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313
311화 피곤하긴 한데(1)
“진짜 용이에요?”
강소영이 눈을 빛내며 성현제, 체인질링에게 물었다. 체인질링이 반사적으로 끄덕거리려다 말고 나름 근엄하게 대답했다.
“그래, 요정용이지.”
“아아아─ 한 소장님은 좋겠다!”
‘내가 아는 모든 용이 한 소장님을 좋아해!’ 하고 강소영이 부러움에 차 소리쳤다.
“커질 수도 있어요?”
“아ㅃ─ 유진 군이 싫어할 테니 안 해. 안 한다. 안 한다네?”
체인질링이 가질 수 있는 모습은 요정용으로서의 형태를 제외하곤 자신이 태어나는 데 일조한 상대의 것만 가능했다. 거대한 드래곤이라면 디아르마의 본체고 그 모습을 한유진이 본다면 겉만 같다는 걸 안다 해도 껄끄럽게 느낄 수밖에 없을 터였다. 애초에 요정용종은 물리적인 힘은 지니지 못해 대형용으로 변한다고 해도 거치적거릴 뿐이기도 했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강소영이 ‘왜 싫어하지?’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생방송으로 빠르게 소식만 전하고 끝내죠.”
전화 통화를 하던 에블린이 말했다. 그녀의 시선이 체인질링과 한유현, 송태원을 차례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체인질링, 성현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간단히 대사를 써 드릴 테니 외워서 읽기만 하면 됩니다.”
“알겠다. 음, 알겠네.”
체인질링이 어설프게 대답했다. 외모야 같지만 행동이며 표정 등에서 뚜렷한 차이가 드러나 보였다.
“길드장님과는 어조가 다르긴 하지만 약간만 연습하면 괜찮겠죠. 하루아침에 말투도 바꿨으니. 너무 이상한 짓만 하지 않으면 그러려니 넘어갈 겁니다.”
“맞아요. 한 소장님을 아빠라고 불러도 돼요!”
“소영 양.”
“아뇨, 그게. 근데 재밌을, 괜찮을 거 같은데. 앗, 현아 언니 전화다. 언니! 네, 길드장님 집 완전히 날아갔어요! 시원하게 뚫렸다니까요! 한 소장님은 무사하고요. 다는 말 못해 드려요, 저 세성길드원이에요.”
“브레이커 길드장입니까. 궁금하면 직접 오시라고 전해요.”
“에블린 언니 있어서 싫대요.”
강소영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더니 아예 건물 잔해를 훌쩍 뛰어 올라갔다. S급들 사이의 연약한 A급이라고 엄살 부리긴 했지만 상급 헌터는 상급 헌터, 별 힘들이지 않고서도 키보다 더 큰 콘크리트 덩어리 위를 날듯이 오른다.
“시킬 거 있으세요?”
“송 실장님 새 옷이 제일 급할 듯하군요.”
송태원을 돌아본 강소영이 ‘아 진짜’ 하고 끄덕거렸다. 성현제와 직접적으로 맞붙었던 만큼 성한 곳이 거의 없다시피 한 수준이었다. 심지어 건물 잔해에 깔리기까지 해서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져 있었다.
대중을 안심시키기 위한 방송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해연 길드장님은…….”
강소영의 시선을 받은 한유현이 가볍게 불꽃을 일으켰다. 그의 전신을 검푸른 불길이 한 차례 휘감고, 흙먼지를 죄다 삼키듯 불태웠다. 불길이 훑고 사라진 자리에 마치 방금 집에서 나오기라도 한 듯 깔끔한 모습만이 남았다. 전투의 흔적이라곤 약간 흐트러진 머리카락 외엔 찾아볼 수 없었다. 강소영이 와, 하고 박수를 쳤다.
“그럼 송 실장님 새 옷만 가져다 드리면 되나요?”
“…예.”
