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301
299화 두 명의 차이점 (1)
땅이 질척거렸다. 크고 작은 늪이 눅진한 송진 냄새 같은 것을 흘려낸다. 늪은 크고 넓을수록 색이 옅고 작을수록 짙어 조그만 것은 타르 구덩이가 떠올랐다. 하급 던전인 만큼 늪에 독이나 기타 유독물질은 스미지 않았다. 오히려 깨끗하고 질도 좋은 진흙이라 제법 비싸게 팔렸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래도 진흙탕은 진흙탕이라 발도 쑥쑥 빠지고 걷기 불편하고 옷도 더러워지기 십상이었다. 그 와중에 몬스터들이 첨벙거리며 덤벼들었으니 공략을 끝내고 나면 너 나 할 것 없이 뻘밭에 뒹군 모양새가 되곤 했지만.
유현이의 옷자락에는 흙물 한 방울 튀지 않았다.
-꾸웩!
-구웩!
큼직한 두꺼비들이 요란하게 꽥꽥대는 위로 버들잎이 흩날렸다. 늪에 닿을 듯 낮게 깔린 잎새를 부츠 끝이 가볍게 딛는다. 마치 수면을 미끄러져 나가는 것만 같다. 두 다리 푹푹 빠지며 허우적거릴 일 따위 전혀 없다.
카가각, 단단한 비늘과 비늘이 서로 부딪치는 듯한 소리를 내며 군림자의 검이 제 모습을 변형시켰다. 매끄럽게 새카맣던 검신에 비늘 모양의 균열이 생긴다. 스킬 이름 그대로 가늘고 기다란 파충류의 꼬리 같다.
순식간에 길게 늘어난 검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휘몰아쳤다. 그 여파만으로 늪이 일렁이고 꾸역꾸역 모여들었던 두꺼비들이 날카로운 검날에 맥없이 잘려 나간다. 유현이가 팔을 크게 휘두르며 채찍과도 같은 연검을 거두었다. 차르륵, 흑검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연습 많이 해야겠다.”
내 말에 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작이 자꾸 커져. 손목 스냅 정도로도 방향 전환이 가능해야 하는데, 지금 상태로는 내가 어디로 휘두를지 금방 눈치채 버릴걸.”
“단숨에 적응하긴 쉽지 않겠지. 심지어 길이 조절도 가능한 거잖아.”
5미터로 정해진 게 아니라 자유롭게 변형이 가능했다. 즉, 모든 길이에 맞춰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안 그래도 쓰기 어려운 종류의 검이다. 날은 달렸지만 여느 연검보다는 채찍에 더 가까운 유연성을 지니고 있으니 어설프게 휘둘렀다간 제 몸뚱이가 너덜너덜해지고 말 것이다.
“여기 몬스터들 상대론 마비 스킬은 확인도 못 해 보겠고.”
“살짝 스치기만 해도 죽어 나가니까. 어차피 등급에 따라 효과도 달라지잖아. S급 몬스터나 헌터 상대로 시험해 봐야지.”
내 말에 유현이의 시선이 나를 태우고 있는 피스에게 가 닿았다. 무슨 낌새를 챈 건지 피스가 나직이 으르렁거렸다.
“몬스터보다는 스킬 적용 상태를 정확하게 말로 설명해 줄 수 있는 헌터가 좋겠지.”
“방어계인 성한 씨에게 부탁해 봐. 참, 스킬은 어떤 거 샀냐?”
“광역 보조계.”
“응? 보조계?”
유현이가 버들잎을 디디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나마 마른 땅에 내려선다.
“화 속성 공격 스킬은 저렴하긴 해도 더 필요하진 않을 거 같아서. 내 제어력이 늘어나 해당 스킬 없어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기도 하고.”
하긴 화염 자체를 정교하게 다룰 수 있다면 자잘한 속성 공격계 스킬은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불을 화살처럼 쏜다거나 무기화시킨다거나 무기에 깃들인다거나 하는 거 다 가능하지. 예림이도 속성 관련 공격계 스킬은 사실상 더 필요하지 않을 터였다. 특수한 보조 효과라도 덧붙여진다면 모를까.
