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288
286화 포식자 (1)
“…분명 스킬 적용 시간은 30분이라고 했을 텐데.”
우리가 너무 태연하자 시시오 놈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다른 일본 헌터들도 긴장하며 주위를 힐끔거린다. 녹아 버린 대지를 보니 두려워지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SS급 몬스터 다섯 마리를 가볍게 처치한 힘이니 S급 헌터쯤이야 몇이 모이든 상대가 안 된다.
이대로 거짓말이었지~ 하면 어마뜨거라 하고 줄행랑치겠지만 그래서야 득은커녕 실만 생긴다. 내 스킬에 대한 설명이 거짓이었단 걸 밝히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럼 내 인생 배로 피곤해지겠지. 나 노리는 놈들 지금도 많은데 더 늘려서야 되겠냐.
“30분 맞습니다~ 한 치의 거짓 없이 솔직하게 다 말해 드렸지.”
“뭐? 그런데 뭘 믿고 당당한 거냐!”
“내 동생.”
놈들이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그럴 만은 한 게 이쪽은 S급 헌터 한 명뿐이다. 피스가 있긴 하지만 날 지켜야 하니 실제론 전력 외였다. 반면에 저놈들은 시시오라는 강한 S급 헌터에 더해 S급 헌터가 둘이나 더 있었다. 둘 중 한 놈은 예림이와 붙었던 가구였다.
일본의 S급 헌터가 총 다섯인데 그중 셋이다. 그에 더해 A급 헌터도 여섯 명이나 붙은 채였다. 아마 보조와 힐러, 그들을 보호할 방어계겠지.
‘최석원이랑 윤경수 놈 생각나네.’
그때도 나 잡는다고 우르르 몰려왔었지. 리에트가 빠져 준 덕에 성현제가 쉽게 박살 내 버렸지만. 지금은 한 놈 빠질 일 없으니 사실상 그때보다 더 위험한 셈이었다. 유현이를 믿고는 있지만 걱정이 아주 안 될 수는 없는, 그런 상황이다. 실제로 유현이도 시시오 놈이 만만찮을 거라 했으니까. 정확히는 생포하기 귀찮다, 정도였지만.
“커흠! 한유진. 화염 저항 아이템도 준비되어 있으니 괜한 저항은 포기하는 편이 좋을 거다. 동생을 무척이나 아끼지 않나. 순순히 항복한다면 두 사람의 목숨은 보장해 주겠다. 너와 화염뿔사자는 SS급 몬스터에게 살해당했다 발표하고 해연길드장이 비밀을 지키겠다는 계약을 한다면 굳이 피를 볼 생각은 없다!”
“으으음, 미안. 사과할게요.”
“사과라고? 그럼.”
“돼진 줄 알았는데 개새끼였네. 개소리 너~ 무 잘하신다. 멍멍.”
“무, 뭐……!”
“인제 보니 털도 누리끼리한 게 딱 동네 누렁이네. 내가 왜 진작 못 알아봤을까. 미안해요.”
어휴, 요새 눈이 좀 침침해서. 안경이라도 맞춰야겠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생글생글 웃어 줬더니 미친개처럼 으르렁거린다. 일본엔 이런 속담 없나 봐. 삭막한 동네구만.
“하, 좋다! 곱게 데려가려 하였더니 기어이 악수를 선택하는구나!”
시시오 놈이 화를 내며 무기를 꺼내들었다. 거대한 날의 청룡도다. 너무 긁었나.
“형.”
유현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를 돌아보며 배시시 웃는다.
“아마테라스 길드에 S급 도검류, 여럿 있었지?”
“어? 응.”
“내가 좀 가져도 돼?”
“당연히 되지! 애초에 네가 몬스터 거의 다 잡았잖냐. 원하는 거 있으면 얼마든지 가져가.”
“응. 고마워.”
그런데 왜 갑자기… 아, 설마.
‘홍콩에서 썼던 그 스킬.’
