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321
319화 세 배로 안전합니다 (2)
“나는 안 와도 될 거 같은데.”
정장의 목깃을 매만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제에 이어 각 길드의 S급 길드장들이 다시금 자리에 모였다. 바쁘신 분들이 이틀 연속 이렇게 전부 모이는 건 오랜만일 터였다. 어쩌면 처음일 수도 있고. S급 헌터들은 각개 활동하기로 유명하니까.
“사육소도 S급 길드 못지않다는 거 보여 줘야 한다잖아요.”
길드장은 아니지만 내 경호 명목으로 따라온 예림이가 내 앞에 앉아 다리를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어제 회의에는 빠졌지만 오늘은 내가 오게 된 이유는 석시명의 조언 때문이었다. 이런 중요한 사안을 발표하는 자리에 얼굴을 비추는 건 필수라나. 그 말에는 동의하지만.
‘기승수 사육소를 그렇게 열심히 키우고 싶진 않단 말이야.’
동생 덕 보며 놀고먹는 건 글러먹은 지 오래긴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지 은퇴하고 싶다는 생각은 그대로였다. 저항 스킬도 끄고 은혜도 쓸 일 없는 그런 은퇴 생활이, 언젠가는 가능하겠지.
안 되면 뭐 어쩔 수 없고.
“S급 헌터들 사이에 앉아 있는 건 여전히 부담도 된다고. 열심히 화장 받기는 했다만 얼굴은 물론이고 몸은……. 아, 갑자기 의욕이 바닥을 치네. 운동 하나 안 하나 뱁새와 황새인데.”
“운동이야 건강을 위해서잖아요, 건강을.”
“맞아, 형. 그리고 형이 뭐 어때서.”
“말은 고맙다만 유현이 네가 봐도 차이가 나긴 하잖냐.”
아무리 내가 최고라 말하는 내 동생이라 해도 이 부분만큼은 너무 확실하게, 차이가 나서……. 내 말에 예림이가 혀를 쯧쯧 찼다.
“아저씨, 길드장님한테 그런 거 물어보면 안 돼요. 미추에 관심이 없다 못해 구분 자체가 안 된다고요, 해연 길드장님은.”
“응?”
“아저씨 말에는 맞장구 쳤을지도 모르지만 사람은 물론 뭐든지 외양에 저언혀 신경 안 써요. 그냥 인간이구나, 개구나, 고양이구나 하고 끝이라니까요.”
어… 그랬던가. 유현이가 좋다 싫다 표현을 정말 안 하는 편이긴 했지만. 문득 추석 전날 만든 송편이 떠올랐다. 그, 미적 감각이 약간 없는 건가 싶긴 했는데. 예시대로 따라 하는 건 잘 만들곤 했지만.
“그래도 설마. 유현아, 저기 봐 봐.”
마침 들어서는 세성 길드장을 가리키다 못해 일어나 그에게로 다가갔다.
“세성 길드장님, 잠시만 이쪽으로 와 보시겠습니까.”
성현제는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순순히 내 손에 끌려왔다. 그보다 한 발 앞서 대기실에 들어섰던 문현아도 따라왔다.
“자, 유현아. 이 얼굴, 어떠냐.”
언제 봐도 재수 없을 정도로 반반한 얼굴이다. 문화마다 미형의 기준이 다르다곤 하지만 이 정도로 완벽하게 균형이 잡혀 있다면 어디 내놔도 높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유현이가 성현제를 힐끗 쳐다보았다가 이내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어떠냐고 해도, 그냥 세성 길드장이잖아.”
“…다른 감상은 없어?”
“없어.”
“한유진 군. 도련님은 내게 개인적인 관심이 아주 조금도 없다네.”
그건 알고는 있었지만. 괜히 내가 억울해져서 성현제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아니, 잘생기긴 잘생겼는데. 외모만큼은 흠잡을 수 없어서 짜증 날 정도인데.”
“고맙군.”
“그럼 현아 씨는 어때, 유현아?”
이번에는 문현아의 옆으로 가 서며 물었다. 유현이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브레이크 길드장.”
“뭘 하나 했더니, 한 소장님. 형님 동생한테는 그런 거 물어봤자 소용없어요.”
“그럼 저기 저, 송태원 실장님!”
“각성자 관리실장.”
“…마지막으로, 자!”
휴대폰의 앨범에서 노아 씨 사진을 열어 유현이에게 보여 줬다. 우리 노아 씨, 사진 속에서도 반짝거리네.
“용.”
…아니, 인간이다만. 유현이 녀석 설마 속으론 삐약이는 그냥 새고, 피스도 그냥 화염 뿔사자고, 블루도 그냥 그리폰이고, 벨라레도 그냥 뱀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냐.
