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342
340화 뜻밖의 방문객
코엑스 근처의 높은 호텔 건물 꼭대기에 올라앉았다. 피스가 내 무릎 위에서 작게 하품을 했다. 여기선 누가 볼 사람도 없으니 은신 스킬도 풀고 아쿠아리움에서 슬쩍 가져온 구슬아이스크림을 한 숟갈 떠먹었다. 물론 돈은 놓아두고 왔다. 흘린 것처럼 보이겠지만.
“많이 드시면 안 돼요.”
내가 스푼을 다시 동글동글한 아이스크림 무더기에 푹 찌르자 노아가 잔소리를 했다. 아쿠아리움에서도 먹으면 안 된다는 속삭임에 달래고 달래 한 컵밖에 못 가져왔다.
“얼마 되지도 않는걸요. 자요.”
노아 씨도 먹으라며 떠줬다. 요즘 먹는 데 너무 팍팍하게들 굴어. 간식 줄이고 세 끼 제대로 챙겨먹는 게 좋다는 거야 잘 알지만.
“세성 길드장네 수조도 멋지긴 했는데 역시 대형 수족관은 다르네요.”
그러고 보니 성현제 씨 댁 어디로 옮겨갔을까. 아파트는 임시 거처고 원래 집은 폭삭 무너졌으니. 예비용 저택 두엇쯤은 가지고 있겠지만.
“물고기가 정말 많았어요.”
노아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관람객 피하느라 바쁘긴 했지만 그래도 볼 건 꽤 많았다. 피해 다니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고. 사람이 우르르 몰려올 때엔 노아가 날 붙잡고 날아오르기도 했었다. 갑자기 이는 바람에 다들 어리둥절해했지.
그때 문자가 들어왔다. 민소한이었다.
[알바도 돼요? 학교 다니면서요.]영 관심 없다는 듯이 굴더니.
[네, 됩니다. 마음이 바뀌셨나 봐요.] [조건도 좋긴 한데 자꾸 신경 쓰여서요.]신경 쓰인다니, 노아 말인가? 내가 사기당할 거 같다는 소리일 수도 있고. 아무튼 알바도 좋지. 해연길드 인사팀으로 연락하라고 답장을 보내며 노아를 돌아보았다.
“민소한 씨도 사육소에 들어올 거라네요.”
“아까 그분이요?”
“네. 저보단 노아 씨 때문인 거 같은데.”
귀찮다 귀찮다 하면서 사람 챙기기 은근 좋아해서. 민소한이 알겠다는 답장과 함께 알바생도 사택 주냐고 물어왔다. 물론 제공한다니까 청소하기 귀찮으니 작은 평수가 좋단다. 바닥만 깨끗이 하고 로봇청소기 돌리라고 답해 줬다. 가전 좋은 거 많으니까. 식기세척기와 음식물처리기는 기본으로 넣고 재활용품 버리기 편한 곳으로 이사하라고 해야지.
우리 집은 쓰레기 내놓기가 조금 불편해서 투덜거렸더니 유현이가 태워 버리려고 들었었다. 요즘 쓰레기 문제는 던전 덕에 거의 해결이 되었다지만 그래도 재활용은 해야지.
“학교는 계속 다니면서 알바 정도로 할 거라는데, 그러고 보니 민소한 씨 학교 헌터전형 있어요. 노아 씨도 내년에 대학 갈 생각 혹시 있으세요?”
전에 말 나왔을 땐 일 터져서 대답을 못 들었었는데.
“…모르겠어요. 저는, 학교 다니다 말기도 해서요.”
“각성하기 전까진 다니셨죠?”
노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괜찮아요. 상급 헌터는 던전 공략 기여도로 대신할 수 있거든요. 난리 통의 최전선에 선 사람들더러 수업 왜 빠졌냐고 할 순 없잖아요. 유현이도 각성 후엔 학교 거의 안 갔어요. 나라 지키는 게 더 급하니까요.”
그래도 학교는 다니려나 싶어 몇 번이나 기웃거려 봤지만 마주칠 수 없었다. 그땐 지금과 달리 던전도 자주 터졌는데 S급 헌터를 수업 들어라 앉혀 놓을 리가 있을까. 애초에 던전 생기고 첫해는 휴교도 잦아서 그해 수능 치느냐 마느냐로 논란도 일었다. 수능 전날 인터넷에 수험장 근처에서 던브 났으면 좋겠다는 글 올리고 욕먹은 애들도 많았다지.
