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345
343화 일단은 평화로운데 (1)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은 미니어처 향수병 같은 것이었다. 예림이가 저런 걸 진열해 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쓰지는 않고 장식용이라나. 조그만 병 안에는 푸른빛 도는 액이 담겨 있었다.
“…먹는 거야?”
나는 분명 마나 각인 조절 아이템을 부탁했었는데.
“아니.”
명우가 소병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 안에 든 게 아이템이야.”
“그 액체가?”
“액체 금속이지.”
수은 같은 건가. 병의 뚜껑이 열리자 안에 든 푸른 액이 느릿이 출렁거렸다. 묵직한 움직임이 확실히 평범한 액체는 아니다.
“각인 위에 덧씌워지는 방식이야. 제거는 이 병의 입구를 가져다 대면 알아서 빨려 들어가. 즉 병이 없으면 일반적인 방식으론 떼어내지 못한다는 거지.”
“혹시 그 병은 나한테 안 준다거나.”
“잘 아네.”
명우가 웃었다.
“유진이 네 몸에 부담가지 않을 선에서 자동으로 조절해 줄 거야.”
“부담 가야만 할 일이 있을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생님.”
“자.”
이번에는 작은 구슬 두 개가 내밀어졌다.
“이걸 쓰면 일시적으로 수동 전환돼. 주기는 주겠지만 가능한 쓰지 마.”
“노력은 할게.”
구슬을 인벤토리에 넣는 나를 명우가 조금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이어 액체 금속을 내 목덜미, 각인이 시작되는 부분에 붓는다. 차가운 감각이 등의 각인을 따라 번져 나갔다.
“최소 달에 한 번은 점검해야 해. 폰에 입력해 둬.”
“응, 고마워.”
“무기는 어떻게 할지 물어봤어?”
“예림이 창을 업그레이드하기로 했어.”
그날 아쿠아리움 가서 매너티 수조 앞에서 이야기했다. 내가 항상 형 옆에 있을 수는 없으니까, 라며 예림이에게 SS급 무기가 생기는 편이 더 낫다고. 마음 같아선 계속 같이 있고 싶다지만 그러기 쉽지 않지.
그리고 아이스크림은 사주지 않았다. 동생 녀석은 매너티가 양배추 뜯어먹는 걸 보며 양배추가 위에 좋다고 말했다. S급에게는 불필요한 지식이 자꾸 늘어나는 거 같은데 성한 씨가 범인인가. 덧붙여 예림이는 상어가 있는 대형 수조에 들어가서 거품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가오리랑 같이 사진도 찍었고.
“그럼 이번 주말쯤에 창 가지고 오라고 전해.”
“오래 걸릴까? 예림이는 예비 무기가 하나도 없어서.”
전투 중 무기에 손상이 가는 경우가 있으니 만약을 대비해 S급 예비 무기 하나쯤 구해 두면 좋은데, 속성에 특성까지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예비 무기면 보조 겸해서 창 외의 다른 종류가 좋겠지. 한번 물어봐. 어떤 걸 쓰고 싶은지.”
“만들어 주게? 그럼 너무 미안한데…….”
“어차피 공짜는 아니잖아.”
…예림아, 맞춤형 무기는 돈 주고도 구하기 힘든 거란다. 빚이 또 생겨도 넌 S급 헌터잖니. 마음 같아선 내가 도와주고 싶지만 받아주지 않겠지. 물론 예림이야 소식 듣고 좋아할 거다. 다른 종류의 무기라면 손에 잘 맞는 거야 할 테니 미리 이것저것 써보라고 해야겠다.
“수 속성과 빙 속성 재료는 아직 넉넉하기도 하고, 에블린 헌터 무기 제작도 끝났거든.”
“에블린 헌터면 활?”
“응. 자세한 건 말 못 해주지만.”
“당연히 그래야지. 에블린 헌터 의뢰 받아줬구나.”
“정확히는 세성 길드장 의뢰야. 이것도 자세히 말하기는 좀 그렇고.”
