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325
323화 형제싸움 (3)
심장이 크게 뛰었다. 팔의 통증도 이내 잊힐 정도로 속이 뜨거웠다. 한유현은 자신의 형을 바라보았다. 부서지고 무너지고 녹아내리는 풍경 속에서 유일하게 온전히 눈에 들어오는 존재.
건물의 상층부가 기울어지며 와르르, 땅을 향해 쏟아진다. 훤히 드러난 하늘에서 달빛이 비춰들었다. 둥글게 떠오른 달은 지난 추석의 만월보다 더욱 크고 새하얬다. 그 하얀 빛무리가 타오르는 불길과 뒤섞인다.
사방은 온통 열기로 가득 차, 한유진의 발치에도 불꽃이 날름거렸다. 신발을 타고 길게 기어오르는 불길에도 아무렇지 않게 파삭, 무너져 가는 바닥을 밟으며 걸음을 옮기는 형의 모습에 한유현은 더욱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이템이나 장비로 인한 것이 아닌, 자신과 같은 화염 저항을 지니고서 검은 불을 손에 쥔 형제. 하나뿐인 혈육이지만 많은 것이 달랐던 그가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유일한 동류, 동족으로 느껴졌다.
그 누구도 발 들일 수 없는 단둘만의 검고 푸른 불길.
“진통제로 반감 가능한 스킬이다만.”
한유진이 입을 열었다. 한유현은 홀린 듯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권유는 안 하마. 감각도 떨어지거든.”
그 말과 함께 파악, 금빛 날개가 펼쳐졌다. 훌쩍 날아오르는 한유진의 모습이 두 눈 가득 들이박히고 한유현은 온몸의 피가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손끝이 반사적으로 꿈틀거렸다. 진득한 전의에 휩싸여 푸른 버들잎을 펼치며 뛰어오르면서도, 머릿속은 냉정히 상황을 파악했다.
호수 쪽이다. 유리한 장소로 옮겨가게 두어선 안 된다. 유인을 하려는 듯 한유진의 비행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은신 스킬도 푼 상태다. 하지만 따라잡기엔 이미 거리가 벌어졌다.
한유현은 군림자의 검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한쪽 팔을 앞으로 뻗었다. 그 손끝에서 불길이 일렁이며 활의 모습이 되었다. 역시나 불로 이루어진 화살이 금빛 날개를 향해 겨누어졌다. 이렇게 해도 피하지 못할 형이 아니다. 그러니.
“이린.”
나지막한 부름과 함께 활이 쏘아졌다. 공기를 가르고 데우며 연이어 두 발, 세 발, 네 발! 빠르게 연사된 화살이 날아간다. 단순 비행으로는 전부 피하기 힘든 그 광포한 기세에 한유진이 날개를 반쯤 접으며 짧게 순간이동 했다. 그 순간!
화르르륵!
거친 불길과 함께 거대한 이무기가 나타나 한유진의 몸을 휘감았다. 서툴러서 순간이동 스킬을 연속으로 쓸 수 없는 틈을 노린 것이었다. 금색 용의 날개를 붉은 이룡의 발톱이 할퀴고 움켜쥔다. 검은 불길의 검날을 푸른 불길을 머금은 이빨이 카각, 사납게 물고 흔들었다.
두 용인과 이무기가 한데 뒤엉킨 틈을 타 한유현이 버들잎을 밟고 공중을 달려 빠르게 접근해 왔다. 어느새 손에 군림자의 검이 다시 쥐어져 있었다. 가장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것은.
‘은신 스킬.’
은신과 순간이동. 둘 중 하나라면 대응하기 어렵지 않았지만 동시에 사용하자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한유진은 속임수까지 섞어 능란하게 스킬을 써먹었다. 순간이동은 보유 스킬이니 막을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은신은 버프만 없애면 A급으로 떨어진다.
