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338
336화 두 번째, 세 번째 (5)
“이스무아르.”
명우의 부름에 불의 정령이 다가왔다. 화끈한 열기가 피부 위로 느껴졌다.
“이 각인, 마나 회로 기초 작업 맞지.”
“네. 맞습니다.”
기초 작업이라니. 영문을 몰라 하는데 명우가 화를 꾹꾹 억누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에게, 적용 못 시킬 건 없지만.”
“저어기, 설명 좀 해 주실래요……?”
“강제야, 아니면 자의야.”
질문이 서늘하다 못해 칼날처럼 찔러 왔다. 그게, 대답이 얼른 나오질 않았다. 입을 다물고 눈알만 데구르르 굴리자 한숨 소리가 내 등 위로 쏟아졌다. 그러곤.
짜악!
“악! 아파!”
“아프다고? 아프단 말이 나와? 이 꼴을 하고서?”
“아니, 악! 은혜야!”
– 삐익.
은혜가 왜 부르냐는 듯 내 얼굴 앞에 날아와 머리를 갸웃 기울였다.
네 아빠 좀 말려 봐라! 은혜를 쓸까도 했지만 그럼 화만 더 부추기겠지. 내가 잘못한 거 맞긴 하지만 그래도!
“그, 그게, 그 동네에선 다 해!”
나만 한 거 아닌데 왜 마나 각인 자체를 탓하냐. 각인 자체는 흔히 하는 안전한 거라고 했는데.
“내가 진짜 몸으로 들어가서 그렇지, 다들 하고 있었다고. 진짜야! 각성자는 웬만해선 다 하는 건데, 그래서…….”
“F급에게도 이걸 한다고?”
“아니. 그 동네 F급은 헌터, 가드 취급을 안 하고, 또 거기선 내가 C급이었, 아파!”
등짝 좀 그만 패라. 우리 부모님한테도 맞은 적 없는데! 야단을 치지 않았다기보단 관심이 없어서라 지금과 정 반대긴 했지만. 등이 화끈거렸다. 멍까진 아니어도 빨간 자국쯤은 남았을 듯했다. 명우도 어린 혼돈처럼 뭔가 마력이라도 썼나, 때리는 힘에 비해 참기 힘들게 아팠다.
“C급? S급이라도 죽어!”
“그, 그걸 어떻게…….”
보기만 하고 알아차린 거지. 명우가 울컥거리는 감정을 가라앉히려는 듯 연거푸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곤 설명을 이었다.
“이건 아이템을 만들 때 쓰는 기초 마나 회로야. 좀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인 건 같아. 마나 회로를 넣어야 사용자의 마나를 받아들이고 작동 가능하니까.”
“…아이템에 들어가는 거라고?”
“그래. 기초 마나 회로를 깐 다음에 특성을 부여하는 거지. 등급이 높을수록 더 촘촘하고 넓게 까는데, 재료의 내구도가 부족하면 작업 도중에 부서지기도 해. 그것 때문에라도 낮은 등급의 재료로는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만들어 내기 힘들지. 보통은 재료 등급 대비 낮은 아이템이 나오곤 하고.”
그렇구나. 그래서 명우가 마나 각인을 단번에 알아본 거고. 맨날 쓰는 거였을 테니까.
“사람에게, 네게 적용된 마나 회로도 마찬가지야. 등급에 따라 버틸 수 있는 양의 한계가 있는데. 그런데 이건!”
“마, 말로 하자. 진정하고.”
“C급도 목 아래로 내려가면 위험해질 크기인데!”
“위험하긴 한데, 아는데, 그 던전에서, 내 목숨이 다섯 개였거든! 그래서 그랬어, 무모하게 한 게 아니라, 마취도 제대로 했고, 딱 한 번 죽었, 악!”
“잘하는 짓이다, 진짜!”
“아니, 그래도 마나 각인 받으면 마력 다루는 게 좋, 잠깐만, 지금 손 들었지, 잠깐만!”
“등급 대비 마나 회로 오버하면 뭔 줄 아냐? 소모용 아이템이야! 몇 번 쓰면 망가지는 거!”