송태원이 약간 머뭇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태로 방송을 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집에 옷을 가지러 가겠다며 자리를 뜰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강소영이 가볍게 잔해를 넘어 사라지고 송태원이 한유현에게 다가갔다.
“부러지진 않았지만 수리가 필요합니다.”
송태원이 빌렸던 실랑스 강의 검을 내밀었다. 수색자의 사슬에 옥죄어졌던 검의 날이 군데군데 이가 빠져 있었다. 그래도 검신 자체는 무사했다. A급만 되었어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와이어는 절반 정도 남았습니다. 그에 대한 청구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한유현은 짧은 대답과 함께 검을 받아 인벤토리에 넣고는 몸을 돌렸다. 그리곤 에블린에게로 다가갔다.
“방송 준비는 언제 끝납니까.”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그보다 길드장님께서 신세를 졌으니 그에 대한 협의가 더 중요하죠. 비밀 유지 계약도 부탁드리겠습니다.”
“표면적으로는 S급 몬스터 처리를 위한 협조로 하겠다 했었지요. 말을 맞춰야 하니 일본 던전 권리 비율 건으로 한유진 소장님과 함께 방문하였다고 합시다.”
“네. 계약상 약간의 문제가 있어 송태원 실장님께서도 동행했다고 하면 그럴듯하게 비춰지겠지요. 그때 길드장님 자택에서 몬스터가 나타났고, 무사히 처리되었다. 이렇게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비율은 약간 조절하겠습니다. 그밖에 원하시는 대가가 있으십니까? 아, 던전의 뿌리 열매에 대해서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스태미너 포션에 대한 지분을 일부 포기하겠다는 뜻이니 적은 대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한유현은 만족하는 기색 하나 없이 서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가 에블린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해연에 연락할 테니 휴대폰을 빌려주십시오.”
“저런, 길드장님 주위에선 전자기기가 남아나질 않죠.”
“물리적인 파손입니다.”
휴대폰을 받아 든 한유현이 해연길드로 연락했다. 에블린이 송태원을 돌아보았다.
“송 실장님 휴대폰도 무사하진 못하실 텐데요.”
송태원은 작게 고개만 끄덕여 대답했다. 각성자관리실과 협회로 연락은 해야 한다. 그밖에도 할 일은 많았다. 이렇게 멍하니 서 있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였지만 송태원은 못에 박힌 듯 움직이지 못했다.
그의 시선이 젖어 든 바닥으로 향했다. 흩어진 얼음 파편이 햇살에 반짝이며 천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곳에 쓰러져 있던 사람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사람을 도우려 하던 사람도.
송태원으로서는 아직 정확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한유진이 성현제를 구했다. 그 몇 자 되지 않는 사실이 송태원의 머릿속에서 흐트러졌다. 그는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 어느 때보다도 피곤했다. 전신이 진득한 늪속으로 빠져드는 듯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긴 상념에 빠질 틈도 없이.
“형에 대한 비밀은 지켜 주실 거라 믿겠습니다.”
어느새 다가온 한유현이 송태원에게 말했다.
“등급 또한 변동 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이유를 밝히기도 힘든 일이지 않습니까.”
한유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여차하면 자신이 가진 힘을 동원해서라도 한유진의 새로운 능력이 드러나는 것과 그에 따른 등급 조정을 막겠다는 기세였다. 스킬 등급은 높지만 던전 공략에 직접적인 도움은 못 주며 스탯은 F급이기에 한유진의 공식 등급은 아직 B급이었다. 공격 스킬 두 배 공유는 알려지지 않았기에 등급에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일시적이나마 S급 헌터의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밝혀지면 최소 A급으로 올라갈 것이었다. 심지어 일본에서 조건이 까다로우나마 헌터의 능력치를 두 배로 상승시켜 줄 수 있는 보조 스킬까지 드러났다. 사실상 등급이 바뀌는 게 맞았지만.
“중급 헌터로 머무르는 편이 낫습니다.”