바로 앞까지 다다른 한유현과 한유진의 눈이 마주쳤다. 이린을 떨쳐내기 위해 부분 수화해 가느다래진 동공의 눈이 동생을 바라보며 웃는다.
“야, 이 상태 린이는 반칙 아니냐. 알파 때잖아.”
“그런가? 미안.”
짧은 사과와 함께 한유현의 손이 반쯤 꺾인 날개를 움켜잡았다. 그리곤 그대로 힘을 주어 한유진의 몸을 아래로 내리눌렀다. 이린이 사라지고 찍어 내리는 힘을 버티지 못한 한유진이 그대로 추락한다.
쿵!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도로의 파편이 튀고 흙먼지가 솟았다. 한유현은 형을 짓누른 그대로 검을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독기가 치솟고 용의 꼬리가 창처럼 찔러들어 왔다. 한유현은 검으로 꼬리를 막고 독기를 불로 태우고 피하면서 다른 쪽 손으로 한유진의 재킷을 움켜쥐어 강하게 뜯어냈다.
드드득, 날개를 드러내느라 일부 변형되었던 재킷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뜯겨 나간다. 그 틈을 타 바닥을 굴러 한유현의 밑에서 벗어난 한유진이 너덜너덜해진 재킷을 보고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제 구실을 못할 만큼 크게 손상이 가버렸다.
“아깝게! 진짜가 아니라 다행이지!”
대답 대신 군림자의 검이 날아들었다. 몸을 잔뜩 낮추어 미끄러지듯 베어 들어오는 공격에 한유진이 재빠르게 뒤로 뛰었다. 공중으로 몸을 띄우기 무섭게 와이어가 뻗어오고 군림자의 검 또한 검신을 휘며 한유진을 따라붙었다.
각기 다른 방향에서 동시에, 그것도 허공에 머문 상태에서 공격이 가해지니 전투예지고 뭐고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심지어 순간이동 스킬에도 실패해, 한유진은 급한 대로 군림자의 검을 수화한 손톱으로 받아내고 와이어에 다리를 내주었다. 와이어가 강하게 당겨지며,
“윽!”
균형을 잃고 바닥에 처박힌 몸뚱이가 드드득, 거칠게 끌려간다.
콰득! 한유진은 손톱을 바닥에 박아 넣고 버티며 뒤쪽으로 총을 쏘았다. 마탄이 검에 가로막혀 텅, 텅! 가볍게 튕겨나간다. 연이어 검격이 내리치고 한유진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간신히 공격을 피했다. 칼날이 그의 몸을 스칠 때마다 땅이 움푹 패고 파편이 튀어 올랐다.
흙투성이가 된 한유진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매번 한유현이 와이어를 당겨 막았다. 공격이 끊이질 않으니 와이어를 잘라 낼 여유도 없었다. 몇 번이고 고꾸라진 한유진이 입안에 들어간 흙을 퉤 뱉었다.
“이건 안 쓰려고 했는데.”
조금 치사한 방법이라도 쓰지 않고선 벗어날 수가 없겠다. 한유진은 몸을 틀어 허리를 스치는 공격을 피한 뒤에.
“잘 자라 우리 유현이~”
뜬금없이 노래를 불렀다. 자장가였다. 자장자장, A급 스킬. 상대를 잠재우기 위한 행동을 하면 잠들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자장가 또한 잠재우기 위한 행동에 들어갔다.
“…혀, 형!”
예상치 못한 스킬 사용에 한유현이 일순 비틀거렸다. 틈을 놓치지 않고 한유진이 다리를 묶은 와이어를 잘라냈다.
“자장자장 우리 유현이, 잘도 잔다 우리 유현이!”
“형! 너무해!”
“전투 중에 너무한 게 어딨냐?”
강력한 스킬 효과에 눈앞이 일순 흐려지는 것을 느낀 한유현이 손바닥을 검날에 대고 길게 긁었다. 피가 배어나오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사이 한유진이 거리를 벌리며 건물 쪽으로 뛰어올랐다. 바닥에 착지하지 않고 건물 벽에 발을 디디며 그대로 달려 나간다. 물론 견제사격도 잊지 않았다.