“지금도 출석 거의 안 하잖아요. 제대로 다니면 좋을 텐데.”
“…유진 씨는요?”
“네?”
“졸업장은 얻어 두는 게 좋다고, 브레이커 길드장이 그랬잖아요. 내년에 대학교 가실 거예요?”
“어… 일단 입학은 해둘까 싶긴 해요.”
내가 가만히 있어도 강제로 시키려 들겠지만. 특히 석시명이.
“유진 씨와 같이 다닌다면 갈래요.”
“근데 전 딱 졸업장만 목표라 학교 갈 일은 거의 없을 텐데요.”
노아 씨가 평범한 캠퍼스 라이프 같은 거 즐겼으면 싶어서 권하는 건데. 노아가 가는 곳이면 강소영도 따라갈 테고, 이왕이면 소한이 학교로 가면 챙겨도 줄 테고. 민의는 어디 다닌다더라.
“유진 씨가 학교 출석하면 해연 길드장도 나올걸요.”
“그건…….”
그, 그러려나. 하지만 유현이 학교에 입학하면 내가 후밴데. 유현이가 나한테 선배 대접 바랄 린 없겠지만……. 대학 가면 뭐 하지. 캠퍼스 라이프라고 해도 내가 뭐 아냐. 축제 같은 건 하는 거 아는데. 동아리 활동이나.
“가기는 갈 거니까, 그럼 노아 씨도 특례입학 말해 놓을게요.”
소영 씨가 좋아하겠네. 둘이 같이 학교 가면 정말 그림 같겠다. 아이스크림은 몇 입 먹지도 않았는데 동이 났다. 노아가 시간을 확인하더니 크로스백에서 보온병을 꺼내들었다. 약 먹고 아이스크림 먹을걸.
“이건 꼭 하라는 건 아니고요, 노아 씨가 관심이 있는 듯해서 말하는 건데요.”
약을 받아들며 말을 이었다.
“석시명 팀장을 한번 만나 보는 게 어떨까요?”
“석시명 팀장이면, 해연 길드원 말하는 거죠? 석하얀 씨 삼촌이신.”
“네. 전에 보니 보조계 헌터들에 대해 신경 쓰고 있더라고요. 노아 씨 혼자 보조계 헌터에 대한 일을 시작하는 건, 솔직히 당연히 힘들 거예요. 막막할 수밖에 없죠.”
일종의 사회운동 같은 건데 쉬울 리가 없다. 인종이나 성별, 신분, 종교 등의 차별을 긴 시간 많은 사람이 해소하려 노력했지만, 아직 문제가 많았다. 심지어 신분제도 남아 있는 곳이 있을 정도다.
게다가 애초에 완벽한 해결이 힘든 문제기도 했다. 모든 사람이 정신적으로 훌륭한 성인(聖人)이라도 되지 않고서야 능력의 차이가 뚜렷할수록 무심코 차별하기 쉬워지니까. 그러니 계속 문제를 환기시키고 좀 더 나아지도록 노력하는 거지.
“그러니 당장 무언가를 시작하기보다는, 천천히 알아가 보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소한 씨 말대로 노아 씨에게는 시간이 많잖아요. 아직 배워야 할 나이이기도 하고요.”
“…생각해 볼게요. 아직은 제가 정말로 뭘 하길 원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저 좀 더 중요한, 대단한 사람이고 싶어서 욕심내는 것도 같거든요. 이런 일을 해내면 칭찬받을 수 있겠지, 같은 거요. …어린애 같지만.”
“에이, 뭘요. 원래 그렇게 시작하는 거죠. 칭찬받기 싫어하는 사람 없어요. 잘했다, 대단하다, 소린 다들 좋아하죠.”
석시명이면 뭐, 노아에게 무척 잘해 줄 것이다. 살살 꼬셔다 아예 해연에 들여앉히려 들지 않을까 걱정은 되지만.