휴대폰을 내밀며 한유현이 재차 강조했다. 상급 헌터는 국가로부터 다양한 혜택을 받는 동시에 제약도 주어졌다. 특히 몬스터로 인한 국가적 위기 상황 때 강제 동원도 가능했다. 그밖에도 규격 이상의 강력한 힘을 지닌 인간이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특별법이었기에 평소 스탯 F급인 한유진에게는 불리한 내용이 더러 있었다.
반면에 상급 헌터의 혜택은 한유진으로서는 큰 이득이 없었다. 상급 아이템 경매권이나 상급 던전 권리 매매권 등 던전을 공략하는 헌터 위주였기 때문이었다. 세금 절약 하나만 보고 등급을 높이기엔 단점이 더 많았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한 확인 후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송태원은 더는 길게 말하지 않겠다는 듯 휴대폰을 받아 각성자 관리실로 전화를 걸었다. 괜한 생각들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쌓여 있는 일에 집중하려 애썼다.
세성 길드장의 자택에 나타난 몬스터 사태에 대한 방송은 짧게 끝났다. 에블린의 도움으로 체인질링은 제법 그럴듯하게 성현제를 연기했다. 생방송을 마치자마자 한유현은 해연길드 법무 팀에 일을 넘기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다. 반면에 체인질링은 아직 할 일이 더 남았다는 에블린의 손에 붙잡혀 울상을 지었다.
-그르릉!
문을 열기도 전부터 들려오는 다급한 으르렁거림에 한유현의 미간이 좁혀졌다. 한유진이 아니고서는 집에 누가 오든 신경 쓰지 않는 화염뿔사자였다. 그런데 문 앞까지 나와 기척을 내고 있다. 한유진에게 이상이 생겼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한유현이 급히 문을 열었다.
“형은?”
-크흥.
대문 근처를 배회하던 피스가 한유현을 보자마자 곧장 몸을 돌렸다. 한유현은 신발도 벗지 않고 피스의 뒤를 쫓았다. 그의 눈에 소파에 길게 누워 있는 한유진의 모습이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본 모습 그대로 엉망인 채였다.
군데군데 찢어진 옷에 상처만 치료되었지, 희미하게 남은 핏자국은 그대로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무것도 못 하고 곧장 쓰러진 모양새였다.
“형!”
S급 헌터의 힘을 일시적으로 쓴다는 게 부담이 큰 것이었을까. 한유현은 얼른 한유진의 상태를 살폈다. 외치는 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로 깊게 잠들었지만, 다행히 별 이상은 없어 보였다. 열 같은 것도 없고 숨소리도 고르다. 낯빛도 멀쩡했다.
한유현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피스 또한 한유현의 눈치를 살피곤 안심한 듯 소파 옆을 지키듯 앉았다. 한유현은 신발을 벗어 현관에 두고 망가진 휴대폰에서 다행히 멀쩡한 칩을 꺼내 새 기계에 넣었다. 휴대폰이 켜지자 수신되지 않았던 문자들이 들어왔다.
[아저씨 괜찮아?] [길드장님 폰 또 망가짐?] [방송 나온 거 보니 아저씨는 무사한가 보네.] [아저씨, 아직 전화 안 되던데 나 저녁 먹고 들어감.] [약 챙겨] [내 폰 블랙 딴 색ㅆ]한유현은 박예림의 문자를 눈으로 대충 훑고는 답장했다.
[ㅇ]휴대폰을 내려놓은 그가 한유진이 잠든 소파 앞에 무릎을 대고 몸을 숙여 앉았다. 한유진의 뺨에 남은 핏자국을 손가락으로 살짝 문질렀다. 이미 굳어 버려 지워지진 않았다.
“형이 자꾸 다치니까 속상해.”