“다른 공격계 스킬도 별로 내키지 않았어. 등급 대비 포인트가 많이 들어가기도 했지만 스킬에 따른다는 것부터가 거슬려서. 보조계라면 모를까, 내 몸을 직접 움직이는 거잖아. 최근엔 그게 좀… 기분 나쁘게 느껴져.”
동생이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하긴 각성하면서 얻는 스킬이야 자신의 원래 자질이지만 포인트로 구매하는 건 아니니까. 활에 손 한 번 안 대어 봤는데 스킬 구매했다고 하루아침에 명사수가 되어 버리면 기분이 이상할 것이다. 이게 진짜 내 능력이라고 할 수 있나, 싶기도 할 거고.
거저 얻는 능력이 좋기도 하겠지만 유현이처럼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 그것도 스킬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는 중이라면 더더욱 거슬리지 싶었다.
“그래, 보조계 좋지. 항상 보조계 헌터들 달고 싸울 수는 없으니까. 치유계는 없었어?”
“있긴 했는데 포인트를 너무 많이 요구해서. 내 적성이 아닌가 봐.”
아닌 것처럼 보이긴 했다. 어릴 때 장래희망은 의사였다곤 하지만 지금은 음, 불로 소독은 가능하겠지.
“광역이면 예림이나 시시오와 비슷한 스킬인가. 어떤 건데? S급?”
“아니, SS급이야. 녹아내린 마지막 문.”
SS급 스킬이라니, 포인트 장난 아니게 요구했을 텐데. 스킬명을 보니 화염계인가? 그럼 적성에 맞아서 할인 많이 들어갔을지도. 유현이에게 물어보니 확실히 등급치곤 저렴했다.
“그래도 남은 포인트 거의 다 써야 했지만.”
“잘했어! 남아 봤자 쓸 곳도 없는데 딱 맞게 쓰는 게 낫지. 어떤 효과인데?”
“범위 내 화 속성 한정 스킬 효과 20% 상승, 지정 상대의 화 속성 외의 속성 스킬 효과 20% 하락, 범위 내 지형지물을 녹이거나 불태울 시 스탯 누적 상승, 마지막으로 금속 및 광물의 방어력을 하락시켜.”
진짜 화염 스킬 쓰라고 밀어주는 광역 보조계구나. 상대의 속성 스킬에 한해서만 효과가 저하되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냐. 거기에 스탯 누적 상승도 붙었다. 주변 녹이거나 불태우는 건 전투 중에 자연스럽게 적용될 테니 자동 상승이나 마찬가지다. 마지막의 금속과 광물 방어력 하락도 상당히 좋았다. 보통 저런 껍데기 가진 몬스터가 방어력이 유독 높으니까.
“엄청 좋은데? 그 정도면 너랑 안 맞는 속성 던전도 훨씬 쉽게 공략할 수 있겠다.”
“응. 내가 봐도 포인트 내 스킬 중에선 제일 좋은 거 같았어.”
“잘 골랐네, 진짜! 근데 왜 일본에선 안 썼냐?”
“쓸 필요까지 없었으니까. 게다가 사람 상대로 사용하면 스킬 능력을 들키잖아.”
하긴 그렇지. 몬스터는 말을 못 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런 영역 지정 보조계 스킬이라면…….
“네 광역 보조 스킬로 다른 광역 보조 스킬 무효화할 수 있어.”
“무효화?”
유현이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생전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다. 그럴 만도 한 게 광역 보조 스킬은 드문 데다가 무효화시키는 게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라. 랭킹전도 3회 차에서나 처음 알려졌지.
“그냥 쓰면 서로 중첩되고 끝나는데 일부러 스킬의 마력을 부딪치고 섞이게 만들면 상호 무효화 되고 만다나 봐. 마력 제어 능력이 아주 뛰어나야만 가능하고.”
“아… 그러고 보니 공격 스킬끼리도 극히 드물게 서로 맞부딪치면서 아예 무효화되는 경우가 있어.”
“이론적으론 모든 스킬이 같은 종류의 스킬로 무효화 가능하다지만 일부러 그러긴 불가능에 가깝대. 다만 광역 보조 스킬은 뭐라더라, 기본적으로 안정화된 구조고 일종의 진법 같은 것과 비슷해서 의도적으로 무효화시키는 게 가능하다던가.”
