 위에 감싸듯 놓여졌다. 새파란 색이 마치 물결처럼 일렁이고 있다.
햇살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반짝거리는 것이 물로 이루어진 보석 같다. 정말 예쁘다.
“포인트 다 내줘야 했지만요. 전혀 아깝진 않았어요.”
열심히 모아 놓아서 다행이었다면서 생글생글 웃는다. 예림이의 기대 어린 눈빛 속에서 알을 건네받았다.
[푸른색 알 ? SSS급]알의 설명창은 이린이 태어났던 붉은색 알과 똑같았다.
“신입 녀석, 치사하네. 얻은 아이템 옮겨만 주는 건데도 포인트를 다 빼앗아 가다니.”
“아, 포인트 정산해 주는 공간에 나타난 사람이요, 배구공이 아니었어요.”
“강아지 귀 같은 거 달고 있지 않았어?”
“아뇨. 정장 차림의 언니였어요. 원래라면 이런 식으로 넘겨줄 수 없는 건데 특별히 해 주는 거라면서 포인트를 전부 가져가더라고요.”
“정장 차림의 여자? 누구지.”
전에 나더러 언니라고 했던 패륜아가 누구였더라. 사슴인가? 신입이 바빠서 대신 나오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어떤 정령이 태어났으면 좋겠어?”
“튼튼하고 건강하면 돼요! 강하면 더 좋고요. 정령도 많이 다치면 소멸하기도 하거든요. 제가 잘 지켜 줄 거지만, 그래도요.”
내가 바라는 대로 성장했다는 체인질링의 말이 떠올랐다. 체인질링은 속성 자체가 변화 가능한 거였고 보통은 근본적인 건 바꿀 수 없다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조금쯤은 줄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쓰다듬으면서 튼튼하고 건강하고 강하게 태어나렴, 하면 되려나. 알을 몇 번 매만지곤 일단 인벤토리에 넣었다.
“유현이 너도 포인트 교환 잘했어?”
“응. 스킬로 바꿨어.”
자세히 말해 주진 않았지만 표정을 보니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무기라면 모를까 스킬은 S급 헌터들이 여럿 모인 여기서 대놓고 말할 순 없지.
“그런데 난 시스템 창만 떴어. 정장 차림 여자는 물론 배구공도 없던데.”
“그래? 예림이가 특이 케이스라 직접 나온 건가.”
예림이에 이어 유현이까지 포인트 정산 이야기를 하자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피스도 자기 보란 듯 앞발로 나를 툭툭 치더니.
-끼앙!
날개를 팔랑 펼쳤다. 멸망한 세계에서 썼던 그 스킬이었다.
“피스야! 세상에, 포인트 교환한 거였구나!”
-그르릉, 끼웅
“똑똑하기도 하지. 대단해, 잘했어!”
역시 우리 애는 천재다. 포인트도 알아서 척척 정산 다 하고. 문현아도 스킬로 교환했다고 말했다. 좋은 거라고 웃으면서도 거창이 아쉽기는 한 표정이었다.
“람다 무기들 왜 못 들고 오나 몰라. 덤으로 좀 주지.”
반면에 노아는 어째서인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저도, 스킬이긴 해요.”
그러면서 내가 아닌 유현이 쪽을 힐끗 쳐다보는 게… 혹시 소형화 스킬을 교환한 건가. 물론 소형화 스킬이 전투에는 도움이 안 되겠지만 노아 씨가 바라는 걸, 스스로를 위하는 걸 선택하는 게 최고지.
“나중에 한번 보여 주시겠어요?”
“네…….”
자신 없이 옅게 웃는 게 역시 쓸모없는 스킬을 골랐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단순히 괜찮다고만 해선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 듯하고, 소형화 스킬을 활용할 방법이 뭐가 있을까. 내게 스킬을 보여 주면 함께 고민해 보자고 할까.
“성현제 씨는 어째 조용하시네요. 뭐 안 가지고 왔습니까?”
좋은 거 있으면 나눠 쓰자. 내놓아 보라는 내 말에 성현제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한유진 군이 모두 가지고 가지 않았나.”
“예?”
“전부 내어 주었음에도 모자라다니. 무얼 또 내어 드려야 할지.”