나는 보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었지만 궁금해서 어떤 건지 물어봤었다. 그걸 쓰려는 건가. 심지어 홍콩에서처럼 A급 무기가 아닌 S급으로.
‘…끝났네.’
그럼 못 이긴다. 당연히 유현이가 아니라 저 일본 놈들이.
“건방진 애송아! 네놈 형과 작별 인사나 해둬라!”
“와, 말만 들으면 일대일 정정당당한 대결인 줄. 개떼처럼 몰려온 주제에.”
“시, 시끄러! 내 손에 떨어지면 그놈의 입버릇 확실하게 고쳐 주마!”
“여기 개 주인 없습니까? 뉘 집 갠지 너무 짖어대네. 덩치는 커다래 가지고 겁이 많나 봐.”
우르르 몰려다니며 짖어대는 게 뻔할 뻔자지. 시시오 놈이 유현이가 아니라 나한테 덤벼들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낚여 주면 나야 고맙지. 어차피 피스가 더 빠를 테고 그사이 유현이가 남은 놈들 편하게 처리하고.
하지만 길드장은 길드장인지 이만 으득 갈고 말았다. 청룡도의 대 끝이 땅을 쿵, 찍고 시시오의 스킬이 발동되었다. 둥글게, 놈의 영역이 펼쳐진다.
손이 심심하네. 마이크나 확성기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아, 잠시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아마테라스 길드장 시시오 씨, 좋은 스킬을 가지고 계시더군요. 일정 영역 내에 방어력 상승, 적의 속도와 방어력 저하. 마지막으로 땅을 움직여 적의 발목을 단단히 붙잡는 함정 효과까지!”
“이! 이 자식이!”
내가 열심히 기억을 되새겨서 떠올린 거다. 종합 랭킹 10위 내에도 못 들어간 놈을 기억해 줘서 감사하다고 해야지.
“스킬 이름이, 뚱돼지 진흙탕이던가?”
“사자의 영역선포다!”
“뚱돼지 진흙탕이라고 쓰고 사자 어쩌구로 읽습니다, 뭐 그런 거?”
솔직히 진짜 스킬 이름 그거 아닌 거 같은데. 자기가 멋대로 붙인 거 아니냐. 찌를 때마다 팔딱이니 타격감 참 좋네.
그사이 유현이의 주위로 다양한 무기가 내리꽂혔다. A급 도검류에 더해.
‘…저건 너무 아깝지 않나.’
흰빛 도는 매끄러운 날의 S급 장검이 푹, 땅에 박혀 세워졌다. 그 옆의 단검도 S급이다. 예림이의 창은 제작한 거니 제외하고, 국내에서 나온 S급 무기가 고작 열다섯 개였다. 저렇게 작은 단검은 실질적 무기로 치지 않고 보조로 분류되니 열다섯 개에 포함은 안 되지만, 그래도 귀하긴 마찬가지였다.
이어 커다란 송곳처럼 생긴 런들 대거까지 단검 옆에 자리했다. 저것도 S급이었다. 호신용으로 가지지 않을래? 하고 나한테 보여 준 적 있는 것이었지. 아깝다고 거절했지만.
‘장검은 도로 넣으라고 하고 싶다.’
아냐, S급 무기 많아. 아마테라스 길드 창고가 내거다. 괜찮다.
땅에 박힌 무기들이 가볍게 울렸다. 뭘 하려는 건지, 하고 시시오를 비롯한 일본 헌터들이 유현이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다 꺼내 늘어놓아 봤자 손은 고작해야 두 개!”
시시오의 자신만만한 외침과 함께 다른 두 일본 S급 헌터가 제각각 무기를 고쳐 쥐었다. 저놈들 작전이야 뻔했다. 두 S급 헌터가 유현이를 시시오의 영역 안으로 몰아넣을 생각이겠지. 영역은 상당히 넓었고 그 안에 들어서게만 하면 유리해질 테니.
내 쪽을 한 번 돌아본 유현이가 손끝을 가볍게 움직였다. 불길이 가볍게 일고, 주위의 도검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무, 무슨 짓을 하는 거지?”