아, 소모 아이템을 그런 식으로 만드는구나.
“나도 부담되는 줄은 아는데, 그래서 막아 놨잖아. 안 그래도 검 만들어 주신 어르신한테도 혼났어!”
“지우자.”
명우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에 펄떡 뛰고 싶었지만 여전히 꼼짝할 수 없었다.
“잠깐만요, 잠깐만! 아깝잖아! 다시 할 수도 없는 건데. 내가 적응할 수 있도록 천천히 풀고, 조절 아이템 쓰면 괜찮다고 그랬어. 응? 그래서 그거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려고 한 건데, 게다가 지우는 게 쉬운 일도 아닐 거고.”
“회로를 마비시키는 건 어렵지 않아.”
“안 돼, 야! 이미 받은 거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지 않냐? 안전하게 쓸게! 진짜야!”
“그걸 어떻게 믿어.”
내가 그렇게나 믿음이, 없을 만하지만.
“안전하게 쓴다고 해 봤자 여차하면 또 무리하겠지. 안 봐도 뻔해.”
“하지만 명우야, 무리 안 하면 그냥 바로 죽을 수도 있잖아. 방법이 없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우리 상황이, 그러니까.”
하나라도 더 쥐고 있어야 발버둥이라도 쳐 보지. 무리한다고 해도 안 했으면 이미 세 번쯤은 죽었다. 애원조 섞인 내 말에 명우가 몇 번 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왜 하필 유진이 너냐 싶다.”
“나도 출근하기 싫다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어.”
언젠가는 가능할지도 모르지. 아님 그냥 돈 많은 백수하거나. 목을 누르고 있던 손이 떨어져 나갔다. 몸을 일으키자 명우가 작업대 쪽으로 손짓했다.
“조절 아이템이 필요하다고 했지. 여기 엎드려.”
냉큼 작업대 위에 엎드렸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슬쩍 살펴본 명우의 얼굴이 여전히 굳어 있었다. 공포 저항이 있는데도 왜 유독 명우 앞에서는 조마조마해지는 건지 모르겠다.
“본 뜰 거니까 움직이지 마.”
“응, 그런데…….”
“말하지도 말고.”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이스무아르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뭔지 모를 액체를 녹여 왔다. 이어 명우가 얇은 판을 꺼내 내 몸 위쪽으로 띄웠다. 잘 보이진 않았지만 내 등에는 아무 감각이 없는 걸로 봐선 액체를 판 위에 뿌린 듯했다.
잠시 뒤 명우가 얇은 밀랍 같은 것을 판에서 떼어 냈다. 마나 각인이 파르스름하게 새겨진 것이 보였다.
“안전 장치는 넣을 거야. 정말로 필요한 게 아니면 풀지 마. 풀면 티 나게 만들 테니까.”
“응.”
“이제 일어나도 돼.”
상체를 세워 작업대에 앉자 이스무아르가 옷을 가져다주었다. 상의를 입으며 물었다.
“혹시 말이야,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나 각인을 해 줄 수 있을까? 안전한 정도로만.”
“지금은 불가능해. 아이템은 재료를 마나 열로로 제련하지만 사람 몸은 아니니까. 그래서 대량의 마나로 작업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데, 그 정도의 마나를 한 번에 끌어 낼 방법이 없어.”
“내가 각인 받은 곳에는 마나 홀이라고 마나가 넘쳐나는 장소가 있었거든. 은혜로는 못 하나? 은혜가 마나 홀 덕분에 마나의 샘을 가지게 된 건데.”
“유진이 네 한정이잖아. 지울 수 있다는 것도 은혜가 있으니 가능한 거야. 마나 홀 같은 장소가 우리 세상에도 생긴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각인을 해 줄 수 있겠지. 등급 대비 적정량을 지키면 유용하긴 할 텐데, 넌.”
노려보는 눈길이 따끔했다. 안 된다니 좀 아쉽네. 은혜야, 예외 좀 둘 수 없을까. 유현이랑 예림이, 가족 한정이라도. 가족이면 원래 이거저거 다 같이 쓰는데.