“아니, 잠깐만요. 그게 무슨…….”
난 포인트 정산도 못 했는데? 급히 상태창을 열자 맨 아래 P 표시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게 보였다.
[536,345,700P]…미친. 아니 진짜, 잠깐만, 이게 얼마냐.
“포, 포인트가 왜 이렇게 많아요?”
“파트너 씨 뒷바라지하느라.”
“그동네 이미 나와 버렸는데! 아니, 신입을 탈탈 털면… 근데 왜 저한테 와 있는 겁니까?”
“사냥 성공 보상이라네.”
뭐? 그… 마지막에 성현제를 죽인 거 말인가. 상대를 죽이면 포인트가 나한테로 넘어오는 거였어? 그보다 진짜 미쳤다. 5억이라니, SS급 무기도 교환 가능할 거 같은데. 역시 신입을 어떻게든 꼬시거나 털어서 바꿔먹어야지 이대로 날리기엔 눈물 난다고. 한 일주일은 잠 못 이루고 괴로워할 거다.
이참에 내 인벤토리도 열어 보았다. 아이템의 상당량은 없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헉… 거의 다 있잖아.’
인벤토리가 꽉 찼다. 포인트로 산 쿠키나 폭탄류는 물론이요, 멸망한 세상에서 사거나 받은 아이템도 보였다. 심지어 살쾡이 시리즈도 보였다.
“…혹시 저쪽 세상 물건 그대로 가지고 오신 분?”
“저요!”
예림이만 손을 번쩍 들었다. 정령의 알을 말하는 거겠지. 나만 다 들고 나온 건가? 진짜 몸으로 가서? 아무튼 감사할 일이라 아이템을 꺼내 보려는데.
[현실 적용을 위한 포인트가 필요합니다.]메시지 창이 떴다. 윽, 역시 공짜로는 안 되는구나. 포인트로 구입한 쿠키는 꺼내졌지만 멸망한 세상의 물건은 현실 적용 포인트를 요구했다. 그것도 상당히 많은 포인트를.
일단 넣어 뒀다가 신입과 흥정해 본 뒤 결정해야겠다.
“그럼 나가죠. 다들 피곤할 텐데 푹 쉬고 귀국하자고요.”
귀국 소리를 하니까 얼른 집에 가고 싶어졌다. 한 일주일 정도는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냥 집에서 늘어져 있고 싶다. 맛있는 것도 먹고. 참, 추석도 얼마 안 남았지.
…정말 오랜만에 혼자 보내지 않아도 되겠구나. 추석에 뭘 하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한복 맞출까. 나는 그렇다 쳐도 예림이는 없을 테니까. 아, 노아 씨도 없겠지.
휴식이고 뭐고 바로 비행기 탈까 생각하며 던전 게이트를 통과했다. 게이트를 넘어가자 새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와. 주위가, 폐허네.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다.
“…우리 들어가고 몇 년 지나버렸나 봐요.”
“그 정도로 오래된 흔적은 아닌데? 저기 봐. 저건 고작해야 하루도 안 지났어.”
예림이가 당황한 채 중얼거리고 문현아가 앞으로 나섰다. 가로수의 부러진 부분을 손으로 쓸어 보고는 역시,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축축해.”
“조심하세요, 그 근처에 독액이 튀어 있습니다. 확실히 얼마 안 된 것 같네요.”
“저 부분은 몬스터가 할퀸 흔적이로군. 발톱 길이가 최소 10센티 이상이야. 이족보행에, 세 마리인가.”
“형, 조심해. 남아 있는 놈들이 있을지도 몰라. 저기 파인 땅도 완전히 마르지 않았어. 저 정도면 멀리 가지 못했을 거야.”
아직 경험이 적은 예림이를 제외하고는 재빠르게 상황을 파악해 갔다. 결론은 이 부근에서 몬스터가 대량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상급 몬스터들이.
“분명 저희가 들어올 때 아마테라스 길드 A급 헌터들이 던전 건물에서 대기하기로 했었죠. 그런데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다는 건 보통 사태가 아니라는 뜻일 겁니다.”