가구가 당황하며 중얼거렸다. 다른 일본 헌터들 또한 놀란 기색이었다. 귀한 상급 무기들이 녹고 있다. S급 무기까지 포함해서. 적이 아니었더라면 어떤 헌터든 미쳤냐며 기겁해 말릴 광경이었다.
한유현의 특수 보조 스킬, 도검 포식자.
말 그대로 도검류 무기를 불길로 삼켜 녹여 버리는 스킬이었다.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나온 도검이라면 그 어떤 등급이든 녹여 버릴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쓸모없다 못해 절대 써선 안 되는 스킬이겠지만.
‘스킬이 적용된 무기는 그 등급이 한 단계 상승.’
즉, A급 무기는 S급이, S급 무기는 SS급이 된다는 것이었다.
치이이익! 쇳물이 식었다가 다시 끓어오르기를 반복했다. 녹아내린 무기들이 유현이의 주위를 둥글게 감싸듯 흐느적거렸다. 새빨갛게 열과 빛을 뿌리고 있다.
S급 무기 셋과 A급 무기 여섯 개가 녹아 들어간 붉은 선. 그것이 주인의 의지에 따라 꾸물텅거리며 형태를 바꾸었다. 그중 일부가 가느다란 장검의 모습으로 변하고, 일반인은 근처에도 갈 수 없을 정도로 뜨겁게 달아오른 검을 하얀 손이 가볍게 쥐었다.
SS급 검. 다른 무기들의 능력치가 스며들어 실질적인 능력치는 더욱 뛰어날, 현존하는 최강의 무기.
S급은 물론이고 A급조차 1회용으로 소모한다는 것은 낭비가 너무 컸기에 제대로 써본 적 없는 스킬이라 하였다. 회귀 전 랭킹전에서 본 적 없는 것도 그 탓이었겠지. 그래서 그때도, 나는 스킬명만 보고 넘겼고. …유현이는 사용했었을까. 그때, 무슨 무기를 가지고 있었지. 마지막에는 그 손에.
혀끝을 깨물었다. 괜한 생각 말자.
검을 쥐고 유현이가 단숨에 땅을 박찼다. 피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그대로 곧장 시시오의 스킬 범위 내로 뛰어들었다.
“제정신인가?!”
놈들 중 하나가 외쳤다. 억지로 끌어들일 셈이었는데 설마 제 발로 들어올 줄은 몰랐다는 표정들이다. 시시오 역시 당황했지만 그래도 일본 최강이랍시고 재빠르게 전투태세를 잡는다. 땅이 들썩거렸다. 유현이의 발목을 잡아챌 생각이겠지만.
“푸른 버들잎.”
이미 알고 있는 스킬에 걸려드는 멍청한 짓을 할 리 있을까. 잎이 흩날리며 이내 불타올랐다. 불꽃을 밟으며 유현이가 순식간에 시시오의 앞으로 치달았다. 속도 저하를 받았을 것임에도 예장 덕분에 순간적인 움직임은 평소와 같이 빨랐다. 사실상 근접 상태의 속도에 대해서는 페널티가 거의 없는 것이었다.
“한 방이면 나가떨어질 놈이!”
그러나 방어력 저하는 남아 있다. 시시오가 청룡도를 풍차처럼 휘둘렀다. 흡사 둥근 방패 같다. 함부로 손을 대면 날에 잘리거나 대에 두들겨 맞게 될 것이다. 누구든 흠칫할 만한 기세였지만 한유현은 덤벼들던 속도에 더해 버들잎을 한쪽 발로 밟고는 전신을 크게 회전시켰다.
콰가각─!
파편이 튀었다. 청룡도의 파편이었다. 붉게 달아오른 검이 회전력을 더해 청룡도를 내려치고, 그대로 부숴 버린 것이다. 힘과 힘이라면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아니, 시시오 쪽이 유리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S급 무기로는 SS급, 그중에서도 최상급이라 할 수 있는 검의 날을 버틸 수 없었다.
“크억!”