“네 동생도 요샌 너무 물러졌어. 예전에는 여차하면 가둬 놓을 것처럼 굴더니.”
“사람을 가두면 안 되지.”
“넌 돼.”
내게도 인권은 있습니다만.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널 아끼는 것치곤 물러.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다들 널 필요로 하니까.”
“명우 넌 안 그렇다는 것처럼 들린다?”
“나야 네가 날 필요로 하는 거니까. 몸 사릴 거 없지.”
“옳은 말씀입니다.”
명우야 뭐, 내가 스킬 얻게 도와줬다곤 해도 갚을 만큼 다 갚았다. 은혜만으로도 충분하고 넘칠 정도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내 능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다른 헌터들이야 기승수에 성장 버프에 명우와의 인맥에 스태미너 포션과 기타 정보들 등등 얻을 거 많지만 명우는 달랐다. 나와 갈라서면 아쉬운 건 나지.
“그래서 유독 네 앞에선 작아지는 걸까.”
“내가 너 떠날 일은 없어.”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나도 내 동생이랑 그렇게 오래, 떨어져 지낼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 기껏해야 군대 정도였지.”
“없다니까.”
먹고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 명우가 과자를 내밀었다.
“근데 과자가 예전과는 좀 달라졌다?”
“밥 안 먹는다고 식사 전엔 단 건 주지 말라더라. 많이 먹이지도 말랬고. 그게 마지막이야.”
담백한 거 치곤 맛있긴 한데… 애들도 참.
“아, 너도 어르신 한번 만나 볼래? 유현이 검 가르쳐 주신 댔거든.”
“가르쳐 준다고?”
“어. 그 신입 있는 던전에서 말이야. 주에 한 번 정도.”
내 말에 명우가 흥미 있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나도 배울 수 있을까?”
“응? 명우 네가 검을?”
“아니. 신입한테서.”
신입이라면… 조금 놀란 눈으로 명우를 바라보았다.
“시스템 관련을, 말이야?”
“시스템이라기 보단 제작 전반이야. 던전을 신입이 직접 만든 거 너도 봤잖아. 내가 일단은 대장장이긴 해도 만든다는 행위에 제약은 없으니까. 여길 봐.”
명우가 자신의 대장간을, 창문 너머의 녹음을 가리켰다.
“이 공간도, 작은 세계도 대장장이인 샬로스 씨가 만든 거야. 나라고 못 할 건 없지.”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작은 곳이다. 하지만 엄연히 독립된 던전과 같은 공간이었다.
“아이템을 만드는 것도 재밌긴 하지만, 신입의 던전을 보고 나니 욕심이 생기더라. 이 세상에서는 최고라고 해도 거기서 더 나아가고 싶어. 게다가 던전이나 시스템에 대해 잘 알게 되면 너한테 도움도 될 테고.”
“그야, 물론. 당연하지!”
괜히 내 가슴까지 두근거렸다.
“내가 신입한테 잘 말해 볼게. 신입 걔 착하니까 들어줄 거야. 역시 이번에 갈 때 먹을 거라도 싸 들고 가야겠다… 배구공이라 못 먹나.”
가죽 광택제라도 선물할까.
“하지만 촉수는 달지 마라.”
“응?”
“편하긴 한데, 그래도 말이야.”
촉수가 유행인 것 같아 살짝 걱정되었다. 신입한테도 명우에게 괜한 바람 넣지 말라고 말해 둬야지.
* * *
병실로 돌아 와 명우를 배웅하고 나서 두 개의 마석을 꺼내 들었다. SS급 마석 옆에 두자 깜둥이의 마석은 작고 볼품없이 보였다. 그래도 깜둥이가 메인이 될 것이다.
‘이번엔 어디다 넣지.’
심장은 앞뒤 다 있고, 허리? 배? 아니면 어깨나 팔다리? 고민하다가 문득 손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쓰다듬어 주는 거 좋아했었는데.
‘손바닥으로 할까.’
살짝 잘 그으면 티도 덜 날 거 같고.