자세히는 기억 안 난다. 아무튼 더럽게 어려워서 예림이에게도 굳이 말해 주지 않았었다. 마땅한 연습 상대도 없으니.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내 말에 유현이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림이와 같이 연습해 봐. 웬만하면 무효화보단 그냥 중첩으로 쓰는 게 낫겠지만 상대 스킬이 너무 좋으면 상호 무효화가 더 좋잖아. 실력만 되면 한 등급 높은 스킬도 무효화할 수 있다더라.”
“응, 박예림에게 말해 볼게. 몬스터가 너무 약해서 더는 검을 시험해 볼 필요는 없을 듯하고 한 번에 처리할 테니까, 은혜 쓰고 있지?”
“어. 이젠 웬만해선 끄떡없어. 명우가 새 스킬 생긴 거 확인해 줬는데 SS급 수준이면 일주일 내내 보호 가능하다더라.”
은혜에게 새로 생긴 스킬, 어린 마나의 샘. 마나 홀처럼 무한히 마나를 퍼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샘이라는 단위처럼 한계는 있었다.
S급 수준이면 한 달, SS급이면 일주일, SSS급이면 24시간. L급 이상은 정확하진 않지만 반나절 정도에 신화급도 한 시간 정도는 유지 가능할 듯싶다고 했다. 하지만 신화급으로 오래 썼다간 샘 자체에 타격이 갈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였다.
초월자가 끼어들지 않는 한 SS급 정도로도 충분하니 사실상 시간제한이 사라진 것과 다름없었다. 거기에 나 또한 마나 포션과 작별할 수 있었다.
“신경 쓰지 말고 확 쓸어버려.”
“응. 얼른 나가자.”
유현이가 웃으며 몸을 돌렸다. 푸른 버들잎이 다시금 늪지대 위로 펼쳐졌다. 유현이의 모습이 순식간에 멀어졌다. 검을 꺼내는 대신 불길이 발끝에서부터 휘감고 올라온다. 붉은색의 평범한 불꽃이 검푸른 빛으로 물들어 간다.
-꾸에엑!
유독 큼직한 두꺼비가 펄쩍 뛰었다. 흙탕물이 높게 튀어 올랐지만 유현이에게는 조금도 닿지 못했다. 불길이 순식간에 흙탕물을 삼키고 퍼져 나간다. 늪이 끓어오르고 우거진 나무와 덤불이 불타올랐다.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느릿하게 눈을 깜박였다. 이제 저 불길이 완전히 검게 물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여전히 메시지는 없네.’
혹시나 싶었지만 신입으로부터 메시지가 전해 오는 일은 없었다. 체인질링의 보호가 시스템의 간섭마저 막아 버린 것일까. 그렇다면 언제 다시 연락이 가능해질지도 모를 판이었다.
…유현이에게 사실을 털어놓는 것도.
‘미뤄져서 다행인 게 아닌데.’
언제까지 미루려고. 지금 던전을 벗어나면, 또 언제. 아니, 애초에 말하기로 했잖아. 신입이 뭐라고 하든 유현이한테만큼은. 동생한테는 어떤 문제가 생기든 말할 거라고 마음먹었는데, 신입과 만날 수 있든 없든 무슨 상관일까.
나는 말하기로 했다.
열기에 휩싸인 늪이 빠르게 메말라 갔다. 피스가 날개를 펼치고 가볍게 공중으로 떠올랐다. 중앙의 가장 큰 늪에서 보스 몬스터인 악어가 나타났지만 이내 불길에 삼켜지고 말았다. 늪지대가 마른 황무지로 뒤바뀌고 게이트가 나타났다. 불길이 사그라지는 것을 본 피스가 다시 땅으로 내려섰다.
“끝났어, 형.”
유현이가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며 피스의 등에서 내려섰다. 다리가 비틀거렸다. 확실하게, 크게 절룩였다.
“형!”
-크흥
동생의 얼굴이 순식간에 걱정으로 가득해졌다. 피스 또한 괜찮냐는 듯 나를 돌아보았다.
“진짜 괜찮은 거 맞아? 계속 같은 다리였잖아!”
“유현아.”
“병원 가서 검사받자. 다친 것도 아닌데 아픈 거면 더-”
“다쳤었어.”
유현이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러곤 이내 사나워졌다.
“대체 언제. 누구야.”
“3년 후에.”
“…뭐?”