산산이 쪼개 버린 청룡도의 파펀 사이를 뚫고 유현이가 춤추듯 다시 몸을 빙그르 돌리며 시시오의 몸통을 발로 가격했다. 무기를 잃어 순간 무방비해진 시시오가 뒤로 쭉 밀려난다.
“시시오 님!”
두 S급 헌터가 유현이를 향해 덤벼들고 뒤쪽의 보조, 힐러들도 스킬을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한유현은 그것을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다.
검을 만들고도 남은 붉은 쇳물이 허공에서 움직였다. 차르륵, 십수 개의 가느다란 침이 만들어지고 유현이의 손이 그것을 재빠르게 거두었다가 그대로 내던졌다.
“막아!”
대기하고 있던 방어계 헌터들이 나섰다. A급이라지만 스킬을 동원하면 S급 헌터의 공격도 막을 수 있다. 심지어 가는 침을 던진 정도라면야. 두 헌터가 자신만만하게 방패를 들어 올리며 스킬을 쓰고.
“커억!”
“헉!”
날아간 침이 그대로 방패를 꿰뚫었다. 정확히는, 녹였다. 침은 가느다랬지만, 사방을 녹이고 태워 뚫린 구멍은 어린애 주먹만 했다. 스킬을 적용시킨 방패가 그 모양인데 당연히 사람이 무사할 리 없었다.
방어계 헌터들이 픽픽 쓰러지고 그 뒤에 숨어 있던 보조, 힐러들 또한 같은 꼴이 되었다.
“죽어라!”
유현이가 침을 날린 직후, 가구 놈이 검격을 쏘아 보냈다. 공기를 가르며 날아드는 공격을 예장을 걸친 팔뚝이 강하게 쳐내 막았다. 그 모습에 가구의 눈이 커졌다.
“방어력이, 분명…….”
약화되었으니 팔이 깊게 잘리는 상처를 입었어야 맞다. 나도 잠깐 의아해했다가.
‘그 풍뎅이 놈!’
풍뎅이의 폭발 연기를 떠올렸다. 천둥새의 예장에는 공격을 받을수록 방어력이 중첩 상승하는 효과도 있었다. 그때 폭발이 몇 번이나 일어났더라. 닿을 때마다, 연속으로 계속 터져 나갔으니 지금 예장의 방어력 중첩은 최대치일 게 틀림없었다.
최대 중첩 시 지속시간 한 시간. 다시 공격받을 때마다 지속시간이 십 분씩 늘어난다.
결국 시시오의 진흙탕은 유현이에게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셈이었다. 땅의 함정은 버들잎으로, 속도 저하와 방어력 저하는 예장으로 모두 커버 가능했다.
‘곧장 뛰어들 만했네.’
자신의 공격이 먹히지 않는 것에 잠깐 멈칫한 가구 놈에게로 유현이가 돌격했다. 주위의 공기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스킬을 썼는지 아지랑이가 일어났지만 유현이에게 통할 턱이 없었다. 예림이 때와는 달리 피부색 하나 변하지 않고 그대로 깊게 검을 휘두른다.
캉! 검과 검이 맞부딪치고 이내, 가구 놈의 검이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유현이의 검이 비스듬히 방향을 틀며 상대의 팔을 그었다. 반토막 난 검을 들고 있던 팔이 땅으로 뚝 떨어진다.
“으아악!”
“젠장, 가쿠토!”
다른 S급 헌터가 으르렁거리며 주먹을 휘둘렀다. 너클을 낀 주먹이 날카롭게 공기를 갈랐지만 한유현은 이미 그 자리를 피한 뒤였다. 자신을 쫓아오는 S급 헌터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새로 창을 꺼내드는 시시오를 향해 움직인다. 그런 유현이의 뒤로 불길이 확 일었다. S급 헌터가 반사적으로 물러서는 사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유현이가 시시오에게 검을 휘둘렀다.
“그 검은, 큭! 대체!”