탕, 탕, 탕!
정확하게 날아드는 마탄을 피하며 한유현 또한 한유진의 뒤를 쫓았다. 그의 발이 땅을 박찰 때마다 금이 쩍쩍 번져간다. 녹아내린 마지막 문의 범위는 벗어났지만 스킬이 유지되고 있는 한 쌓인 스탯은 그대로였다. 여기에 예장의 순간가속 스킬이 더해지자 순식간에 한유진을 따라잡는다.
벽을 달리는 형과 도로를 달리는 동생이 나란히 서는 순간, 폭탄과 검격이 동시에 터져나갔다. 쾅, 콰앙! 무너지는 건물과 두터운 먼지가 시야를 가린다. 한유현은 당황하지 않고 곧장 푸른 버들잎에 마력을 깃들이며 주위를 탐색했다. 하지만 그의 감각에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형?”
이번에는 정말로 의아해졌다. 제아무리 몸놀림이 빨라도 무수히 흩어진 잎을 모두 피하기란 불가능하다. 한유진이 쓸 수 있는 순간이동으론 한 번에 벗어날 수 있는 범위도 아니다. 그런데도 없다.
한유현은 급히 잎을 밟으며 위로 뛰어올라 흙먼지를 벗어났다. 공중으로 치솟은 그의 눈에 저 멀리 호수로 향해 가는 금빛이 들어왔다. 반용화한 한유진이 유독 작아 보인다. 거리 탓이 아니다.
“아.”
미니미니 쿠키. 몸의 크기를 줄여 버들잎을 피해 빠져나간 것이었다. 20센티도 채 되지 않는 크기라면 충분히 잎에 닿지 않을 수 있다. 그 잠깐 사이 쿠키를 사용할 생각을 하다니.
“놓쳐 버렸네, 형.”
아쉬운 듯 말하면서도 미소 짓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자극이 전신을 휘감았다. 여태까지의 전투는 실없는 장난쯤이었다 해도 좋을 정도로, 지금 이 순간이 즐거웠다. 가슴의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더해 가고 있었다.
구구구궁─!
한유현의 뒤쪽으로 빌딩이 무너져 내렸다. 녹아내린 마지막 문의 스킬이 발동 중인 곳이 마치 용암지대처럼 변해 가고 있다. 건물을 삼키고 땅이 끓어오르며 범위 밖으로도 불길이 번져 나갔다.
도로도 집도 가로수와 차량, 그 밖의 온갖 것들이 모조리 불타오른다. 녹고 끓고 피어오르는 열기가 달에 닿을 듯 치솟았다.
한유현은 스탯이 한계까지 누적 상승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움직였다. 화염 또한 그의 뒤를 따르듯 빠르게 퍼져 나가고, 이윽고 호숫가에 다다랐다.
“유현아.”
호수의 일렁이는 수면 위로 한유진이 가볍게 떠 있었다. 물안개가 새하얗게 얼어붙고 커다란 물의 구가 수십, 수백 개 흔들거린다. 순수한 물이 아니다. 전류를 품은 것도, 독기를 머금은 것도 있었다. 한유진의 손에 들린 검은 불길 또한 독기가 서려있었다.
방대한 수량을 바탕으로 하는 냉기가 한유현의 코앞까지 훅, 다가왔다. 열기가 이내 맞받아쳤지만 서로 쉽게 밀리지 않았다.
한유현은 하얀 물안개 너머의 한유진을 황홀하게 올려다보았다. 등골이 저릿해졌다. 당장에라도 검을 쥐고 뛰어들어, 그리고.
“형, 정말 좋아해.”
“…뭘 새삼스럽게 여기서 그러냐.”