그것도 다른 사람과 관련 되어서라면 더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왜 그렇게까지 전부 챙겨 주려 하는 걸까. 한유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단 한 명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건만. 그런 한유진 또한 한유진이기에 받아들이려 하고는 있지만 결코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한유현의 소매 안쪽에서 이린이 기어 나와 위로하듯 앞발로 손등을 탁탁 두드렸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같이 있었다니까.”
한유진이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왔다는 말 자체는 단순한 이해 이상으로는 다가오지 않았다. 그래서 형의 행동에 의문스러운 점이 많았구나. 단지 그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한유진 옆에 자신이 있었고, 한유진이 한유현에게 돌아왔다는 사실이었다. 과거로 돌아온 형이 끌어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던 것을 떠올리면 절로 미소가 맺혀졌다. 마음속 옅게 남은 불안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틀림없이 사이가 좋았던 거였겠지. 그러니 마지막 순간에 함께 있었고, 자신의 곁으로 돌아와 준 것이겠지.
무사히 화해하고 지금처럼 다시 같은 집에서 살았을까. 몬스터 사육 스킬은 없었다니 사육소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해연길드의 집이 우리 집이 되었을지도. 만약 단 둘뿐이었다면 그것만큼은 부러웠다.
“형이랑 영영 틀어지면 어쩌나 무서웠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한 행동이었지만 불안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래도 잘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잘한 듯싶었다.
다만 한유현이 한유진을 두고 죽은 것은 여전히 이해가지 않았다. 5년의 차이라는 것일까.
“씻고 옷도 갈아입어야 하는데.”
한유현의 손이 자신의 형을 가볍게 건드렸다. 일반인이나 마찬가지인 만큼 이대로 내버려 둘 순 없었다. 청결하지 않으면 병에 걸리기 쉽다고 하지 않는가. 게다가 환절기엔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나갔다 와서 잘 안 씻으면 감기 걸린대. 형, 많이 피곤해? 방에 데려다 줄게.”
물수건이라도 적셔 닦아 줄까. 그때 감겨 있던 눈이 느릿하게 떠졌다. 한유현이 반색하며 몸을 일으켰다.
“씻고 자자. …형?”
“어…….”
검은색 눈이 한 번 깜박였다. 초점 없이 흐릿하게 허공을 향한다. 명백하게 자신을 찾지 못하는 눈의 움직임에 한유현이 짧게 숨을 삼켰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진정했다. 이미 한 번 있었던 일이니 시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아예 안 보이게 될 줄은 몰랐지만. …설마 영영 못 보게 되는 건 아니겠지.
“형! 나 봐 봐, 나 안 보이는 거야?”
음, 유현이 목소리도 영 작게 들리네. 청력에도 약간 문제가 있는 듯했다. 그나마 목소리는 제대로 나오고.
“그런, 큼, 그런 것 같다만 진정해라.”
“진정하게 생겼어? 대체─!”
-끄응, 끼앙.
유현이의 외침에 피스도 당황했는지 옆에서 끙끙거렸다. 삐약이와 벨라레도 난리다.
“저번처럼 일시적인 거야. 걱정 마. 게다가 나야 선생님 스킬 있잖냐. 피스야, 아빠 좀 도와주라.”
우리 피스 어딨니. 더듬거리는 손에 피스가 머리를 대어 왔다. 아마도 딱딱한 게 부딪치는 거 보니 머리 맞네. 피스에게 선생님 스킬을 쓰자 주위가 눈에 들어왔다.
“자, 훤히 보이, 악!”
“형!”
보이긴 보였지만 시선이 다르다 보니 벌떡 일어나 움직이려다가 테이블에 다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괜찮은 척하려다가 되레 망신당했구만. 하필 은혜를 꺼 놔서 좀 많이 아팠다. 유현이가 얼른 나를 잡아다 도로 소파에 앉혔다. 피스야, 나만 보지 말고 유현이도 좀 봐줘라.
“형, 진짜…….”
많이 화난 거 같은데 피스가 고개를 안 돌려 주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