욕실로 들어가자 피스가 따라왔다. 나가 있으라고 해도 이번에는 듣지 않았다.
“그럼 놀라면 안 돼. 아빠 그냥 스킬 쓰는 거야.”
– 꺄웅.
“피스 동생 만드는 거니까.”
피스는 새로운 몬스터가 늘어나는 걸 싫어하긴 하지만.
단검을 빼 들자 앉아 있던 피스가 몸을 일으켰다. 불안해하는 걸 달래며 피스에게 보이지 않도록 세면대 안에 손을 넣었다. 아주 살짝 베었을 뿐인데 피 냄새가 나자 끙끙거린다. 얼른 두 개의 마석을 넣곤 피스에게 상처를 보여 주었다.
“자, 봐봐. 괜찮지?”
– 끄앙.
피스가 혀를 내밀어 조그맣게 남은 상처를 핥았다. 깜둥이도 체인질링보다는 빨리 태어나겠지.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궁금했다. …체인질링 이름은 어쩐다. 작명소라도 가야 하나.
* * *
“좀 더 쉬시지.”
“그래, 형. 딱 삼 일만, 이왕이면 일주일쯤 더 쉬는 게 어때? 한 달도 좋고 아예 일 년 정도 장기 요양도 괜찮다고 생각해.”
“맞아요, 아저씨. 길드장님아, 이참에 해연에서 요양원 하나 만들자. 핵가족 고령화 시대라 전망도 좋대.”
“얘들아, 나 아직 20대다.”
말만 들으면 노부모님 모시는 줄 알겠다. 유현이와 예림이는 걱정스러워했지만 예정대로 퇴원했다. 몸 상태도 괜찮아졌고 시력까지 거의 다 회복되었는데 더 누워있을 이유가 없었다.
“건강 관리 잘하며 쉬엄쉬엄 일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직원도 뽑을 거잖아.”
“아저씨가 직접 찾아 갈 거라면서요? 왜 일을 사서 해요. 그냥 해연에 맡기지. 아니면 면접 보러 오라고 하든가요.”
내가 할 필요 없는 일이긴 했지만 직접 가고 싶었다. 딱딱한 면접장에서 말고 내가 찾아가서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산책 삼아서야. 계속 집이며 병원에만 있었잖아. 그보다 예림이 너 내일 아침에 출발한다고 했지?”
“네. 이번에는 A급이라서 금방 끝날걸요. S급을 맡게 되면 좀 걸리겠지만요.”
심지어 커다란 호수 환경에 블루도 데리고 가기로 해서 길어야 이틀 안팎이라고 했다.
“블루가 엄청 빠르잖아요. 다음 날 바로 돌아올지도 몰라요.”
해연의 던전 관리 능력을 보여 주기 위한 거라, 예림이 혼자 들어가 최대한 빨리 공략할 예정이었다. 압도적인 공략 속도를 내세워 괜한 불만이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일본에 가는 건 성인인 팀원들도 동행한다.
“연구소 때문에 해외 헌터들 여럿 방문한다는데 저 없는 동안 조심하세요. 직원 구할 때도 S급 헌터랑 피스까지 꼭 같이 가고요. 한유현, 잘 해.”
“걱정 마.”
현아 씨 말대로 예림이가 내 보호자가 된 것 같다. 이래도 괜찮나 싶었지만 그게 예림이 마음이 더 편할 거라고 하니. 실제로도 유현이와 내게 잔소리하는 걸 즐기는 표정으로, 뭐 더 해야 할 말이 없나 열심히 고민하고 있었다.
* * *
다음 날 예림이를 배웅한 뒤 도하민이 준 주소록을 들고 집을 나섰다.
“잘 부탁할게요, 노아 씨.”
나를 보호해 주기로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노아 씨였다. 노아 씨는 요즘 날 피하는 편이기도 하거니와, 방문객이 늘어난 빌딩과 연구실을 지키고 있으니 유현이나 성한 씨에게 부탁하려 했는데, 그가 먼저 동행해 주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명우가 조언이라도 해 준 걸까.
어쨌든 잘되었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