설마 저것도 일부러 말한 건 아니겠지, 하고 한유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호수 밖은 온통 붉고 검었다. 도시 전체가 불길에 휩싸이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그 화염의 가장 앞에 한유현이 서 있었다. 기분 탓일까, 한유현을 휘감은 불의 빛깔이 더욱 푸르게 느껴졌다.
콱! 일본에서 가져온 S급 장검이 한유현의 앞에 내리꽂혔다. 이어 또 다른 검과 단검과, 태도가. 그것을 본 한유진이 눈꼬리를 조금 치켜올렸다.
“유현아, 야. 형 좋아한다며.”
“응. 좋아해, 사랑해. 군림자의 검을 녹일 수 없어서 아쉬울 정도로. 너무 좋아.”
환하게 웃는 동생을 보며 한유진이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면서 도검포식자까지 쓰려 드냐. 막아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박예림이라면 호수 물을 통째로 움직여 퍼붓거나 지반을 무너뜨리겠지만 한유진은 그 정도의 컨트롤 능력까진 지니지 못했다.
치이익─
장검을 중심으로 무기들이 달아오르며 순식간에 녹아내린다. 시뻘건 쇳물이 매끄러운 선을 그리며 한유현의 주위를 맴돌았다. 어느새 그의 두 눈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내내 억누르고 있던 것이 한유진과 전력으로 맞붙을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풀려났다.
어디까지 괜찮을까, 언제쯤 다시 참아야 할까. 그런 생각들도 흥분 속에 쓸려나갔다. 이 전부를 쏟아내도 괜찮지 않을까. 괜찮을 것이다. 눈앞에 가득 찬 푸른 물이, 서늘한 냉기가 더욱 불길을 뜨겁게 부추겼다.
“형.”
애정을 듬뿍 담은 부름에 한유진이 짧게 숨을 삼켰다. 유리한 장소로 옮겨왔다고 해도 여전히 감이 좋지 않았다. 스탯과 장비가 여러모로 불리하다. 지금이라면 멈출 수 있을 것이다. 그만하고 나가자, 라고 말하면 동생은 아쉬워하면서도 들어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입을 떼지 못했다.
망설이는 사이 한유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침없이 호수로 뛰어들어 버들잎을 밟으며 마치 평지처럼 수면을 미끄러진다. 자신에게로 빠르게 달려드는 동생을 바라보던 한유진이 버튼을 눌렸다.
펑! 퍼엉!
물속에 던져두었던 폭탄이 터지며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한유진은 박예림처럼 직접적으로 대량의 물을 다루긴 힘들었다. 대신 폭탄의 힘을 빌린 것이었다. 치솟은 물기둥이 그대로 한유현을 향해 쏟아져 내린다. 그 사이사이 얼어붙은 창날이 섞여들었다.
엄청난 수량에 더해 수십 개의 날카로운 창의 공격에도 한유현은 일말의 머뭇거림 없이 그대로 달려가며 녹아내린 무기를 머리 위로 던져 올렸다. 무시무시한 열기와 차디찬 호수물이 격돌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얼음 창이 캉, 카강 깨어져 나간다. 구름 같은 수증기를 뚫고 한유현이 한유진을 향해 뛰어들었다.
한유현은 군림자의 검을 길게 휘두름과 동시에 왼발로 버들잎을 밟고서 몸 전체를 강하게 회전시켜 킥을 찔러 넣었다. 턱! 한유진이 수화한 두 손으로 한유현의 발차기를 받아내듯 막았다. 동시에 그의 머리 주위에서 물방울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가 칼날에 두들겨 맞고 산산이 부서진다. 휘어지는 연검을 완전히 막진 못했으나 방향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비틀린 군림자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한유진의 정수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한유진은 몸을 낮추며 받아 낸 한유현의 발을 그대로 잡고 뒤틀었다. 수화에 더해 노아의 보조 스킬로 근력 스탯을 집중해 올린 악력에 한유현은 버티는 대신 따라 몸을 빙글 돌렸다. 짜자자작, 냉기가 한유현의 다리를 타고 올라가 얼어붙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푸른 불길이 일고 한유현에게로 돌아온 녹은 쇳물이 수십 개의 화살이 되어 한유진에게로 쏘아졌다.