“형은 잘생겼다고 생각해.”
“어… 으응. 고맙다.”
이전이라면 내 동생이 형을 많이 생각해 주는구나, 하겠는데 성현제에 현아 씨, 송 실장님, 노아 씨까지 무반응이었다 보니 무어라 할 말이 없어졌다. 이래서 우리 유현이가 여태까지 연애의 ㅇ자도 기미가 안 보였던 것일까.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부분이야 다양하지만 보통 외모가 가장 첫걸음인 경우가 많지. 거기서부터 아무 감정도 못 느끼면, 으음.
“괜찮아! 사람은 역시 속이 알차야지! 외모에 혹하지 않는 자세야말로 바람직한 거 아니겠냐.”
“아저씨는 길드장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같은 콩과니까 괜찮다고 싸고돌걸요.”
“예림아, 팥메주도 있더라.”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예림이가 진짜요? 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들어오십시오!”
그때 협회 직원이 외쳤다. 회견실로 들어가자 석하얀을 포함한 연구원들이 설명을 위한 자료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게이트 탐지&측정기도 보였다. 이번에 던전 상태를 발표하면서 함께 선보일 예정이었다. 사실 저 기계야말로 진짜 대단한 물건이었다. 저건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우리야 그냥 보증인 겸 얼굴마담 정도라 준비된 자리에 얌전히 앉았다. 오랜만에 보는 한신 길드의 박민규가 내 눈에 들어왔다.
‘한번 이야기 나눠 보고 싶긴 한데.’
성한 씨와는 사이가 영 좋지 않지만 특별한 문제를 일으킨 적 없는 S급 헌터다. 아까도 가볍게 인사만 하고 말았었지. 조만간 직접 찾아가 볼까.
얼마 지나지 않아 회견장에 기자들이 들어섰다. 카메라가 설치되고 작동 램프에 빨갛게 불빛이 들어왔다. 원래라면 각성자 관리실 실장인 송태원이 나섰겠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뻣뻣해지는 탓에 행정안전부 장관이 대신 국민들에게 인사했다. 카메라를 노려보면서 설명하는 건 좀 그렇지. 심지어 생방송이라.
“그리하여 던전이 포화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종전의 세 배로 늘어났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장관이 간략하게 발표를 했다. 기자들이 작게 수군거리기 시작하고 이어 석하얀이 앞으로 나섰다. 평소와 다르게 무채색의 정장 차림에 머리카락도 깔끔하게 올려 둥글게 감아 묶었다. 정장이야 그렇다 쳐도 전체적으로 나이 들어 보이는 차림이었다. 너무 젊은 여자가 나서면 신뢰성이 떨어지지 않겠냐는 우려가 나왔던 탓인 듯했다. 연구팀 팀장이 하얀 씨인데 어쩌라고.
석하얀은 자료화면을 비춰 가며 알기 쉽게 현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내용이 점점 더 뚜렷해져 갈수록 기자들의 흥분도 또한 높아져 갔다.
던전과 몬스터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아니, 사실 이제 와서 한국에만 던전이 사라지면 오히려 곤란해질 것이었다.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원인 마석을 해외에서 수입해야 하며 각종 던전 관련 산업도 모조리 중지, 뒤처지게 될 터였으니까.
사람들은 멸망에 대해 모른다. 던전의 난이도가 얼마나 높아질지도 알지 못한다. 던전 관리만 제대로 된다면, 던전은 존재하는 편이 훨씬 이득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득은 그대로에 훨씬 안전해졌다. 정확히는 던전을 골라 공략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득도 커졌다고 볼 수 있었다. 타국에 비해 얼마나 유리해질지는 하나하나 계산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기자들이 흥분을 억누르려 애쓰며 질문을 던져 왔다.
“그럼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확률이 예전에 비해 낮아졌다는 뜻입니까?”
“때가 되면 터지는 것은 동일합니다. 다만 관리하기는 더욱 쉬워졌으니 실질적으로 낮아졌다 볼 수 있습니다.”
“정말로 한국만 세 배 더 안전해졌다는 겁니까?”
“현재 확인된 바로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를 조사할 시간은 없었으니 동일한 현상이 나타난 다른 국가가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석하얀이 탁상에 놓인 기계를 들어 보였다. 던전에 대해 설명할 때완 다르게 뿌듯하기 그지없는 얼굴이었다. 마치 빛이라도 나듯 환하고 당당하다.
“임시명 게이트-S입니다. 던전 게이트의 상태를 측정 및 탐지 가능한 기계지요.”
그녀가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투박하게 생긴 둥근 기계를 향해 카메라와 시선이 모여들었다.