“…혹시 석 팀장과 만날 생각이시면 저한테 꼭 먼저 말씀해 주세요. 친절하긴 할 텐데, 속이 좀 까매서. 웬만하면 혼자서는 가지 말고요. 저 아니면 명우나 하민이라도 데리고 가시고요. 아니면 오늘 본 사람들 중에서 서경훈 씨나 이유신 씨, 민소한 씨라도요.”
미리 경고도 해둬야지. 애 꼬드겨서 괜한 짓 할 생각은 말라고. 섣불리 나랑 틀어질 짓 할 사람이 아니긴 하지만 혹 모르잖아.
사육소 신규 직원들에 대해선 예정대로 해연길드 인사팀에서, 석시명이 맡아 주기로 했다. 그쪽에서 교육 후 인수인계받아 사육소, 정확히는 빌딩 쪽으로 옮겨갈 것이다. 이미 빌딩에 사무실도 널찍하니 새로 마련해 놓았다.
[사실 걱정이 꽤 들었었습니다만, 첫인상은 다들 좋았습니다.]한 번 보고 사람 속을 어찌 다 알겠냐마는 다들 강단 있어 보였다고 석시명이 말했다. 그야 내 옆에서 오래 버텼으니까. 꿋꿋한 거야 기본이고 귀도 얇지 않고 외부의 말에 흔들림이 없을 사람들이다.
인재가 따로 있겠냐.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귀한 인재지.
‘내가 겪어 보지 못했다면 평범한 사람들로밖에 느껴지지 않았겠지만.’
그렇게 힘든 일을 함께 겪지 못했더라면, 잃지 않았더라면 영영 몰랐을 것이다. 아픔으로만 남았던 기억들이 이렇게 되돌아오다니. 기분이 묘해졌다.
“우리 소록이 그래도 조금은 자랐네.”
사육소 1층 복도를 따라 걷다 말고 늘어진 새끼 순록의 새하얀 배를 문질러 주었다. 소록이는 숲처럼 꾸며 놓은 운동장보다 건물 내에서 돌아다니는 걸 더 좋아했다. 그래 봤자 많이 걷지는 않았지만 바닥재와 발굽이 부딪쳐 톡톡톡 소리가 나는 게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 매애.
까맣고 복실복실한 새끼 양이 소록이 주위를 퐁퐁 뛰었다. 마치 작은 공처럼 잘도 튀어 오른다. 몬스터긴 하지만 같은 유제류라서인가 둘이 제법 친했다. 정확히는 새끼 양이 소록이에게 놀자고 치대는 쪽이었지만.
“네 아빠는 소식도 없고. 요즘 많이 바쁜 모양이긴 하더라.”
– 매애애.
“확 쳐들어갈까?”
– 매앵.
갑자기 던전 상태도 바뀌고 연구소 일도 있고 바쁠 만했지만, 연락도 잘 안 받고. 이미 협회 쪽엔 이야기 다 끝났는데. 그쪽에선 아예 생방송으로 기승수 전달식 같은 거 하자고 나왔지만 송 실장님이 거절했다. 개인 용도로는 받을 수 없노라고.
“송 실장님 성격에 전용 기승수, 라고 못 박아 놓지 않으면 또 슬슬 피할 거란 말이야. 역시 강경하게 밀고 나가야 하나.”
한번 떠맡으면 못 본 척하진 않을 성격이시니. 일 좀 한가해지면 쳐들어가야겠다.
소록이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는데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약 먹을 시간은 멀었으니 유현이는 아닐 테고, 누구지.
“…어?”
나타난 얼굴은 정말 예상치 못한 사람의 것이었다. 눈부시게 잘생긴 얼굴이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안녕하세요, 유진이 형. 오랜만이죠?”
“아, 응, 네.”
“편하게 말씀하세요.”
박하율이 웃으며 말했다. …완전히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중국 갔다더니 돌아온 건가. 박하율과 함께 온 사람은 세성길드에서 나온 A급 헌터였다. 이번 주 사육소 보안 담당인데, 왜 박하율과 같이 들어온 거지.
“한 소장님과 친한 사이라고 해서 동행해 왔습니다만, 맞으신 듯하군요.”
“네? 어, 일단 그렇다고 할까요.”