창이 또다시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잘려 나갔다. 막을 수 없으니 피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검과 맞부딪쳐선 안 되니 크기가 큰 무기는 오히려 불리하다. 뒤로 물러나 검날을 피하며 시시오가 나이프 한 쌍을 양손에 쥐었다.
헌터 경력 외에도 오랜 기간 격투술을 단련했는지 시시오의 움직임은 생각 이상으로 능숙했다. 굶주린 짐승처럼 사납게 틈을 파고 들어오다가 노련하게 몸을 빼내길 반복한다. 하지만 상대의 공격을 무조건 피하기만 해야 하기에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유현이는.
“크윽!”
장검을 메인으로 두고 다른 쪽 손의 무기는 수시로 변형시켰다. 긴 창이 되어 찌르기도 하고 휘어지는 연검이 되어 예상하기 힘들게 할퀴고 들어오는가 하면.
휘리릭─ 뜨겁게 달아오른 강선으로 변해 시시오의 발목을 휘감았다. 유현이가 강선을 잡고 높게 뛰어올랐다. 시시오가 당겨지는 힘을 억지로 버티며 나이프로 강선을 내리쳤지만 역시나 부러지는 건 그의 무기였다.
시시오의 발목을 잡아챈 그대로 유현이가 장검을 등 뒤쪽으로 강하게 내던졌다. 콱! 부딪치는 소리에 이어 살과 뼈가 잘려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길을 뚫고 유현이를 공격하려던 S급 헌터였다. 제 무기로 급히 날아드는 검을 막았지만, 무기는 물론 몸뚱이까지 그대로 꿰뚫려 버린 것이었다.
“정말, 큭, 터무니가 없군!”
시시오가 기가 막힌다는 듯 외쳤다. 일본 S급 헌터를 꿰뚫었던 검이 액화하여 스르르, 제 주인의 손으로 돌아가 다시 검으로 변형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냉랭한 시선에 시시오가 힘없이 웃었다. 패배는 예상치도 못했다는 얼굴이다.
검날을 앞세운 채 유현이가 아래로 뛰어내렸다. 지면에 닿을 듯 낮은 버들잎을 밟고, 불길로 땅을 녹이며 시시오를 향해 검을 찔러든다. 시시오가 아슬아슬하게 칼날을 피하며 포기하지 않고 나이프를 휘두르려 했지만.
“윽!”
강선에 묶인 발목이 움직이지 않았다. 강선의 반대쪽 끝이 어느새 땅속 깊이 파묻혀 버린 것이었다. 그 스스로의 열기에 더해 유현이의 화염이 땅을 깊게 파고들게 만들곤, 바위 같은 것에 박히게까지 한 모양이었다.
흙을 파헤치며 끌려 나오던 강선이 멈춰 버리고 시시오의 움직임 또한 흐름을 잃고 말았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유현이의 무릎이 놈의 명치를 직격했다. 눌린 신음 소리와 함께 반격하려던 나이프가 장검에 맥없이 박살 나고.
“크아악!”
나이프를 쥔 손등까지 길게 갈라 버렸다. 검이 빙그르 방향을 바꾸고 시시오의 정강이를 내리찍는다. 이어 다른 쪽 다리에도 창이 내리꽂혔다.
“크억, 컥…….”
바닥에 털푸덕 주저앉은 시시오를 유현이가 강하게 걷어찼다. 완전히 쓰러진 놈의 목젖을 발로 지그시 내리눌렀다.
“내 형이다.”
“크으, 큭.”
“내 기승수고.”
감히 어딜 넘보느냐는 듯 목을 짓밟는 발에 힘이 가해졌다.
“유현아, 죽이진 마라! 갚아야 할 빚이 아주 많은 분이셔.”
앞으로 열심히 아이템 모아서 바쳐 주셔야 할 귀한 분이시다. 보자, 계약서 어떻게 작성할까.
– 형!
그때 작은 목소리가 내 목덜미 근처에서 들려왔다.
“리─”
– 쉿! 유현이 듣겠어요.
어느새 내게 온 이린이 조그맣게 속삭였다.
– 듣기만 해요, 형.
…갑자기 무슨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