“현재 던전 브레이크는 고의적인 범죄를 제외하고는 미발견 게이트로 인한 경우 외엔 없습니다. 즉, 이 기계를 전국에 보급, 사용하게 되면 던전 브레이크의 위험성이 현저히 줄어들게 됩니다. 숨겨진 던전 게이트를 보다 쉽게 발견할 수 있게 되니까요.”
짧은 침묵이 흘렀다. 몇몇 사람들이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곤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그럼, 사실상 던전 공략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지 않게 된다는 거 아닙니까?”
“심지어 포화 시간도 세 배고요!”
“아직은 탐지 범위가 그리 넓지 않으니 놓치는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한국은 포화 시간이 길어진 만큼 웬만해선 전부 파악 가능하겠지요.”
석하얀은 침착하게 말했으나 기자들은 침착하지 못했다.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지 않는다. 즉, 던전은 에너지원과 온갖 신소재를 제공하는 안전한 보물고가 된다는 뜻이었다.
떠들어 대는 소리 사이에 헉, 주식! 하고 사욕을 챙기는 외침도 섞여들었다. 국가 안전도와 신용도가 올라갈 테니 주식도 덩달아 오르긴 하겠네. 나도 사 둘 걸 그랬나? 관련자이니 금융법 위반인가? 그래도 아깝다.
“게이트-S는 국내에는 제작비만 받고 제공할 예정입니다. 해외에는 약간의 조건이 추가되겠지만 가능한 빠르게 보급되도록 과도한 요구는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아깝다 여길 수도 있겠지만 저것만큼은 이익을 우선할 부분이 아니다. 게다가 측정&탐지 기계를 제공함으로써 우리나라만 안전하다는 사실에 불만을 품는 것도 어느 정도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만 운 좋게 잘되면 질투하다 못해 해코지까지 하려 드는 경우가 없진 않으니까.
그렇게 30여 분쯤 더 질의응답이 오간 뒤 기자회견은 종료되었다.
“아저씨, 이거 봐요! 여기저기 난리도 아니에요!”
예림이가 휴대폰을 들이밀며 말했다. 보여 주는 기사에 흥분한 댓글이 잔뜩 달려 있었다. 검색 순위도 1위부터 그 아래로 주르륵 관련 단어로 가득 찼다. 나라가 더 안전해졌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댓글이 대부분이었지만 수도권과 상급 던전 주위 집값 오르겠네, 지방 던전은 더 소외되는 거 아니냐 하는 걱정도 있었다.
“하얀 언니 연구에 아저씨가 도움 많이 줬다는 기사도 있네요.”
“어, 으응.”
그런 기사도 났냐. 예림이가 보여 주려고 했지만 사양했다. 긍정적인 기사라고 하지만 댓글을 직접 보는 건 역시 좀……. 저런 기사에도 깎아내리려 드는 사람은 틀림없이 있을 테니까. 어떤 식으로 험담하고 있을지 절로 상상 가는 걸 애써 머릿속에서 지웠다.
송 실장님은 일 때문에 급히 공항으로 향하고, 한신 길드장은 상대적으로 정보가 늦었던 만큼 역시나 바삐 협회를 떠났다.
“지금으로선 해연은 인력이 남아돌게 되지 않나.”
문현아가 유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유현이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급 던전 중 수익률이 낮은 던전을 관리 후순위로 미룰 시 상급 헌터들이, 특히 S급 헌터들이 공략할 던전이 부족하기는 합니다.”
속성이나 환경이 맞지 않아 공략이 까다롭거나 마석 외의 변변한 수익이 없는 던전은 굳이 예전처럼 꼬박꼬박 공략해 줄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안 그래도 S급 헌터가 훌쩍 늘어나 버린 해연으로서는 공략할 만한 던전이 부족해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래서 해외의, 우선적으로는 주변국의 던전의 공략권을 구할 예정입니다. 특히 일본은 현재 던전을 관리할 능력이 부족한 상황이니까요.”
알짜배기만 골라 공략하겠다고 나서도 감사합니다, 해야 할 판이었다. 그 밖의 홍콩이나 기타 S급 헌터들이 부족한 나라라면 충분히 유리한 협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유현이의 말에 문현아가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 우리도 S급 헌터 한 명쯤 더 있으면 좋을 텐데. 해연 길드장이야 형님 두고 한국 뜰 생각 없을 테고, 예림이가 가려나?”
“네, 언니. 특히 일본에는 강이나 바다는 물론 아예 수중인 환경도 많다더라고요. 운 좋으면 괜찮은 몬스터 새끼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예림이가 신나 하며 말했다. 잘 맞는 던전이 많다고 해도 애 혼자 해외에 보내려니 절로 걱정이 들었다. 비행기 타면 금방이긴 하지만.