미안하다는 명우에게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헌터 대상 장사야 보안 유지가 중요하니까. 뭐 대충 에블린 헌터를 세성으로 데려온 대가가 아닐까. 성현제가 명우에게 뭘 해줬을지는 좀 궁금하긴 하네.
“전에 말한 아이템 제작자들을 모집하는 거 말인데. 이왕이면 해외에까지 공고 내보려고. 정확히 어떤 식으로 각성시켜야 할까?”
명우가 물어왔다. 해외까지 포함하면 사람이 너무 몰리지 않을까 싶지만, 1차는 조건을 까다롭게 정하면 괜찮겠지.
“우선 절대 몬스터에게 직접 공격을 받으면 안 돼. 그랬다간 전투계나 전투보조계 스킬이 튀어나와 버릴 가능성이 높으니까.”
몬스터에게 공격당하는 걸로 각성해도 된다면 어렵게 준비할 거 없이 각성센터로 가면 된다. 건물만 무너졌지 각성 시스템이야 무사하니까. 하지만 몬스터와의 전투 중 각성은 천에 구백구십구가 전투계 스킬을 얻게 되고 만다. 운 좋게 제작 관련 스킬이 나올 수도 있지만 확률이 너무 낮았다.
“그러니 일종의… 그래, 방탈출 게임장 같은 걸 만드는 게 가장 좋겠다. 철창살 너머에 몬스터가 어슬렁거리고 있고 카운트다운 시작되는데 눈앞의 도구로 시간 내에 열쇠를 만들어야 벗어날 수 있는 그런 식으로 말이야.”
몬스터에게 직접 공격받는 게 아니라 위협받는 것만으로 각성하려면 최대한 실감이 나야 했다. 그러니 실제로는 안전하다고 해도 위험할 수 있다며 각서 쓰게 하고 비상벨도 하나 쥐어 줘야겠지.
“사다리를 직접 만들어 도망치거나 몬스터가 묶여 있는 사슬을 수리하고 알맞은 아이템을 고르는 등등 특수한 던전처럼 구성하는 거지.”
“재미있을 거 같은데.”
“비각성자는 무서울걸. 만드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내가 만들어 볼게.”
“명우 네가?”
“그런 던전도 따지고 보면 일종의 아이템이잖아. 이 황금대장간처럼. 지금 내 능력으론 아예 따로 공간 자체를 만들기는 힘들겠지만 건물만이라도 손대 보려고.”
하긴 신입도 던전을 만들어 냈었다. 초월자니 명우와는 격의 차이가 크긴 하지만, 명우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몸 관리 잘하라는 잔소리를 덤으로 듣고 나서 사육소로 돌아왔다. 옥상정원에는 완전히 성장한 코메트와 강소영이 기다리고 있었다. 매끄러운 검은 비늘과 기다란 날개를 자랑하는 가시날개암룡이 내게 커다란 머리를 대어 왔다.
– 크르르릉.
스탯 S급에 최적화 스킬도 전부 얻었다. 강소영은 환하다 못해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한 표정으로 연신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코메트 집이 있던 쪽 건물이 폭삭 내려앉아서 일단은 경기도 사육시설로 갈 거예요.”
“남은 건물은 무사합니까?”
“네, 안전점검 끝났어요. 그나마 다행이죠.”
강소영이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길드장님도 참, 해드실 거면 저처럼 남의 건물을 해드셔야지.”
남의 거든 자기 거든 부수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대장장이님께서 코메트 장비 내일 완성된다고 하셔서 모레 같이 던전 들어갈 예정이에요. S급으로요.”
“처음부터요?”
“저도 S급 하위 정도는 들어가는걸요. 데이터 충분히 쌓인 던전이라 문제없어요.”
“그래도 조심해서 잘 다녀오세요.”
네, 하고 대답한 강소영이 덥석 내 손을 붙잡았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살짝 부담되었다.
“한 소장님, 정말 많이 좋아해요.”
“아, 예…….”