우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S급 몬스터들이 튀어나왔고, 아직 뒤처리를 제대로 못했다는 거겠지. 처리가 끝났으면 우릴 맞이해 줄 사람 한 명 정도는 보내 놓았을 테니까.
“휴대폰도… 무사하진 않을 테고요.”
당연히 놓고 들어갔었다. 하지만 보관용 금고도 흔적 하나 없이 사라진 채였다. 저 어딘가에 파묻혀 있겠지만 찾아내 봤자 멀쩡히 작동하긴 힘들겠지.
“…혹시 깜박하고 던전에 지갑 들고 들어가셨던 분?”
다들 조용하다. 응, 지갑도 없네. 던전 밖으로 나오자마자 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 날벼락이람.
“저랑 노아 오빠가 주위를 살펴볼게요.”
예림이가 공중으로 떠오르며 말했다.
“응, 부탁할게. 부탁할게요. 아, 노아 씨는 완전히 용으로 변하지는 마세요. 몬스터로 오해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네. 조심하세요, 유진 씨.”
노아도 날개만 꺼내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두 사람은 양옆으로 향하고 우리는 앞으로 가 보기로 했다. 피스가 다시 덩치를 키워 나를 태워 주었다.
가는 길 내내 건물은 물론이요, 아스팔트 도로도 멀쩡한 곳이 별로 없었다. 덩치 큰 몬스터가 사정없이 짓밟고 지나간 듯했다. 그리고 드문드문.
“…예림이는 보내지 말 걸 그랬나.”
시체도 보였다. 갑자기 몬스터 떼가 튀어나왔다면 당연히 인명 피해도 있다는 뜻인데 왜 미처 생각 못 했지.
“너무 걱정하지 마. 막 각성한 것도 아니고, 박예림도 이런 사태를 예상할 정도는 되니까. 공중이면 지상보다 자세히 보이지도 않을 거고.”
“그야, 그렇지만.”
이 근처는 목조 건물이 많다 보니 죄다 폭삭폭삭 내려앉아 있었다. 멀쩡한 연락망을 찾기란 불가능할 듯 보였다.
“나야 진짜 몸으로 들어가서 이것저것 먹었지만, 다들 며칠 굶게 된 셈 아닌가. 유현아, 배 안 고파?”
“몸 상태는 들어갈 때 그대로야.”
시간이 얼마나 지난거지. 달력이나 시계 같은 거 없나. 가정집으로 보이는 무너진 건물 앞에 피스를 멈추게 했다.
“성현제 씨. 전에 그 자석 좀 써 보세요. 이 집 상대로. 날짜를 알 수 있는 물건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성현제가 내 옆으로 다가와 수색자의 사슬을 꺼냈다.
“돌아왔다는 느낌이 나는군.”
“대체 왜 털실을 썼던 겁니까?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네.”
아무리 사슬이 없다고 해도 말이야. 금빛 사슬이 빙그르 말리고 무너진 건물 위로 전류가 흘렀다. 이어 강력한 전류가 사슬에 내리치고.
탁, 타닥! 탁!
쇠로 된 온갖 물건이 사슬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TV에 선풍기. 오, 휴대폰이다. 어차피 망가져서 켜지지도 않겠지만. 잡동사니 사이로 달력이 하나 보였다. 매일 한 장씩 뜯어내는 달력이다. 마침 고리가 쇠붙이라 끌려 온 모양이었다.
“이틀 지났네요.”
달력 주인이 뜯는 걸 잊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때 예림이가 날아왔다.
“아저씨! 저쪽에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바리케이드도 쳐놓고, 헌터들 같았어요.”
“그래? 수고했어, 예림아.”
신호탄을 쏘아 올려 노아를 부른 뒤 예림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림이가 말한 바리케이드가 나타났다. 헌터들도 있긴 했는데.
“어떻게 된 겁니까?”
다들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A~B급 헌터들로 대다수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채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통역 아이템을 착용하고 묻는 내 말에 헌터가 대답했다.
“갑자기 몬스터가, 전국에서 나타났습니다.”
“전국에서요? 던전이 동시에 터지기라도 한 겁니까?”
“아, 아뇨. 그냥, 그냥 나타났습니다.”
그냥이라니. 설마 해파리 놈이 던전에 침입한 영향 같은 건가? …한국은. 무사한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