조금 당황하며 A급 헌터를 바라보았다. 아니 친하다는 말만 믿고 데리고 들어왔다고? 그러면 안 될 텐데? 여기 사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보통 빌딩과 연결된 입구에서 막고 내게 먼저 연락이 들어오게 되어 있지 않았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박하율이 A급 헌터에게 인사했다. A급 헌터가 환하게 웃으며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혹시 박하율 팬 같은 건가. 반응이 뭐랄까, 호의가 가득했다. 그래도 사적인 마음을 공적인 일에 넣으면 안 되지. 돌아서는 A급 헌터를 미심쩍게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보안 담당하기엔 좀 문제 있는 사람이라고 세성에 연락을…….
“형, 그동안 소식 많이 들었어요!”
“어…….”
박하율이 내 앞으로 성큼 다가오며 말했다. 와, 정말 잘생기긴 잘생겼다. 예전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중국 물이 잘 맞았나. 게다가 진짜 호감상이었다.
“연락이 없어서 좀 섭섭하기도 했는데요.”
“아, 미안해.”
“아뇨, 괜찮아요. 혹시 누구 올 일 없죠?”
“응?”
“형 주위엔 S급 헌터들 많잖아요. 오기로 한 사람 있어요?”
박하율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눈도 예쁘네. 펄이라도 들어간 듯 묘하게 반짝거린다. 렌즈 꼈나. 청회색으로 염색한 머리도 잘 어울렸다.
“동생이, 두 시간쯤 뒤에 올 거야.”
“정말요? 그래도 평소엔 혼자 있나 봐요.”
“지키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상급 헌터들도 여럿 있고 노아 씨에 지금은 같이 안 왔지만 피스도 있고.”
“피스면 S급 몬스터였죠? 항상 같이 다녀요?”
“거의 항상. 하지만 새끼 몬스터들 돌볼 때는 애들이 무서워하는 경우가 많아서 집에 두고 오기도 해.”
말하다 말고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이런 거 다 털어놓으면 안 되지 않나. 하지만 문제 될 거, 없을 듯도 하고.
“형.”
목소리도 좋네. 박하율의 눈이 가느스름하게 휘었다.
“또 놀러 와도 되죠?”
“그야, 되지.”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제가 온 거 말 안 했으면 좋겠어요. 부담스럽잖아요. 형 주위엔 무서운 사람들도 많고요.”
그런가? 하긴 S급 헌터들이 비각성자에겐 무섭게 느껴질 만했다. 말… 안 해도 되겠지. 그냥 아는 사람이 놀러 온 거니까.
“알았어.”
“고마워요.”
좋아라 하는 거 보니까 괜히 나도 기뻐졌다. 잊고 있었던 게 미안하기도 하고, 이 정도야 괜찮겠지.
“차라도 줄까?”
“아뇨. 오늘은 오래 못 있어요. 다시 올게요.”
박하율은 비밀을 지켜 달라는 당부를 남기고 몸을 돌렸다. 가버리는 게 어쩐지 아쉬웠다. 아무튼 오랜만에 보니까 좋네.
– 삐앵.
멍하니 서 있다가 소록이의 울음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느새 몸을 일으킨 소록이가 내 옷자락을 잘근잘근 씹었다. 새끼 양도 덩달아 반대쪽 옷자락을 물고 당긴다.
“…귀신에 홀린 것 같네.”
뭔가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여태까지 입 다문 것도 있고, 나쁜 녀석은 아니니까. 오히려 그 반대지 않나. …그렇지? 그때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예림이었다.
[아저씨! 저 공략 끝났어요!]“벌써?”
[네! 블루도 무사하고요.] [꺄우우!]빨리 끝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진짜 빠르네. 대단하다고 실컷 칭찬해 주었다.
[인터뷰랑 이것저것 하고 내일 아침에 돌아갈 거예요. 별일 없었죠? 한유현이 잘 챙겨 주고 있어요?]“그럼. 아무 일 없었어. 내일 마중 나갈게.”
[안 그래도 되는데.]괜찮다고 말은 하지만 웃고 있을 얼굴이 눈에 훤했다. 몇 마디 더 대화를 나누곤 전화를 끊었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복도의 공기가 서늘하게 느껴졌다.
분명 이상한 느낌이 드는데,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