살짝 두근거릴 법도 한 말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코메트 잘 키워 주셔서 정말매우무척아주 감사하다는 표현일 거라.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뜻이겠지.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불러 주세요. 한 소장님 부탁이라면 뭐든 다 들어드릴 수 있어요! 제가 정말로 고맙게 여기고 있다는 거 잘 아시죠?”
“예, 예.”
“한 소장님을 위해서라면 길드장님 뒤통수도 노릴 수 있어요. 때리지는 못하겠지만. 제가 능력이 A급이라. 그리고 저희 길드장님도 잘 부탁드릴게요.”
성현제가 여기서 왜 나오냐.
“요새 좀 성격 더러운 기간인 거 같은데요 한 소장님께 손댈 생각은 없을 테니까 잘 봐주세요.”
“…성격 더러운 기간이요?”
“별 재미도 없는 날파리 몇 마리가 달라붙어서요. 길드장님이 노잼인데 귀찮게 구는 걸 싫어하시다 보니까. 자기가 남 귀찮게 구는 건 괜찮지만 남이 그러면 안 돼요.”
날파리라니. 통화할 때 처리 중이던 거 말인가. 슬쩍 더 캐물어 봤지만 강소영은 입을 딱 다물었다. 뭐든 다 들어준댔으면서. 가볍게 보여도 길드원으로서 지킬 건 지킨다니까.
강소영이 코메트의 등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날개가 넓게 펼쳐지고 이어 거대한 덩치가 하늘 위로 가볍게 날아오른다. 검은 용의 뒷모습이 순식간에 멀어져갔다.
‘이걸로 S급 몬스터 세 마리째네.’
이젠 벨라레와 소록이를 제외하고는 A급들뿐이었다. 소록이는 좀 오래 걸릴 듯하고 벨라레는 이상하게 성장을 안 해서……. 슬슬 해외의 S급 몬스터도 받아 볼까. 지금까지 두 군데서 의뢰가 들어와 있었다.
‘미국이랑 인도였지.’
종류는 알려 주지 않았고 등급만 들었다. 예림이도 기승수 필요한 데 둘 중에 냉기 저항 있는 몬스터 없으려나. 있다 해도 S급 몬스터 새끼를 쉽게 내놓을 리 없지만 키울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이니 협상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그 전에 떡잎 스킬을 쓸 수 있어야 새끼 몬스터들 상태창 확인을 해볼 텐데.’
시스템 언제 고쳐지냐.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길게 기지개를 켰다. 그래도 시스템이 먹통이니 평화롭기는 하구만. 멸망 카운트다운만 아니었으면 그냥 이대로 쭉 가도 좋을 텐데.
“어, 유현이다.”
동생이 문자를 보내왔다. 나온 김에 산책이라도 하고 들어가, 라니. 보고 있는 거냐. 저기 열린 저 창문인가. 맞는 것 같다. 손을 흔들어 주니 마주 흔든다.
오늘 저녁은 뭐 먹을까. 예림이 오랜만에 학교 갔는데 마중 나갔다가, 아니다. 친구들이랑 놀다 올 수도 있지. 유현이는 학교 마치고 바로바로 집으로 왔지만. 내가 늦게 들어가면 혼자 집에서 기다리고… 어휴, 내 동생.
‘…대학교라도 같이 갈까.’
놀랍게도 대학교는 학년이 달라도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시간표를 학생이 직접 짠단다. 덕분에 같은 학년 같은 반이나 마찬가지로 다닐 수 있다 해서, 좀 혹했다.
노아 씨와 소영 씨도 있으니 학교 친구처럼 지낼 수도 있을 거고. 겉으로만이라도.
‘이렇게 된 거 초월자들 협상을 한 십 년쯤 했으면 좋겠다.’
걔들 시간 많잖아. 협상만 하다가 세월 다 보내고, 우리는 알아서 멸망 막고. 그러면 안 되나. 신입아, 질질 끌어 봐.
동생이 시키는 대로 정원 한 바퀴 돌고 아래로 내려갔다. 슬슬 점심 먹을 때니까.
“형.”