정면에서 막아 낼 엄두를 내기 힘든 무시무시한 기세였다.
한유현의 발을 놓고 재빨리 물러난 한유진의 앞에 얼음 방패가 나타났다. 얼음판 위로 화살이 콰드득 들이박히고.
파지지직─
순식간에 금이 간 얼음판이 산산히 부서졌다. 하나하나가 SS급 무기인 화살을 막아 내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물은 얼마든지 있었다. 겹겹으로 얼음 방패가 나타나고 화살은 다섯 개의 얼음판을 꿰뚫고 나서야 겨우 기세를 멈추었다.
“진짜 사기, 헉!”
화살을 겨우 막았나 싶은 순간, 다시 군림자의 검이 한유진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근접전은 도저히 답이 없다. 한유진은 순간이동으로 거리를 벌리며 수면 가까이 내려갔다. 동시에 미리 만들어 두었던 독 물방울을 창처럼 길게 늘린 뒤 겉만 얼어붙여 한유현을 향해 던졌다.
독을 품은 수 개의 얼음창이 빠르게 날아들었다. 한유현은 피할 생각도 없이 군림자의 검을 앞세운 채 그대로 얼음창과 충돌했다.
콰작! 콰드득!
얼음창들이 부서지며 그 속에 품은 독물이 퍼져 나갔다. 차디찬 얼음이 한유현을 휘감은 불길을 잠시나마 누그러뜨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독기가 스며들었다. 독 저항 아이템을 차고는 있지만 등급의 차이가 심하다. 분명 중독되었음에도 한유현은 아랑곳없이 그대로 한유진을 향해 치달았다.
그런 그의 앞을 이번에는 전류가 담긴 물방울이 막았다. 물방울 속의 전류가 사납게 꿈틀대더니.
펑! 퍼엉!
요란하게 터져 나갔다. 제대로 된 전기분해는 아니었다. 겨우 흉내만 내는 수준이었지만 시간을 벌기에는 충분했다.
흩어지는 물방울과 다시 치솟은 물줄기. 수면 아래로 폭탄이 연신 터져 나가며 물의 벽이 한유현을 가로막고 얼음의 창이 한유현의 전신을 노렸다. 그 사이로 물을 가르며 마탄 또한 날아들었다.
반면 한유현의 원거리 공격은 겹겹으로 끝없이 생성되는 물과 얼음의 벽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호수물이 전부 사라지기 전까지는 내게 접근하기 힘들 텐데, 유현아.”
어떻게 할래, 유현아. 한숨 돌린 가벼운 물음에 한유현이 입술 끝을 올렸다.
“형의 말대로.”
“응?”
“전부 없애면 돼.”
여러 가닥으로 갈라져 물과 얼음의 공격을 막아 내던 녹아내린 검들이 한데 모여 한유현의 손에 쥐어졌다. 짙게 푸른 불꽃이 녹은 검을 휘감고, 한유현이 그것을 힘껏 호수를 향해 내던졌다.
치이이익!
순식간에 물을 증발시키며 호수 바닥까지 꿰뚫어 박힌 검이 어마어마한 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그리고.
콰아아앙!!
“윽, 뭐─!”
호수 밑바닥에서부터 불기둥이 치솟아 그대로 폭발했다. 밀려드는 열기의 폭풍우에 한유진의 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밀려 바닥에 처박혔다. 반쯤 메마른 호수 바닥이었다. 영문 모르고 깜박이는 그의 눈에 텅 빈 거대한 구덩이가 들어왔다. 이내 하늘에서 후두둑, 비가 쏟아졌다.
쏴아아아─
십수 초간 내린 비가 끝이었다. 호수가 사라졌다. 텅 빈 호수 가운데에 우뚝 선 한유현이 자신의 형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