“3년까진 아닌가. 정확히는 2년하고… 아무튼 몇 년 뒤야.”
당황해하는 동생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목 안쪽이 따끔거렸다.
“꽤 크게 다쳤었거든. 그래서 아물고 나서도 절게 되었고, 지금은 멀쩡해.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까. 그런데 머리가 기억해서인가, 좀 아프기도 하고 절기도 하고.”
“무슨, 말이야. 그게…….”
“…5년 후였어.”
그 말을 내뱉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거뭇하게 타고 그을린 땅이 보였다. 내 속도 비슷하지 싶었다.
“말하지 마.”
“…유현아.”
“힘들게 꺼내야 하는 거라면 듣고 싶지 않아.”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현이가 듣길 거부하자 오히려 더 입이 움직였다.
“꺼내놓아야 하는 거야. 계속 품고만 있으면 썩어 버릴걸.”
“그럼, 날 위한 이야기라면 듣지 않을래. 들은 걸로 할게. 하지만 형을 위한 이야기라면 말해 줘.”
나를 위한 이야기, 라. 찬찬히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해 보았다.
“내가 숨기는 일에 대해 알고 싶지?”
“응. 하지만 몰라도 돼. 전부 말해 주지 않아도 괜찮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가, 나를 위해서 가장 말하고 싶은 건.
“유현이 네가, 나를 구하고 죽었어.”
다른 모든 것보다도.
“…죽었다고, 망할 놈아.”
눈시울이 절로 뜨거워졌다. 목이 멨지만 말문이 막히지는 않았다. 오히려 목소리가 더 커졌다.
“함정이었는데, 기어이 들어와서는! 너 말이야, 너. 5년 뒤에는, 그때는 해연이 최고였다고. 네가, 진짜, 헌터 중에선 제일 잘나갔는데. 그런데 그렇게 죽어 버리고!”
“형.”
“네가, 죽어 버리고. 그리고 아이템이 나왔는데. 소원석이라고, 뭐든 들어준댔는데, 근데 죽은 사람은 못 살린다는 거야…….”
패륜아들이 날 속인 거였지만. 유현이의 옷자락을 붙잡은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그래서 시간을 되돌렸다. 기억나? 해연에, 각성 브로커 만나려다 잡혀 왔던 날. 그때, 그때로.”
“응. 당연히 기억하고 있어.”
“내가, 특이한 스킬 가지고 있고, 헌터와 몬스터에 대해 잘 알고 있고, 패륜아들이 내게 접촉해 오고, 그런 거 다 회귀해서야. 과거로 돌아와서, 그래서. 다 유현이 네가, 네 덕분에…….”
순간 숨이 꽉 막혔다. 하지만 그 한유현은, 동생은, 이곳에 없다. 혀가 굳었다. 더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얼어붙은 눈밭에 내던져진 듯 전신이 싸늘하게 식었다.
가늘게 떨며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흐린 시야 속에 유현이가 미소 짓고 있었다.
“고마워, 형.”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목소리였다.
“내게 돌아와 줘서.”
“…유현이, 너.”
“진심이야. 그리고 그걸로 충분해. 충분하고도 남아.”
전신의 힘이 쭉 빠졌다. 유현이가 나를 부축하듯 안았다.
“내가 돌아와서, 기쁘냐.”
“응, 무척이나. 형을 구하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솔직하게 말해 형을 혼자 남겨 두는 건 싫어.”
그 말을 들으며 웃고 있던 동생을 떠올렸다. 아무 미련도 없이,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다는 듯한 얼굴이. 그 차이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애는 나와 함께하는 것을 완전히 포기했던 거겠지.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억누르다 못해 아예 없애 버리고서.
동생을 마주 끌어안았다.
“…그래. 그러니까 먼저 죽고, 그러지 마라. 두 번은 없어.”
“노력할게.”
“노력 정도로 끝내지 마.”
“알았어, 형. 그런데 시간을 되돌리는 것도 가능하다니. 형이 갑자기 변한 것도 그 때문이었구나. 다른 수상한 일들도 전부 미래를 알고 있어서였고.”
유현이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약간 들뜬 듯도 했다. 나도 마주 웃어 보였다. 우선은 이 정도로, 두어 발 떼고서 멈추었다. 이제 성현제에게도, 말해 줘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