“…어.”
박하율이었다. 이번에는 아예 혼자 들어왔다. 그래도 되나 싶었지만, 나와 아는 사이고. 박하율이 나를 향해 살갑게 웃었다.
“박예림 헌터는 학교 갔다면서요?”
“응. 학생이니까.”
“그럼 지금은 아무도 없어요? 형 찾아올 사람이요.”
“딱히 없지만, 조금 있다가 동생이랑 점심 먹을 거야.”
내 말에 박하율이 크게 서운해했다.
“취소하면 안 돼요?”
눈을 커다랗게 뜨며 나를 쳐다봐오는 것에 살짝 미안해지긴 했지만 거절했다.
“안 돼. 동생 혼자 두면 혼자 먹거나 잘 안 챙겨 먹기도 해서.”
나한테는 밥 잘 챙겨 먹으라고 잔소리하면서 자기는 S급이라 괜찮다나. 특히 길드에서 일하고 있을 땐 나가기 귀찮다고 던전용 간편식으로 때우기도 한단다. 석시명에게 듣고 화냈더니 영양적으론 문제없다며 뭐가 잘못되었냐고 고개를 갸웃 기울이는 게, 도저히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인스턴트식품보다는 몸에 좋겠지만 그래도 말이야. 맛이 없잖아, 맛이!
“…그럼 매일 식사 같이하는 거예요?”
“별일 없으면. 아직 애라니까. 실제로도 어리고. 점심은 같이 못 먹지만 마실 거라도 줄게.”
따라오라며 그에게 손짓했다.
“다만 커피는 원두와 캡슐뿐이야.”
믹스커피는 나는 손 못 댄다. 다른 음료도 무가당이었다. 응접실 문을 여는데 박하율이 머뭇거렸다.
“여기 감시카메라 있어요?”
“여긴 없어. S급 헌터들 주로 상대할 용으로 만든 곳이라.”
커피 캡슐을 기계에 넣고 커피를 뽑았다. 정말 맛없어 보인다. 물 적당히 넣고 건네자 박하율이 맛을 보고는 약간 일그러진 미소를 머금었다. 믹스는 잘 타는데.
“이렇게 연락도 없이 막 들어오면…….”
“안 돼요?”
안 되는데, 안 된다는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냥 연락은 미리 해, 하고 소파에 앉았다.
“형, 은신 스킬 있었잖아요.”
“말 안 하고 다녔지?”
“안 했어요. 전에 해연길드에서 몰래 나왔으니까 A급한테는 통하는 거죠?”
이미 눈치챈 듯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 대답에 박하율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도 가끔 혼자 나가고 그래요?”
“그럼 난리 나.”
“난리라니, 갇혀 있는 것도 아니고. 갑갑하지 않아요?”
“조금은?”
코앞 편의점 가는데도 감시가 붙어야 하니 귀찮기는 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내 말에 박하율이 울상을 지었다.
“너무하네요, 다들.”
“아니 너무할 것까진 없지.”
“너무하죠. 형이 스탯은 낮고 스킬은 유용하니까 가둬 놓고 써먹는 거잖아요. 심지어 해연 길드장은 친동생인데도.”
“야, 그건 아닌, 데.”
써먹다니, 순간 울컥했지만 박하율의 얼굴을 보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날 걱정해서 하는 말이기도 하고. 하지만 아닌데.
“동생은 내 안전을 지켜 주려는 거야.”
“형은 해연 길드장을 많이 아끼나 봐요.”
“물론이지. 내가 키운 거나 마찬가지인 동생인걸.”
그렇구나, 하고 박하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S급 헌터들은요? 특히 세성 길드장은 위험한 사람이라고 들었거든요.”
“위험하다고 해도, 뭐.”
“위협당한 적 없으세요? 있을 거 같은데. 형한테 폭력 같은 건, 안 가했어요?”
아니, 뭐 그런 걸 묻고 그러냐. 하지만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기분이 묘하게 찝찝한 가운데 반대편이 앉아 있던 박하율이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왔다.