“리에트를 꼬셔 볼까.”
“피해 보상비가 더 나올 거 같은데요.”
“그래도 능력은 좋단 말이야. 한 소장님, 벨라레 좀 천천히 키워 줘. 시도라도 해 보게.”
“지금도 성장 속도가 느린 편인걸요.”
목에 감겨 있는 벨라레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벨라레를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은 있었지만 그래도 스킬은 써 줬는데 이상하게 잘 안 자라는 편이었다. 특히 덩치는 어느 순간부터 변화가 없었다. 설마 벨라레도 피스처럼 유체화 스킬을 얻은 건 아니겠지.
“세성 길드장님은 어때? 또 나가실 생각 있으신가?”
문현아가 전화통화 중인 성현제를 쳐다보며 말했다.
“또요?”
“아, 한 소장님은 모르겠구나. 대외적으론 감췄으니. 세성 길드장 한국에 잘 안 붙어 있었거든. 길드 세우고 한 반년? 던브 터진 거 쫙 해결하고 순식간에 자리 잡곤 툭하면 해외로 나갔잖아.”
금시초문이다. TV에선 그런 말 없었는데.
“처음엔 협회에서 잔소리 많았는데 상급 헌터에 힐러까지 낚아오니 결국 입 다물었지.”
“그러고 보니 세성엔 유독 해외 출신 헌터가 많았지요.”
생일날에도 해외 헌터들이 여럿 왔었고. 그 정도 인맥 쌓으려면 바쁘게 돌아다녀야 했겠구나. 당연한 추론인데 워낙 잘난 인간이다 보니 뭐 어떻게 했겠지, 싶어서 미처 생각지 못했다.
회귀 전에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대략 2년쯤 후에는 아예 대놓고 한국을 종종 떠나 있긴 했다. 그리고 그때 길드장 대리는 강소영이 맡았었다. 유현이와 염문 생긴 것도 그런 탓이 컸겠지. 국내 1, 2위를 다투는 젊디젊은 길드장과 길드장 대리. 둘 사이에 뭐가 있든 없든 엮어 보고 싶을 법한 배경이었다.
…전부 헛소문이었지만. 유현이도 유현이지만 소영 씨도 용 아니면 관심이 없는 듯했다. 겉만 보면 참 잘 어울리는데.
“세성으로서도 한국 던전을 관리할 인력은 차고 넘치지.”
성현제가 전화를 끊고 이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특히 소영이와 코메트는 기승수가 없는 웬만한 S급 헌터보다 공략 속도가 빠를 테니.”
“하긴 그렇겠네요.”
코메트는 S급 몬스터고 강소영은 그런 코메트에게 탑승 시 S급 헌터 수준의 스탯을 갖추게 된다. 거기에 기동력까지 붙으니 S급 헌터 부럽지 않게 던전을 쓸고 다닐 수 있었다.
결국 세성도 사실상 S급 헌터가 셋인 거나 마찬가지였다. 정확히 따지면 해연은 기승수 포함 다섯이지만.
아무튼 그럼.
“성현제 씨도 해외로 관심을 돌릴 겁니까?”
그에게로 마주 다가가며 물었다. 직접 나갈 생각인 걸까. 해연처럼 근처 나라 정도론 만족하지 않겠지. 그렇게 되면 얼굴 보기 힘들어지지 싶어 손톱만큼 서운해졌다. 그간 정이 조금 들-
“형!”
갑자기 팔이 잡혀 확 끌어 당겨졌다. 유현이가 나를 붙들려 했지만 양쪽에서 당기는 꼴이 되면 내가 다칠까 봐서인지 흠칫 멈추었다. 예림이도 놀란 듯 나를 불렀다.
“나는 나로서 남을 거라네.”
주위의 S급 헌터들조차 듣기 힘들 정도로 작은 목소리가 내 귀에 닿아 왔다. 순간 무슨 소린가 했지만.
“이 세계에서.”
초승달. 그녀에게 더 이상 묶이고 싶지 않다고, 성현제가 말했다. 짙은 달과 같은 눈을 마주 보았다.
“그건, 당연히 그래야죠.”
자기 자신을 지워진 채 끌려다니는 건 한 번으로도 너무 많다. 그리고 나도, 유현이도 신처럼 행세하는 자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건 한 번으로도 충분하다.
성현제가 내 팔을 잡은 손을 놓았다. 유현이가 얼른 나를 자신 쪽으로 감싸 끌어당겼다. 동생의 사나운 시선을 본체만체, 그가 미소를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